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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평전!
그런데 과연 평전이란 뭘까?
평전은 그사람의 일생을 평론을 곁들여 적은책을 의미하며
일종의 비평적 전기물을 말하는 것이다.
즉 저자가 사료를 선정하고 해석하여
정리한 전기로 주로 역사적, 사상적, 문학적 평전이 많다.
유명한 것이 체게바라 평전, 모택동 평전, 레닌 평전, 등이 있지만
남은걸 접한건 고작 체게바라와 등소평 평전을 접했을 뿐이다.
따라서 평전은 엄청난 자료를 필요로 하며 쓰는 것도 매우 힘들며,
영혼과 정신을 갉아 먹으며 피고름으로 쓴다고 한다.
미화와 왜곡된 평전도 있으니.
단적으로 말하면, 좋은 글쓴이에게서. 좋은 평전이 나온다.
지금 쓰는 글은 신사임당 평전이 라고 쓰기에는 부끄러운 일이다.
신사임당에 대한 소고(小考) '작은 생각' 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리 속담에.왕대밭에 왕대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유전인자도 중요하겠지만 가문의 전통,
분위기, 주위환경, 교육, 생활 경험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묵자흑 근주자적' 이라고 친구를 떠나 태어난 가문도 무시할 수 없다.
신사임당은 어려서 밥하고 길쌈하는
여느 처자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행운녀였다. 당시는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 절대왕조 시대로 여성은 남자들의 종속물이 었는데...^^
그런 여성들에게 무슨 인격적 대우와 학문이 필요하겠는가?
그저 시집가서 떡두꺼비 같은 자식들 많이 낳고
시부모와 남편 잘 받들어 모시면 되지,
지금 이런 소리하면 따귀 맞는다.
여필종부(女必從夫)잘알것이다.
시집 가기 전에는 아버지, 시집가면 남편.
그리고 남편이 가고나면 아들의 말씀에 잘 따라야 한다는 것...
신사임당은 요새 기준으로 하면 금수저는 못 돼도 은수저 출신은 되었다.
조상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자 왕건 대신 전사한 신숭겸의
먼 후손으로 고조부는 문희공(文僖公) 신개였다.
고조부 신개는 세종대왕 시절 예문관 대제학, 대사헌, 도총제 등등을 지냈고,
나중에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할아버지 신숙권은 영월군수를 지낸 소위 빵빵한 집안이었다.
아버지 신명화(申命和)는 진사에 그쳤지만 선비였고,
어머니는 용인 이씨 집안의 선비인 이사온의 딸이었다.
신사임당의 형제에는 아들은 하나도 없고 딸만 다섯이었는데,
신사임당은 그 중에서 둘째 딸이었다.
둘째 딸! 뭔가 느껴지지 않는가?
첫째는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십
이 있으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한 반면에,
둘째는 대체로 투사적이다.
의지가 굳고 성취욕도 강하다.
뒤에서 신사임당의 성격에 대해 다시 언급하겠다.
외가살이를 하면서 신사임당는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기묘사화로 관직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한 아버지로부터
성리학을 교육 받았다.
그래서 그림,서예,시.재주가 탁월하였고,
성리학적 소양도 있었며,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다.
또한 성리학적 지식과 도학,문장,
고전, 역사 지식등에 해박하였다.
한마디로 귀재였다.
그렇지만 그녀가 저런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오늘의 오만원권은 고사하고 이이 같은 이름도
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났고,
다른 자매들 보다도 일찍이 글을 깨우쳤다 한다.
아버지 신명화는 딸들에게도 성리학과 글씨,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는데 딸들 중에서도
신사임당의 재능과 영특함을 알아보고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신사임당의 어머니! 친정어머니 이씨는
죽은 부모에게 효행을 다하고 죽은 남편에게
정절을 지켰다 하여,1528년(중종23년)나라로부터 열녀로 표창을 받았다.
열녀문도 세워주고...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사대부가의 여성들 역시 재혼이 되거나
불륜행각을 벌이는일이 비일비재 했고,
일찍 과부가 되어 홀로 5녀를 키운
어머니 이씨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했다.
또한, 신사임당이 일찍 죽은 뒤에도
오래 살아 외손자인 율곡 이이의 지지자이자 방황하는
외손자를 다잡아 주기도 했다.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는 자신의 친정아버지와
처가의 도움을 받는 남편이 대립하거나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하면 안된다!
옛날 어르신들이 자주 말씀하신. 말이다. 처가살이!
신사임당 아버지와 신사임당 남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늘은 여기까지다. 평전 이라고 썼지만 평전이 아니다.
글을 이렇게 썼다고 평산 신씨와 덕수 이씨가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에 계속 이어집니다.
또 이글을 읽으며 딴지를 거시는
분도 있는데. 그냥 그랬을 거라고 생각 했으면 한다.
나도 그시대 사람이 아니라서 야사 자료를 근거로 썼음을 알린다.
오죽하면 처가살이를 하겠느냐
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