안녕, 드뷔시 / 나카야마 시치리 / 이정민 / 블루홀6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다.
부동산 재벌(?)인 고즈키 겐타로 씨에게는 2남 1녀가 있다. 성실하게 은행원으로 일하는 장남, 결혼 후 인도네시아로 귀화한 딸과 총각으로 직업이 없는 막내아들까지. 큰아들과 딸을 통해 겐타로 씨는 하루카와 루시아를 손녀로 두고 있다. 두 손녀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소망한다.
가족의 죽음, 피부이식수술, 재활 치료, 유산상속, 학교에서의 과롭힘, 피아노 통쿠르 참가, 세 번에 걸친 미수사건···· 고작 열 여섯 먹은 소녀치고는 지나치게 농밀한 넉 달간이었다. 375
넉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냥 사고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담당 경찰과 요스케의 관찰로 인하여 살인 사건으로 양상이 바뀐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이지만 사건에는 깊숙하게 빠지지 않으면서 독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그것은 "음악"이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소설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피아노 연주할 수 있다면 더욱 깊이 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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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큼직한 손을 루시아의 머리 위에 톡 얹었다
“너는 비뚤어질 만한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끝까지 불행에 끌려다니지 말거라. 두 다리로 서서 앞을 보거라. 슬플 때는 울어도 된다. 분할 때는 이를 갈아도 상관없어. 다만 네 불행이나 주위 환경을 실패의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눈앞을 가로막고 선 것이 두려워서 도망치면 안 된다. 도망치는 습관이 들면 이번에는 괜히 더 겁이 나거든, 네 엄마는 결코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50
지금은 자거라. 자는 것만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잠들어라. 66
남의 장애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인간은 머리석을지언정 죄는 없다. 자신과 다르게 생긴 것에 흥미를 보이는 어린아이와 똑같기 때문이다. 110
마법사는 기적을 일으키고 악마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유혹한다. 121
몸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장애를 지닌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데도 못 본 척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반 도로가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얼마나 배려 없는 곳인지도. 159
똑같은 고민, 똑같은 공포를 품은 사람이었는데도 그에게 닥친 위험보다 내 체면을 먼저 챙기고 말았다. 어차피 방관할 수 밖에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방관자가 될지 어떨지는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 정해진다.161
"너 자신이 구경거리가 될 생각이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네가 그걸 거부한다면 결코 구경거리는 되지 않아. 스스로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은 그리 쉽게 타락하지 않는 법이거든." 171
기도는 거룩한 행위다. 분명히 내게도 기도해야 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도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뒤에 남아 있는 마지막 행위니까. 225
산 자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죽은 자.
죽은 자보다 더 스러지듯 죽어 있는 산 자.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대체 뭘까.
그것은 내 속에도 팄는 걸까. 225
"사람이 감동하는 건 사람의 마음이 깃들었을 때거든. 그 마음을 형태로 나타낸 것이 예술성이야." 311
나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걸 갈망했다. 연이어 가족을 떠나보내고 피부와 목소리를 잃었다. 몸의 자유마저 빼앗겼다. 잃은 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재활이 끝나도 팔다리에는 장애가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잃은 것 대신 새로운 뭔가가 갖고 싶었다.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 나한테만 허락되는 재산이 갖고 싶었다.
그것이 피아노였다. 358
시모스와 미스즈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나는 모른다. 경쟁 상대에게 모질게 구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고, 주변 사람의 말대로 성격이 사나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걸까. 그녀의 손가락은 이토록 애절한 선율을 자아 낸다. 이토록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이 힘 앞에서는 그녀에 대한 소문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다. 377
건반을 짚으면서 생각했다. 이 선율이 닿는 모든 사람이 평온해졌으면, 상처받은 영혼, 거칠어진 마음을 어루만져 달래고 싶었다. 남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다 같이 편안해지길 바랐다. 내가 이 곡을 좋아하는 건 틀림 없이 그런 마음을 오래전부터 품어 왔기 때문이다. 381
주변의 기대와 착각 때문에 본래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건 비극이다. 본인이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는지, 다시 한번 잘 살펴봤으면 좋겠다. 403
들어보고 싶었거든. 스스로 안식과 자유를 버리고 공포와 절망을 딛고 일어나려 하는 인간이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지 말이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