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찢어야 성령충만을 받는다(행2:1-4, 행2:37-38)
2026.5.24 성령강림주일/성결교회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100℃를 기준으로 이렇게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지금 당신의 영적인 온도는 몇 도 입니까?”
온기가 감지는 되고 있는가? 이 시간에 온기가 약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이 부어 주셨고, 주님은 이러한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강렬하게 모든 사역 하셨다(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당신에게 임했던 뜨거운 성령의 불을 제자들에게도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五旬節,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약속하셨던 성령을 보내주셨다(행2:33, 행2:1-4).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표현이 있다. 그것은 “충만”라는 말씀이다. 충만은 가득차서 넘쳐흐를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하면 사진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의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차 있으면, ‘욕심충만’이고, 심술로 가득차 있으면 ‘심술충만’이다. 마음에 가득찬 것이 행동으로 넘쳐흐르게 된다. 그런데 오순절에서는 성령으로 충만해 졌다, 그래서 성령이 인도하는 행동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성령충만의 결과로 그들의 생각과 생활이 변했다. 성령은 복음이 그들의 삶의 실제와 힘이 되게 하셨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담대한 전도자로 변했다. 오순절날에 예수님을 영접한 삼천 명의 사람들은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지자 인생의 방향이 변했고, 절망과 낙심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꿈과 비전이 생겼고, 서로 교제하고 이웃의 필요를 채우면서 칭송받는 행복한 사람들로 변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들의 심령에 성령을 가득하게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부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 우리도 성령충만 받으면 얼마든지 능력 있는 성도가 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요14:26-27).
반대로 성령의 불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우리의 삶이 망가진다. 죄에 대한 유혹과 미련, 두려움과 근심, 의심, 열등감, 가시 같은 옛 성품들이 올라오고, 염세주의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서 지옥 같은 삶을 살기 쉽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지만, 마귀는 영적으로 더럽고 불결한 영이다. 죄라는 것도 본질적으로 더러운 것이다. 그래서 마귀 사탄은 죄를 짓도록 미혹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심지어 죄나 용서하지 않는 완고한 것들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에 침투하고, 회개하지 않은 죄를 방패삼아서 마음 한 구석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숨어 있기도 한다. 그러다가 환경과 분위기만 갖춰지면, 여지없이 고개를 내밀면서 그의 심령을 더 깊은 죄악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들은 주님이 그토록 부어주시기를 원하는 성령충만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또한 어떻게 하면 마귀 사탄의 침투를 막고, 그것들을 내 안에서 몰아내고 행복한 삶을 회복할 수 있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그것은 ‘죄를 없이하는 회개’가 그 출발이다. 성령님과 관련된 성경의 수많은 가르침들 중에서 이 시간에 집중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길모퉁이나 전봇대 옆에 쓰레기들이 있으면, 그것을 보고 고양이나 쥐들이 모여든다. 이런 것들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뭔가? 쓰레기들을 치우면 된다. 바로 이것이다. 회개란 바로 내 안에 마귀 사탄이 좋아하는 각종 죄악과 상처와 부정적인 쓰레기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치우고 덮어 버리는 것이다. 회개가 성령충만을 받는 출발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회개를 강조했다(행2:37-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하셨다(욜2:13).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3)
그렇기에 마음을 찢어야 성령충만을 받는다. 1907년에 한반도에서 있었던 성령이 이끄시는 대부흥운동의 출발은 대표적인 실례이다. 1907년 1월 2일부터 1월 15일까지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도 동계남성사경회'가 열렸다. 그러나 집회는 뚜렷한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 그러자 1월 14일 저녁기도회 때, 길선주 장로가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장내가 눈물바다가 되었고, 선교사와 교인들이 앞 다퉈 회개했다. 그때 회개를 통해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그 자리에 임했다. 그 결과로 삶이 실제로 변했다. 도둑질한 물건을 돌려주고, 인간관계의 앙금을 풀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운동과 성령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성결교회가 시작된 점이다. 평양에서 1월에 시작된 회개와 부흥운동이 전국을 휩쓸던 그 해 5월 30일에 성결교회를 시작한 정빈과 김상준 두 사람이 서울 종로구 염곡(현 종로2가)에서 사중복음을 외치면서 전도했다. 이들은 1907년 3월에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은 아닌데, 기가 막히게 시기적으로 서로 맞아떨어졌다. 1907년에 회개와 함께 시작된 성령이 이끄는 대부흥운동과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전도표제인 사중복음(중생·성결·신유·재림) 특히 '성결'의 가치와 완벽하게 부합했다. 하나님께서 1907년 회개와 대부흥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성결교회가 시작되게 하신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보인다.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은 우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다. 얼마 전에 개그우먼 김효진 사모의 간증집회가 우리교회에서 있었다. 김효진씨는 MBC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내면의 행복이 오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술도 많이 마셨고, 마음도 우울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하나님을 까맣게 잊었던 것을 회개할 것을 깨닫게 하셨다. 김효진씨는 자신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왔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하면서 한 없이 울었다고 했다. 그녀의 평생에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음을 찢은 것이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주셨고, 자심의 마음이 고장 났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이처럼 회개가 어그러진 내 삶이 회복되는 출발이고, 성령충만의 출발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분명히 우리의 삶이 변한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성령의 불을 부어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변화는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로부터 출발한다. 서두에 드렸던 질문을 다시 던진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영적인 온도는 몇 도 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내 아들아, 내가 너에게 성령의 충만한 기름을 부어주기 원하신다”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죄악과 영적인 태만과 내면의 숨은 것들을 주님 앞에 회개하자.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또는 하나님을 멸시했던)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 앞에서 찢자. 마음을 찢는 곳에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