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순서없이 올렸던 글을 골라서 하나씩 다시 올려보고자 한다.
이 글을 마친다면 하나로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담아서...***
요르단강변에서 -기행문1-
제법 따끈따끈한 날씨다. 요르단동편 베다니의 예수님 세례터를 방문하는 날이다.
암만(Amman)은 해발고도(海拔高度) 900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지이며 요르단(JORDAN)의 수도이다.
암만을 출발하여 남부근교의 작은 마을인 마르즈하맘과 나우르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사해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도로변에 세워진 [해발고도 0미터] 표지판을 만난다.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 한 컷 찰깍! 물은 없지만 이제부터 바다 밑으로 내려가는 셈이다. 좀 더 내려가다 보면 황량한 산지의 비탈길을 벗어나면서 대추야자며 바나나나무가 무성하고 양떼들이 무리지어 서성거리는 들판에
들어선다. 간혹 단봉낙타 몇 마리가 나뭇잎을 더듬으며 뜯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모압평지이다.
이내 요르단강변에 다다른다.
요단강은 북쪽 시리아의 안티레바논 산맥과 헬몬산(자발셰이크)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갈릴리호수를 거치고 이어서 사행천(蛇行川)이 되어 사해로 흘러드는 강줄기다.
직선으로 약 200km거리지만 뱀처럼 구불구불 돌고 도는 강줄기는 무려 360km에 이른다고 한다. '단으로부터 흘러내린다.'는 의미의
요단강은 아라바 계곡과 모압 평지의 젖줄이 된다.
모압평지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 캠프를 쳤던 곳이다.
요르단강변의 동편에 펼쳐진 이 평지는 요르단의 식량기지 역할을 하는 비옥한 땅이다.
예수님 세례터의 유적지로 들어서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현지인 안내인이 버스에 동승하고 영어를 사용하여 안내한다.
잠시 후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엘리야의 언덕을 내려다보는 곳에 차를 세운다. 고고학자들의 노고로 교회 터와 침례 터가 발굴되었고
반달형의 돌로 된 아치도 세웠다. 엘리야의 언덕너머로 멀리 종려나무의 성읍(신34:3) 여리고가 마주 보인다.
이어서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고 미끄러지듯 강변으로 내려간다. 세례요한이 가르치고 세례를 행하던 곳,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다는 전승이 있는 강변에 몇 개의 교회 터와 수도자들의 동굴 등이 발굴되어 있다.
아랍어로 알마그타스(Al-Maghtas)라고 하는 이곳은 참 따뜻한 지역이다.
성지순례 팀과 함께 방문한 그날도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던 비잔틴시대(6세기)의
세례요한 기념교회 터는 홍수에 묻히거나 지진으로 파괴되고 새로 짓고 또 파괴되었던 흔적을 발굴, 전시하고 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1:28)
베다니는 아람어인 베이트 애니야(Beit Anniya)에서 왔고 그 뜻은 '건넘의 집'이라고 한다.
이곳 주변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건넜던 지역이라고 추정하는 곳이다.
이스라엘로 건너가는 알렌비 다리(Allenby bridge)도 가까이에 있다.
예수님 세례터(the Baptism Site)는 로마의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2000년(the Second Millenium A.D.) 봄에 요르단을 방문하여
성지(聖地)로 지정한 곳이기 때문에 많이 알려졌고, 국적과 종교를 불문하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 후 2005년도에 황금으로 입힌 돔(dome)을 얹은 세례요한 기념교회가 새로 세워졌다.
교회당 꼭대기에는 한낮의 햇빛을 받은 금빛십자가가 반짝거린다.
일행은 강가로 우루루 내려가고 나 홀로 교회당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갈대가 무성한 요르단강변에서 요르단왕국의 병사 하나가 어깨에 총을 거꾸로 멘 채 다가와
“슈 마으나 며치루?”(며칠 후가 무슨 뜻이냐?)하고 물었다. “며치루?” 순간 그 말은 며칠 후라고 판단이 되어 대답했다.
“아, 그건 말이야 “하달 마으나, 바아드 바아들 욤(며칠이 지난 다음에) 라는 말이야!”
서투른 내 아랍어를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생각하며 아는 단어를 동원했고,
"Ah, that is, you know 'It`s mean, few days later." 이렇게 어설픈 영어로 더듬더듬 설명했다.
아랍어와 영어를 배우는 초기여서 두 가지 언어가 모두 서툴렀기 때문이다.
어떤 순례자들은 요단강 앞에 모여서서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찬송을 부르며
성지순례의 감격을 누렸을 것이었다. 그에게는 반복적으로 들리는 ‘며치루’가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 병사는 알았다는 듯이 미소 짓고 슈크란! (고맙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병사에게 찬송가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일러줄 수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은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아랍어가 능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년간 요르단을 품고 기도하고, 젊은이들과 순례를 하면서 지인도 늘어나고 정이 들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 그곳을 위하여 손을 모은다.
그 요르단강변엔 겨울철에도 따뜻한 바람이 인다. 그 따사로움이 그립다. -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