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중원남벌 中原南伐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전장터를 수습하던, 군사 탁발규는 남 흉노 군의 포로 중에
후한군 병사가 두 명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남 흉노 측이 버리고 간, 무기류 및 수레 등 군수물자를 수거 收去하여 조사한바,
한군 漢軍 측이 제작 공급한 무기와 군수물자가 남 흉노 군의 무기보다 배 이상 더 많은 것을 확인하였다.
후한 군의 병사를 문초 問招하여 알아본 결과 그들은 군수물자를 남 흉노 군에 공급 관리하던
후한 군의 백부장들이었다.
보름 뒤, 대인회의를 소집하여 소왕과 천부장들에게 그 증거품들을 제시하고 남벌 계획을 설명하였다.
걸걸추로 소왕이 먼저 입을 뗀다.
“우리 흉노인들은 지금까지 여름철에는 대규모 원정을 떠난 적이 없었소.
그 이유는
첫째, 우리 흉노인들은 기후가 선선한 고원지대에 적응하여 살고 있었기에 선천적
으로 더위나 습기에 취약하고, 따라서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는 원거리 이동과
움직이는 것을 가능하면 회피 回避하고 있었소이다.
두 번째는 농번기에 농경민들을 공격해보았자, 약탈할 곡식이나 재물이 적지요.
농작물 수확 철이 아니니 도매상이나 상점도 생필품이나 새로운 상품을 많이
구비 해 놓지 않으니, 대부분 작년 가을에 입고된 재고품이오. 그러니 여름철
에는 별 실익 實益이 없다는 것이오.
세 번째는 고온다습한 하절기에에는 전리품 운반 도중에 가축은 죽기가 쉽고, 곡물이
나 천으로 된 의류 등은 상하기 쉬우므로 이득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오.”
우문무특 소왕도 한마디 거든다.
“그렇소. 모두가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데 수익이 없다면 헛고생이오.
그러니 여름철 원정은 가급적 可及的 피하는 것이 우리 유목민의 전통이오.”
그러자 군사 탁발규는
“이번의 전투에서 한 나라가 개입되었음이 증명되었으니, 그 보복을 하여 ‘본때’를 보여 주자는 것입니다.”
“험, 후한 後漢 군에게 ‘경각심 警覺心을 일깨워 주자’는 뜻이지요.”
“예. 그렇지요. 그리고 남 흉노의 정예병들이 지난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어
남벌할 때 방해가 되질 않는다는 것도 큰 이점입니다.”
“음, 큰 장애물이 하나 없어졌다니 다행이군요.”
“넵, 그리고 이번에는 태원을 지나 다군 多郡과 상당군까지 공격하고자 합니다.”
“상당군이라면 그곳부터는 중원으로 보아야 할 텐데”
“예, 그렇죠. 상당군 上党郡에서는 평양군 平陽郡을 지나면 곧 황하가 나타나고, 황하 이남은 낙양 洛陽입니다.”
“햐, 그러니 중원 中原을 공격한다는 엄청난 포부고 전략이군.”
“그렇지요. 중원은 하화족의 근거지입니다. 그러니 이번 원정은 우리 흉노가 당한 보복성 남벌이니,
한족의 근거지인 중원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탁발규의 남벌 원정계획을 듣고 있던 소왕과 천부장들의 표정과 눈은 어느새
배후 背後에서 먹이를 노리는 이글거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변해간다.
탁자에 펼쳐놓은 작전지도를 내려다보니 서쪽에서 동쪽으로,
중원 중앙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황하가 눈에 거슬린다.
젊은 걸걸호루 천부장이 호기롭게 한마디 한다.
“황하만 아니라면, 한족의 심장인 낙양까지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아쉽군요.”
“좋아. 뒤에서 북침을 교사 巧詐하고 남 흉노 군에 군수물자를 지원한
괘씸한 한군 漢軍에게 이제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예. 그럼, 우기 雨期 전에 남벌을 거행하도록 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하절기 夏節期 남벌이다.
이번에도 1군과 2군으로 나누어 남벌을 계획한다.
공격로를 나누어서 하는 것은 적의 정보망을 교란 攪亂시키는 이점이 있다.
봉홧불이 한곳에서만 올라가면 공격지점과 적의 병력을 쉽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전달 된다.
그런데 두 곳 이상에서 봉홧불이 동시에 올라가면,
중간에서 연계시키는 봉수대에서는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사건을 코앞 면전 面前에서 입으로도 동시에 설명하기가 곤란한데,
먼 곳에서 더구나 연기와 불로 그 정황 情況을 명확히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1군은 걸걸추로 소왕이 정주 井州와 분주 汾州, 정양 定陽을 공략하기로 하고,
2군은 묵황야차 소왕이 태원 太原과 상당군 上党郡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후방을 책임질 우문무특 소왕의 3군은 옥야진 沃野鎭 남쪽의 열발성 悅跋城 부근에서
남 흉노를 견제하기로 하였다.
별도로 삼천 명의 기마병을 세 곳으로 나누어 본대가 장성 마루를 점령한 후,
후방의 제 3군은 동쪽의 장성을 공격할 듯이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 演出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보라색 꿀풀꽃이 지고, 노란 감꽃이 하나씩 떨어질 때 남벌은 시작되었다.
이번 남벌의 장성 공략은 오히려 손쉽게 이루어졌다.
하절기에는 좀도둑 수준의 수십 명, 많을 경우가 백여 명이 무리를 이루어 약탈혼을 목적으로 하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가끔 장성을 몰래 넘어갈 뿐, 대규모 병력이 장성을 공격한 유례 類例가 없었다.
그러니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면 따라서, 장성 수비병들도 긴장감이 완화 緩和되어
정신상태도 해이 解弛 해지고 초병들의 몸가짐도 느슨해진다.
선봉 돌격대 5백 명이 야간에 몰래 성벽을 기어 올라가 큰 접전 接戰 없이도 성마루를 무혈 無血로 점령해 버렸다.
별다른 공성전 攻城戰도 없이 장성 마루를 점령하였다.
성마루만 점령해버리면 원정 목적의 7할은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머지 3할은 탈취품 奪取品의 운송 運送 문제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먼 성 마루에서 봉홧불이 타오른다.
그 시간대에는 남벌 南伐군의 선두는 이미 장성 수비의 후방군들을 휩쓸어 버리고,
200여 리를 쳐 내려가 사주를 점령한 후, 파죽지세 破竹之勢로 계속 남하 南下하고 있었다.
장성만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거칠 것이 없다.
고갯마루나 갈림길 등의 요충지 서너 곳에 주둔 駐屯하고 있던 이, 삼천 명의
후 한 수비군들은 거친 흉노 병들의 눈에는 애들 장난감 수준이다.
흉노의 기마 용사들은 질풍노도 疾風怒濤와 같은 험악스러운 기세로 그냥 밀어버린다.
한 군의 전마와 병장기는 어느새 흉노 군의 전리품으로 탈바꿈해 버린다.
원석지계 圓石之計다.
산 위에서 둥근 큰 바위가 아래로 굴러 내려가면서 가속도 加速度가 붙으면, 막을 방법이 없고
그때는 주위의 작은 돌들도 덩달아 함께 굴러간다. 거침없이 돌진하는 전술이다.
태원까지 진격하여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노획하였다.
태원과 석가장이 주요 단골 공격지점이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태원의 서쪽은 남북으로 길게 벋은 여량산맥 呂樑山脈이 황하를 가로막고 있었고,
동쪽은 험준하기로 악명높은 태항산맥 太行山脈이 버티고 있으며,
태항산맥 동쪽에는 북부지역의 요충지인 번화 繁華한 큰 고을 석가장 石家莊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장 동쪽은 영정하를 비롯하여 황하의 하류까지 큰 강들이 즐비한 늪지대다.
기마병들은 험준한 산은 피하고 큰 강과 늪지대는 우회 迂回하여 진군 進軍하여야 하는데,
그러면 남북의 통로는 여량산맥과 태행산맥사이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태원,
그리고 태항산맥 동쪽의 석가장이 중원의 북방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가 된다.
따라서 북방의 거점도시인 태원과 석가장은 흉노인들에게는 단골 식당과 유사한 개념이다.
갈 때마다 갖가지 맛난 음식을 듬뿍 준비해 둔 맘대로 먹을 수 있는 무상 無償 식당이다.
* 지도 - 태항산맥
한 漢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원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태원과 석가장이 가장 편리한 교통로다.
험준한 태항산맥이 두 도시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니 태원과 석가장은 황하 이북의 양대 兩大 거점도시 據點都市로 각각 성장 발달한 것이다.
태원은 태항산맥의 서쪽에, 석가장은 동쪽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교통의 요충지 要衝地이다 보니 황하 이북에서는 규모가 제일 크고 화려한 큰 고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흉노족들도 이 큰 고을을 늘 약탈의 대상으로 삼는다.
공격하여 전리품을 많이 노획하여 돌아간 후, 다음 해 다시 가면 또, 갖가지 물품들이 풍부하다.
흉노족들에겐 화수분과도 같은 신기한 지역이다.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고을이다.
반면,
한 군은 위의 두 고을만큼은 포기하거나 방치 放置시킬 수가 없다.
위의 두 요충지를 방치하면 자신들의 활동 영역이 대폭 좁아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막히고,
북방이 허술하게 되면 따라서 중원마저 불안해진다.
즉, 태원 및 석가장과 중원 中原과의 관계는 치아 齒牙를 보호하는 입술과 같은 순치지간 脣齒之間이다.
그러니 끝까지 사수 死守하고 발전시켜야 할 전략적인 요충지 要衝地인 것이다.
남벌군은 태원을 함락시키고 전리품을 챙기고 보니 상당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예상외로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챙길 건 다 챙긴 공격군은 신속히 철수 撤收 한다.
후한 군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지금까지는 늦가을이나 겨울철에만 준동 蠢動하던, 흉노족이 이제는 때를 가리지 아니하고
수시로 장성을 넘나들며, 온갖 물자를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납치해 가는 만행 蠻行을 일삼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름철 뭉게구름처럼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지는 신출귀몰 神出鬼沒하는
흉노족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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