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도 같은 실존인은 당시 서울에 살고도 급조된 조선을 몰랐을까? 만주 및 잃어버린 영토와 역사찾기를 강변하시면서 대륙에서 쫒겨와 급조된 조선을 조선을 과연 몰랐다는게 말이나 되는 말인가? 나는 최두환님의 주장이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된다. 마치 동방견문록으로 서구에 알려진 元나라에 대한 동경으로 시대적인 흐름마저 망각한채, 元나라가 그대로 있는줄알고 元나라를 찾아 나선게 콜럼버스의 항해의 시작이라 한다. 이처럼 아마도 최두환님이 대륙조선이 한반도로 쫒겨와 1900년대에 급조되었다 주장한것도, 마치 콜럼버스와도 같은 착각의 현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에 대륙을 지배하였으나 현재는 한반도로 쫒겨와 있는 조선의 처지이나 문헌적으로, 서구의 자료에 남아있는 대륙조선의 흔적을 찾다보니 그 근거가 명확해져 보이나, 콜럼버스가 역사의 흐름을 망각하고 元나라를 찾아나선 이치와 같은 같은 맥락의 사고를 최두환님이 한다고 생각한다. 최두환님은 자신의 주장이 맞다면 적어도 1990년대까지 생존하셨던, 고 권태훈옹의 생애에 대해 답해야 한다. 왜? 권옹을 기준으로 하는 이유는 이분은 독립운동가시며,민족정기의 육성에 평생에 걸쳐 노력을 하신 분이며, 당시 조선의 중심인 서울에서 출생하시며 사셨고,아버님은 고종황제의 신하셨고, 이분이 스승으로 모신분들은 당대의 석학이셨으며,수 많은 인물과 교유를 하셨고,특히 백범 김구선생과 한독당에서 활동하신 분이시다. 이러한 분이 급조된 조선을 몰랐다는 것은 얼마나 이분과 당대의 인물들을 무시하는 소리인가?
◈ 고 권태훈옹의 생애 및 사상 (1900∼1994. 선인(仙人). 종교가. 한의학자. 예언가)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재동(齋洞)출생. 권율(權慄)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군수?진도(珍島)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중면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중현(重顯)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의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권태훈은 이러한 특수한 가계와 집안분위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머니로부터 6세 때 조식법(調息法)을 배운 이래 선도(仙道)의 세계를 접하였으며, 유교경전들을 섭렵하였다.
10세 때인 1910년에는 서울 종로구 마동(麻洞)에 있는 단군교 포교당에서 나철(羅喆) 대종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충청북도 영동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수학 등 근대학문을 접하였는데, 이 때 일본유람단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13세에 선도계의 거인인 우도방주(右道坊主) 김일송(金一松)을 처음 만났으며, 19세에 그를 따라 구월산에 입산하여 3개월간 선도수련에 입문하였다. 이 때 좌도(左道), 우도(右道)의 여러 심법(心法) 등을 전수받았으며, 그 뒤 인천에서 산주(汕住) 박양래(朴養來) 등 선도계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3.1운동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전쟁에 참여하였고, 국내로 잠입하여 지하운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 한독당(韓獨黨)에 가입하는 등 정치운동에 나섰으나 고난을 치렀다. 60세 때에 공주에 연정원(鍊定院)을 신축하여 수련을 하다가 65세 때에 상경하여 한의원을 개업, 83세가 되는 1982년에 대종교의 최고지위인 총전교에 취임하였다.
1984년에는 《단(丹)》이란 소설을 통해서 선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1986년에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89년에 수필집 《백두산족에게 고(告)함》을 출판, 《천부경(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구술, 출판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민족비전(民族秘傳) 정신수련법》을 감수, 출간하였다.
그리고 95세인 1994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上莘里)에서 운명하였다.
권태훈은 유ㆍ불ㆍ선의 여러 사상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주로 선도를 바탕으로 하였고, 시대적 영향을 받아 민족종교인 대종교 사상의 영향도 받은 듯 하다. 6세 때부터 시작한 호흡법을 기본으로 평생 선도수행에 열중하였고, 예언ㆍ사상 등도 역시 그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
1951년에 이미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예언하였으며, 원자탄의 발명. 일본의 멸망. 남북의 통일. 중국의 분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문명비평가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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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봉우 선생을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와서 난감하긴 합니다. 철저하게 조선이식에 협력하기로 마음먹은 위선자이거나, 아니면 정말 몰랐거나, 아니면 조선이 반도로 들어온 게 1900년대 이전이거나... 복잡하군요. 대륙조선을 증거하는 무수한 증거들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신비적인 것을 마치 가자 우월한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있다. 위에 거론된 '민족비전 정신 수련법' '천부경' '단학' 대설(大設)이 아닌 소설(小設) '丹' 이러한 것들은 혹세무민하는 하나의 글 장난에 불과한 것입니다. 력사를 탐구할 땐 가장 사실적인 것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리라 봅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 특히 예언가, 종교가, 의학자의 언어, 혹은 그들의 저서에는 혹세무민의 망령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