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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민수기 제15강
절기와 제사
말씀/민28-30장
요절/민28: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지켜야 할 절기와 제사, 서원에 관한 규례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1세대들에게 레위기 말씀을 통해 절기와 제사 규례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2세대들은 1세대들보다 출애굽의 은혜와 감격, 제사에 대한 의미와 절대성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이 시간 이스라엘의 절기와 제사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독교 절기를 지키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예배와 절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어떠합니까?
28: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드려야할 것을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하나님이 드시는 음식이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을 실제 먹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어야하는 것처럼 하나님께도 제물을 드려 그분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사하는 것은 나의 것인데 억지로 주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실 나의 생명, 시간, 물질, 재능 등 내게 있는 모든 것의 원 소유주는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서 일부를 감사하며 헌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것이니까 다 바치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내게 있는 작은 부분을 드림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음을 기억하도록 하십니다.
또 헌물을 드릴 때는 정한 시기에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준 시기입니다. 매일 드리는 상번제부터 시작해 초막절까지 하나님은 지정된 날짜와 함께 하나님께 바칠 헌물도 구체적으로 정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임의로 날짜를 바꿀 수 없고 헌물도 사람이 맘대로 드릴 수 없습니다. 왜 헌물의 종류와 방식, 드릴 시기를 정해 주셨을까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 정해서 예배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예배라는 허울과 명분은 좋아 보이지만 속내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헌물의 종류와 방식, 시간 등을 정해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찮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에 익숙해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귀찮고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온 맘 다해 섬기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임을 고백하며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만을 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매일, 매주, 매달, 매년의 첫 시간, 그리고 달마다 절기를 두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섬기도록 영적 안전장치를 해두셨습니다. 축복과 풍요의 때에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로 나아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갈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배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정해진 예배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예배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지난 3년간 신대원 수업을 들으면서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오시기 전에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자세로 긴장감 있게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하는 부분에서 이런 절대적이고 하나님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나아가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주 반복되는 예배 속에서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에 하나님 앞의 경외심이나 영적 긴장감이 느슨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편한 대로 예배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과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 헌물을 드리라고 하십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첫째, 상번제입니다. 상번제는 아침과 저녁에 일상으로 바치는 제물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번제를 드리는데 한 번에 세 시간씩은 족히 걸렸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세 시간씩 시간을 드려 번제로 제사했습니다. 상번제는 안식일에도, 그리고 각종 절기에도 쉬지 않고 1년 365일 내내 아침저녁으로 변함없이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제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며 제사장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요 삶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고운 가루의 소제와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전제를 함께 드립니다. 소제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하고 전제는 생명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고 생명을 드리고자 다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일용할 양식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선하게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다짐해야 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하시고 하루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날 지은 죄들을 회개하며 하루를 정리해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삶입니다.
둘째는,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고 안식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헌물을 드리는 것은 그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온전히 구원을 이루어주시고 참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합니다. 당시 안식일에는 상번제의 두 배인 숫양 두 마리를 드립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지만 안식일에는 또 다른 봉사와 헌신을 드려야 함을 말해줍니다. 평소에도 하나님과 동행할 뿐만 아니라 주일에는 특별히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또 예배를 섬기는 분들은 기도로 준비하며 예배 환경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이럴 때 예배에 감격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찬송, 기도, 헌금이 다 주님께 열납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설교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가 됩니다. 이 같은 예배가 될 때에 우리 또한 참된 안식과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예배 가운데 천국의 감동과 기쁨이 주어질 것입니다.
셋째는, 월삭이라고도 하는 초하루 제사입니다(11-15). 이 제사는 매월 첫날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이번 한 달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제사는 상번제나 안식일 제사보다 제물을 더 많이 드립니다. 그만큼 초하루 제사가 비중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새 달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한 하나님께 의탁하며 우리 각자의 삶을 보호해주시고 이끌어주시도록 간구하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절기에 관한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에서 1월14일은 유월절입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해방과 행복이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고 가르치는 신앙교육의 날이기도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또 그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 풍습으로는 ‘누룩 찾기’가 있습니다. 무교절 전날 밤, 온 가족이 등불을 들고 집안을 샅샅이 뒤져 누룩이나 누룩이 포함된 음식이나 누룩이 담긴 그릇을 찾아내 소각합니다. 또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면서 애굽의 모든 죄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인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주님의 은혜로 나를 구원해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며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잘 지킬 때는 깨어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잘 지키지 않고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 하나님을 원망불평하고 죄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된 인생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다음은 칠칠절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 이튿날은 보리 이삭을 바치는 초실절입니다. 그 후 50일이 지나 밀 수확을 해서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데 바로 칠칠절입니다. 칠칠절은 하나님이 적당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셔서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초실절은 안식 후 첫날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칠칠절은 오순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이 지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성전에 모인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가 탄생합니다. 이후 오고 오는 모든 세대를 거쳐 성령을 통한 영적 생명의 열매들이 계속해서 맺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얻어지는 결실들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 맺혀질 영적 생명의 열매들을 소망하며 감사해야합니다.
29장을 보십시오. 유대 종교력으로 7월에는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의 절기들이 몰려 있습니다. 7월은 추수기와 파종기 사이에 있는 휴식의 달이기도 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7월1일은 민간 달력으로 정월 초하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설날에 해당합니다. 즉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에 나팔을 부는 날이 나팔절입니다.
느헤미야서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7월1일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이자, 제사장인 에스라를 초청해 새벽부터 정오까지 여호와의 율법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회개하는 ‘영적 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나팔절은 우리가 신년 특강을 통해 한 해의 방향을 잡고 새해를 출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신년 특강을 통해 방향을 잡았던 것처럼 올해 힘써 복음을 전파하며 믿음의 반응과 행위를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7월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이날에는 모든 백성들이 성회로 모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 동안 금식합니다. 이날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온 이스라엘이 범한 죄와 부정을 단번에 속죄하는 날입니다. 대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함을 받게 될 것을 예표하는 속죄 제사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심령을 괴롭게 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deny yourselves’ 즉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자기중심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초막절입니다. 12-40절을 보십시오. 7월15일에는 성회로 모여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때는 일주일 동안 집 바깥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초막절 행사를 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 가운데 보호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창고에 저장한 다음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도 비슷합니다. 모든 추수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장 많은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 동안 상번제와 소제와 전제와 속죄제를 드리며 감사의 축제를 즐기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와 절기 즉, 예배 제도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매번 제사와 절기 때마다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화제)”, 영어성경에는 “an aroma pleasing to the Lord”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향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헌물과 제사들이 하나님을 만족스럽고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언급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는 구약의 백성들과 신약의 성도들이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예법에 따라 순종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약의 성도들은 더 이상 짐승의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신약의 성도들도 마치 구약의 백성들이 제물을 드리듯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감사의 제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지만 제사 의미의 제물이라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가 이미 단번에 영원 지속되도록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우리는 다시는 제물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떤 제사로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다만 영원히 단번에 제사를 드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그 까다롭고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들이고 제물도 많이 들어가는 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해서 땅을 분배받게 되고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사라질 때 그들의 제사는 허울만 남고 병든 것, 저는 것들로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사라질 때 우상숭배하고 음행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사 제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찾고 경외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먹고 마실 때도, 일할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먹든 마시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 가운데서, 공부를 감당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본질이요, 목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의 기쁨은 절기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말할 수 없는 압제와 고통 속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무교병과 쓴 나물만 먹어도 기쁩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칠칠절은 첫 열매의 날, 곧 하나님께서 햇곡식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첫 열매는 장차 거둘 풍성한 수확을 예고합니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장차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에 대한 기대만큼 기쁜 일은 또 없습니다. 초막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성한 수확을 곡간에 가득 들이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7월1일 나팔절, 7월10일 대속죄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월 초하루, 설날을 맞이할 때 얼마나 기쁩니까? 새해를 출발하면서 기쁨과 설렘으로 시작합니다. 대속죄일은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기쁨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심을 경험하는 그 시간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백성은 동시에 기쁨을 누리는 백성이 됩니다. 우리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부활절, 성탄절, 추수감사절의 기독교 절기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절기 때마다 우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절기 때만이 아니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항상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게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늘 기억하게 합니다. 성령은 내게 있는 것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으로 인해 항상 기뻐하게 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사회의 여러 현실과 각자마다 삶의 십자가가 있기에 기뻐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0장은 서원에 관한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유대 전통에 서원은 ‘분리의 울타리’라고 해서 신앙을 보호해주는 담과 같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서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서원 기도를 들으시고 야곱을 철통같이 보호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셨습니다. 그의 서원이 그를 보호해주는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 서원한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스스로 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깨뜨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미혼인 딸이 아버지의 동의 없이 서원했을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면 무효가 됩니다. 결혼할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듣고 허락하지 아니하면 무효가 됩니다.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경우는 서원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자신이 그 가정의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했거나 맹세했다면 반드시 그 지켜야 합니다. 또 서원할 때는 그 서원이 가족이나 남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심이나 서약에 있어서도 깨뜨리지 말고 말한 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책임이 동반되기 때문에 우리는 서원이나 결심, 서약에 있어 매우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했으면 하나님의 신실하심만큼이나 우리 또한 하나님께 신실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와 삶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매일, 매주, 매월, 매년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함을 보이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