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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1-12절 (구약 77쪽)
창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창49: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창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창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창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49: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창49: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말씀제목
야곱의 축복 속에 담긴 교훈
제가 창세기를 본문으로 다시 주일에 설교하는 것은 현재 저의 설교계획으로는 약 4년 뒤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오늘의 본문은 제가 주일 강단에서 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있는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애굽에서의 17년을 보내는 마지막 해로써 그의 나이가 147세가 되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가까 왔을 때에 자신이 낳은 12아들을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창47: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창47: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창48: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창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창49: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창49: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49: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창49: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어머니 리브가의 태에서부터 형이 되는 에서와 다투며 이 땅에 태어난 한 생명이 14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죽습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류최초의 아담의 계보가 보여 주는 일반적인 특징은사람은 결국은 죽는다 라는 것입니다.(물론 예외가 있지요 -에녹 같은 경우)
창5:5(아담)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8(셋)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11(에노스)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14(게난)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17(마할랄렐)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그래서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인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성도들은 말씀대로 믿기에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보시면 야곱이 죽으면서 자신이 낳은 아들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마치 그들의 삶을 심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12아들들 중 첫째부터 넷째까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4절은 르우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
8-12절은 유다
그러면 이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야곱의 축복 속에 담긴 교훈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르우벤 입니다.
창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창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성적 타락-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그 장자가 누릴 권리를 박탈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라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성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창35: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창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비록 빌하는 라헬의 몸종이었지만 엄연히 야곱에게서 단과 납달리 두 아들을 낳은 야곱의 아내였는데 그와 동침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대상5: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적인 타락은 종말에 심판을 부르는 커다란 범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시며 만약 이러한 성적인 타락이 있었다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사람들은 그를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끌고 왔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다 돌아갔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간음죄를 없는 것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볍게 여기신 것도 아닙니다. 만약 간음죄를 간음죄로 처단한다면 어쩌면 세상에 살아남아 있을 자가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마음의 음욕을 품은 것조차도 간음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러기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럼에도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즉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와 꼭 같다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다 못가에서 예수님에게 고침 받은 38년 된 병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죠... 후에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요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르우벤처럼 성적인 범죄에 빠짐으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몸부림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시므온과 레위 입니다.
창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창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창49: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은 둘째 레위는 셋째 입니다.
이들에게 사용된 단어를 보면 폭력 분노 혈기 노여움 분기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제가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자신들의 여동생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그들을 할례라는 거룩한 예식을 이용하여 속이고 제삼일에 칼을 들고 급습하여 항거할 수 없는 자들을 다 죽였다는 것입니다.
창34: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창34: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이러한 삶을 기억하고 오늘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은 폭력 분노 혈기 노여움 분기의 삶이 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 유다 입니다.
창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49: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창49: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앞의 세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의 말입니다.
앞의 성격이 부정적이라면 유다는 긍정적입니다.
왜 이런 긍정적인 심판의 말이 야곱의 입에서 나오게 된 것일까요?
저의 묵상의 결론은 유다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한 자였고
그리고 희생과 헌신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유다는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동생 요셉을 죽이려 하는 형제들을 향하여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말을 합니다.
창37: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창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또한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일 후에 형제들로부터 떠나 따로 사는 모습을 보입니다.
창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이로부터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흉년이 심하여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는 장면에서 유다는 최선 것으로 희생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유다는 자신을 베냐민을 대신하는 담보물이 되겠다고 아버지 야곱과 그리고 요셉에게 간청했습니다.
창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창44: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창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창44: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은 유다의 이러한 삶의 모습을 자신이 직접 보았고 들었고 또한 간접적으로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 유다를 향하여 이런 축복의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에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위하여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 마지막 날 유다가 받은 그 축복을 받는 축복의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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