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궁금한 점이라기 보다는 답답한 점이다.
그렇지만 그런 답답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또 그것을 다룬 영화가
히트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과 그것의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승민은 서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선배에게 서연을 뺏겼다고 단정하고
일방적 결별을 선언하였고 그러나 첫눈이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밤이 깊어가도록
혼자서 쓸쓸히 기다리던 서연은 CD 와 CD 플레이어를 두고 돌아왔고
끝내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 같은 승민은 그 날 서연이 두고간 CD 와 CD 플레이어를 간직하고 있었다.
서연이 선배와 나누는 대화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먼저 선배의 차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던 승민은
서연과 데이트에서 입고 멋을 낼 요량이었던 티셔츠를 벗어 던지면서 이런 걸 왜 사왔냐고 모친에게 화를 내고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날 승민이 입고간 티셔츠에 쓰여진 상품명의 알파벳 철자가 틀렸다는 것을 승민이 자고 있는 줄 알고
차안에서 선배가 서연에게 농담으로 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승민이 그 날 집에 돌아와 모친에게 화를 내며 벗어 던져 버린 그 티셔츠를
십수년이 흐른 뒤 모친이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다시 만난 서연이 자신을 좋아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지금
이제 직장 후배 동료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홀로 계신 모친을 두고 이역만리 땅으로
떠날 것이 염려되는 가운데 집밖으로 나오면서 그 날 자신이 모친에게 화를 내며 박차고 나간
구부러진 대문의 모서리를 바로 펼려고 하다가 끝내 오열하고 만다.
그리고 바로 이어 첫눈이 오는 날 오지 않는 승민을 빈집에서 기다리는 서연의 쓸쓸한 장면이 이어진 것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차마 지켜볼 수 없을 만큼 애처롭게 했다.
그러한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두 사람이 이제 한 사람은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가 되었고
한 사람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한 사람이 과거에 서로 약속했던 집 짓기의 추억을 연상하듯
자신이 살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러 왔다.
뒤 늦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되어 버렸고 현실로 바꿀 수 없었다.
단지 서연은 홀로 남은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친과 살아갈 것이고 승민은 피앙세와 더불어 미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서연의 아버지는 서연이 찍어온 새로 지은 집의 사진을 보다가 우연히 승민의 사진을 발견하고 이 사람이 누구냐 하고 딸에게
묻는다. 이것은 자신의 사위가 될 수도 있었을 아니 사위가 되었어야 할 인연이었음을 직감한 아버지로서의 절규이다.
서연은 단지 그냥 친구에요..그냥 ..이라면서 슬픈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승민은 약혼녀와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서연은 새로 집을 지은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학생에게 피아노 렛슨을 하다가 우편 배달부로 부터 소포를 받게 되고 첫눈이 오는 날 자신이 빈집에 두고온
CD 와 CD 플레이어가 상자안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제와서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처음 학생시절 서연이가 들려주었던 그 추억의 선율로 다시 엔딩 장면을 가득 채울 때
하염없는 서러움의 눈물이 흐른 것은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2015년 5월 28일 정용석(crystalp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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