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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문경 일본군 병참사령부 관련 문서
두 문서의 전체 한국어 번역 · 쉬운 낱말 풀이
번역 대상: 앞서 제시한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제1권의 두 문서. 두 번째 문서는 전달문, 첨부 보고서, 문경부사의 탐지서까지 포함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한 원문 전사문을 바탕으로 새로 옮겼다. 대괄호 안의 설명은 번역자가 붙였다. 원문의 결락은 채워 넣지 않았다.
읽기 전에
이 문서들은 일본군과 일본 외교관이 작성한 기록이다. 동학농민군을 ‘비적’이나 ‘동비’로 부르는 것은 작성자의 적대적 시각이다. 번역에서는 이를 드러내되, 해당 표현을 역사적 사실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농민군 병력 수·전과·행동에 대한 보고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1. 문경 동학군과의 접전 상황 및 전과 통보
문서번호: 제189호
작성일: 1894년 10월 5일(양력), 갑오년 9월 7일(음력)
발신자: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수신자: 본문에서 ‘귀 대신’이라고만 부르며, 이 문서의 표시 항목에는 이름이 없다.
전체 번역
삼가 말씀드립니다. 경상도 안동·태봉 등지에서 동학 무리가 떼를 지어 일어났다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진압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 일과는 별도로, 현재 부산에 주재하는 우리 총영사의 보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 달력으로 9월 29일, 문경에 주둔한 우리 병참사령관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토 공병 소위가 공병 25명과 우리나라의 노무 인력 12명을 이끌고 용궁에서 문경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9월 28일 오전 9시에 문경 동쪽 5리의 석문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뜻밖에 동학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상대는 약 600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중요한 좁은 길목을 차지하고 매우 엄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곧장 진격해 공격하려 해도 쉽게 할 수 없을 듯했습니다.
이에 정찰병을 보내 좌우를 살핀 뒤, 가운데 움푹한 길을 따라 진격하여 공격했습니다. 상대도 총을 쏘며 힘껏 맞섰으나,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기를 버린 채 어지럽게 달아났습니다. 달아난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그 뒤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 예천·소야 등지로 많이 달아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병사 가운데 죽거나 다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상대의 사망자는 2명이며, 다친 사람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집 11칸은 모두 불태웠습니다. 시신 가운데에는 전투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볼 만했습니다[일본 측 보고자의 표현].
빼앗아 얻은 물건을 조사하니 조총 103자루, 칼 4자루, 창 3자루, 말 2필, 동전 9관문 등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기록하여 전달하고 보고합니다.”
이와 같은 보고를 받았으므로, 이에 귀 대신께 편지를 보내오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나라 달력 10월 5일, 갑오년 9월 7일.
오토리 게이스케 삼가 올림.
번역·표기에서 주의할 점
① 원문의 ‘聞慶東五里’는 ‘문경 동쪽 5리’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어 번역 화면에는 ‘50리’로 되어 있어 서로 다르다. 여기서는 원문 전사문을 따라 5리로 옮겼다. 실제 거리와 장소의 비정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② 원문의 ‘放槍’은 이 문맥에서 ‘총을 쏘다’로 옮겼다. 기존 번역의 ‘창을 던지다’와 구별된다.
③ 한국어 번역 화면의 날짜 항목에는 10월 15일이라는 표기가 있으나, 원문 날짜와 번역 본문은 10월 5일이다. 이 번역은 원문을 기준으로 삼았다.
④ ‘소야로 달아갔다’는 보고자의 추측이다. 이동이 확인되었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된다.
⑤ 공병 25명·노무 인력 12명은 이동 중인 일행의 수이다. 문경병참부 전체 주둔 병력 수를 뜻하지 않는다.
2. 보은 동학당에 관한 보고
전달 문서 작성일: 1894년 11월 17일(양력)
발신자: 인천의 이토 중좌(伊藤中佐)
수신자: 이노우에 전권공사(井上全權公使)
첨부 보고서 작성일: 1894년 11월 12일(양력)
첨부 보고서 발신자: 남부문경병참사령부 데와 소좌(出羽少佐)
가. 전달문 전체 번역
데와 보병 소좌로부터 별지와 같은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 문서를 본 서신에 첨부하여 보내드립니다.
1894년 11월 17일.
인천, 이토 중좌.
이노우에 전권공사 귀하.
나. 11월 12일자 첨부 보고서 전체 번역
전권공사의 통첩에 따라 명령하신 동학당 관련 서류는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별지는 이곳 부사가 확실하게 탐지한 것이라고 하므로, 참고하시도록 제출합니다.
또한 별지에 적힌 것처럼 전 교리 이용호와 전 참군 윤 아무개 두 사람이 가짜 왕명을 내세워 거듭 민심을 선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경성 안에 숨어서 우리 군대의 움직임을 엿보고 있다고 하므로, 이 점 또한 참고하시도록 보고드립니다.
1894년 11월 12일.
남부문경병참사령부, 데와 소좌.
이토 포병 중좌 귀하.
다. 별지·부속서 — 문경부사의 동학당 동향 탐지서 전체 번역
※ 원문은 인명 목록과 상황 보고가 나란히 배치된 표이다. 아래에서는 읽기 쉽게 목록과 보고 내용을 나누었다. 인명 한자는 원문 그대로 병기하였다.
서울 벽동에 사는 윤 참군[갑병(甲柄)].
전 교리 이용호(李容鎬): 집은 보은 남학리에 있다.
이들은 비밀 왕명을 받았다고 거짓으로 내세워 민심을 선동한다.
그의 형은 자기 집에 있다[‘그’가 누구인지는 이 대목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동학 접주 명단
| 지역 | 이름 |
| 보은(報恩) | 황하일(黃河一) — 원문에 ‘吏’가 함께 표시됨; 강영석(姜永奭); 최시형(崔時亨) |
| 회인(懷仁) | 유일수(柳日秀) |
| 회덕(懷德) | 김복천(金福天) |
| 충주(忠州) | 성두환(成斗煥) |
| 옥천(沃川) | 박석규(朴石奎) |
| 문의(文義) | 오일상(吳一相) |
| 청산(靑山) | 이국빈(李國賓) |
| 청주(淸州) | 서일해(徐一海) |
| 영동(永同) | 손광오(孫光五) |
| 황간(黃澗) | 조경환(趙景煥) |
최시형에 대해서는 다음 주석이 붙어 있다. “가장 우두머리인 자로, 세상에서 법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며, 보은 장내의 장안에 살고 있다.”[원문은 ‘法憲’으로 적고 있다. 아래에서는 ‘法軒’이라는 다른 표기가 나온다. 번역자가 임의로 통일하지 않았다.]
청주에서는 지난달 23일부터 동학 무리 가운데 서일해가 수십만 명을 이끌고 여러 겹으로 둘러쌌다. 병사는 성문을 굳게 닫고 외부의 지원을 기다렸으나 지원이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위급한 상황이다[여기서 병사(兵使)는 병마절도사를 뜻한다].
이른바 최법헌은 현재 청산 문암리에 있는데, 고을 중심에서 10리 떨어져 있다. 수십만 명을 이끌고 보은 장안에 모였으며, 그 대열은 40여 리에 이어져 기세가 크게 떨쳐졌다. 일본 통역인 4명을 죽였다[이 뒤에는 원문에 결락 표시가 있다].
위의 열 고을 무리는 각각 수만 명으로, 무기를 빼앗고 사환곡을 모두 소비했으며, 백성의 곡식을 붙잡아 두어 군량으로 삼았다[‘執置民穀’은 곡식을 확보하여 보관한다는 뜻으로 옮겼다].
이전에는 법소·도소라고 부르던 것을 지금은 의소로 바꾸어 부른다. 군대의 이름이나 글에 쓰는 호칭에도 모두 ‘의’라는 글자를 쓴다. 그들이 말하는 각 접의 통문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저 왜적의 우두머리가 한꺼번에 날뛰며 서울을 침략하였다. 임금의 위태로움이 눈앞에 닥쳤으며, 종묘와 사직은 깃발 끝의 장식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신하와 백성으로서 어찌 가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우리 각 접은 군사를 일으켜 힘을 합쳐 왜적을 토벌하자.” 등등이다.
전봉준이라는 사람은 곧 이른바 녹두이다. 전라도 병사 수십만 명을 이끌고 공주에서 3리 떨어진 곳에 이르러 진을 치고, 보은의 병력과 서로 호응하니 기세가 매우 크다. 함께 많이 □□[원문 마지막 부분에 두 글자의 판독 불가 표시가 있어 뒷뜻을 확정할 수 없다].
이 문서의 수치를 그대로 사실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
‘수십만 명’, ‘각 고을 수만 명’, ‘40여 리’ 등은 이 탐지서에 적힌 보고 내용이다. 실제 병력을 검증한 수치가 아니다. 또한 비밀 왕명의 진위, 이용호·윤 아무개의 활동, 통역인 살해 등도 이 문서 작성자가 전하는 주장이다. 이 번역은 기록의 내용을 옮기는 것이며, 그 주장 모두가 사실이라고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3. 어려운 말의 쉬운 풀이
병참(兵站) — 음: 병참. 兵은 군사, 站은 머무는 곳. 속뜻: 군대가 싸우고 이동하도록 물자·운송·먹을거리를 뒤에서 이어 주는 일.
병참사령부(兵站司令部) — 음: 병참사령부. 속뜻: 병참 일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군대 기관.
첩보(牒報) — 음: 첩보. 牒은 문서, 報는 알림. 속뜻: 문서를 갖추어 보고함. 현대의 첩보(諜報: 몰래 알아낸 정보)와 한자가 다르다.
동비(東匪)·비도(匪徒) — 음: 동비·비도. 속뜻: 동학 무리를 도적처럼 낮추어 부르는 말. 일본 측의 적대적 표현.
공병(工兵) — 음: 공병. 속뜻: 길·다리·시설을 만들거나 고치고 군사 기술 업무를 맡는 병사.
역부(役夫) — 음: 역부. 속뜻: 짐 운반 등 일에 동원된 사람. 원문에는 부역(夫役)으로 적혀 있다.
척후(斥候) — 음: 척후. 속뜻: 먼저 나가 지형과 상대 움직임을 살피는 정찰.
요애(要隘) — 음: 요애. 속뜻: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고 중요한 길목.
병기(兵器) — 음: 병기. 속뜻: 총·칼·창처럼 싸움에 쓰는 무기.
조총(鳥槍) — 음: 조총. 속뜻: 당시 쓰던 긴 총. 이 기록만으로 개별 총의 제작 방식과 기종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
옥사(屋舍) — 음: 옥사. 속뜻: 집이나 건물. 감옥의 옥사(獄舍)와 다르다.
병정(丙丁) — 음: 병정. 속뜻: 옛글에서 불을 빗대어 이르는 표현. 여기서는 건물을 불태웠다는 뜻.
관문(貫文) — 음: 관문. 속뜻: 동전의 액수를 세는 표현. 오늘날 돈의 가치로 바로 바꿀 수 없다.
소위(少尉)·소좌(少佐)·중좌(中佐) — 음: 소위·소좌·중좌. 속뜻: 군대 계급. 소좌와 중좌는 오늘날 소령과 중령에 대응한다.
전권공사(全權公使) — 음: 전권공사. 속뜻: 국가로부터 외교 교섭 권한을 위임받은 외교 대표.
통첩(通牒) — 음: 통첩. 속뜻: 공식 문서로 알리거나 지시함.
부사(府使) — 음: 부사. 속뜻: 부라는 행정 구역을 다스리던 지방 관리. 여기서는 문경부사.
교리(校理)·참군(參軍) — 음: 교리·참군. 속뜻: 조선의 관직 이름. 교리는 홍문관 등에서 문서·학문 업무를 맡았고, 참군은 군사 관련 관직이다.
위칙(僞勅)·밀지(密旨) — 음: 위칙·밀지. 속뜻: 각각 가짜 왕명과 비밀 왕명. 기록은 밀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접(接)·접주(接主) — 음: 접·접주. 속뜻: 동학의 지역 신앙 조직과 그 책임자.
병사(兵使) — 음: 병사. 속뜻: 병마절도사를 줄인 말. 군인 한 명을 가리키는 병사(兵士)와 다르다.
사환(社還) — 음: 사환. 속뜻: 마을 단위에서 곡식을 빌려 주고 거두는 운영 방식 또는 그 곡식.
군량(軍糧) — 음: 군량. 속뜻: 군대가 먹는 곡식과 식량.
법소(法所)·도소(道所)·의소(義所) — 음: 법소·도소·의소. 속뜻: 동학 조직이나 활동 거점의 명칭. 의소는 ‘의를 위해 모인 곳’이라는 뜻을 담는다.
통문(通文) — 음: 통문. 속뜻: 여러 조직이나 사람에게 돌려 뜻을 알리는 공동 문서.
종사(宗社) — 음: 종사. 속뜻: 종묘와 사직. 왕조와 나라를 상징하는 말.
결락(缺落) — 음: 결락. 속뜻: 글의 일부가 빠지거나 없어져 읽을 수 없는 상태.
4. 이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핵심
① 1894년 9월 말 문경에 일본군 병참사령관이 주둔하며 보고 업무를 수행했다.
② 1894년 11월 12일 보고서에는 ‘남부문경병참사령부’라는 명칭과 데와 소좌의 서명이 있다.
③ 이 두 문서는 문경병참사령부의 존재를 입증한다. 다만 ‘제5사단 직접 휘하’라는 조직 관계, 설치일, 정확한 주둔 위치, 전체 병력 수까지 입증하지는 않는다.
5. 출처와 확인 안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제1권. 확인 기준: 2026년 10월 6일 대화에서 확보한 원문 전사문. 아래 링크의 웹사이트 메뉴와 화면 안내 문구는 역사 문서가 아니므로 번역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제1문서 원문: https://db.history.go.kr/joseon/level.do?levelId=jh_001_0040_0080_0030&types=o
제1문서 기존 한국어 번역: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jh_001r_0040_0080_0030
제2문서 원문: https://db.history.go.kr/joseon/level.do?levelId=jh_001_0050_0030
번역의 한계: 원문 이미지의 필적을 새로 판독한 교감본이 아니라 공개 전사문을 바탕으로 한 번역이다. 전사문에 남아 있는 오자·표 배열의 모호함은 단정하여 고치지 않았다. 출판·논문 인용 전에는 원문 이미지와 대조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