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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년 페스트와 함께 가뭄, 메뚜기 떼가 중국 북부에 들이닥쳤다. 인구의 20~40%가 목숨을 잃는 지역도 있었다. 북부 초원의 유목민들을 매개로 전파된 페스트와 말라리아는 명나라를 허무하게 무너뜨리고 만주의 청나라를 중원의 새 주인으로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전염병과 관련된 기록이 1000건이 넘는다. 조선왕조 500년동안에 전염병이 돌았던 기간이 320년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인구의 절반이 아동기 이전에 사망했는데 40%가 천연두 때문이었다.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걸리는 병이었기에 ‘백세창’이라고 해서 백 살을 먹어도 한 번은 걸린다고 인식했다. 어릴 적 천연두와 홍역을 앓지 않은 사람은 커서 사람 취급을 제대로 안 해줄 정도였다. 필자도 초등학생 때인 1970년대에 어른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비디오를 빌려보면 “호환, 마마, 전쟁보다 무서운…”이라고 시작하는 불법비디오 경고문을 보고 나서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호환은 호랑이의 습격, 마마는 천연두를 뜻한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곰보가 된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1970년대만 해도 머리에 ‘이’가 있는 친구가 많았고 집에서 쥐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 당시 초가집은 마당을 한가운데 두고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과 소와 돼지를 키우는 마구간이 있어 쥐나 이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초가집이 슬레트지붕,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면서 빈대와 쥐벼룩이 사라지고,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릿니가 사라졌다.
그런데 요즘은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극찬한다. 경제를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막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누군가는 올림픽 10개 정도 치른 효과가 한국에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거의 모든 나라가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충격이 큰, 중국식 강력한 봉쇄정책을 따라 하고 있지만 곧 한국식 방역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는 괄목상대할 만큼 높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전염병 방역 후진국이었던 한국은 어떻게 불과 몇십 년 만에 세계 최고의 방역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