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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마 13:1-17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마 13:1-17 / [씨뿌리는 사람 비유;막4:1-9,눅8:4-8]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바닷가로 내려가시자 2) 많은 군중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앉아서 가르치시고 군중은 해변에 둘러서서 들었다. 3)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한 농부가 그의 밭에 4) 씨를 뿌렸다. 그런데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5) 또 어떤 것은 흙이 깊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이 곧 올라왔지만 흙이 얕아서 6) 뜨거운 태양에 말라 죽어 버렸다. 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그러나 가시나무들이 자라서 그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 10)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막4:8-12,눅8:9-10] 제자들이 와서 예수께 물었다. `왜 저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11)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13)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넉넉하게 되겠지만 갖지 못한 사람은 조금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하려는 것이 내가 비유를 쓰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듣고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14) 이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ㄱ) `너희가 듣기는 아무리 많이 듣더라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가 보기는 끊임없이 보더라도 그 의미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ㄱ. 사6:9-10) 15)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귀를 막아 버려라. 눈을 아예 감겨 버려라. 그들이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마음으로 깨달아 내게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라. 그들이 고침받는 일이 없게 하여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볼 줄을 아니 행복하고 너희 귀는 들을 줄을 아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 너희가 본 것을 보려고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들은 것을 들으려고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할 왕으로 임하셨지만 거절과 오해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바닷가에 앉으시매(1-2) 본 단락은 ‘그 날’은 본문의 가르침이 12장의 연속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버나움의 어느 집(아마도 베드로의 집; 마 8:14)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점 더 많은 무리가 몰려들자 예수님은 바닷가로 자리를 옮기셔야 했습니다. 큰 무리는 예수님께서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정치 세력화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대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대중은 예수님을 정치 지도자로 옹립하려 하였습니다.
밭의 비유(3-9) 예수님께서는 네 종류 밭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네 가지 밭 중에서 오직 좋은 땅에서만 결실하고 나머지 세 밭에서는 결실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땅인 길 가는 너무 굳어서 씨를 받아들일 수 없고, 두 번째 땅인 돌밭은 흙이 깊지 않아서 씨가 자라지 못하며, 가시떨기 밭은 자라나는 식물의 기운을 막아서 결국 열매 맺지 못하게 됩니다. 생명의 씨(주님의 말씀)가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거룩한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밭은 마음을 비유합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천국의 결실을 맺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천국의 비밀(10-13)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천국의 비밀 때문이었습니다(11). 천국의 비밀이란 구약에서부터 신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말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 비밀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비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만이 이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14-17) 예수님은 이사야의 탄식을 인용하십니다(사 6:9-12).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몰락한 후에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 외에 이사야의 예언을 믿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사야의 탄식은 그런 불신앙의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제 그 예언대로 메시야가 오셨고, 이제 십자가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시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메시야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았습니다.
적 용 : 당신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당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시는 능력자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죄를 사해 주시고 의롭게 살게 하시는 구원자의 모습입니까?
말씀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방해가 되는 잡초는 뽑아서 버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줍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입니다.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쭉정이가 되기도 하고, 큰 열매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 설 교 >
당신의 마음 밭을 옥토로 변화시키라!
요즘 농촌엔 농부들이 한창 바쁠 때입니다. 모내기를 비롯해서 고추 심기, 호박 심기, 오이 심기 등, 농부들은 가을에 풍성한 추수를 바라보며,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봄에 볍씨를 뿌려서 가을에 추수를 하고, 도정을 해서 쌀이 밥이 되어 우리 입에 들어올 때까지 아흔아홉 번 손길이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흔아홉 번 손길이 간다는 말은 그만큼 수고를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게 수고를 많이 하지만, 농부는 가을에 거두는 풍성한 열매로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우리는 비록 농사를 직접 짓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다 농사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자식 농사를 짓는다고들 합니다. 회사 경영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농사짓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 자체가 농사와 같아서 심을 때가 있고, 땀 흘려 가꾸며 인내로 열매를 기다릴 때가 있고, 기쁨으로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 농사에서 풍성한 추수를 좌우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하나를 꼽아 보라면, “밭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살이 자체나 신앙생활이라는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이라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밭이라고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우리 주님 앞에 올려드릴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을 만드는 법을 배워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농사법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한 농부가 씨를 뿌리는 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짐으로 떨어지자마자 새가 쪼아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짐으로 싹이 나기는 했지만, 해가 내리쬐자,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가 말라 죽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싹이 나기는 했지만, 가시덤불에 기운이 막혀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결실은 밭의 상태에 달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농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 같으면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의문을 가지실 겁니다. “아니, 무슨 농부가 씨를 길가에 뿌리고, 돌밭에 뿌리고, 가시떨기에 뿌린다는 말인가? 이런 정신 나간 농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1세기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사꾼들이 농사짓는 방식을 두고 쓰여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농부들은 우리와 달리 씨를 뿌리고 나서 밭을 갈아엎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씨가 아무데나 날아가서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네 종류의 밭 중에서 제대로 씨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결실한 밭은 좋은 밭 하나밖에 없습니다.
네 종류의 마음 밭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이란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비유하는 것인데,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네 가지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이 이것을 영어로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길가:Closed mind, 돌밭:Casual mind, 가시떨기:Carnal mind, 좋은 밭:Careful mind 입니다. 이 시간에 자신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를 점검하면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은 단단하게 굳어진 마음, 닫혀진 마음(Closed mind)이라서 말씀이 한 마디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겁니다.
둘째, 돌밭 같은 마음은 변덕스러운 마음(Casual mind)입니다. 냄비 같은 신앙입니다. 돌밭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기뻐할 줄도 알지만,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를 지불하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생활을 입으로만 하는 겁니다.
셋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하나, 세상의 염려와 물질 욕심에 사로잡혀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세속적인 마음(Carnal mind)입니다. 말씀이 옳다는 것은 알지만,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너무 좋아서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예컨대, 주일에 교회 와서 말씀 듣는 것도 좋지만, 그 날 하루 수입을 생각할 때에, 또는 골프나 테니스 모임, 또는 등산이나 낚시 가는 일이 더 좋아서 교회 출석을 못하는 겁니다.
넷째, 좋은 밭은 주의 깊고 신중한 마음(Careful mind)입니다. 좋은 밭은 말씀을 대할 때에 신중하게 받아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어떤 핍박과 환난이 오고, 힘든 일이 있어도 참아내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풍성한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밭은 어떤 상태인 것 같습니까? 자신의 마음 상태가 분석이 됩니까? 이제 자신의 마음 상태가 발견이 되었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네 종류의 밭과 같은 마음 상태 중에 하나가 평생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실하지 못하는 세 가지 밭의 상태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개선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와 또 마태가 이 말씀을 자기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길가 밭과 같은 마음이나, 돌밭과 같은 마음이나, 가시떨기 같은 마음은 구제불능이니까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라는 겁니다.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려면, 내 마음 밭을 개간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유발되어야 합니다. 그냥 이대로 좋다고 생각한다면, 오늘 설교 말씀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에 대해서“이대로는 안되겠다. 나도 변화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네 가지 마음 상태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열매 맺는 삶, 맺지 못하는 삶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의 공통점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 가지 밭이 보여주는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겁니까? 천국 복음을 듣고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주님께서 전해 주시는 천국 복음의 열매는, 천국을 누리고, 천국을 확장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천국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로마서 14장 7절에 말한 것처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을 누리는 삶은 달리 말하면 나도 행복하고 주위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삶입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천국을 확장하는 삶을 살다가 영원천국으로 이사 가는 겁니다. 이게 천국 복음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천국 복음의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이란 게 얼마나 따분하고 재미 없는 일이 되겠습니까?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재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열매 없는 일을 하는 것만큼 재미없고 힘든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불행이며 고통입니다. 예화)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에 구소련의 시베리아 형무소에는 벽돌 나르기라는 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벽돌을 저쪽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이쪽으로 옮깁니다. 이 짓을 하루 종일 시킵니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시킵니다. 그러면 사람이 돌아버릴 지경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과 가치를 느끼고 열정을 느낄 수 있을 때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어떤 일에 몰입할 때에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 가지 마음 상태에 해당하는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깊이 있게 몰입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의 행복을 느껴본 적도 없는 겁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은 한 마디로 낭비되는 삶이요 불행한 삶입니다. 나중에 은혜 받고 천국 복음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정말로 후회스런 삶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이 이렇지 않습니까? 그냥 그대로 사시겠습니까?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은 천국의 열매를 풍성히 맺습니다. 옥토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고백과 찬양이 있고,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힘을 다한 열정적인 봉사와 섬김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내적 외적 증거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열매를 맺는 사람은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응답받겠다고 주님 약속하신 대로, 그의 삶은 점점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옥토 같은 마음 밭을 가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옥토 같은 마음 밭을 가꿔야 나도 행복하고 주위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 주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깨닫고 실천하는 마음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열매 맺는 옥토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네 종류의 마음 상태를 관통하는 중요한 핵심 요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느냐? 깨닫지 못했느냐?”하는 문제와“장애물을 극복하고 말씀을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그리고 순종하여 실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말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라!
길가 밭과 같은 마음은 아직 말씀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깨닫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말씀을 깨닫는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말씀을 듣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최소한 주일을 성수하며 설교 말씀을 듣는 시간을 결단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성수가 되는 분들은 이제 설교를 듣는 일뿐 아니라, 날마다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게 되는 분들은 이제 시간을 더 내어 성경 공부하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라 했습니다(행17:11). 베뢰아 사람처럼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십시오. 그래야 더 말씀이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는 만큼 천국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법입니다.
2. 성령의 도우심을 전심으로 구하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비유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 질문을 했고, 주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비로소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피신하던 제자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은 구약 성경을 풀어 설명하심으로 어떻게 당신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되는지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될 때에, 제자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했습니다(눅24:32절).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냉랭한 가슴을 뜨겁게 감동시키는 말씀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예리한 검과 같은 말씀이 내 양심을 찌르고, 마음 속 깊은 동기를 분별하여 교훈하고 책망하는 역사를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불같은 말씀이 내 마음을 뒤덮고 있는 가시덤불과 같은 세상 정욕과 근심과 염려와 걱정을 불태워버리는 것을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방망이 같은 말씀이 나의 완고한 고집과 편견과 고정관념들로 인하여 단단하게 굳어진 길가 같고, 돌밭 같은 내 마음을 깨부수는 것을 경험해 봐야 합니다. 그럴 때에 가시 밭 같던 마음, 돌밭과 같던 마음이 옥토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 법무 법인 민우의 대표인 문흥수 변호사의 간증입니다. 그는 산골 마을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9남매 중 7째로 태어났으나 공부를 잘해서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모두 장학생으로 다녔습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법대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향천사라는 절 근처에서 살았고, 그의 아버지가 절에 다니셨기 때문에 자신은 불교 신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바로 위의 형이 죽으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함께 뒹굴던 형이 죽자, 인생이 너무도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회를 나가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새로운 세계를 만나 황홀했고, 밝고 힘찬 교회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사법 시험 준비를 하면서 소그룹 성경 공부반에서 계속 성경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십자가에서 희생됨으로써 모든 인류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죗값이 치러졌다는 가르침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서 고민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는 이 대속의 교리 때문에 결국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예배보다 전도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전도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는 친구에게 전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기가 배운 성경 지식을 가지고 친구에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도 교회를 다녀봤다며 “너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가 청산됐다는 교리를 믿느냐"고 묻더랍니다.
그 때에 그는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더니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믿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는 문제를 친구가 질문할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깨가 축 늘어지면서 몸에서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 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너의 인생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는 말씀이 떠오르더라는 겁니다. 곧 이어 “그러나 너의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의 생명 가치도 천하보다 귀하지 않느냐? 너희가 천하를 얻고 너희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마태복음 말씀이 생각나더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마치 폭포수처럼 내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데,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요, 만유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희생됨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도 높고, 깊고도 넓은지 인간의 어떠한 죄도 그로써 대신하고 남을 수 있다. 죄 많은 인간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생명은 얼마나 귀한가? 천하보다 귀한 그분의 생명을 희생했으니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의 죄가 그 희생의 공로로 해결되고도 남을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는가?”하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 순간에 그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이었는지가 깨달아지고,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깨달아지더랍니다. 그리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셔서 친히 말씀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이리 불공평하고, 부조리가 많을까'라며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살아온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 뒤, 그의 신앙생활은 불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십자가 구원의 도를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전하게 됐다고 합니다. 버스 안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택시를 탈 때에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게 됐고, 저절로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게 됐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게 됐다고 합니다. 주일 저녁, 수요일, 금요 철야, 그리고 새벽기도에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귀중한 십자가의 복음을 생전에 100만명에게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하였는데, 책받침 전도지를 만들어 1만여장, 소책자 전도지 수십만권, 자신의 신앙 간증을 소설로 쓴 “별은 동쪽에서 떠오르고”라는 책자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또 500여 교회에서 간증하고, 수십여개 대학 채플에서도 간증하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도한대로 100만 명 이상에게 전도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전도사님이 되어 고시생들을 복음화 하기 위하여 낮은 마음 교회를 설립하여 무보수로 섬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대충 덮어놓고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의심이 되는 것은 의심이 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확신을 구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깨닫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고 기다릴 때에, 문흥수 변호사님이 경험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어느 한 순간에 복음의 진리를 확 깨달아지게 하실 때가 옵니다. 그러면 모든 성경이 한꺼번에 줄줄이 꿰어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3. 말씀을 깨달았다면, 순종하고 실천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에 기록된 영육간의 축복이 내 것이 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거라는 말씀입니다.
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하나는 행함 없이 머리의 지식과 입술의 고백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란 반드시 순종이라는 행동이 따라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지금도 많지만, 초대교회 시절에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약1:22). 또“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런 헛된 믿음이 자기를 능히 구원하겠느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질책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항상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한 가지 말씀만이라도 깨달은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해 보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 마음은 점점 옥토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4.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가시덤불을 불태우고 돌을 깨부수고, 파내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가시덤불이나 돌들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옛성품들과 청산하지 못한 옛생활을 의미합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과 아집을 의미합니다.
신앙이 자라나고, 천국을 경험하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죄악된 옛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모든 죄악 된 생각과 행동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죄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것이라도, 과감하게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5.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씨를 심고 그 다음 날 낫을 들고 거두러 나가는 농부는 없습니다. 봄에 씨를 심었으면, 한여름의 무더위를 참아내며, 열심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방제하면서, 가을을 기다립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농부라도, 곡식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인생살이가 다 그렇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땀과 피와 눈물을 흘리며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됩니다. 인내가 요구됩니다. 기도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땀과 눈물을 대신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의 책(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을 꼭 한 번 읽어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의 목표를 설계하고, 그 설계도대로 행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실천했습니다. 자신이 세운 거룩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최고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 번 신앙생활을 해 보자고 결심을 했으면, 어떤 장애물이 오더라도 뚫고 나가겠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라고, 천국의 실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깨닫고, 천국을 풍성하게 누리려면, 마땅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귀한 것들은 비싸게 값을 지불하고 얻는 법입니다. 하물며 신령한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농사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생 농사에다가 신앙의 농사까지 짓고 있습니다. 인생 농사와 신앙의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밭입니다.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야 인생농사에서도 신앙 농사에서도 성공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마음 밭 자체가 고통이며 불행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옥토 같은 마음 밭을 가꾸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마음이며, 깨달은 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마음입니다. 깨닫고, 순종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는 열심히 노력할 때에만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마음을 옥토로 가꾸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