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초의 신작 시조 감상
《열린시학》 2016년 겨울 호 원고
산너울, 강너울 61 외 4편
윤 금 초
개구리 알 샴푸* 풀어 묵은 땟국 씻어낼까?
겁박하는 ‘청탁금지’ 쇠푼 한 닢 몰래 쥘까?
넌더리 퀴퀴한 항간巷間을 샴푸 풀어 씻어낼까?
* 프랑스 샴푸 제품 ‘RENE FURTERER’. 샴푸가 담긴 튜브 안에 개구리 알 같은 푸른 알갱이가 떠다닌다.
철렁!
반투명 어둠이 고인
안개 풍선 부푼 자리
갖갖 색상 챙모자가 털레걸음 서성이는, 모딜리아니 살빛 산책로…
한 순간
피자판 쪼개듯
가슴 철렁
조각난다.
복면가왕覆面歌王* 1
#1
거센 물살 박차 오른 연어뜀을 예서 볼까?
퍼덕이는 청량 창법唱法, 심장 와락 소름 돋고
팔색조 폭 넓은 음역音域에 아으! 그만 울 뻔 했네.
#2
조였다가 풀었다가 한바다도 집어삼킬 듯
칼끝 벼린 청량 창법, 귀청 떼는 심장 폭행…
가슴 뻥 뚫리는 절규에 명치 호흡 숨이 겹네.
* MBC TV 미스터리 음악 쇼 프로그램.
탕 탕 탕, 주물주물
햇볕 저리 짱짱한 날 한바탕 허고 나문 속이 다 씨언해.
우리는 요라고 툭 트인 데서 팡팡 씨언허게 뚜들김서 살아. 근께 가슴 속에다 쪼깨라도 서운헌 것 옹그리고 간직허들 못 허고말고…. 사람 사는 집에 짐생이 있제라. 그것이 ‘업’이라요. 짐생이 집에 있는 독毒을 쏵 가져가분다요. 동네 시암물도 비얌이 멱 깜아야 약이 된다요. 사람 모르게 한 번씩 모욕을 허겄제라. 시상에 귀를 씻는 노인이 없다면 누가 요와 척을 알랴?*世無洗耳翁 誰知堯與蹠 했드키 도둑 척蹠이 성인군자인 양 요堯 행세를 하려 드는 시상이제. 아먼, 아먼…. 귀를 씻는 노인 허유許由처럼 돈에도 권세에도 굽히지 않고 귀를 더럽히는 말은 모두 씻어내야 큰 도둑 물리칠 수 있는 시상이여, 아먼.
탕 탕 탕 빨래 뚜들김서 폭폭한 속 풀고 그래.
* 이백「고풍古風 24」인용.
《전라도닷컴》2015년 7월호 10∼17쪽 참고.
성담론 시편
- 거시기 & 머시기 17
청년 때는 송곳이요, 노년 때는 삶은 가지라.
청년과 장년, 늙은이 세 사람 길을 가다 어느 시골집에 묵게 되었지. 나그네 한 사람 주인 아낙네 해반주그레한 용모에 홀려 그만 한밤중 주인 없는 방에 들어 겁탈하게 되었대. 이튿날 처의 고변으로 통정 사실 알게 된 주인, 관아에 고소했대, 득달같이 고소했대. 이를 처결할 방도 막막한 사또 자기 부인에게 물었지. “그야 뭐 그리 어려울 게 있나이까? 이렇게 물어 보구려. 그 여편네 일을 당할 때 양물이 송곳 끝 같더냐, 혹은 쇠망치 같더냐, 그도 아니면 삶은 가지 들이미는 것 같더냐고. 물어 송곳 같다면 이는 분명 청년 짓이요, 불단 쇠망치 같다면 장년 짓이고, 삶은 가지 같다면 그야 분명 노인 짓일 것이외다.” 그 이튿날 사또, 몰래 당했다는 여편네 불러 이실직고 다그쳤지, 시퍼렇게 다그쳤지. 앰한 머시기 도둑맞은 주인 아낙 “쇠망치로 치는 것과 흡사하더이다.” 토설하자 토설하자 마흔 남짓 장년 잡아다 엄하게 다스렸지. 과연 장년이 자복할 수밖에. 이에 사또 숨 돌리고 이제 자기 부인 의심한 끝에 저간의 속내평 꼬장꼬장 따져들었겠다. “우리 또한 신혼 시절에는 송곳 끝으로 찌르는 것 같았고, 중년에는 쇠망치로 치는 듯 둔중하였으나 요즘에 이르러서는 삶은 가지 들이미는 것 같으므로 이와 같이 알 뿐입니다.”
그 사또 머리 짓찧고 혼절할 지경이었대.
윤금초 시작 노트
아무리 눈을 껐다 다시 켜도 세상이 헐거나 썩은 세상인데, 어찌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죽지는 않고 앓기만 하는 꼬락서니라니….
백학白鶴이 천 년을 지나면 몸 전체가 검어져서 현학玄鶴이 되고, 현학이 또 천 년을 흐르게 되면 온몸이 맑아져서 금학金鶴이 된다던가.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 법이다.
가슴 밑바닥에 시린 슬픔 한 보시기가 고여 있다. 나는 이미 1980년대, 현대시조는 ‘윤회輪廻’만 있지 ‘변화變化’는 없다고 내다본 적이 있다. 사정은 지금도 매한가지다. 시는 현실을 끌어안되 그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발효시켜 새로운 그 무엇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팝콘처럼 가슴 깊은 곳을 깨우는 톡톡 튀는 감성 터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탄탄한 내공을 다진 고품격 에너지가 폭발하는 격정과 절제의 음색音色-그런 상큼한 정형시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솜뭉치로 머리를 깬다”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생존 조건이다. ‘변화’가 싫은 시인은 한국 ‘정형시 클럽’에서 탈퇴하는 수밖에 없다. 변화와 혁신이 절실한 지금이야말로 ‘파괴적 혁신’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작은 개혁주의자들’이 잇따라 나타나주기를 고대하고 고대한다.
좋은 문학은 자기가 살아온 그만큼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한다. 감성이입만으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들을 슬그머니 들춰내어 정교한 복선伏線을 깔면서 쥐락펴락 긴장감 넘치는 시조문맥을 일궈놓았을 때, 그리고 소름 돋도록 섬뜩하고 그래서 더 능청스럽고 아름다운 척력斥力과 인력引力의 시조문법을 만났을 때, 우리는 거기서 생물학적 길항작용拮抗作用을 느끼지 않겠는가.
미래학자들 주장에 따르면 이제 인간 수명은 120세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고령자는 일본 여성으로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는 수 없이 문학 스케줄을 상향 조정할 밖에. 몇몇 출판사에서 이른바 <윤금초 시조문학전집>을 펴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그것을 늦추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내 노동력이나 일손이 무디어지지 않았고 상상력, 혹은 발상법 역시 녹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서사시「일리아드」「오디세이」를 쓴 것은 나이 들어 시력을 잃은 뒤였고, 아이스킬로스가「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등 최고 비극을 집필한 것도 예순을 넘긴 뒤였다. 소포클레스는「안티고네」를 아흔이 다 되어 썼다지 않는가.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권위를 다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상의 2004년 소설부문 수상자는 베르나르 뒤 부슈롱이라는 76세 노인이었다. 수상작「짧은 뱀」은 그가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은퇴하여 처음 쓴 데뷔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괴테의「파우스트」, 비발디의「사계」역시 그들 나이 여든 넘어서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렇듯 문학예술활동에 정년은 없는 것이다.
노사연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늙는 게 아니라 싸목싸목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릇, 저녁놀은 저물수록 더 붉게 탄다는 이치를 알기나 아는 건지, 원. 늙은 생강이 더 맵다는 말은 빈 소리가 아니기를 바란다.
윤금초 약력
196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앉은뱅이꽃 한나절』등.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시조시학》2016년 겨울 호 원고
볕뉘 몽리면적 외 4편
윤 금 초
빗살무늬 짓고 허문 소리꾼 바람 멱이 차다.
자벌레 한 뼘 한 뼘 늙은 그늘 자질하듯, 몽리면적 늘린 볕뉘
뜬세상 먹구름 너머 귀명창도 불러낸다.
북악산 먼발치
검은 복면 어릿광대
북악산 자락 어정댄다.
문고리 권세 치마폭에 반쯤 몸통 가려 놓고, 날 잡아봐라 엉너리치다
배 째라… 배 째라, 배 째!
막무가내 버팅긴다.
동이東夷의 아침
두만강 상류 겨울 얼음처럼 투명하다.
성엣장 갈피마다 떠다니는 예도옛적
갑골문 긴긴 잠 털고 수면 위로 떠오른다.
딱딱한 거북 등이나 들짐승 어깨뼈거나
청동 칼로 아로새긴 금빛 필획 꿈틀한다.
바람도 훨훨 날개 턴다, 표의문자 날린다.
허난河南 성 후미진 골 묵정밭 쑥 덤불 아래
이에 저에 나뒹구는 즈믄 해 뼈 조각마다
원시 그 실록을 물고 흙 속에서 눈을 뜬다.
돌로 돌을 마른 칼맛, 암각화도 아닌 것이
구부러진 실 선 끝에 시간이 매달리고 골안개 묻어있는 상형문자 물결친다.
청동기 코뿔소 하나 화살촉에 쓰러진 날.
산 그리메 길게 누운 해거름께 산비알에
쌍무지개 지른 하늘, 강물 삼킨 동녘 하늘
커다란 ‘불의 별’ 너머 동이의 북 숨 고른다.
뜬금없는 소리 41
나락 고랑 끝 간 데 없고
가을 해는 노루꼬리라.
꽃이문 다 꽃인가? 꽃 중의 꽃은 나락꽃, 단풍 중 참단풍은 나락단풍이제. 봄부텀 가실까지 쌀 한 톨 맹그는디 야든야답 번 손이 가는 거여. 입립개신고粒粒皆辛苦라. 한 알 한 알 간난신고 대낀 끝에 모여 이룬 황금빛 장엄 들녘이여. 햇볕 바람 태풍 천둥 벼락 제 안에 다 품고 기어이 영글고 둥글어진 것들이여. 골진 고랑 위로 꼭지 선명한 그림자, 늙은 호박 한 덩이 놓인 자린 늘 따뜻하고 포근하지. 싸디 싸. 딴 것은 다 무장 비싸진디 쌀값은 해가 가고 날이 새도 그 자리 그 배끼여. 옛날 시상은 쌀이 귀했는디 요새는 천덕구니 천더기라…. 옛 어른들 콩 한 알 쫓아 새립문 밖 십리 간다고 안혀? 한 톨이라도 흘릴작시면 엎드려 무릎걸음 마다 않았지. 아먼, 아먼. 시경詩經에는 ‘민암民巖’이라 했어. 백성은 나라 엎을 수도 있는 무서운 동력動力라는 걸 통치자는 알기나 아는지 원! 국민들 속은 모다 문드러지고 시상은 찌들었다고 맵찬 ‘마늘경經’ 읽는 마늘밭 할배. 흙은 거짓말 않거든. 에헴 허고 정치 허고 감투 쓴 사람들 순 거짓부렁으로 살아. 콩깍지 두드리는 어매가 든 회초리 매서운 줄 아남? 이 호멩이가 금은보다 귀해. 호멩이나 모지랑 낫은 농민들 총이여.
해코지 총이 아니라 백성 살리는 총이다 이 말이여.
*《전라도닷컴》2015년 11월호「그림자가 있는 풍경」참고.
성담론 시편
- 거시기 & 머시기 24
살아도 못 쓰겠네,
살아도 못 살겠네.
궁항벽지 한 어촌에 젊은 부부 살았는데, 알궁달궁 살았는데, 남편 고기잡이 나갔다 풍랑 만나 그만 죽고 말았어. 졸지에 청상과부 된 아내 땅을 치고 울고 불던 뒤끝 남편 시신 집에 당도했지. 아낙이 마지막 남편 본답시고 거적때기 들추다가, 시체 덮은 거적때기 들추다가 문득 아랫도리 살펴봤어. 우라질…. 망할 놈의 물고기들 남편 부자지 몽땅 다 훔쳐가고 흔적조차 없는 게 아닌가. 황당하고 처참한 모습에 젊은 아낙 기가 막혀
아이고,
살아도 못 쓰겠네.
살아도 못 살겠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