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립고궁박물관을 돌아보며
Taiwan National Palace Museum
케네스강 (글무늬문학사랑회)
가을비가 쓸쓸히 내리는 시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우리 일행에게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나는 일행에게 대만 국립고궁 박물관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아 혼자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택시로 타이페이 시 외곽에 자리잡은 거대한 박물관에 도착했다. 약 100만점에 달하는 5천 년의 찬란한 중국 역사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해 주었다.
장개석 - 蔣介石 장제스 (1887-1975)은 모택동 - 毛澤東 마오쩌둥 (1893-1976) 과의 내전에서 패전하였다.
모택동은 끝없이 넓은 중국대륙을 평정하여 1949년 10월 중화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국공 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은 국민당 부하들을 이끌고 북경의 자금성에 소장되어 있던 1백만 점에 달하는 국보급 유물들을 챙겨 군함을 타고 대만에 와서 중화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만일 이때 1백만 점에 달하는 5천년 역사의 유물들과 예술작품들을 가지고 대만으로 오지 않았다면 중국의 문화 혁명 시 홍위병 (문화혁명을 추종하는 정치깡패조직) 들에 의해 거의가 훼손되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진단한다.
모택동은 젊은 시절 잘 생기고 용기 있는 청년으로 이름 났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중국 여성들의 흠모 대상이었다.
무릇 영웅호걸은 예부터 미녀를 좋아한다고 하였던가.
그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 4번째가 21세 연하의 강청 (江靑 장칭 1914-1991) - 이었다.
강청은 후에 중국문화 대혁명 (The Cultural Revolution)의 지도자가 되었다. 1966-1976 기간 10년 동안 일어난 이 문화파괴운동으로 수많은 문화재들이 훼손되고 2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 소장품들은 3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전시하는데, 일단 전시했던 것들은
뒷산 동굴 속에 특수보관 된다.
우선 3천년 된 도토리들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토리들은 세월과 함께 다이몬드처럼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유리관 속에는 수많은 도토리들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었고 , 도토리 하나하나 앞에는 대형 확대경이 비치되어 있었다.
제 1번 확대경에 눈을 갖다 대자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무릉도원 같은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도토리 속에서 큰 고목 정자나무 아래 두 신선 같은 노인들이 와상에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다. 마침 한 노인이 장이야 장 받아라 하며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옆에는 넓은 보리밭인지 밀밭인지가 있었고 강물도 흐르고 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떠 있고 저 멀리에서는 어린 소년이 술인지 물인지를 담은 주전자를 들고 할아버지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아득한 그 옛날 그 누가 무슨 도구를 이용하여 이 조그만 도토리 속에다 이토록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만들 수 있었을까
두 번째 세 번째 도토리들도 확대경을 통해서 들여다보았는데 모두가 신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첫 번째가 너무 큰 감동을 주어서였는지 두 번째 이후 내용을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또 다른 전시관에는 4계절을 나타내는 실물크기의 그림들이 길게 길게 전시되어 있었다. 왕궁과 그 거리 그리고 왕궁 사람들의 모습, 또 민가들이 늘어선 농촌마을의 모습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이 그림들은 중국의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역작들이다. 찬란한 역사와 유구한 전통의 걸작들이다. 전시된 것만 자세히 보려 해도 최소한 열흘은 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런던의 대영 박물관 (The British Museum),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 그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The Metropolitan Museum) 등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 규모는 엇비슷하나 감동 면에서는 그글과 가히 견줄 길이 없다. 부디 타이완을 강타한 이번 지진으로부터 박물관이
무사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