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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11)조선3대 명주-전주 이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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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강주(梨薑酒)는 문화재급 술이다. 술을 빚는 사람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돼 있고 농림부 전통식품 제조 명인 9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강주는 조선시대 세시풍속집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제조기술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때문에 호산춘, 죽력고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전통주 중 백미다. 최근에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국가 주요행사에 대표주로 지정된 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뒤끝 좋은 맑은 술
호남의 넓은 들판에서 나오는 백미와 전주 배, 봉동 생강 등 지역 특산품을 넣어 2차 증류까지 거쳐 만드는 이강주는 부드러움과 알싸함이 배어있는 술이다. 배의 청정미와 생강의 톡 쏘는 향, 울금·계피가 연출해 내는 연노랑 빛깔은 결코 흔하지 않으면서 독보적인 느낌으로 애주가에게 다가선다.
이강주를 대표하는 말은 “뒤가 맑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꽤 마셔도 깨끗하게 깬다는 게 애주가의 품평이다. 그 노하우는 어디에 있을까. 이강주 제조명인인 조정형씨는 그 비결을 ‘울금’에서 찾는다. 이강주란 이름이 배(梨)와 생강(薑)에서 비롯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재료는 이 두가지이지만 뒤를 맑게 하는 ‘울금’이 있기에 대표명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술에 울금을 쓰는 것은 드문데 중국 황실서 썼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며 조선시대에 수라간에서 음식재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울금은 남도 것을 최고로 치는데 전주서 임금님에게 진상했다. 이 약재는 몸의 정신안정제 역할을 한다. 습관성 없는 안정제는 울금뿐이었으나 냄새가 독해 상용되지 못했다. 결국 이강주의 진가는 ‘울금 노하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대조부터 빚어져
명인 조씨의 6대조는 조선시대 완주부사를 지냈다. 당시 행정은 집에서 이뤄지기 일쑤였는데 늘 민원인 등 손님이 많다보니 술과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술은 6가지 정도를 빚어 항상 대기시켜 놓았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있던 술이 이강주였다. 맛이 좋은 데다 저장성 또한 탁월해 귀빈접대용으로 사용됐다.
이렇게 가양주로 전승돼 오던 이강주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밀주로 전락했다. 70년동안 사장돼 왔던 이 술은 후손인 조 명인에 의해 복원돼 대표 전통주로 부활했다. 지금은 양산체제를 갖추고 백화점에만 납품되고 있다. 대량생산도 가능하지만 백화점에 공급할 만큼만 생산한다. 문화재 명주답게 욕심내지 말자는 명인의 뜻이 담겨있다.
▲이강주 담그는 법
1)원료준비=우선 햇밀을 거칠다 싶게 빻아 물로 고루 버무려 포로 덮은 후 곡자틀에 넣어 단단하게 형을 뜬다. 곡자는 보습이 잘되는 곳에 놓아 실온 25도 정도에서 최고 온도가 45도를 넘지 않도록 보관한다. 10일 정도 지나면 온도가 내려간다. 이때 30도 실온에서 7일 정도 보관하고 건조한 곳에서 14일을 더 보관한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약 2개월 정도 저장하면 이강주에 쓸 수 있는 좋은 누룩이 나온다. 여기에 배와 생강, 한약재를 물에 잘 씻은 후 다듬는다. 꿀도 준비한다.
2)1차담금=백미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은 후 식힌다. 밥이 완전히 식으면 이 고두밥과 누륵을 섞어 술을 담근다.
3)소주내리기=담근 술을 1주일 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술을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서 냉각수를 교환해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콜도수가 떨어진다.
4)주원료의 침출 및 숙성=약 35도로 내린 전통소주에 이강주의 주원료인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다. 마지막으로 꿀을 가미한 후 숙성시킨다.
이강주의 안주로는 무엇보다 육류가 그만이다.
그 가운데서도 육회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전주|박용근기자 yk21@kyunghyang.com〉 |
[전통주 기행]이강주 제조명인 조정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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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이면서 전통식품 제조명인인 조정형씨(64)가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이강주 전승에 나서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대인 1960년대였다.
전북대 농화학과(양조학 전공)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삼학소주와 보배소주 등에서 공장장까지 지내며 술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 우리 입맛에 가장 맞는 국주(國酒)를 만들겠다고 사표를 던진 후 민속주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그의 열정은 간첩으로 오인받는 해프닝도 겪어야 했다.
전국 200여종 향토주를 맛보고 제조해보기까지 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온 가양주가 가장 낫다는 것이었다. 87년 인간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그는 90년부터 이강주 복원에 매달렸다.
전세자금 1천5백만원으로 시작된 이강주 살리기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맛과 향이 독특한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이어 국내 굴지 백화점과 1년치 납품계약을 하면서 제2의 가업으로 꽃피웠다.
문화재 공장이라 일컬어지는 전주시 원동 1공장(이강주 제조 전용)에 이어 완주군 소양면에 1만평 규모의 과실주·청주 전문공장도 세웠다. 이곳에는 사재 15억원을 들여 누룩틀과 도자기·용수 등 구경하기 어려운 주류 도구 1,300여점을 갖춘 술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아쉬운 것은 관광객과 학생의 견학이 많다보니 비좁은 공간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는 농림부에 전시관을 100평만 늘려달라고 건의해 놓은 상태다. 남은 목표는 해외다. 한국 전통주의 우수성을 세계속에 심겠다는 것. 이미 올들어 캐나다에 4만병 납품을 기다리고 있다.
〈전주|박용근기자〉 |
[전통주 기행]술독풀어주는 속풀이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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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리와 음식, 그리고 술이 한데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한판’이 된다. 소리판과 음식판·술판하여 삼판이니 흥이 나고 신명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전주를 예향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전주 이강주는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으로 코와 입을 즐겁게 해주고, 담황색의 맑은 빛깔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여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토속주로 명성이 높다.
이미 조선 후기 고종때 ‘한·미통상회담의 대표들이 이강주를 마셨다’는 기록과 함께 이강주의 부드러운 향취와 독특한 맛은 신선과 어울린다는 칭송을 받아왔다.
이강주의 특징은 많다. 술 빛깔을 맑게 해줌과 동시에 자꾸 입맛을 당기게 하는 청량감의 배를 비롯해 서서히 취하게 하여 위의 자극을 해소시켜주는 생강의 건위작용, 울금의 피로회복과 중화작용, 계피의 매콤한 맛과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신체의 대사기능을 상승시켜준다.
“술독을 풀어준다”는 효능은 이강주의 가장 큰 특징인데 여기에 벌꿀이 가미돼 더욱 조화를 이뤄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주게 된다.
이 때문에 이강주는 ‘품격이 있는 술’이라는 칭송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명주 가운데 하나로 사대부와 부유층의 가양주로 뿌리를 내리게 됐다.
우리 고유의 민족시(현대시조)의 선구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은 이강주 명인 조정형씨의 외숙부로 그가 이강주를 얼마나 즐겼던지 체면불구하고 서울서 전주까지 사돈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얘기는 너무 유명하다.
이강주는 백미로 지은 고두밥과 토종 밀누룩, 물을 2대 1.5대 4의 비율로 밑술을 빚고, 여기에 다시 보리쌀로 지은 고두밥과 누룩, 물을 5대 1.5대 6의 비율로 덧술을 하여 발효시킨 뒤, 술이 익으면 증류하여 보리소주를 얻는데, 이 소주에 전주 인근의 특산품으로 명성이 높은 이서 배와 봉동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어 오랜 기간 숙성시키는 까닭에 일절 숙취나 부작용이 없다.
특히 덧술로 넣는 보리는 주독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소주의 과음에서 오는 건강의 폐해를 최대한으로 해소시켜준다. 이 때문에 이강주는 소위 ‘뒤풀이 술’로 더욱 이름을 얻었다.
〈박록담·한국전통주연구소장〉 |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