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_장사며_제사
유영모
다석은 얼나로서 얼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탐욕과 성냄 그리고 음욕이라는 세 가지 못된 욕망의 뿌리를 근원부터 뽑아버리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25년간의 결혼(結婚)을 해혼(解婚)으로 풀고, 40여 년간 금욕생활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식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 독특하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기에 그것만을 좀더 살펴보기로 한다.
다석은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입이란 열린 무덤이다. 식물, 동물의 시체가 들어가는 문이다.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 류영모, 『다석어록』, 355.] 우리가 먹는 음식은 ― 그것이 동물이냐 식물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 모두 생명체다. 우리 자신이 살기 위해서 먹는 식사라는 것이 다른 생명체들의 죽음이라는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따지고 보면 매 끼니가 장례식인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죽이고 있다. 그러기에 다석은 “식사는 장사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이 지구 위에서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장례식을 될 수록 적게 지내야 한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다석은 하루 한 끼니만[일일일식(一日一食)] 들었다. 그러면서도 다석(1890〜1981)은 91세까지 장수하였다.
하루 한 끼니만 먹을 때 나머지 두 끼니때 나는 내 몸과 내 살을 먹는 셈이 된다. 그것은 내 몸을 제물로 바치는 산 제사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극치는 하루에 한 끼씩 먹는 일이다. 그것은 정신이 육체를 먹는 일이며 내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는 일이기 때문이다.”[류영모, 『다석어록』, 52.]
더 나아가 다석은 식사가 곧 제사라고 말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으면 그것이 피가 되고 그 피는 뜻이 있어서 위로 올라가니, 향불 모양으로 사상을 피워 올리는 것을 먹고 사는 것이 사실이다.”[류영모, 같은 책, 91.]
“밥 먹고 자지 말고, 밥 먹고 깨어나도록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은_제물(祭物)이다. 바울은 너희 몸은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한다. 우리 몸이 하느님의 성전일 줄 아는 사람만이 능히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을 먹는다는 것은 예배요, 미사다.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물을 도적질하는 것이다.”[류영모, 같은 책, 186.]
다석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밥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자기를 바쳤는데, 이때 ‘바쳤다’는 말은 밥이 되었다는 말이다. 밥이 되었다는 말은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이 되었다는 의미다. 쌀이 되었다는 말은 다 익었다는 것이다. 성숙하여 무르익은 열매가 된 것이다. 인생은 무엇인가? 무르익는 것이다. 제물이 되는 것이다. 밥이 되는 것이다. 밥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 완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 아니고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참조 류영모, 같은 책, 187.]
다석에 의하면 인생의 목적은 제물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 밥을 먹는 것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 힘으로 먹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수많은 사람의 덕으로, 대자연의 공로로 주어져서 먹는 것이다. 밥이 되기까지에는 태양빛과 바다의 물과 그 밖의 온갖 신비가 총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밥은 우리가 거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인 줄로 알아야 한다. 인생뿐만 아니라 일체가 하느님에게 바쳐지기 위한 제물이다. 일체가 밥이다. 다석은 인생이란 밥을 통해 우주와 세상이 얻는 영양은 무엇일까 묻는다. 그것은 곧 말씀이라고 답한다. 인생이란 밥에는 말씀이 있다. 성령의 말씀이 있다. 온 인류를 살리는 우주의 힘이 되는 성령의 말씀이 있다.[참조 류영모, 같은 책, 188.]
다석에 의하면 인생은 짐승처럼 자기의 육체를 바치는 밥이 아니다. 인생은 밥을 먹고 육체를 기르고, 이 육체 속에 다시 성령의 말씀이 영글어 정신적인 밥인 말씀을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다. 인생이 제물이 되는 것은 육체적 제물이 아니다. 영적인 제물이다. 인생이 제물이 되는 것은 말씀이지 목숨이 아니다. 목숨은 껍데기요, 말씀이 속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