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흥아건설에 있어서 반도의 사명
1) 세계사의 새로운 전회(轉回)와 새로운 흥아체제
전 인류는 유사 이래 미증유의 변혁기에 직면해 구미의 파괴적인 물질문명의 최후적 총결산을 통해 바야흐로 도의적인 황도 일본의 세계사 창조 공작에 귀일하면서 세계 신질서 건설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동쪽에서는 황국 일본의 직접적 지도에 의해 대동아공영권 건설이 이루어지고, 서쪽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광역권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처럼 일본과 독일을 중심으로 세계 신질서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신질서 건설전선은 동시에 세계 전체주의전선과 국제적 방공전선과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구체제·구질서의 지양과 더불어 소련의 사회주의 블록도 미·영의 자유민주주의 블록도 필경 이러한 세계사 신 전회의 조류에 그 국제적·국내적 진로를 혁정(革正)하고 있다.
그러나 도의세계의 건설에서는 구미의 파괴적 물질문명이나 유럽식 패도로는 그 항구성을 보장할 수 없음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류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여기에 세계에 비할 바 없는 황도사상과 일본정신을 우주에 방사하고 빛을 비추면서 팔굉일우의 건국이상의 현현에 매진하는 황국 일본의 영도에 의해서만 인류는 영구히 질서가 유지되고 구제받게 된다는 것은 각 국의 황국 일본에 대한 동경과 20억 인류의 일본정신에 대한 애착이 실증하고 있다.
국가체제나 무사도나 일본학 등에 걸쳐 일본정신에 많은 것을 배우는 맹방 독일의 신흥하는 모습을 보라.
패전국인 프랑스가 부흥 국시를 ‘봉사·가족·국가’라는 일본적 사상에서 찾고 있는 모습을 보라.
만주·중국·동인도·필리핀·버마 등의 토착민족들이 우리 일본의 지도를 희구하고 갈망하고 있는 것을 보라.
핀란드·헝가리·터키·시베리아 등에 산재하는 우리와 같은 계통의 투란인종의 황국 일본에 대한 동경을 보라.
저 소련이나 적 미·영까지 나약한 병대를 강하게 하기 위해 일본의 무사도를 종종 배우고 있음을 보라.
이와 같이 세계 인류는 세계 신질서 건설에서의 황국 일본의 영도를 희구하고 갈망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사는 우리 대일본제국을 중추로 일대 전회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 영원의 도의 질서를 건설하는 것은 비할 바 없는 팔굉일우의 황도정신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저 일청전쟁·일러전쟁은 본디 만주사변이나 지나사변 및 대동아전쟁을 통한 흥아의 성업은 이를 구현하는 과정이다.
일억의 황국신민은 실로 세계사 창조 의무를 부여받은 역사적 국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는 앵글로색슨을 중심으로 한 백색인종 전성시대였지만, 20세기부터는 우리 일본을 근간으로한 황색인종 부흥시대로 전개되고 흥아 건설은 팔굉일우 구현 과정으로서 황도에 기초하여 아시아의 면목을 일신하는 것이며, 흥아유신이라 칭하는 까닭이다.
유사 이래 세계를 문화적으로 무력적으로 지배 지도해온 아시아는 대몽고의 세계정복이나 터키 등의 구라파 3대륙 제패의 흔적도 없이 과거 3세기 동안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력적으로도 완전히 백색인종의 말발굽에 유린되었다. 찬란한 정신문명은 피폐·소멸했고 무진장한 자원은 백색인종에게 강탈당했으며, 게다가 아시아 인종의 거대한 부분은 노예가 되었다.
따라서 아시아의 맹주인 우리 대일본제국은 흥아에 있어서 세 가지의 세계사적 임무에 당면하고 있다.
첫째는 황도문화를 선양해서 동양문화의 신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일체의 구미파의 파괴적인 사상문화로부터 아시아의 십억 민중들을 문화적으로 해방·방위하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적으로 열강의 착취체제에서 아시아를 해방시키고 공영(共榮)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치적으로 열국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방위해서 일본·만주·중국·프랑스령 인도차이나·동인도·필리핀·버마·말레이·인도 등을 하나로 뭉치는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해서 공존공영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흥아적 대사명 달성을 위해 흥아 국토 건설·천업익찬 체제·국가총동원적 시책은 흥아 추진시책으로서 국내적으로 정비되고, 이리하여 황국 일본은 황도정신 아래 거국적 황도정치·계획적 황도
경제·물심양면의 황도문화의 전면적 진흥에 의해 현재 대동아전쟁 완승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 제국의 거대한 일부이자 또 대륙 전진기지로서의 반도는 황국 일본에 있어서 어떠한 역사적 역할을 하고 아시아 부흥에서는 어떠한 사명을 하고 있는지를 고찰하는 일은 실로 뜻 깊은 일이다.
2) 내선일체는 흥아 건설의 첫걸음
내선일체는 흥아 건설의 첫걸음이자, 대륙 루트에 ‘제2의 내지’를 만드는 것이 대륙 장기 건설의 선결조건이다.
한국병합 이래 30여 년, 그동안 일시동인(一視同仁)과 복리증진이라는 양대 성지(聖旨)에 기초하여 동문동조의 내지·조선의 두 민족의 일체화 공작은 순조롭게 구체화되고 있다.
내선일체는 3000년간의 내지·조선의 관계에 비추어 그 태고적부터 실현되고 있는 흔적을 응시하고, 이를 일억 국민들
이 각자 체현함으로써 내지·조선 간의 감정적 장벽, 즉 민족적 우월감과 민족적 시의심의 숙청을 완성하고 일억일심·대화일체(大和一體)를 통해 한국합병의 근본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내선일체 완성을 위한 노력과 속도는 이번 대동아전쟁을 하나의 전기로 삼아 위로는 성려(聖慮)와 총독의 현명한 영단과 맞물려 2,400만 반도황민의 진충보국의 적성에 의해 과거 3000년간의 실적을 훨씬 능가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의 융흥과 흥아 건설을 위해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반도 치안의 암적 존재였던 수만 명의 사상 관련자도 시국의 인식과 국민적 위력에 의해 모두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환원되었으며, 과거의 좌익·우익의 민족해방이라는 문구는 완전히 반도황민의 뇌리에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중간파의 이른바 민족 중앙자치론조차 내지연장주의에 기초하는 내선일체 운동의 조류에 씻겨나가고 말았다.
이와 같이 반도 사상계의 급격한 전환과 안정은 구미사상의 악영향으로 부터의 탈피와 더불어 황도 선정의 반도 전역으로의 현현·구체화와 반도에서의 팽배한 필승적 사투에 기초하는 것이다.
총독 시정 이래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위미·피폐한 반도로서 물심양면으로 오늘날의 상태에까지 끌어올렸는데, 거의 반세기나 □□□ 민족으로 하여금 세계의 지도적 국가의 국민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려는 위정자의 노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이다.
메이지유신에서 조선의 일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한국병합까지의 기간은 무려 50년 □□□□, 민력·민도·문화적 수준, □□ 국민적 봉공 정도에 있어서 반세기의 현격한 격차가 있는 일본 내지와 조선 간에 최단시간에 이를 시간적 거리의 해소가 실현되었다고 한다면, 이로써 흥아 건설에서의 시간적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따라서 내선일체 완성이야말로 흥아 건설의 중심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황도정신의 승리에 이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역대 총독들의 반도 통치의 실적 중에서 내 눈앞에 비치는 것을 잠깐 살펴보면, 데라우치 총독의 군정시대, 사이토 총독의 문화정치시대, 우가키 총독의 개발정치시대, 미나미 총독의 내선일체 정치시대 등을 거쳐 고이소 총독은 수양 연성의 철저한 실천·생산전력의 필승적 증강·서정집무의 획기적 쇄신을 도모함으로써 도의도선의 건설에 진력하고 있음은 우리 반도황민 모두 크게 기뻐하는 바이다.
이러한 역대 총독들의 성지를 봉대하는 현명한 국책 수행에 의해 반도 2,400만 황국신민은 더욱 폐하의 적자로서 연성하고, 내선일체는 점차 완성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30년간을 회고하고 우리는 미래의 30년을 전망하며 크게 낙관해야 한다.
조선은 결코 구미 제국주의적인 식민지가 아니라 ‘내지의 분신’으로서 대일본제국의 한 지방이며, 홋카이도(北海道)나 규슈(九州)나 시코쿠(四國)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세계의 지도적 국민으로서 반도 2,400만 황민은 흥아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영광과 책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동문동조(同文同祖)이자 현실적으로 혈맥이 통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내지·조선 두 민족은 반드시 같은 □□로서 대동아공영권의 중핵체가 되어야 할 운명공동체이고, 만주에서의 민족협화나 중국인의 동아협동체에 대한 태도와 자연히 다른 까닭이다.
고대에서는 부락의 통일을 통해 소국, 가령 가야도 신라도 백제도 각각 수십 부락의 통일로 만들어진 소국이 성립했고, 중세에는 소국이 통일되어 대국-가령 삼한의 통일에 의해 조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아가 근대적 통일-한국병합-을 통해 국민적 생활권이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이 되는 것은 도리어 역사적 필연이고, 만약 이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실소를 금치 못할 봉건적 분립주의자이다.
시험대 위에서는 시험이 끝난 내선일체야말로 흥아 건설의 첫걸음이고 우리는 먼저 이를 구현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병합의 조칙 속에 황송하게도 메이지천황은 “여기에 영구히 한국을 제국에 병합하기로 한다.
한국 황제폐하 및 그 황실 전원은 병합한 이후에도 상당한 우대를 받아야 하고, 민중은 직접 짐이 수무(綏撫) 아래에 서서 그 강복(康福)을 증진해야 할 것이고……동양의 평화는 이로써 더욱 그 기초를 공고하게 되리라는 점을 짐은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조칙에 의해 한국병합이 구현된 것이므로 신민인 자는 그 누구라도 내선일체에 대해 비판·반대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로지 반도황민의 순충 정신을 배양하고 황국신민으로서의 소질을 연성할 따름이다.
이 황국신민적 연성의 성공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따라서 동양평화의 기초를 공고히 하기 위한 한국병합의 성려 대로, 완전히 결실을 맺어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대동아전쟁에 반도의 청년 학도들은 천황의 방패로서 용맹하게 출진하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황민은 대동아공영권의 중핵체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팔굉일우의 건국이상의 구현에 기여·공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반도의 역사는 내선일체에 의해 혁명되었고, 그리고 신생된 것이다.
거기에 만들어진 쇳덩이 같은 기반 위에 일시동인이라는 황송한 성려를 봉체(奉體)하고 승리의 영광으로 찬란한 대동아 건설전·세계 신질서 건설전의 피안으로 반도의 청년 학도들은 용맹하게 총진격하고 있다.
일억일심동체가 되어 역사적 필연인 대동아공영권의 건설과 도의세계의 건설에서의 역사적인 지도적 국민으로서 우리는 지금 진군하고 있다.
3) 흥아 건설에서의 전진 병참기지로서의 반도
일본 내지와 조선 간에는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고 또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선반도와 일본열도는 단지 일본해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인접해 있고, 해·공·육의 교통기관이 발달한 현재에는 마의 일본해도 거친 현해탄도 순식간에 정복되고 도쿄와 신징·베이징 간조차 단 하루의 거리로 변했다.
이와 같이 근접한 반도는 동시에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대륙 루트에서의 전진 병참기지로서는 실로 천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현대전에서의 병기의 경이적 진보와 그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보건대, 아무리 내지·조선 간이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다 하더라도 아시아 대륙 부흥전의 진전에서 내지·대륙 간에 펼쳐져 있는 해상 교통 운수에 공중 및 해저에서의 방해와 위협을 전혀 예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대해서는 무적함대나 무적공군의 활약, 요새의 완벽이나 방어망의 완벽 등 수많은 대책도 있겠지만, 그러나 근대전에서의 대략의 군수·민수의 수송에 시간적·작전적 효과를 완전하게 확보하고, 또는 해상경계에 필요한 병력을 다른 방면에 유효하게 이동시키기 위해 병참기지를 대륙에 전진시켜 대륙에서의 대량적 군수·민수의 자급자족을 도모하는 것이 국방상 만전의 대책임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대동아에서는 해상수송로 확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진 병참기지를 대륙의 일각이자 북방의□□작전의 배후를 이루는 반도, 게다가 치안·인심·기술·노력 등에서 30년의 장점을 지닌 반도에 설치하는 것이 작전상 유리함은 많은 말이 필요 없는 바이다.
이번 대동아전쟁에서 우리 반도는 대 중국 작전군 등에 대해 군량·군수를 상당량 공급할 수 있게된 것은 다소의 공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이 정도로는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설령 흥아 작전군에 대한 내지로부터의 해상수송로가 차단되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도, 반도의 능력만으로 이를 보충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반도의 전체 산업분야를 다각적으로 진흥시키고, 특히 농공병진 정책의 적극적 진전에 의해 군수생산의 확충에 모든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전 경제체제하에서 반도로 하여금 식량증산에 의해 국민 식량의 자급자족 및 저장 등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게끔 노력하는 동시에, 면화·양모·목재·정어리유 등의 농목림업 및 수산업 등의 원시산업을 더욱 개발하고, 그리고 국내 산업기구의 지리적 분포 상태를 국방적 견지에서 대승적 국책의 선에 따르게 하며 풍부한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중공업·정밀기계공업·화학공업 등의 국방적 기초산업의 고도의 진흥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전면적 구체화에 황도국민경제의 건설을 통해 한편으로는 반도의 농어촌 및 도시에서의 2,400만 황민의 후생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대동아공영권 개발에 의한 전력증강을 도모해야 한다.
이와 같이 광의의 국방과 자원의 총동원적 개발에 의해 경우에 따라서는 제국 전반의 수요 충족에 부응하고, 때로는 대륙에서의 군수·민수를 반도가 독자적으로 떠맡는 데까지 도달한다면, 흥아 산업의 급속한 진전은 물론이고, 반도 2,400만 황민의 민력·민도의 고양도 도모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물적방면에서의 내선일체의 구현책이다.
이 국방산업 진흥을 위해서는 금융재정 방면의 원활을 꾀하고, 공업 예정지를 준비해서 지가의 폭등을 억제하고, 전력 등의 동력 및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나아가서는 철도·항만·항로·도로 등의 교통 운수기관을 정비해야 함은 수많은 인사들이 하나같이 주창하는 바이다.
반도의 병참기지적 역할을 원만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지방적 특수사정을 완전히 청산하고 내지·조선은 완전히 동일한 통제경제를 강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시의 고도 국방체제에 대응하는 일은 지난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시대의 여독이 산업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한다.
그리고 반도 2,400만 황민은 단지 반도의 병참기지적 경제 건설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내에서의 개발에 협력하고 또 지도할 때까지 산업전선의 총동원을 해야 한다.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아시아이지만, 그러나 그 주인공인 아시아 인종은 궁핍에 안주하면서 자원의 대부분을 백색인종의 배를 불리는 자원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모순이 아닌가.
십 수억의 아시아 인종을 경제적으로 해방시켜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기 위한 추진력으로서 반도의 산업전사는 단련을 강화하고 아시아의 자원개발에서 산업·금융 및 기술 등의 원조와 지도를 해야 한다.
이리하여 우리 흥아 건설에서의 전진 병참기지로서의 반도의 사명을 광의에 있어서도 협의에 있어서도 완수해야만 한다.
4) 흥아 건설에 있어서 전진 병참기지로서의 반도
반도는 흥아 건설에서의 전진 병참기지로서 황도문화의 발양을 중심으로 동양문화의 신체계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일체의 종교의 기원이 아시아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 정신문화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다.
인도에는 불교가 망했고, 중국은 공자·맹자·노자의 도를 버렸으며, 유태는 망해서 기독교는 구미인의 종교가 되었고, 마호메트교도 이젠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아시아 인종이 고대에서부터 노력해온 영적 생활의 건설은 서양의 물질문명에 의해 소멸했고, 이제 아시아는 광활한 사막과 더불어 정신계의 황량한 피폐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퇴영에도 불구하고 홀로 황국 일본만은 그 정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황도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반도는 고대에는 대륙의 정신문화를 일본열도에 전한 전진 문화기지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는 역으로 황도문화의 대륙으로의 전진 문화기지로서의 사명을 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
그러나 일본 내지·조선 간에는 같은 조상 아래 발전하는 관계상 신대(神代)문화는 완전히 동일했으며, 다소의 문화적 차이를 거쳐 현대에 다시 동일 문화를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도의 문화적 기지로서의 능력을 다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까닭이다.
내지와 조선은 먼저 언어에서 유사한 조어법과 조합으로 되어 있고 현대에서조차 완전히 공통된 단어를 갖고 있다.
'고사기'나 '만엽집(萬葉集)' 등을 통해 고대 내지와 조선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 흔적을 다분히 엿볼 수 있음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최근 국어의 사용과 보급 상태는 너무나 더디다.
문화적 생활에서 절대적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어의 공통이다. 고대에서의 내지·조선 간에 언어가 동일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면서 반도의 모든 기관 각종 단체를 총동원해서 국어강습회를 열어 국어사용을 신속하게 구체화라는 일은 내선일체의 촉진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반도 2,400만 황민이 황도문화를 그대로 반도에 옮겨, 나아가서는 이를 대륙에 추진 발양하는 기본조건이 된다.
고대의 내지·조선의 문화교류의 역사적 사실로서는 가야국 김수로왕과 신라의 석탈해왕과 그의 신하 표공의 도래, 신라의 제1대 박혁거세왕의 왕장 천일창의 일본 이주, 임나에서의 일본부의 설치, 백제왕장 및 왕인박사의 귀화와 논어·천자문의 헌상, 간무천황의 모친이 조선의 왕족이었다는 점, 일본·백제의 동맹으로 당·신라 연합군과의 대치, 천일창의 원손이신 진구황후의 신라정벌, 백제·고구려의 멸망 후 왕·호족 및 집단적 귀화인 이주, 나아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전쟁 등의 ‘역사적 계기’를 중심으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부여·경주·김해 등에서의 사적(史的) 관계나 무사시노의 개척,교토·나라 등의 사원·고적에 나타는 내지·조선의 문화교류 자취, 고마신사, 센소지의 유래 등에 의해 오늘날에도 우리는 내지·조선 간의 밀접한 문화적 관련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반도는 인도나 중국에서 일어난 정신문화, 가령 불교나 유교를 내지에 전하고 또미술 공예의 정수를 전수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정신이라는 소화제로 완전히 일본적으로 소화해서 그 정수만을 혈액으로 섭취·보유한 것이다. 따라서 대륙의 정신문화의 포용은 충분히 이루어졌고, 이후에도 대륙문화의 장점을 포함·섭취해야 함은 일본정신의 특질에서 보건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서양의 물질문명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의 근세적 개화에 일단 기여했는데, 이 경우에도 물질문명은 일본이라는 위장 속에서 유감없이 소화되어 그 정수를 골격으로 채택하고 그 찌꺼기는 깨끗하게 배출했다. 따라서 일본열도에서 교차하는 동양의 도의적 정신문명과 서양의 과학적 물질문명의 정수는 때로는 혈액이 되어 물심양면의 일신 문화체계 곧 황도문화의 완정(完整)이 되어 발전해서 역으로 반도를 대륙으로의 전진 문화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과거의 정신문화에서의 봉건성과 물질문명에서의 파괴성을 초극·숙청한,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황도문화는 현재 세계
의 파행적 문화의 시정을 하고 있다. 따라서 황도문화를 중심으로 한 세계문화 건설은 반드시 대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정 이래 30여 년간 황도정신을 기조로 한 일본문화를 호흡한 반도황민은 황도문화연구소의 설립,연극·영화·라디오·신문·잡지 등을 통한 황도문화의 발양, 황도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전사의 연성 등을 하면서 비(非) 아시아적 문화세력을 내몰아 일소하고 아시아 대륙에서의 황도문화권 건설의 추진력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흥아 건설에서의 전진 문화기지로서의 반도의 사명이다.
5) 아시아 해방에서의 반도의 전위적 사명
백색인종의 지배와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정치적으로 해방·방위하기 위해서는 반도는 황국 일본의 일부로서 그 전위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제정러시아는 황기 2240년(1580년)부터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의 땅을 개척하기 시작해서 황기 2520년(1860년-역자)까지 흑룡강 이북과 우수리 강 동쪽의 시베리아 전역의 침략을 완성했다. 동양의 보고이자 신앙의 나라였던 인도는 황기 2518년(1858년-역자)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어서 아프가니스탄도 버마도 해협식민지도 홍콩도 영국령이 되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황기 2525년(1865년-역자)에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이를 전후로 해서 말레이군도는 네덜란드의 영유가 되었으며, 필리핀은 스페인을 거쳐 19세기 말에 미국에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는 10억의 아시아 인종에 의해 경영되고 개발되고 방위되어야 하는 낙토이다.
아시아는 반드시 부흥되어 대아시아공영권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
대동아공영권 건설은 흥아 건설의 제1단계에서의 성업이다.
우리는 결코 백색인종을 인종적으로 배격하려는 봉건적·보수적 관념에서 아시아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수세기 동안 백색인종의 말발굽에서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으로 해방해서 독자적인 발전과 인종적 평등을 쟁취하는 것을 아시아 부흥의 근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위업은 아시아 민족들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황국 일본을 10억의 아시아 민족의 맹주로서 추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따라서 반도황민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아시아 해방에서의 지도자인 영예를 갖게 되는 셈이다.
우리 일본은 1894년의 전쟁을 통해 백인의 침략에 각성하지 못한 청국 봉건세력에 일격을 가하고,동시에 반도도 청국의 지배하에서 이탈했다. 1904~1905년 전쟁을 통해 백색인종의 동양침략에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아시아 민족들에게 반백인적 궐기의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반도도 일한 공수동맹의 체결도 당시 거문도·용암포·마산 등의 점거와 반도 분할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의 흥아 대전에 다소나마 기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동양의 영원한 평화 확립의 기초 공작으로서 일·한은 역사적 합병을 하고 내지·조선 두 민족은 고도의 일본민족으로서 포합하였다.
그 이후 1억의 내지·조선 두 민족은 동심일체가 되어 모든 흥아적 성업에 함께 임하게 되었다.
만주사변을 통해서는 동양의 문제는 동양인 자신이 처리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천명하면서 만주국을 창조한 것이고, 이번 지나사변 및 대동아전쟁을 통해서는 구미 의존주의의 비아시아적 장제스 정권 및 이를 조종하고 중국의 분할을 꾀하려는 미·영 등의 음모를 분쇄·일소하면서 대동아인의 대동아공영권을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대부분은 여전히 백색인종의 지배하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따라서 앞으로 황국 일본의 정치적 원조 공작에 의존하야 할 민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된 것으로는 3억의 민중이 신음하고 있는 인도나 우인(愚人)의 낙원 오스트레일리아, 신장(新疆) 외몽고와 더불어 대동아에서의 적극적 방공공작 및 중서(中西) 아시아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아시아인은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지도적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정치적 원조공작 및 지도를 백인 침략국가에서 찾지 말고 오로지 황도 일본을 맹주로 삼아 그 지도를 구해야 한다.
미래에 대아시아공영권이 완성되는 날에도 내지·조선의 두 민족은 동일한 의무와 책임 아래 동일단위로서 조직되어야 함은 종종 논한 바이다. 이리하여 1억 국민의 동심일체가 될 수 있는 황국 일본은 몽고나 터키 등의 세계정복에 이어 세 번째 세계제패, 아니 황도의 광피(光被)를 통해 팔굉일우의 건국이상의 구현에 매진하고, 한편으로는 투란인종의 면목을 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위적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6) 일본정신 발양에서의 반도의 전위적 사명
이 흥아 건설에 세계 신질서체제 수립에서의 원동력이자 추진력이 되는 일본정신은 어떤 특질을 갖고 있고, 창조적 일본의 성격은 무엇인가? 나는 다행히 이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니주바시(二重橋) 앞에 엎드려 건국 발상의 성지를 비롯해 전국의 주요 신궁·신사를 순례하고 곳곳의 저명한 사원수양단에서 실천적 수양을 하고, 약진 일본의 대표적인 각 도시의 문물 일체를 시찰했다.
그래서 내선일체는 참궁 수행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과 창조적 일본의 근원은 황실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간나가라(惟神)의 대도와 황도와 일본정신은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국민은 신을 숭배하는 동시에 황실을 신앙적으로 존숭한다.
다음으로 내 머리에 떠오르는 일본정신의 특질을 요약하자.
첫째로, 일본정신은 우주 생성·발전의 대원리이다. 일본신화, 신칙 및 3000년간의 황도의 선양 등에서 우리는 공간적으로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시간적으로는 ‘천양무궁(天壤無窮)’, 창조적으로는 ‘수리고성(修理固城)’, 도의적으로는 ‘의정대화(義正大和)’, ‘충효일본(忠孝一本)’ 등의 건국정신을 볼 수 있다.
태양이 만물의 근원을 이루고 우주는 비추는 것과 같이 현인신(現人神)이신 천황이 우주 생성·발전의 종본가(宗本家)의 가장으로서 우주의 창생을 적자로서 애무하신다.
우주 생성·발전은 우주창조를 의미하고 이 우주 끝까지 방사하는 일본정신은 항상 일체관념이다.
신인일체·군신일체·문무일체·내선일체·노사일체·자타일체 등이다. 이는 서양의 분석학적 태도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흥아 건설도 팔굉일우도 그 어떠한 역사적 창조도 우주로의 원심적 작용과 황실로의 구심적 일체에 의해 완성된다.
둘째로, 일본정신은 오래되었고 새롭다. 일본정신의 심원은 멀리 다카아마하라(高天原) 정신·가시하라(橿原) 정신에서 나왔고, 이 속에서 자란 예술문화는 사원·불각·명성·고적 등에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옛날 그대로 고정화된 것이 아니고, 일본의 풍부한 역사적 내용은 일본적 형태(전통)로서의 발전적 특성을 잃지 않았다. 그 어떠한 외래문화라 하더라도 이를 일본정신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킨다.
셋째로, 일본정신은 웅대하고 치밀하다. 고성·불각 및 근대적 건설의 규모의 웅대함, 팔굉일우, 천양무궁의 건국이상의 무한성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황도의 세계적 광피(光被)와 도의세계의 건설로까지 추진시키고 있다. 동시에 일본 예술의 치밀성은 그 우주 크기의 건설로 하여금 만대에 흔들림 없는 반석 위에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창조에서의 견실성을 말하기에 충분하다.
넷째로, 일본정신은 유연하면서 가장 견고하다. 경신숭조의 관념에 살고 우미한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일본인은 신불(神佛)과 더불어 이러한 자연미를 그대로 가정·정원·생활 속으로 옮겨 놓는다.
따라서 인간성과 우미성이 풍부하다. 곳곳에 꽃이 있어서 꽃과 더불어 웃는다. 곳곳에 신사가 있어서 신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리고 부드러움은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 노도와 같이 물결치는 일본이다. 일단 위급한 경우에는 노도와 같이 국난을 씻어내지만, 이 경우의 일본 국민의 애국심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분쇄할 수 없다. 한 번 웃으면 어린아이가 따르고, 한 번 화내면 천지가 요동치는 성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 일본적 특성이 있다.
이처럼 원심적이자 구심적이고, 대이면서 소이고, 오래되었으면서 새롭고,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바의 모순된 극단이 동시에 성립하고, 이원적 작용이 동시에 작용하는 바에 일본정신의 세계성과 포용성이 있으며, 대립하는 양 극단을 더욱 높은 곳에서 통합·조화하는 바에 일본정신의 특질이 있다.
국가적 대혁신은 항상 황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다이카개신(大化改新)·겐무중흥(建武中興)·메이지유신·흥아유신 등에서 역력하게 드러나는 바이다. 황실의 성덕을 받드는 만민들 사이의 대립은 황도 아래 해소된다.
창조적 일본의 근원은 국체 본의의 투철을 통해 규명하고 일본적 창조의 추진력인 일본적 성격은 일본적 생활을 통한 일본정신의 체현에 의해서 구하고, 일본적 재출발은 황도 일본의 건국정신의 재확인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동시에 팔굉일우의 건국정신 구현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적 대창조를 향한 진군이다.
여기에 반도 2,400만 황민이 황도정신 발양에서의 전위적 사명을 다함으로써 아시아 황도권을 완성하고자 한다면 일본정신연구 기관의 설치, 국민적 참궁(參宮) 수행, 황민도장의 증설, 일본적 생활의 확립, 사범교육의 철저, 중견 지도층의 황민적 연성 강화 등으로 일본정신의 체득에 노력하고, 이로써 황송하게도 천황폐하에 대해 받드는 적성으로 충의를 다하는 데까지 도달한다면, 당면한 황민적 수련기의 임무는 끝난다.
따라서 반도의 일본정신 발양의 전위적 역할을 완료할 수 있다.
이리하여 신흥아체제하에서의 조선의 사명은 국내적으로는 내선일체의 결실을 거두어 거국적 결전체제를 완성하고 흥아 건설에서는 전진 병참기지적 사명을 통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아시아 민족들의 하나로 뭉치는 신체제를 확립하고, 이로써 아시아 낙원 건설을 통한 팔굉일우의 구현에 매진함으로써 고차원적 다카아마하라(高天原)의 건설에 임하는 것이다.
반도 2,400만 황민들이여! 보무당당히 영예로운 고차원적 다카아마하라 건설에 진군을 계속하라.
34. 반도황민의 정신적 수련의 완성
결전하의 증산·저축·결전 생활·배급 등 너무 다망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우리는 바쁘면 바쁠수록 이와 병행해서 정신적 수양 연성에 더욱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실질적인 전력증강은 안 된다.
적 미·영도 나날이 태세를 다시 정비해 칼날을 세워 저항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영혼의 수련에서 결코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나날이 정신을 새로이 하고, 또 정신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기차·기선·자동차 등이 달리는 것은 원동력인 연료가 불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콘크리트를 다지는 것은 단순히 모래나 자갈이 아니라 시멘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신력은 이 원동력인 원료이자 시멘트이다.
전력증강을 도모하고 또 이를 다지는 것은 정신력 이외에는 없다.
황국 일본이 단연코 세계 각국의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 정신력이고, 이것이 있기에 백전백승, 적을 항상 굴복시키는 것이다.
또 황국신민인 이상 물질 편중의 구미와 달리 이 정신력의 개척은 무한할 터이다.
그렇다면 이 정신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야마토 다마시(大和魂)이자 일본정신이다.
순충정신이며 황국애이다.
반도 2,400만 황민에게 이 순충정신과 황국애를 투철하게 갖도록 하는 것이 반도 2,400만의 황민적 자질의 배양·연성이고 결전하의 전력증강의 근원이며, 고이소 총독이 제창하는 도의조선 건설의 길이다.
이 순충정신을 함양하는 방법도 다양하겠지만 지도층은 미소기 연성을 통해 몸소 이를 체득하는 것이고, 일반 국민은 특히 궁성 요배·신단 배례·정오의 묵념·황국신민의 서사 제창·국가 봉창·국기취급·국어 상용 등 몇 년 전부터 장려하고 있는 것을 매일 생활에서 진심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첫째로, 미소기 연성은 지금은 조선 어디를 가더라도 각 군과 면 직원들까지 수차례 하고 있고, 부락연맹 이사장·애국반장까지 미소기를 하고 있는 곳도 있다. 나도 부족하나마 금강산 도장에서의 각 문화단체 대표자 미소기 연성회를 비롯해 지방에서의 군청·경찰서·면 직원·교원·구장 등의 미소기연성을 도왔다.
여기서 매우 감격한 것은 군수·서장·면장들의 열성적인 모습이었고, 노인층의 신에게 다가가려는 진지한 태도였다.
하루에 8홉의 죽, 매일 연속되는 정좌, 강렬한 신업(神業), 행군 및 근로봉사 등에 인간의 정신력·체력이 그렇게까지 위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모두 태연히 고행을 계속하는 점에 황국 일본의 강인한 저력이 배양되고 간나가라(惟神)의 대도에 서서 용감히 매진할수 있는 것이다.
즉 일본적 지도자로서의 완성 방법은 미소기 수행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고이소 총독각하를 비롯해 각 도지사·장관도 모두 솔선해서 미소기를 하고 있으며, 적어도 지도자를 자임하는 사람은 미소기 체험을 할 필요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으로 아침의 궁성 요배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근래 아침 사이렌이 울려도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가는 자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불과 30초라는 시간만이라도 충성심으로 궁성을 요배하지 않는 자가 바쁘다며 소란을 떤다.
이런 자에게 전력증강이라든가 증산은 바랄 수 없다.
아침에 기상하면 얼굴을 씻고 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뒤 개별적이든 애국반 단위나 부락 단위든 간에 본심에서 궁성을 요배해야 한다.
이것이 신민으로서의 당연한 도리이며 국체 본의의 투철도 결국 여기에 귀착한다.
지방에는4년 전부터 궁성 요배를 하고 있는 애국반도 있고 집집마다 궁성 요배 제단을 만든 곳도 있었다.
셋째로는 신사(神社)·신사(神祀) 참배이다. 신사·신사 앞을 통과할 때는 반드시 예배를 하고 통과해야 한다.
이는 경성에서도 최근 제법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데, 농촌에서도 비교적 철저하다.
용인군에 갔을 때의 일화인데, 어둑어둑하게 해가 질 무렵에 내가 신사 앞을 지나가려고 할 때 국민학교5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어둠 속에서 똑바로 서서 신사에 예배하고 통과하는 것을 보고 나도 여기에 신사가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는 예배하고 통과한 적이 있다.
이 소년 못지않게 우리도 신에 대한신앙심을 더욱 배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인신이신 천황폐하에 대한 신앙적 충심도 여기서 솟아나온다.
넷째는 다이마(大麻) 봉재(奉齋)와 신단 예배이다. 여전히 다이마를 봉재하지 않는 가정이 있고 봉재하고 있어도 기울어져 있거나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어도 방치해두는 가정도 호별 지도를 할 때 확인할 수 있었다.
참으로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는 신단 청소를 하고 한 잔의 물이라도 진심으로 매일 아침 올려야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가족 전원 “오늘도 무사히 봉공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신단에 예배해야 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신곡(新穀)은 물론이고 월급 생활자라면 21일이 되면 월급봉투를 먼저 신단에 바치고 “감사하게 받겠습니다”라고 하는 감사의 예배를 올리고 나서 받아야 한다.
만물은 전부 신의 은혜 덕분에 우리가 받고있는 것이다.
한 끼의 밥도 신께서 주신 것이다.
신은 우리를 천황의 방패로 삼으시기 위해 신의 분령(分靈)인 밥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감사 없이는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은혜를 현인신이신 천황폐하를 받들어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
이런 정신에는 암거래도 없고 매점도 없다. 부정도 없고 불평불만도 없을 것이다.
다섯째는 정오의 묵념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 안심하고 잠잘 수 있는 까닭은 대어능위 아래 수많은 황군장병들이 태평양을 피로 물들이고 앗쓰의 차가운 섬에 옥쇄(玉碎)하고 열대의 정글에 뼈를 묻으면서 적을 격쇄하고 황토(皇土)를 방위하고 있는 덕분이다. 영령에 감사하고 황군장병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고 총후의 봉공을 다짐하며 묵념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오 사이렌이 울려도 모른척하고 있는 자는 없을까.
여섯째는 황국 일본을 표현하는, 우리 일억의 혼의 상징인 ‘일장기’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다.
적어도 축제일·대조봉대일 등 국기를 게양할 때는 각 가정에서 호주는 가족 전원의 경례 아래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
그저 형식적으로 문 앞에 내걸지 말고 경건한 태도로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국기에 대해 경례하면서 게양해야 한다.
일곱째는 ‘기미가요(君が代)’47) 및 ‘황국신민의 서사’를 국어 보급과 더불어 국민 전체에 암기시키고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시켜 진심으로 봉창하도록 해야 한다.
여덟째는 국어의 상용이다. 먼저 국어를 이해하는 자들끼리는 반드시 국어를 사용하고 일반 국민의 국어 강습을 촉진하는 동시에 국어를 모르는 자라 할지라도 “오하요우 고자이마스”, “곤니치와”, “곤방와”, “아랏샤이마세”, “사요나라”라는 다섯 가지 인사말은 국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선일체의 완성,징병제 실시에 있어서 이 국어 상용 문제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철저히 하기 위해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상의 일을 매일 생활에서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황도사상·황민생활의 건설이라 할 수 없다. 바빠서 못할 일은 없다. 궁성 요배·묵념·신단 예배 등의 시간을 합산해도 5분 이내이다. 정성이 있다면 할 수 있다.
이 짧은 시간의 실천을 매일 진심으로 반복할 때 우리 황민적 자각은 더욱 깊어지고, 이 자각은 더 나아가 호미나 낫이나 곡괭이나 망치를 휘두르며 일을 할 때에도 나타나 전력이 증강되는것이며, 우리 자식들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훌륭하고 강한 황민으로서 성장 봉공하게 된다.
이것은 또한 도시에서는 황국 상인도(商人道)가 되고 농촌에서는 황국 농민도(農民道)가 되며, 결국 도의조선이 건설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성’과 ‘진심’으로 친절하고 겸허한 태도로 솔선수범함으로써 반도의 2,400만을 모두 대동아의 지도적 국민으로서, 또 세계 역사 창조의 역사적 국민으로서의 자질 연성에 부족한 점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대동아공영권의 중핵체인 황국 일본의 거대한 일부를 이루는 반도황민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리하여 반도황민은 천황에 귀일하고 순충보국의 정신으로 천양무궁한 황운을 부익해야한다.
후기
이 책은 최근 수년간 각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졸고를 주로 수록한 것이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도있고 전후의 맥락이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모두 황민 생활의 실천을 기초로 하고 또 조선 전체의 실천적 사례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인데 다소나마 황민 생활 건설의 보탬이 되면 다행이겠다.
<출전 : 金子斗禎, '半島皇民生活物語', 朝鮮思想國防協會, 1943년>
47) 일본 국가.
4. 김병태(金秉泰)
1) 전시체제에 순응할 마음의 무장 필요, 촌각도 이완은 절대 불허한다
평남 참여관(參與官) 김병태
건곤일척(乾坤一拓)하여 이에 만중(萬衆)이 새롭고 서기(瑞氣) 충만한 1938년 신춘을 맞이함에 당(當)하여 성려무변(聖廬無邊)하옵시기를 봉사(奉祀)하는 동시에 성전에서 분투하는 황군장병의 무운장구를 축복해 마지않는 바이다.
지난 해 7월 노구교 부근의 총성 일발로써 정의의 거화(炬火)를 든 것은 동양의 평화를 초래하고자 하는 우리 제국의 불변국책의 제1보인 것은 일반이 공지하는 바이다.
성전을 개시 이래 오토□망(烏兎□忙)에 반려누상에 달하도록 저 가렴주구를 시사(是事)하는 악덕위정자와 폭려군벌의 무반성으로 전국이 확대될 뿐이었으나 충용무비(忠勇無比) 우리 황군의 신속 또 과감한 □□고□(□□苦□)에 의하여
북으로 화북일대를 □□□달함에 따라 공산 마수에 □□하였던 북지는 미몽을 자각하고 방공친일과 □민입국을 일□로 하는 도의국가를 창건하고자 하는 임시정부의 출현을 보았으며, 남으로는 세계시장이 된 상해를 장중에 수습하고 나서 □□불발을 자랑하던 수도 남경을 함락한 것은 유사이래 일대 쾌거라.
황송하오나 성상폐하의 어능위와 황군의 세계무비한 용맹의 소□로서 다만 감격감사에 망지소조(罔知所措)일 뿐이다. 정부에서 성명함과 같이 전국의 일단락은 서기종식을 고하였으나 저 완명 폭려한 장개석의 응징을 생각하건대, 근본적 □□을 위하여 장기항전을 불사함으로써 저 4억만 민중의 적인 장정권을 완전히 궤멸케 하고 일만중 친선으로 진정한 동양화평에 공헌코자 하는 북□□정권을 응원하여 동아안정세력을 강화하여 평화천지를 빛나는 달과 같이 명랑화하게 하여 도탄신고(塗炭辛苦)하는 중국민중을 구원하여 도의국가의 혜택을 입게 하기까지는 지금부터 또 수일을 요(要)할 것이니 우리국민은 일층 긴장하여 총친화□세력으로 용왕매진할 시기에 도달한 것을 재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평남(平南)은 사변이래 통과 군대환송 징군가족원호, 국방기재 및 기금헌납운동 등 다종의 □□□□□ 가진 총후수호의 의무를 실행함은 경하해 마지 않는 바이거니와, 서술한 바와 같이 시국의 중대성이 점차 가중하여가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으로서의 무장과 긴장의 기분을 촌각이라도 이완치 말고 지성으로 제1선에 분투하는 황군의 무용□□을 기원하며 제2선으로 침투하고자하 는 적화사상은(3줄 판독불가) 증진에 노력하여 전시체제에 순응하도록 생업보국의 □을 □하는 것이 나의 책무로 생각하는 바이다.
이에 홀로 소신 일단을 피력하여 도내 대방제가의 신춘행복을 축복하며 연하여 신궐기를 요망하여 마지 않노라.
<출전 : 金秉泰, 「戰時體制에 順應할 마음의 武裝必要, 寸刻도 弛緩은 絶對不許한다」,'매일신보', 1938년 1월 3일>
5. 김사연(金思演)
1) 지나사변과 나의 각오
현재 ‘지나사변(支那事變)’48)은 성전(聖戰)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만 4년 신동아건설과 건국의 정신에 입각해 충용무비(忠勇無比)한 우리 황군(皇軍)은 신명을 바쳐 분투하고 있음을 우리는 감사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동시에, 총후(銃後) 국민으로서의 우리 사명 또한 중대하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갖게 됩니다.
지금 유럽 정세를 보면 전 유럽이 전쟁터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 아메리카가 루스벨트 대통령이주장하는 참전론(參戰論)을 실행한다면 전 세계는 전란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 유사 이래의 비상시국에 있어서 동양의 맹주인 우리 제국 국민의 책임과 각오는 중대합니다.
우리 총후 국민은 각자 자신의 직무를 이행하고 총후를 견고히 해서 이 난국을 타파하고 더욱 성전의 목적인 대동아 건설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도록 노력해서 장기전에 따른 물자 결핍과 일상생활품의 부족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일억일심(一億一心)으로 근검역행(勤儉力行)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생산보국(生産報國)의 정신으로 많은 생산품을 보내 각자 경제전선의 전사가 되어 도리어 앞으로의 정기전을 대비하는 각오를 하고자 합니다.
<출전 : 金思演, 「支那事變と私の覺悟」, '新時代' 1941년 7월, 127쪽>
2) 입영 학병에 부탁 -실력을 발휘하라
우리의 빛이요, 반도의 희망의 별인 학병(學兵)이여.
모든 곤란과 시련을 거친 다음 오늘날 경하(慶賀)로운 입영의 준비를 만단(萬端) 갖추고 드디어 영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학병자신은 물론 전반도가 가진 정성과 적심(赤心)을 바쳐 기원하던 염원이 이루어져 오늘날 이만한 성과를 얻게 된 만큼 우리의 기쁨은 다시 형언할 바 없다.
학병의 노도같은 그 힘찬 보조가 끊임없이 저 영예의 군문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머리 속에 그려보며 그 힘찬 하나하나의 얼굴이 바로 나의 눈앞에 부조(浮彫)가 되어 떠오르는 듯하다.
저 아름다운 대집단을 형성한 한사람 한사람의 흉중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결의와 각오에 도달하기까지 무수한 단계를 거치며 알수 없는 어둠의 환영(幻影)을 물리치고 이처럼 일순(一瞬)의 장엄한 정신의 집단이 되기까지의 준열한 자기연성(自己鍊成)이 지금도 역력할 것이다.
학병은 금일의 경지에까지 각자가 자신의 인격을 짧은 시일 동안에 연마하였다. 이와 같이 고뇌를 뚫고 자신의 살과 뼈를 깍는 듯한 내적 수련을 쌓은 학병의 심경을 사회나 선배인들 직접 학병의 부형인들 어찌 추측할 수 있을까.
다만 나는 오늘 학병의 광영과 광휘가 학생 각자의 말할 수 없는 자기연성의 내적 완성임을 확신하고 의심치 않는다.
이 위대한 성과는 오직 한줄기 붉은 충혼에 불타지 않고는 결코 이룰
48) 중일전쟁.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형식적 과정만을 밟은 데 불과한 것이 되면 그들이 늠름한 면모와 힘찬 보조의 목소리가 어찌 저렇게 반도산하를 진감(震憾)시킬 수 있을 것인가.
객년(客年)말 경기도청에서 열린 지원학병의 간담회 석상에서 나는 반도학병의 적성(赤誠)이 조금도 일본학도의 그것에 비하여 손색이 없음을 지적하였다. 반도의 과거와 환경을 남김없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문자 그대로 ‘지원’한 학병이 9할을 돌파할 줄은 의외였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제국신민의 1분자로 미증유의 역사적 대전환을 획(劃)하고 있거니와 아직 오랜 관습이 사회와 가정 구석구석에 뿌리깊이 잔존하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 앞에 학병이 똑바로 나아갈 목표를 잃고 잠시 순준(巡俊)하였다고 그것이 학병 자신의 죄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장벽을 뛰어넘지 않았는가.
일본은 본래 상무정신에 배양되어 온데다가 명치유신 이래 80여년 견고한 징병제로 국민의 상무(尙武)정신은 더욱 더 광채를 가(可)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일본학도에 비하면 우리 학병은 어떠한가.
이조 중엽 이후 반도사회는 상무정신을 잊었던 것을 솔직히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총독정치가 실시된 이후 30여 년간에도 우리는 한 번도 손에 무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환경과 역사 가운데 자라난 우리의 학병은 우리의 오랜 인습을 일거에 타파하고 오늘날 광영의 군문(軍門)직전까지 당도하지 않았는가. 일부에서는 학병이 궐기하기까지 잠시동안 내적 수련과 자기 연성에 고민하는 자태를 가리켜 그들의 무능력이라든가, 우유부단이라고 꾸짖기까지 한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의 내적 갈등을 묵묵히 극복하는 자태에 오히려 숭고한 인간적 자기연성의 자태를 보았다.
그들의 선배로서 나는 차라리 내 스스로가 이러한 역사적 창조의 시련을 경험치 못하고 그들에게 이 중대한 과제를 남긴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동시에 그들의 꾸준한 자기수련의 자태를 질타하기 전에 그 앞에 머리를 수그렸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학병이 남다른 험로와 난관을 돌파하는 도중에 간혹 젊은 혈조(血潮)의 탓으로 혼선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를 정도로 유도할 만한 아량과 관인(寬仁)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러한 당면의 나의 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니 미래 영구히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학병이 당당히 군문으로 나아가게 된 이 사실은 나의 확신이 정당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학병에게 보내는 나의 신뢰는 무한하다. 그들은 이만한 신뢰에 대하여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였으며 장래에도 충분 발휘할 것이다.
오는 20일로 학병제군은 빛나는 영문(營門)으로 들어가 제군과 우리는 거소(居所)를 달리하면서 이 가열한 결전전국(戰局)에 돌입하게 된다. 서로 서로 몸은 전선과 총후에 떨어져 있으나 제군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과 용약 환성 속에 떠나는 제군의 마음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끊어짐이 없이 굳게 굳게 맺혀 있을 것을 잊지 말라.
더구나 현하 국가 대 국가의 총력전이 지구의 전면을 뒤덮고 전진(戰塵)을 휘날리는 이때 제군들만이 제일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제군들에 지지 않을 만큼 제군들이 남기고 간 총후를 사수하고 피를 흘릴 각오이다.
학병제군아! 군등(君等)은 우리 군등의 선배가 체험치못한 내면적 정신의 연성을 거쳐 진실로 심혼(心魂)의 혼연(渾然)한 완성에 도달한 우리들의 결정체이다.
씩씩하고 웅장하게 영문을 거쳐 제군의 진가를 발휘할 결전장으로 나아가라.
<출전 : 金思演, 「入營學兵에 付託-實力을 發揮하라」, '매일신보', 1944년 1월 20일>
6. 김성수(金性洙)
1) 문약(文弱)의 고병(痼病)을 버리고 상무기풍 조장하라
보성전문학교장(普成專門學校長) 김성수
자(玆)에 조선 징병령실시 감사주간을 맞이하여 소감의 일단을 들어 삼가 ‘반도청년’49) 제군의 일고(一考)를 촉구하고자 한다. 작년 5월 8일 돌연히 발포된 조선에 징병령 실시의 쾌보는 실로 반도 2천5백만 동포의 일대 감격이며 일대 광영이라. 당시 전역(全域)을 통하여 선풍같이 일어나는 환희야말로 무엇에 비유할 바가 없었으며 우리들 반도청년을 상대로 교육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특히 일단의 감회가 심절(深切)하였던 바이다.
이제 나의 30여 년간 교육자 생활의 경험으로 보건대 우리 반도청년의 소질로는 지력(智力)으로나 체력으로나 모든 것이 그다지 타인에게 낙후될 것이 없으며 때로는 기다(幾多)의 장점도 불무하나 오직 보편적으로 강의과감(强毅果敢)한 정신과 인고단련의 기백이 부족한 감이 불무한 것은 우리의 항상 통석(痛惜)하게 여기던 바이다.
그러나 그 병원(病源)을 탐구해 볼 것 같으면 결코 현대청년의 천질(天質)이 그러한 것도 아니라 4천 5백년 이래 숭문천무(崇文賤武)하던 전통하에 생육된 결과로 이문목도(耳問目睹)가 대개 문약(文弱)은 유풍(遺風)에 젖은지라 따라서 문약은 나약(懦弱)으로 되고 나약은 마침내 진기(振起)의 기상(氣象)을 소각(消却)케 하여 범백사위(凡百事爲)에 확고불발(確固不拔) 용왕매진(勇往邁進)의 의지가 적고 오직 인순고식(因循姑息)50) 구전투안(苟全偸安)51)의 풍습이 제2의 습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선(善)을 선(善)으로 알기는 하면서도 감연(敢然)히52) 추종한 기력이 적은 동시에 자신의 악(惡)을 악으로 알면서도 단연(斷然)히53) 회개할 용맹도 부족하게 된 것이다.
세간에 흔이 반도청년의 결점을 말하는 자왈, 극기심이 부족하다, 인내력이 부족하다, 지속력이 부족하다, 반성심이 부족하다 운운하는 것이 전적으로 시인할 것도 아니나 또한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우리가 남모르는 심통(心痛)이었으며 이 병근(病根)을 제거 완치하는 것이 우리들 교육자의 최대 관심처이며 최대 노력점이었으나 연구월심(年久月深)한 기풍을 일시에 탕척(蕩滌)54)하기도 주위환경으로 보아 또한 지난사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징병제 실시로 인하여 우리가 이제야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의 자격을 얻게 된 것은 일방으로 전 반도청년의 영예인 동시에 반천년 문약의 분위기 중에서 신음하던 상술한 바 모든 병근(病根)을 일거에 쾌치(快治)하고 거구생신(去舊生新)55)할 제2의 양약(養
49) ‘반도청년’은 ‘조선청년’을 말함.
50)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취함.
51) 다만 오로지 할일을 미루어 두고 눈앞의 안일을 탐함.
52) 과감하고 용감하게
53) 결연한 태도로
54) 죄명을 씻어 줌. 더러운 것을 없애고 깨끗하게 함.
55)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함.
藥)을 내든 것이다. 어찌 반갑지 아니하며 어찌 감격치 아니 하리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상술한 문약의 고질을 치료함에는 오직 상무(尙武)의 기풍을 조장함이 유일무이의 양약인 까닭이다.
그러나 어떠한 능라(綾羅)주단(綢緞)이라도 이를 재지봉지(裁之縫之)하여 의상을 만들어 착용치 아니하면 금수(錦繡)56)의 가치가 없을 것이요, 아무리 기효(奇效)57)를 주(奏)할 양약이라도 이를 전지환지(煎之丸之) 하여 복용치 아니하고는 필경 그 실효를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 징병제 실시의 이 영예를 청년제군은 어떻게 착용하며 이 양약을 어떻게 복용하여 외관으로나 내용으로나 그 실교실예(實效實譽)를 완전히 현양(顯揚)하려는가.
무릇 의외(意外)의 영예가 돌아올 때에는 그 영예의 소종래(所從來)를 잘 생각하여 그것을 완전 향수(享受)할 준비가 없지 못할 것이며 양약이 입수(入手)되었을 때에는 먼저 잘 조리 복용하여 완전히 효능을 발휘케 할 연찬(硏讚)이 없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금후 제군에게 일단의 인고(忍苦)와 일층의 단련(鍛鍊)을 요망하는 바이다.
그러면 이것을 실천할 첩경은 어디있으며 비방은 무엇인가. 나는 이제 새삼스럽게 제군에게 지교(指敎)할 것도 없이 4~5년 이래로 우리 아침저녁으로 제송(제(齊誦)하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辭)를 한 번 다시 되풀이하고자 한다.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君國)에 보답하자.
이 조(條)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생존목표를 정하는 대관절(大關節)이다.
특히 조선청년은 누구보다도 먼저 이 목표를 확정함으로써 제일 주안(主眼)을 삼는 것이다.
이 목표가 확립됨으로부터 만상(萬象)이 정시(正視)되고 군의(群疑)58)가 해소되는 것이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자.
이 일절이야말로 종래 우리 조선인의 정문(頂門)의 일침이다. 우리 종래의 모든 결점이 오로지 상호신애협력을 못 하는 것과 그 결과로 10인(人) 10색(色), 100인(八) 100태(態)로 단결이 되지 못하는 바있던 것이다.
폐일언하고 인간은 일종의 집단동물이다. 집단의 위력을 발휘치 못한다면 그 실력이 봉의(峰蟻)에게도 멀리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집단이 즉 단결이요, 단결이 되려면 그 분자 분자가 상호 신애협력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신애협력을 지분절해(肢分節解)하여 설명하려면 수천권 수신서(修身書)로써도 부족할지 모르나 간명적절(簡明適切)히 말하라면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 일상경송(敬誦)하는 교육칙어(勅語)의 일절(一節)을 봉독(奉讀)해 보자.
‘부모에게 효도(孝)하고 형제에게 우애 있고 부부상화(夫婦相和)하고 붕우상신(朋友相信)하라’이 일절 중에 소위 신애협력의 전부가 포함된 것이다. 여기에 특히 ‘충군’의 2자는 표시되지 아니하였으나 기실 효(孝)도 충군의 일단이요, 우(友)도 충군의 일단이요, 화(和), 신(信)도 또한 그러하다.
신민(臣民)이 모두 상호 신애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였다가 1일 완급(緩急)이 있으면 의용봉공(義勇奉公)하는 것이 충군(忠君)의 지상방법(至上方法)이며 우리 생활의 의미가 전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즉 자(子)가 되어서는 자의 직(職)을 다하고 형제간에는 형제의 책(責)을 다하고 부부, 붕우가 각기 그 소처
56) 수를 놓은 비단. 또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이나 직물.
57) 기이한 효험. 또는 뛰어난 효험.
58) 여러사람들의 의심. 많은 의문.
(所處)의 직책을 다하는 것이 곧 신애협력의 요체이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穀練)을 양(養)하여서 황도(皇道)를 선양(宣揚)하자.
금은주옥(金錄珠玉)도 이를 단련(煅煉) 조탁(彫琢)치 아니하면 일개 토석(土石)에 불과하고 교목거재(喬木巨材)도 이를 승(繩) 작(斫) 부(剖) 단(斷)치 아니하고는 고루(高樓) 거각(巨閣)의 동량(棟樑)이 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위인성자의 소질이 있다 할지라도 인고단련이 없이 생지천성(生知天成)은 바라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도 인고단련이요 둘도 인고단련이다.
저 금옥이 열화중에 용해되며 철석(鐵石)으로 조탁될 때에 그 고통이 어떠하였으며 저 동량(棟梁)이 작지단지(斫之斷之) 준지부지(準之斧之)할 때에 또한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랴. 그 온갖 고통을 인내하였으므로 만인이 경앙하는 동량이 되며 진중(珍重)하는 금옥이 되지 않는가.
인간도 또한 절대적이므로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같이 인고단련을 쌓아 완전 또 위대한 신민이 되어서 황도를 선양하는 것이 곧 우리들의 최종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상의 이론이야 누가 모르리오만 금후의 성과는 오직 이상 서사(誓詞)의 심송체행(心誦體行)에 달렸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자타의 경성(警醒)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출전 : 金性洙, 「文弱의 痼病을 버리고 尙武氣風 助長하라」, '매일신보', 1943년 8월 5일>
2)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됨의 책무는 크다
내가 지금 새삼스레 여기서 더 말할 것도 없이 항상 교단에서 혹은 시시로 청년학도 제군에게 늘 말하여 온 바이지만, 제군은 학창에서 지적 수련에 노력하는 한편 굳센 윤리적 연마에 힘써 왔다.
교육은 이 두 가지 방면으로부터 제군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세계적 신질서가 건설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윤리적 방면이 일층 더 고조되어야 할 것은 제군도 잘 알고 있을것이다.
평소부터 자주 제군에게 말하여 온 나의 생각을 제군의 출진(出陣)을 앞둔 오늘날 다시 말하고자 한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의무를 다하라’는 데 그칠 것이다. 의무를 위하여는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늘 말하였거니와, 지금이야말로 제군은 이 말을 현실에서 몸으로써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제군은 말로 쉽사리 목숨을 바치라 운운하는 나나, 또는 다른 선배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심경에 있을 것을 나는 잘 안다. 어제 아침에도 제군을 모아놓고 교단 위에서 제군의 그 수많은 시선을 바라볼 때, 나는 다만 말로써는 표현키 어려운 엄숙한 감격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종사해 온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고.
내가 이렇게 한마디 최후의 부탁을 제군에게 하더라도 물론 제군은 이 말을 아무런 회의도 반문(反問)도 없이 솔직하게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제군은 일반 국민보다는 지적 수준이 높은 만큼 어떠한 명제에 대하여서라도 일차 마음의 반문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오늘과 같이 제군이 대사일번(大死一番)의 판단을 즉석에서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찰나에 있어서 제군에게 맹목적 추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제군의 이와 같은 반문과 번민을 다른 부류에 속한 사람보다 잘 알고 있음을 자부한다.
자부하는 만큼 제군의 번민을 일률적으로 부정하는 태도에는 찬성치 않는다. 나는 차라리 제군이 이번민을 뚫고 광명의 피안(彼岸)에 빛나는 목표를 꽉 파악할 때를 제군과 같이 기다리려 한다.
이러한 번민의 과정을 거쳐 파악된 대사일번(大死一番)의 신념만이 다른 어떠한 결의보다도 요지부동의 것일것을 나는 잘 알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면 “의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라”하는 나의 말에 대하여 제군은 당연히 어떠한 의무인가를 명시하라고 할 것이다. 나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제군을 제군의 부모로부터 훌륭한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자로서 조금도 허위와 양심에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중대책임을 가진다는 이곳에 대담 솔직하게 말하려한다.
현하 우리가 당면한 의무라고 하면 제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여명을 맞이하여 인류 역사에 위대한 사업을 건설하려는 대동아성전에 대한 제군과 우리 반도 동포가 가지고 있는 의무인 것이다.
제군은 이 땅에 생을 받아 이때까지 그만한 인간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갖추기까지는 가지가지 은택을 입고 있다.
국가와 가정과 사회의 은택은 모두 이것이다.
이러한 지나간 날의 은택이 제군에게 각자가 그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이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무거운 의무는 미래에 대한 의무일 것이다.
만일 제군이 금차(今次) 대동아 성전에 치참(馳參)치 못하고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 우리의 참가 없이 완수된 날을 상상하여 보라. 우리는 대동아에서 생을 받았으면서 썩은 존재로서 이 역사적 시대에 영원히 그 존명(存命)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제군은 비록 이 성전의 전열로부터 빠져나와 개인의 조그만한 생명을 보전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제군의 뒤를 이어 이 땅에 생을 받은 제군의 동생과 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제군은 실로 반도의 미래에 대한 절대(絶大)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생각하건대 제군의 번뇌가 현재 이 점에 부딪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순간은 제군의 그와 같은 번민과 반문을 무시하고 각일각 추진되고 있다.
대동아의 건설은 제군의 사소한 존재를 돌아 볼 사이도 없이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매진 앞에 제군이 천재일우의 호기를 잃어버리고 그로 말미암아 반도가 이에 뒤떨어질 때 우리는 대동아 건설의 1분자는 그만두고 황민으로서 훌륭히 제국(帝國)의 1분자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제군이 위에 말한 의무를 다할 때에 비로소 제군은 제군이 이 땅에 살아 있을 것이고 제국(帝國)의 1분자로서 일본과 조금도 다름없는 빛나는 대우 즉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보통 권리와 의무를 논할 때 서양사회에서는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의무를 지는 것이지만 동양에서는 고래로부터 의무를 다하는 데 필연적으로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황민화를 고창(高唱)하여 온 이래 제군이 자주 자신의 황민으로서의 권리를 일반 사회에 대하여 요구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일본은 3천 년이라는 오랫동안 금일의 제국(帝國)의 광영을 빛내는 데 온갖 의무를 수행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겨우 그동안 30년밖에 안 된다. 3천 년과 30년의 차를 가지고 권리에 있어서 평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것은 제군이 권리만을 주장하는 서양인의 학설에 현혹된 잘못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한 바가 있다. 의무의 수행에 있어 시간의 장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의무의 대소는 시간의 축적(蓄積)에 있지 않고 의무 자체의 성질에 있다.
우리는 단시일일지라도 위대한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일본인이 오랫동안 바쳐온 희생에 필적할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까.
이 임무를 수행할 절호의 기회가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앞에 열려진 것이다.
제군의 희생은 결코 가치 없는 희생이 아닐 것을 나는 제군에게 언명한다. 제군이 생을 받은 이 반도를 위하여 희생됨으로써 이 반도는 황국으로서의 자격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니 반도의 미래는 오직 제군의 거취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출전 : 金性洙, 「學徒여 聖戰에 나서라-大義에 죽을 때 皇民됨의 責務는 크다」,'매일신보', 1943년 11월 7일>
3) 학병을 보내는 은사의 연두
-이 시대 최고의 광영, 빛나는 조선청년의 특권을 살리라
보성전문학교 교장 김성수
생각하면 이 시대의 최고 광영은 젊은 청년과 학도들에게 있다. 나라의 흉융을 결하는 결전의 마당으로 총을 메고 돌격하는 그 열화와 같은 조국애와 동포애는 오직 젊은이들만이 가장 힘차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제 광영스러운 군문에로 들 수 있는 ‘검사의 날’이 우리 학도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궐연히 발분하여 학병을 지원하는 원서를 내고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 학도들의 가슴은 숭고스러운 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날이 밝으면 각 검사장엔 태양이라도 정복하려는 기개에 찬 젊은 학도들의 약동하는 육탄군상을 볼 수 있을 것을 나는 생각하고 그들이 전부 ‘갑종’으로 합격하기를 축수하는 바이다.
지원한 학도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원서를 내던 그 순간에 가졌던 각오와 결심은 원서 내민 것만으로는 아무 가치도 발현할 수 없는 것이고 군문에 드는 첫 관문은 검사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이나 지정된 검사일에 검사를 받지 않을진대 그가 어떻게 위대한 조국애를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자못 말 뿐
으로 그 각오, 그 결의는 영구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지정된 검사일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지장이 생길지는 모르나 이 위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한 번 길이 열린 이 ‘순국의 대도’에 시종여일하게 돌진함으로써 학도의 머리에는 최대의 광영이 길이 빛날 것이다. 나는 검사장으로 나아가는 학도들의 빛나는 금후 활약과 그 ……(판독불가)…… 축원하고 싶다.
<출전 : 金性洙, 「學兵을 보내는 恩師의 念頭 : 이 時代 最高의 光榮, 빛나는 朝鮮靑年의 特權을 살리라」,'매일신보', 1943년 12월 10일>
7. 김연수(金秊洙)
1) 장병의 노고를 사모하다
동짓날, ‘사변(事變)’59)이 일어난 지 4년째를 맞이하여 신동아 건설에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경축할 일이 아닐 수 없는 동시에, 우리가 짊어진 책무가 더욱 중대해지고 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변이 발발한 이래 4년 동안 우리 황군(皇軍)은 중국 각지의 바다와 육지, 혹은 하늘에서 싸우면서 수많은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아랑곳하지 않고 역전(力戰)을 거듭해온 것은 전적으로 동아 민족에게 광명을 주고자 한 동아신질서 건설의 대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임은 말할 것도 없다.
황군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이 이상전(理想戰)은 더욱 그 효과를 발휘해 건설적 공작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중국 측에서도 우리나라의 이러한 이상을 이해하기 시작해 동아협동체제에 협력하기 위해 신 중앙정권을 수립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경축할 일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지나지 않고, 그 결실을 얻기까지는 앞으로 출정 장병들의 노력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의 일치단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하면서 진지에서 한해를 넘기는 우리 장정들의 노고를 기리고 총후(銃後) 국민의 책무가 중대함을 반성하고 싶다.
<출전 : 金秊洙, 「將士の勞苦を偲ぶ」, '總動員' 1940년 1월호, 12쪽>
2) 금일, 감격의 징병제 실시 -무상(無上)의 광영
만주국명예총영사 김연수
조선통치사상 획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징병제의 실행을 보게 된 것은 2천 5백만 반도동포에게 무상광영(無上光榮)이며 황군의 일원으로서 국방의 제일선에 서게 되는 반도청년의 환희는 말할 것도없다.
대어능위의 고마우심에 오직 눈물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조선인의 가정생활의 예식관습은 국가□□에 있어서 또 민도에 있어서 현재의 무□□□을 길러낸 일본가정에 비교하여 현저한 손색이 있는데 사람이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어 □□에 떨면서 황군연성의 군인가정인 병영에 들어가 황군정신의 철저한 훈육을 받음으로 인하여 제국황군군인으로서 씩씩하□□□□□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은 이들은 이제야말로 □□□□도의 산하에 국민인 우리는 일본에 난 보람이 있다는 □□으로 가득 차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또 징병에 의하여 젊은 반도청년을 □국의 종으로 보내는 반도 동포는 이에 일층 □□□에 □□□같이 타올라 일억 □□□□□□□이 기대된다고 생각한다.
<출전 : 金秊洙, 「今日, 감격의 징병제 실시-無上의 光榮」, '매일신보', 1943년 8월 1일>
59) 중일전쟁.
3) 단호히 승리
징병제라는 커다란 사건에 의해 ‘병사(兵)’와 ‘반도인(半島人)’60)의 관련성은 실로 감격적인 정도로 깊어졌다.
지금까지 반도인은 재래의 전통에 묶여 ‘징병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좁은 태도를 보여 왔지만,이것은 모든 반도동포의 결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반도인은 이러한 이기적인 사고를 버리고 도의에 기초한 국가적 사상 아래로 결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문자 그대로 전쟁인 것이다.
그래서 큰 시련에 직면하여 제국의 존망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용감하게 출진하는 학도 제군(諸君)의 모습은 얼마나 영광에 가득 찬 것인가!
제군에게는 미국과 영국(米英)을 격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 의무가 있는 것이니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제군의 승리는 신생 조선의 곡식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다.
동아시아 전역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제군, 윤리적·도의적 진리의 앞에서 분골쇄신,황국을 위해 완전히 봉사하기 바란다.
<출전 : 金秊洙, 「斷じて勝て」, '京城日報' 1944년 1월 19일>
8. 김윤정(金玧禎)
1) 엄숙히 생각하라 -지원병이 되는 참뜻
지난 10월 20일 공포된 특별지원병제도에 따라 반도인 학도도 일본인 학도와 같이 출정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급하게 이러한 규칙이 실행되게 되니까 여러분 가정에서는 일본인만으로서는 병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학도까지 출정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는분이 더러 있을지 모르나 이러한 생각은 큰 오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러하냐면 우리같은 여자의 두뇌로 생각한다 해도 그렇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즉 현재 재학중인 반도인 학도는 □5천 명은 되는데 5천명이라면 퍽 많은 수효같지만 수□□□에다 비한다면 미미한 존재인 것이다. 지금 우리 황군은 북으로는 ‘알류산’에서 남으로는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넓고 넓은 전역(戰域)에 걸쳐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쳐부수기에 수다한 병대가 움츠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출정 군인과 또 일본에도 □□에 아직까지도 징병령에 차지 않은 피끓는 청년들이 그대로 동원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반도인 학도를 지원케 하는 목적이 태평양 전쟁에 있어서 반도의 짐을 벗자는 것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미영을 쳐부수는 것 같은 제1선 황군만으로도 넉넉한 것이다. 그러면 왜 반도인 학도들이 공부도 다마치기 전에 전쟁에 참가할 길을 열어 놓는가 생각하면 앞으로 태평양전쟁의 완수를 보게 되는 날 미영을 쳐부수고 대승리를 생각해 볼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아의 맹주로서 대동아 안에 사는 여러 민족을
60) 조선인을 비하하기 위해 일제가 사용하는 용어. ‘반도민’.
지도할 것이 아니냐 말이다.
□□에 반도인으로서도 일본인같이 대동아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자격을 구축하기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어느 좌담회의 기사에서 이러한 말을 읽었다.
어느 학생의 말인데 전장(戰場)은 인간완성의 새로운 도장이라는 것이다.
과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반도인 학도가 전장이란 새로운 무대에서 단련하지 않으면 완전한 지도자다운 인간이 되지 못할 줄 안다.
괴로움을 □맛본 사람과 일생동안을 아무괴로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과 □□는 다를 줄 안다.
왠만한 사회의 지도자로서도 상당한 경력□ □□사람이 □□□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대동아의 지도자가 될 반도의 청년들이 전장이라는 인간 완성의 도장을 통해서 단련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반도인 학도는 이번 특별지원병제 지원서란 것은 은전이요 광명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말이냐 말이다. 10월 20일까지 마감이라 하니 누구든지 반도의 청년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지원하기 진정으로 바라는 바다.
<출전 : 金玧禎, 「엄숙히 생각하라-지원병이 되는 참 뜻」, '매일신보', 1943년 11월 14일>
2) 숭고한 감화력 -어머니의 정신이 자식에게
대동아전쟁 2주년을 맞이하여 세계전사에서 드물게 보는 전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진실로 황군장병의 수고가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대동아공영권이 차츰차츰 확립되어 가는 것은 마음 속 깊이 기뻐하고 있다.
여자로서 새로운 각오를 거듭할 것을 여자는 여자된 입장에서 무수히 실행하기만 바라는 바다.
우리가 국가에 봉공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활을 떠나서 있는 것 같이 생각하기는 쉽지만 국가에 봉공하는 길은 우리의 근처서부터 자기의 생활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바칠 우리의 아이를 훌륭히 기르는 것은 여자의 본부이고 여자로서 나라에 봉공할 수 있는 특수한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2년 전 이맘때 ‘하와이’ 진주만폭격에 호곡의 뜻으로 떨어진 구군신을 보더라도 그들은 조그만 휴가라도 고향에 돌아가서 모친을 모시고 며칠을 즐겁게 지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은 늘 어머니가 그리웠고 어머니가 하는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그것을 어기지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우리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어머니의 사랑이 그면 클수록 자식의 성공이 빠르고 클 줄 안다.
자식이 전선에 나섰을 때는 어머니의 생각보다도 큰 무훈을 세우게 될 것이다.
봉공이라는 말을 했지만 우리는 생활을 통해서 자식을 통해서 나라에 봉공하기 바란다.
지나사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제1선에 나섰다. 총후에서는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기 위하여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의 수효보다도 대동아전쟁을 완수하고 대동아를 건설할 참다운 인물이 필요한 것이다. 양□에 있어서 비약적인 향상을 바라는 것은 국책적으로 보아서도 우리 일본부인에게 부하된 중대한 사명인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아이들을 잘 길러낸다는 것은 이러한 중대한 사랑을 하는 데도 의의가 있는 것이다.
벌써 반도에서도 학도특별지원병으로 전문대학학도가 출진을 하게 되고 그 외 해군특별지원병도 목전에 닥쳐오는 징병령실시에 의해서 우리의 아들도 군인이 되어 재1선에 나가게 된다.
우리에게 오랫동안 없었던 군인의 어머니로서의 자랑도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광영을 느끼며 중대한 책임을 느낀다.
어머니가 조국을 위하는 숭고한 전신 속에서만 산다면 자식은 자연히 어머니의 감화를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나부터도 어머니다 자식에게서 감화를 받을 점이 많다.
영웅의 자식이라고 해서 반듯이 영웅은 아니다. 현명한 어머니의 손에서 길러진 자식이면 훌륭한 사람이 될 줄 믿는다. 우리는 어머니로서 이러한 자신을 가지고 서로서로 손을 잡고 정진하지만 안 될줄 안다.
징병제의 실시가 목전에 다다랐다. 세계 제일가는 일본군인은 누가 길렀느냐?
내지의 어머니들이다. 그들의 일상생활과 숭고한 정신을 배우면서 대동아전쟁완수에 매진하기 바란다.
<출전 : 金玧禎, 「米英擊滅에一層進軍! 決戰下 大東亞戰 두돌맞이 : 숭고한 감화력-어머니의 정신이 자식에게」, '매일신보', 1943년 12월 8일>
9. 김활란(金活蘭)
1) 여성의 무장
천성활란(天城活蘭)61)
‘지나사변(支那事變)’62)이래 우리들 여성은 총후(銃後)를 지키는 한 분자(分子)로 빈약하나마 마음껏 힘을 다하여왔습니다. 다만 지난 12월 8일 황공하옵시게도 선전(宣傳)의 대조(大詔)가 내리시고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저 미국과 영국(米英)을 치려던 그때부터 우리들 여성도 여태까지와 좀 다른 의미의 새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들 여성이 여태까지 가졌던 총후를 지킨다하는 소극적 관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총후의 전사다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하고 싶습니다.
이번 태평양전쟁으로 말하자면 인류사상에 여태까지 없었던 위대한 전쟁이올시다. 사람들은 미국 흑인노예해방의 전쟁과 먼 옛날 전 유럽(歐羅巴) 남아의 피를 끓게 한 십자군전쟁을 위대하다고 말은 합니다만 그들보다 더 나을지언정 못하지 않는 것이 이번 태평양전쟁이올시다. 즉 동양인 전부를 저 앵글로 색슨 인종의 침해로부터 구하려는 성스러운 싸움이기 때문이올시다.
그들은 삼백여 년간 동으로 동으로 진출하여 저들의 무기가 우수함을 힘 믿고 서서히 세력을 펴서 우리 동양의 전부를 자기수중에 넣으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이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겠습니까. 정의의 나라 일본의 나아갈 바는 결정되었습니다.
동양 십억여 민중을 위한 도의의 전쟁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61) 김활란(金活蘭)의 창씨명.
62) 중일전쟁.
동양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을 비교해 보건데 동양은 도의(道義)의 문명이요, 서양은 물질과 기능에 지배된 소위 물질문명이올시다. 우
리는 그들의 그 외형적으로 번화함에 눈이 어두워 그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나머지 그들 자체를 숭배하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진 때도 있습니다.
도의를 가지지 않는 그들의 비인간적 행동을 들어보자면 세계인구 약 이20억 중 우리 동양은 10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의 보고(寶庫)는 동양인의 손으로만 하더라도 아직 풍부함을 못 느낄 정도이거늘 하물며 그들의 무리가 침입하여 무지한 주민을 꼬여서 이익을 도모하려함은 전혀 도의를 저버린 행위올시다.
우리나라는 천의(天意)에 의하여 인구가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허나 면적은 우리들을 수용하기에 충분치가 못합니다. 우리가 비도(非道)63)한 그들과 같이 인의를 무시하고 무기를 사용해서 어디든지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일억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나아가는 데는 세계에 무서운 상대가 없습니다.
허나 우리나라는 도의를 표방하는 나라올시다.
이번 성전이 일어나기까지의 경과를 보아도 알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화평을 주장하고 가진 모욕에 대하여 참고도 또 참아왔습니다.
허나 물욕에 근시안이 되어 도의를 저버린 그들이 어찌 우리의 성의를 알겠습니까.
우리는 단연코 일어선 것이올시다. 그들이 오랫동안 우리 동양에 있어 정치, 군사적 행동이 천의와 인의를 무시한 인위적 침략인 이상 어찌 더 오랫동안 계속할 수가 있으리오. 동양은 그들의 식민지로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 동아(東亞)의 옥토를 언제까지든지 그들 손에 자유로이 맡겨둘 만큼 우리는 못나지가 않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조숭(祖崇)의 도의의 정신이 알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 마음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실력으로 대항할 때는 무엇이 무서울 바가 있으리까.
정의가 앞설 때는 언제나 이기는 것이올시다. 저 독일에 대하여 영미가 취했던 바를 보십시오.
지난 구주대전(歐洲大戰) 후 갖은 수단을 다하여 독일의 모든 것을 뺏은 후 앞으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허나 독일은 자기가 가진 특유한 정신만은 뺏기지 않고 이십수 년간 가진 고생을 다 겪은 후 지금 힘차게 다시 일어난 것이올시다. 그들 앞에는 지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몽매한 영미인은 외형으로만 보아 완전히 세계를 정복한 것으로 믿고 승리의 우월감에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십억의 인류를 그들의 손으로부터 구하여 해방하려는 위대한 성전은 지금 개시되었습니다.
그 총후에서 싸울 수 있는 영광을 무엇에다 비하며 또 그 감격을 무엇으로 표현하오리까.
먼저 정신적 무장을 합시다. 말하자면 붉은 불덩이와 같은 우리들이 정성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올시다.
혹은 말합니다.
우리들 여성은 남성과 같이 제일선에 나가 싸우질 못하니 활기가 나지 않는다고..... 그러나 총후에 우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그들의 원기를 돕는지 아마 측량치 못할 것입니다.
일본부인이 출정하려는 내 자식 내 남편에게 집일은 염려치 말고 ‘천황폐하’64)에게 목숨을 바치시오 하는 그 말이 진격
중의 그들에겐 둘도 없는 큰 위안이며 마음을 분기시키는 원천이올시다.
총후는 우리들이 지킵니다 하는 이 말이 우리들의 본 정신일것입니다.
우미유까바(海ゅがば)에 있음과 같이 “大君のへにこそ死ため
63) 올바른 도리에 어긋남.
64) ‘천황폐하’는 일본왕을 뜻함.
かへリ見はせじ” 이것은 비록 전선과 총후란 장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황국신민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적성입니다.
빈부의 차별없이 자기의 가진 모든 진심을 바치자는 것이 즉 여성의 무장이올시다.
이 근본정신 없이 여태까지 해오던 그와 같이 물질절약, 헌품, 헌금 등등 외형적만의 봉공은 마치 인간의 모습은 하고
있을지언정 아무 감정을 갖지 못한 인형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을 전부 바치고 있듯이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이 싸움 어떠한 괴로움일지언정 달게 받으며 나아가고자 하는 질기고도 영구적인 봉공은 바랄 수 없습니다.
지난 11월 11일 즉 신세법이 시행되기 전날 이 가두 풍경 역시 이 정신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무지한 생각과 행동을 하루바삐 버리고 마음껏 희생적으로 나아가 봅시다.
앞으로 최대의 전과를 얻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이 정신적 무기 유무에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성전 도의와 동양 인류해방을 위한 전쟁, 그리고 일억 국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아갈 때는 반에 있어 우리들은 자신을 가지고 마음과 가진 모든 것을 나라에 바칩시다.
그리고 이 성대에 생을 받은 기쁨 제국신민됨이 영광을 흠뻑 향수(享受)합시다.
<출전 : 天城活蘭, 「女性의 武裝」, '朝光' 第8卷 2號, 1942년 2월, 122~124쪽>
2)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
이화여자전문학교장(梨花女子專門學校長) 천성활란(天城活蘭)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허둥지둥 감격에만 빠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어쩔지를 모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갈래를 못 찾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반도여성은 그저 내 아들 내 남편 내 집이라는 범위에서 떠나보지를 못했다.
떠나볼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자칫하면 국가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도여성에게 애국적 정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나타낼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戰場)으로 내보내는 일본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막연하게 부러워도 했다. 장하다고 칭찬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반도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그 각오와 준비가 있는 것인가?
실제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나라에 바쳐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대단히 막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만일의 경우에는 남편이나 아들의 유골을 조용히 눈물 안 흘리고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가져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그런 각오가 있을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본 여성에게 배울 점이 많다.
우리 일본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원인의 하나가 일본 여성의 숨은 힘이라 한다.
말없이 참고 나가는 그들의 힘은 강한 사람의 몇 배의 힘을 가진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는데 조용한 웃음으로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그저 모방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드는 그 근본정신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즉 국가를 위해서는 즐겁게 생명을 바친다는 정신이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내 남편도 내 아들도 물론 국가에 속한 것이다. 최후에 내 생명까지 국가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국가에 속한 내 남편이나 아들 또 내생명이 국가에서 요구될 때 쓰인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못 쓰인다면 오히려 그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꼬집어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바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나라의 것을 나라가 쓰는 것이지 내가 바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잠깐 맡았던 내 아들이 훌륭히 자라서 나라가 다시 찾아 가는 것이다.
나는 그 맡은 동안에 책임을 다한 것이 즐겁고 그동안 그 아들이 많은 즐거움을 준 것이 감사한 것이고 좀 더 하면 책임을 다 못하여 나라에 돌려보내서 쓰이지 못했을지도 모를 것을 훌륭히 쓰이게 된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것뿐인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출전 : 天城活蘭, 「徵兵制와 半島女性의 覺悟」, '新時代' 第2卷 12號, 1942년 12월, 28~29쪽>
3) 거룩한 ‘대화혼’을 명심, 적 격멸에 일로매진
이화여자전문학교장 천성활란(天城活蘭)
황국신민의 무쌍(無雙)한 영광인 징병제는 드디어 우리에게도 실시되었다.
그동안 2년간의 준비기를 거쳤으며 이번 8월 1일부터 수일간은 반도의 징병제 첫 탄생을 축복하는 의미로 가지가지 행사가 조선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새삼스럽게 크나큰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일시동인(一視同仁)의 황공하옵신 성지(聖旨)에 다시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반도청년은 쓸쓸하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지 않을 충성된 마음으로 그대로 나타내기에는 그 장소가 너무 좁았다.
그리고 이내몸을 탄환화하여 적에게 부딪쳐볼 수 없는 그 마음은 한없이 답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청년의 나아갈 길은 단단하게 열려졌다.
나라를 위하여 불덩이가 티끓는 피와 몸을 통틀어 바쳐 성은에 보답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으며 반도 남아의 의기를 보일 기회는 드디어 왔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수천 년 역사 이래 모처럼 보는 거룩한 감격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대동아건설을 위하여 동아 10억의 민족을 저 ‘앵글로 색슨’의 손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우리 황군이 도의(道義)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때에 반도 청년에게 이러한 영예를 내리옵심은 더욱더 뜻 깊은 바이며 또한 행복된 일이다.
반도 청년이여 훌륭한 군인이 되소서. 그리고 자기에게 내린 책무에 끝까지 충성하소서.
이와 같은 군인이 되기 위하여는 첫째로 무쇠덩이와 같이 튼튼한 몸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다 튼튼한 몸이 필요한 것이나 특히 군인에게는 몸하나가 전부를 대표하리라고 생각된다.
닦고 또 닦아서 그야말로 강철같은 몸을 만드는 동안에 또한 정신도 이와 병행하여 닦여질 것이다. 한 군인의 말에 의하며 행군 도중 몇 관(貫)이나 되는 짐으로 어깨의 가죽이 다 벗겨지고 그리고 양말인지 발이 부르터서 벗겨진 껍질인지 모를 지경이면서도 괴로움을 모르고 행군해 나감은 순전히 정신력이 앞섬이라고 하였다.
끝까지 저항해 나아가는 마음, 주위로부터의 어떠한 유혹에도 좀 먹지 않는 굳은 심정 이러한 것은 일조일석에 성취되는 바는 아니다.
부단의 노력, 무시훈련에서 성장된 것이다.
우리의 몸이 이 자신의 것만이 아니요, 또한 부모의 것만이 아니요 첫째로 나라의 것이다.
어느 때나 응하여야 할 몸이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자신의 몸을 닦는 데 힘을 쓸일 것이다.
군축회의에서 돌아온 해군위원의 한 분이 도고(東鄕) 원수를 방문하여 5.5.3이라는 섭섭한 보고를 했을 때 양(量)에는 “제한이 있지만 훈련에는 제한이 없을 테지......”라는 원수의 말씀을 좇아 우리의 해군은 그저 훈련, 훈련, 일요일도 토요일도 없는 월월화수목금금의 맹훈련을 계속한 것이다.
그 결과 부딪치는 곳곳마다 적에게 격멸에 격멸을 거듭시키고 있는 우리의 해군을 보라. 이 얼마나 훈련의 귀중함을 말해주는 뚜렷한 예인가.
모름지기 성장의 천금 같은 훈시를 스승삼아 이 몸과 이 마음을 연성(鍊成)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들은 뼈속으로부터 ‘대화혼(大和魂)’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정신을 지금까지 말로서만 들었으며 이론으로서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실제로 군무를 실행하면서 체험해 볼 수는 없었으나 이제는 우리들도 이 혼을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존엄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생사를 초월하여 대군(大君)을 위하여 순국봉사하는 그 마음 오직 우리 황국신민만이 특히 제국군인만이 체험할 수 있는 거룩한 정신이다. 모든 충성된 그 마음을 한결같이 대군에게 바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대화혼은 3천 년간 쉴새 없이 흐르고 흘러 크나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세계 어느 정신에 비하여도 그 종류를 찾을 수 없는 ‘대화혼’을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 속에 빈틈없이 채우는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제국군인의 빛나는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반도인의 첫 징병으로서 나아가는 청년들은 제국 군인으로서 완벽됨은 물론이오 반도청년들의 선발대로서 후진에게 수범(垂範)65)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수범의 입장이란 책임있는 것이요, 선발대의 일무란 다난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없이 해 줄 것을 믿고 쌍수를 들어 이 첫 출발을 축복한다.
(완)
<출전 : 天城活蘭, 「거룩한 ‘大和魂’을 銘心, 敵擊滅에一路邁進」, '매일신보', 1943년 8월 7일>
65) 몸소 본보기가 되도록 함. ‘모범’으로 순화.
4) 열혈남아이거든 이때를 놓치지 말라
이화여전 교장 천성활란(天城活蘭)
특별지원령의 □□□바 군문으로 나가기를 지금까지 망설이는 학도가 있는가 올 □에 학교를 나온 졸업생이 있는냐 말이다.
신문으로 방송으로 강연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의 대 선배는 매일같이 □□□이 하루라도 빨리 □□하기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해도 학도의 마음에 해결을 얻지 못하는 점이 있으면 그동안 학도들이 가장 신뢰하는 선생 선배를 찾고 의문을 물어버리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아래 □□하는 것도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학도를 보라. 경험으로나 지식으로나 아는 것이 많은 선배는 학도들의 마음에서 안개같이 서려진 회의를 풀어주리라 믿는다.
청년은 한편 단순하여 선배가 옳다고 생각하며 권하는 길이면 선뜻 나서는 사람도 있고 또 까닭 없는 일을 공연히 주저하며 의심하는 사람도 더러 있어 전자는 이번 특별지원병으로도 벌써 지원했을 것이고 후자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모양 같다. 책상을 마주하여 머리를 싸안고 곰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한 가지 앞날의 대동아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시아 10억 민족의 해방과 그들의 지도자가 될 것을 생각하기 바란다.
남아면 피끓는 청년이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싸움터로 나올 것이다.
한 번 나서서 싸울 사명을 느끼지 않는가?
마음이 □□□같이 □□□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이 무서워서 □□하지 못하는가?
죽음이 무서워서 못나가겠다는 청년이 있다면 참으로 □□□이다. 딱한 일이다.
그러한 비겁한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없어야 할 것이다. 반도의 어머니들은 그런 비겁한 사나이는 낳지 않았을줄 안다.
그러면 앞날 태평양전쟁을 대승리로 끝마치는 날 황군과 같이 대동아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 못할까봐 망설이는 것인가이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의심할 것은 없을 줄 안다.
도조(東條) 수상이 반도는 일본과 같이 지도□□에 서야 된다고 설명한 말씀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일□ 대동아의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싸우기 바란다. 그러면 조국도 빛나고 학도들 자신도 빛날 줄 안다.
마감이 되기 전에 용맹하게 나서기를 맹세하기 바란다.
<출전 : 天城活蘭, 「열혈남아이거던 이때를 놓치지 말라」, '매일신보', 1943년 11월 18일>
10. 남백우(南百祐)
1) 쌍수를 들어 찬탄할 뿐
중추원 참의 남백우
배계(拜啓) 귀사(貴社) 익익번영(益益繁榮)하심을 공축(貢祝)합니다. 금번 귀사에서 반도의 지원병 지원자 10만 돌파기념 특호(特號) 발간에 제(際)하여 생(生)과 여(如)히 천식자(淺識者)에게도 기고의 하명(下命)이 유(有)함은 감하(感荷)함을 불이(不已)합니다.
아시는 바와 여(如)히 북선지구(北鮮地區)는 자(自) 금월 6일 지(至) 동 12일 1주일간 방공훈련이 시행되어 생(生)이 소위 분단장(分團長)의 책임자로써 금일까지 1주일간으로 차(此) 훈련에 출동하여 3일간은 일가(一暇)를 얻지 못하고 철야하고 금일 완료하였습니다. 지금 피곤에 잠겨 원고를 쓸 정신조차 없사오나 다른 문제와 달리 우리의 지원병 지망자
10만 돌파의 성사(盛事)에 대한 일이오매 오직 이 세기적 위대한 사실 앞에 국민의 일분자(一分子)로써 축하하여 마지 않사옵나이다.
<출전 : 南百祐, 「雙手를 드러 讚歎할 뿐」, '三千里' 1940년 7월호, 72쪽>
11. 박마리아(朴瑪利亞)
1) 어릴 때부터 바다에 친토록
우리반도의 어머님들은 작년 이 맘때 내리옵신 징병제에 대한 감격도 아직 새로울 것입니다.
거기에 거듭 반도에다 해군특별지원병제를 실시하게 되었으니 먼저 황은에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육지에서보다 넓은 바다의 주인까지 되게 하옵시니 그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활동무대가 커지고 책임도 커졌으니까 어머니가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도 한층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정신교육이나 육체단련에 있어서 실질 강건한 교육을 해야 할 각오는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이제는 정말 이것을 실행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어린아이 때 동화를 통해서도 바다에 대한 애착을 길러주고 바다에 대한 친근감을 가지도록 하는 의미에서 이야기 해주어야 될 줄 압니다.
물론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서도 이에 따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압니다. 그리고 동양의 주인이 될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인 될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겠습니다.
“ヘイタイサン”하면 육군과 함께 해군도 언뜻 생각하도록 어머니께서 교육시키셔야겠습니다. 먼저 어머니는 아드님을 바다와 친할 수 있고 사귈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겠습니다.
<출전 : 朴마리아, 「어릴 때부터 바다에 친토록」, '매일신보', 1943년 5월 14일>
2) 칼 잡고 일어서자
기독여자청년회 박마리아
학도특별지원령 마감도 박두했다. 그동안 거의 한 달 동안 반도는 학도들의 출정을 위하여 떠들썩하였었다.
지원하기를 망설이고 꾸물대는 학도들을 위해서는 선배들이 강연회를 통하여 신문을 통하여 쉴 새 없이 이치를 설명하여 주었다.
직접 간접으로 학도로 하여금 이번 광영의 군문으로 나서기를 권한 것이다.
미련한 사람이 아니면 이만치 일러서 다 깨달았을 줄 안다.
반도의 학도들은 다 현명하리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줄 안다. 일찍이 선생 선배와 부모가 학도와 자제를 그른 길로 가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비록 자기 자신은 역경에서 울고 죄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도 내 자식만은 잘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고 구태여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그러한 큰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어떠한 이유로 지원을 망설이고 괴로워하는지 알고 싶다.
지원이라고 하니까 출정하나 안하나 내 마음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학도는 침착하게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라에서는 학도들 자신의 애국심에 의거해서 학도들 자신이 스스로 자진해서 싸움터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강제로 학도들을 소집해 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학도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해 오는 모양을 볼 때에 얼마나 기특한 일이냐 말이다.
학도들은 지원한다는 말의 깊은 뜻을 먼저 깨달아야 될 것이다. 즉 지원은 부르심이다.
공부를 하고 있는 학도들을 왜 부르시었나?
우리나라는 태평양전쟁을 하고 있는데 이 전장은 동아의 십억 민족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다.
동아의 십억 민족을 미영의 압제에서 구하여 앞날 천년만년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전쟁이다.
그런데 반도의 청년학도는 동아의 십억이나 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입장에서 있는 것이다.
피끓는 학도들은 이 중대한 현실아래 아모레한 사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도들은 반도의 중핵이다.
학도들이 잘하고 못하는 것은 반도의 장래를 좌우한다. 이번 기회에 반도의 청년들이 전장에 나가서 힘껏 싸운다면 나라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학도를 자신을 위해서 이에 더 좋은 일은 없을 줄 안다.
내 말은 모두 주제넘는 말이지만 학도들의 대선배의 말을 삼가 듣기 바란다. 그른 소리를 학도들에게 할 일은 없는 것이다.
마감까지 한 명 빠지지 말고 바른 길로 나가기 바란다.
<출전 : 朴瑪利亞, 「칼 잡고 일어서자」, '매일신보', 1943년 11월 19일>
12. 박상준(朴相駿)
1) 무적해군 빛내라
경학원(經學院) 대제학(大提學) 박택상준(朴澤相駿)66)
“참 반가운 소식이다”라고 말머리를 내놓으며 경학원 대제학 호-사와(朴澤相駿)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찍이 육군에는 지원병제도가 실시된 후 빛나는 성과를 거두어 마침내 1년 후에는 광영의 징병제도가 실시키로 된 이때 제국 해군에도 반도인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반도민 중으로서는 이우에 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번 태평양전쟁이 발발되자 ‘하와이’진주만 호주의 ‘시드니’항 ‘마리아’근해 그리고 그 외의 넓으나 넓은 해역에서 혁혁한 전과를 거두어 우리무적 해군의 전통을 한층 빛내었거니와 이것은 실로 정신적 기술 훈련의 세가지가 한데 엉키어서 이루어진 성광이다. 이와 같이 견적필살(見賊必殺)의 정신을 가진 것이 다른 나라의 해군과 전혀 다른 점인 동시에 특징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기술을 닦게 할 것이고 전투정신을 교육시키겠지만 우리의 해군과 같이 평소의 연습이 곧 전쟁이라는 굳은 결의를 갖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반도인도 무적해군의 ……(판독불가)……여 일본동포에 뒤지지 않을 씩씩한 정신과 체력을 가지고 봉공할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한 층 우리 무적해군의 광영과 빛나는 전통을 철저히 인식하여 나라의 부르심에 순종보국의 결의로써 보답할 수 있도록 하여야 될 것이다.
<출전 : 朴澤相駿, 「無敵海軍 빗내라」, '매일신보', 1943년 5월 13일>
2) 시사여귀(視死如歸)의 정신, 어머니의 자각이 필요
경학원 대제학 박택상준
역사적인 8월 1일 이 날을 맞이하여 감사 감격하는 바가 많다. 첫째로 일시동인(一視同仁)67)의 황은에 감사를 드린 이번의 징병제 실시도 이천오백만의 신민에게 내려주신 광대무변한 성은의 결과이다.
우리는 이 명예있는 징병제의 실시로 인하여 반도의 청소년도 이제는 완전히 제국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황국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날이 왔음을 기뻐하는 동시에 일시동인의 성은을 깊이 감사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66) 박상준(朴相駿)의 창씨명.
67) 모든 사람을 하나로 평등하게 보아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
둘째로는 역대의 총독을 비롯하여 총독부 당국의 내선일체 황민화의 시정방침과 한편 또 조선군사령부 당국의 반도인 황민화에 대한 노력이 보람있어서 결국 오늘날의 명예스러운 징병제 실시를 보게 된 것이다.
셋째로는 우리 반도 동포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 중일전쟁 이래로 한층 더 높아져 온 것이 이번의 이 감격의 징병제 실시의 역사를 바르게 하여 준 원인의 하나이다.
일단 사변이 발생되자 반도동포의 순국의열은 거의 고조에 달하여 헌금저축 기타의 봉공을 하여왔다.
그리하여 육군특별지원병제가 실시되자 지망하여 오는 자가 날로 늘어가고 개중에는 혈서로써 불타는 정성을 표시한 청년도 있었음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의 조건이 이번에 실시된 징병제를 촉진하여 준 중요한 원인인데 다음에 나는 이 역사적인 징병제 실시를 당하여 몇 가지의 희망을 말하여 일반의 참고에 이바지 하려고 한다.
이제로부터 반도의 청소년도 제국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정신적 기백이 실로 황군으로서의 부끄럽지 않은 충분한 소질을 가져주기를 희망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위선 반도 청소년들에게 상부의 기풍을 좀더 조장시키고 발달시켜야 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시사여귀(視死如歸)라고 하여 죽는다는 것을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것같이 일러왔으니 그야말로 자기의 목숨을 위로단 한분이 신 황제폐하를 위하여 던지는 황군의 □래의 중용감사의 정신을 완전히 품고 언제든지 천황패하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바치겠다는 굳고도 철저한 군인정신을 표한 것이라 우리 청년들도 이 정신을 깊이 마음에 새겨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음에 훌륭한 황군을 만들어내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자각이 필요하다. “그 어머니로 하여 그 아들이 있다”라는 말은 참으로 군국의 어머니에게 요구되는 중대한 말인가 한다.
가정의 중심은 어머니께 있다. 예로부터 훌륭한 아들을 길러낸 등 뒤에는 전부가 훌륭한 어머니의 교훈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찍이 증자(曾子)는 “전진무용비효야(戰陣無勇非孝也)”라고 하여 전쟁에 나아가 용맹치 못한 것은 부모께 효도가 못된다는 뜻을 말하였으니 참으로 군인된 자로서 천황폐하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싸움에 나가서 공로를 세우는 것이 또한 부모에게 대하여는 효성이 된다고 하는것을 어머니되는 사람은 항상 깊이 명심하고 자녀교육에 힘써야 한다.
끝으로 반도의 이천오백만 동포는 이번의 징병제 실시야 말로 국가에 있어서 중대한 일의 한아이라고 하는 것을 이때에 다시금 마음에 새겨넣고 오로지 황은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진은 호사와 씨)
<출전 : 朴澤相駿, 「視死如歸의 精神, 어머니의 自覺이 必要」, '매일신보', 1943년 8월 2일>
13. 박인덕(朴仁德)
1) 생산확충의 정신, 이것으로 일을 하라
요새 참말 국민개로운동(國民皆勞運動)이 맹렬히 고조되고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 수 없다.
이상하던 바가 실현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예로부터 유휴(遊休) 인원이 많은 지식층이라든가 부유한 계급의 부인네라든가는 우리 애국반을 통해서 유기적으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참으로 고르게 노무할 수 있게 된 데는 모름지기 반가움을 가지고 있다.
무슨 운동하면 두 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위에서 강제로 억눌려서 마지못해 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즐겨서 하는 것과 그런데 지금 가만히 보면 애국반에서 동원시키는 개로운동은 강제적인 것보다 애국반원의 자발적인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가령 방공호를 판다든가 방공훈련을 하는 데 있어도 애국반원 한사람 한사람이 총동원해서 서로 손이 맞을 것 같으면 손쉽게 일을 할 수가 있다.
나는 이 개로운동에 대해서 내 특별한 시책이랄 것은 없으나 특별히 여성에게 한마디하고 싶은 것은 물자 생산 확충의 정신을 가지고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간에 하루에 한 시간만은 이 물자 생산 확충에 정신을 쓰는 동시에 노무를 해서 글을 쓰고 화초재배를 하고 방공호를 파고 청소를 하고 이렇게 시간을 합하여 노무를 한다면 조선여성이 천 이백만이
니 천 이백만에서 노인과 유아를 빼면 육백만은 될테니 육백만 사람이 하루 1시간씩이면 육백만 시간,육백만 시간이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시간인가.
지구의 한편 끝에서 한 편 끝을 구멍을 뚫는대도 뚫을수 있는 시간이요, 지구의 주위를 다듬질 칠 때도 능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그 전체의 시간을 생각할 때면 조금 게을러지다가도 내 한사람의 태만으로 전체를 그릇친다고 생각하고 소스라쳐 얼른나서는 것이다.
요새 그 의복을 본다면 참으로 간편한 점에 감탄을 하는데 여자애국반원의 몸빼를 예를 들어 본대도 꼭 경주장에 가장 적합할 수 있는 의복 같다.
의복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이나 장애가 없는 그 질에 있어서나 모양에 있어서나 아무튼 간편하고 쉬 더럽지 않는 그런 것이야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모로보나 원만한 개로운동이 한창 더 고조될 것을 바라는 바이다.
<출전 : 朴仁德, 「生産擴充의 精神 이것으로 일을 하라」, '春秋' 第2卷 第11號, 1941년 11월, 39~40쪽>
2) 우리도 국군의 어머니 -국군어머니의 긍지
덕화여숙장(德和女塾長) 영하인덕(永河仁德)68)
과거 반도에서는 무엇보다도 사(士, 선비)를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선비를 중심으로 하고 훌륭한 선비
68) 박인덕(朴仁德)의 창씨명.
를 내이기에 어머니 된 이나 아내 된 이들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역사나 전통을 통하여 듣건대 몹시 가난한 집 선비의 어머니나 아내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아들이나 남편의 성공을 위하여 싸웠다는 사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선비들의 뒤에는 반드시 어진 어머니나 아내가 있음을 인증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일의 반도의 어머니 되는 명예와 자랑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러한 기회를우리 황국여성들이 지금 가지게 되는 까닭입니다.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실시될 징병제를 생각할 때 우리 어머니로서는 어떠한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냐고 피차 묻게 됩니다. 첫째 우리들은 징병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징병제는 국민은 누구나 다 군인이 되어 충군애국한다는 의미입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이나 도회인이나 빈부귀천을 물론하고 앞으로는 당당한 황군이 되어 멸사봉공(滅私奉公)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국민은 군인이 된다니 그러면 여자도 총과 칼을 들고 군인이 되어 싸우게 되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여자가 총과 칼을 가지고 직접 제일선에서 싸운다함보다도 군인의 정신을 가지고 여자를 교육하며 생활함을 뜻합니다. 1944년도부터 징병제가 실시될 때에는 남자만 20세 되는 이는 그중 제일 신체가 튼튼하고 정신이 씩씩한 이들은 선발이 되어 군사훈련을 받게 될것입니다.
3년 동안 그들은 전문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군사에 관한 것 실생활에 관한 것을 공부합니다.
거기서야말로 소제(掃除)69)도 손수하고 세탁(洗濯)도 하고 밥도 지어보고 규칙적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데서 자연히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을 동정도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반도가정은 징병제도로 인하여 처음으로 이해와 동정이 있고 정돈된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기왕 맛보지 못한 새로운 가정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반도의 어머니들은 이제부터 제 각기 ‘나는 제국의 어머니다’ 하는 정신을 철저히 가져야겠습니다. 어떻게 이 정신을 가질수가 있을까요.
먼저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사는 일본여성들의 생활을 배우고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의 약사를 읽고 듣고 공부할 것이요. 이렇게 하는데서 우리의 자녀는 내 소유가 아니요, 천황폐하의 적자요, 국가에 속한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교육은 새로운 입장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천황폐하를 중심으로 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이 시작되려면 우선 생각부터 그 방면으로 돌리는 것이요 또는 천황폐하께서 쓰시는 국어70)를 우리도 한 마디 두 마디 꾸준히 배워 쓸 것입니다.
국어를 배음으로써 자연히 일본인의 정신과 생활을 본받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 반도의 어머니들은 모처럼 받은 이 군국의 어머니의 지위를 귀중히 여기고 유감없이 잘 써서 군국의 어머니다운 어머니가 됩시다.
오직 이 한 목표를 향하고 제각기 수양을 하고 훈련을 함으로써 군국의 어머니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가지시게 되는 것입니다.
<출전 : 永河仁德, 「우리도 國軍의 어머니 : 國軍어머니의 矜持」, '半島の光' 鮮文版 56號,1942년 7월, 16~17쪽>
69) 청소.
70) 일본어를 뜻함.
3) 반도 부녀자들에게도 결전동원령은 내렸다
덕화여숙장 영하인덕
오는 12월 8일로 우리는 태평양전쟁 2주년을 맞이합니다. 흉악무도한 미영(米英)에게 정의의 칼을 들고 일어서 두 돌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이 동안 우리의 황군용사들은 육지로 바다로 또는 하늘(大空)로 전고(前古)에 없는 전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고 또 져도 뒤에서 뒤에서 새 힘을 모아 가지고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돈과 풍부한 물자를 가진 미국이오, 이때까지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여온 영국입니다.
황군은 이미 서전(緖戰)에 있어 날쌔고 재빠르게 이 두 큰 적을 물리치고 동아(東亞)에서 그들의 세력을 뿌리베어 버렸으나 적은 추근 추근하게 반공을 꾀하여 솔로몬과 뉴기니아에서는 피차(彼此)에 사투가 벌어져 있습니다.
그들도 필사의 힘으로 이때까지의 패전을 회복하고자 얕볼 수 없는 세력으로 우리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때야 말로 우리 2천 5백만 반도백성들도 모두 일어나 순국의 정신을 떨쳐 일으켜 가지고 결전마당으로 뛰어나갈 때입니다.
내년부터 반도의 젊은이들도 모두 님의 방패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거니와 지난 11월 20일로 특별지원병지원도 끝마치게 되어 우리의 아들과 동생들은 나라에 바치고 나서는, 이제야말로 우리도 정말 황민된 의무를 완전히다 할 수 있어 감격이 가슴에 벅차오름을 느끼는 바입니다.
이 결전마당을 당해서 우리반도부녀자들도 다른 어떤 나라의 부녀자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군국의 여성답게 모두 다 일어서서 싸워야할 때는 바야흐로 돌아왔습니다. 벌써 여러 방면으로 싸우고 계신분도 없지 않겠지만은 반도 2천 5백만의 반을 차지한 우리 여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총동원하여 전선에 나서는 아들, 남편, 오빠의 뒤를 단단히 받혀주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그들의 뒤를 받혀줄 것입니까.
첫째 그들로 하여금 뒤 걱정이 없게 만들 것입니다. 즉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여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특별지원병에 지원한 청년들 중에는 홀어머니의 독자도 있고 또는 갓 장가든 아들도있고, 또는 가세가 넉넉지 못한 장자들도 있고, 또는 노부모의 귀한 막내둥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사정에서 지원한 이들은 지원하기 전에 ‘내가 가면 집안일을 어찌하나’ 하고 필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소극적이오, 국가를 위하여서는 그러한 적고 안이(安易)한 생각을 버리고 쾌(快)하고 선선하게 나갈 것이라고 당사자와 부형이 같이 생각하고 결정지었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나 아내된 이들은 그 용감스러운 뜻을 받들어 어디까지나 그들이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금 이때야 말로 아들과 남편이 없더라도 집안일과 밖의 일을 함께 우리 손으로 우리머리로 넉넉히 감당해 나갈 각오를 갖고 실제에 나타내는 결의를 굳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출정하는 이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각오와 결의를 할 때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떠날 것입니다.
여자는 언제나 여자의 천직이 있어서 어느 때를 물론하고 가정살림을 보살피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그 본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전시에는 그 천직 외에 남자의 일까지라도 맡아볼만한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남자들은 다 싸움터로 나간다하더라도 우리 부녀자들 손으로 나라 안을 지킬 만한 마음의 준비를 할 뿐 아니라 실제 행동에 있어서 민활하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일에 공습(空襲)을 받을 경우에 화재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불을 끄고, 또 어디가 파괴되었다면 어떻게 복구하고 또는 부상자가 생기었을 때에 치료할 순서까지도 잘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국방은 농촌이나 도시를 물론하고 우리 여성전체가 다함께 일어나서 할 일이고, 더욱 농촌부녀 되신분들은 우리 일억 국민과 황군의 식량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우리 부녀자들이 일어서서 할 일 중에도 제일 중한 것을 맡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전장(戰場)이 즉 제일선인 것임을 벌써 아실테니까 다시 말씀드릴 필요가 없고, 단지 봄에 밭 갈고 씨를 뿌릴 때로부터 가을 추수할 때까지 이때까지의 몇 배의 노력을 더 하셔서 가을의 수확이 역시 몇 배가 되도록 하십시다. ‘식량은 우리의 손으로’ 하는 크고도 굳은 결심 아래서 일을 하십시다.
그리하여 제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황군의 마음을 안위시킵시다.
다음은 각 공장으로 일하러 가십시다. 농촌의 부녀자들은 ‘식량은 우리의 손으로’ 라는 표어 밑에서 부지런히 일심전력하듯이 ‘폭탄과 탄환은 우리들 여자의 손으로’ 라는 깃발아래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가장 용감하게 일을 하십시다. 아무리 싸움을 잘 싸우는 용사라도 싸울 무기가 없이는 싸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싸울 무기는 우리들 손으로 만들어 보내십시다. 공장에도 그 종류가 여럿이 있어서 군수품공장 외에 우리들의 생활에 반듯이 있어야 할 필수품공장도 많이 있는데 어쩌든지 다 우리들의 손으로 만들 각오를 하십시다.
이렇게 남과 같이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할 만한 체력을 채 못 가진 부녀자들은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들을 도와 어린이들을 보아주십시오. 이제로부터는 각 여학교나 전문학교 여학생들은 공부보다도 실제로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쓰게 될 것입니다.
농번기에는 각 농촌으로 가서 탁아소일을 맡아보기도 하고, 도시에서는 직업여성을 위한 탁아소를 지도하게도 될 것이오, 더러는 영아건강 상담소나 해산어머니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곳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각 여학교에서 하기휴가를 이용하여 군인의 의복을 수선한 일이 많았습니다마는 앞으로는 각 여학교 학생들 뿐 만아니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일 외에 철도, 은행회사 같은데도 우리부녀자들이 책임을 지고 일할 각오와 준비를 하여야겠습니다.
독일서는 이번 독영전쟁(獨英戰爭)이 일어나면서 처음 2년 동안에 250개의 기차정거장에서 100만 명 이상의 부녀들이 역부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편물을 배달한 여자의 수도15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장차 그러한 일까지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독일 여성의 말씀이 시작 되었으니 그들의 활동을 들은 대로 여러분께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독일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처음 2개년동안에 여러 방면으로 훈련받은 여자가 1천만 명이상이 된답니다.
그 수가 우리 반도여성 전체 수에 가깝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은 수의 여자가 훈련을 받아가지고 농장, 공장, 철도, 은행, 각 회사, 탁아소로 퍼져서 봉사하는데 과연 놀라우리만치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농장에서 일한 수만 405만 명이오, 그 일한 시간 수로 말하면 1억 1천만 시간이라 합니다.
이것을 연월일로 계산하면 12557년 8월 8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직접 싸우는 군인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는 데 23만 명의 여자가 940만 시간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싸우러 나간 이들로 하여금 집안일에 대한 염려가 조금도 없이 싸움에만 힘을 쓰도록 하는 것이 이때 우리 부녀자들의 할 일인데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편과 오빠들을 따라 제일선으로 백의천사로 나아가십시다. 이번에 특별임시지원병의 지원 때에 ‘나도 오빠를 따라 적십자 간호부로 제일선에 나아가겠다’ 는 말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속마음으로 ‘나도 젊었다면’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었습니다. 한번 용기 있게 일어서십시다.
언제나 나라에서 부르실 때에는 서슴지 않고 일어서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시 거듭 말씀드립니다. 이제 전쟁은 날로 심각하여져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날로 긴장해지는 가운데 우리의 각오와 준비를 굳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제일선의 황군의 분투를 생각하고 그 빛나는 전과에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들의 아들도 이 싸움에 내보내는 광영을 참
으로 느낄진대, 우리 반도여성들도 이때까지의 마음을 한번 바꾸어먹고 다리와 발목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날 때가 아니겠습니까. 싸움터로 나가는 그들로 하여금 조금도 마음에 남김이 없도록 침착하고 미더운 태도를 가질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우리도 그들과 같이 싸우고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방호와 생산에 있는 힘을 다 기울이도록 하십시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뚫고 나가 원수의 광영의 숨통을 끊어버릴 때까지 싸워나가십시다.
<출전 : 永河仁德, 「半島 婦女子들에게도 決戰動員令은 내렸다」, '放送之友' 第6號,조선방송협회, 1943년 12월, 34~37쪽>
14. 배상하(裵相河)
1) 반도의 젊은이들에게 보낸다 -징병제도와 함께
성야상하(星野相河)71)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바다는 물의 모태가 아니던가. 그 중심이자 안주지이다.
물의 가장 큰 모습은 바다에서 비로소 볼 수 있다.
바다는 바다 자체인 동시에 세계의 모든 물의 집합 연못이기도 하다.
서쪽에서 탄생한 모든 문화는 세월과 함께 동쪽으로 흘렀다. 유교도 기독교도 불교도 일본에서 그 최대 본질을 발휘했다. 일본보다 더 동쪽에, 보다 훌륭한 유교·기독교·불교, 보다 훌륭한 그 어떤 문화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바다는 물의 중심이고 일본은 문화의 바다이다.
근세 초기부터 서양의 무력은 종종 동양을 침식했다. 아메리카의 인디언이 채찍질을 당했다.
하와이의 산호초가 무참히 뽑혔다. 필리핀인 항복했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항복했으며, 끝내 중국도 망하려고 했다. 그러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노도와 같이 진군하는 그들의 무력에도 마침내 막다른 길에 봉착했다.
거기에 일본이라는 철벽이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물의 중심이고 일본은 문화의 바다였다.
나아가 일본은 무력의 궁극지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일본은 세계의 중심이다.
황군(皇軍)은 무력의 궁극자인 동시에 또한 문화의 결정체이다.
71) 배상하(裵相河)의 창씨명.
천황의 방패는 이윽고 세계의 근위병이다. 일본의 병사는 유구한 (중략) 천황만 받든다.
알렉산더를 따라 그랑크스 호반에서 싸운 게르마니아 병사들도 용감하긴 했다. 나폴레옹과 함께 스핑크스 뒤에서 싸운 프랑스의 병사들도 용감하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은 오늘날 누굴 위해 싸우고 있을까.
알렉산더가 죽고 또 다른 알렉산더는 없었고, 나폴레옹이 죽은 뒤 더 이상 나폴레옹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병사들은 건국한 그 옛날부터 금치(金鵄)72)의 인도를 받으면서 천황 밑에서 세계의 중심인 일본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 법칙은 자손만대, 늘 변하지 않는다. 실로 일본 병사야말로 신하로서의 충성에 있어서, 병사로서의 용맹에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덕화(德和)에 있어서 세계의 중심을 짊어지고 설 수 있는 황군의 이름에 걸맞다.
이와 같이 황군의 일원으로서, 이제 반도의 젊은이들도 부름을 받고 전쟁에 나선다. 반도에서 태어난 자, 또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저 살아있는 증표가 있을 뿐이다.
위업은 진심어린 마음에 의해 성취된다. 진심은 중심이다. 팔굉일우, 내선일체, 반도에서의 징병제도와 같이 인류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위업이 세계의 중심인 일본에 의해 성취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인도에도 인도 병사가 있고, 필리핀에도 토민군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과 반도의 징병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침략국가의 침략의 도구로서 고용된 물적인 병사인 데 반해, 후자는 폐하의 적자로서 건국의 이상인 팔굉일우의 현현에 그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영혼의 영광을 짊어진 것이다.
내선일체라는 미증유의 위업을 온몸으로 쌓아올려야 하는 놀라운 금자탑이다.
전자가 총을 드는 의무 대신 먹기 위한 빵을 권리로서 요구하고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인 데 반해, 후자는 신에 의해 부여받은 일본 국가의 의무와 동시에 확고한 ‘평정’에 전력을 익찬(翼贊)하고 받들 수 있는 숭고한 권리를 함께 짊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의 병사는 실로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와 결부되어있고, 일본의 병사로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반도의 젊은이들도 향후 세계사의 재편성에 귀중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일찍이 신라에도 고구려에도 이씨조선에도 용감한 반도 병사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종일관 작은 침략과 작은 방어에 종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세계사적 세계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천황의 방패로서, 팔굉일우의 익찬자로서, 내선일체의 실천자로서 세계로 약진하는 반도의 젊은이들이여, 찬란히 영원한 영광에 빛난다.
이처럼 위대한 임무를 맡은 일본 병사는 2600년에 걸친 정신적 훈련과 육체적 단련을 거쳐 왔다.
오늘 이날 부름을 받은 반도의 젊은이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적인 정신의 훈련, 일본적인 육체의 단련, 반도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말은 이것이다.
반도의 병사들이 일본 내지에서 태어난 병사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작은 경쟁심에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폐하의 이상을 떠받들 수 있는 완전한 병사가 되기 위함이다.영광은 자네들에게 있다. 영광에 걸맞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자네들에게 있다.
(녹기 일본문화연구소원)
<출전 : 星野相河, 「半島の若人に贈る-徵兵制度と共に」, '綠旗' 第7卷 6號, 1942년 6월, 29~31쪽>
72)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나가스네히코(長髄彦)를 정벌했을 때 활에 앉아 빛을 발해 적의 눈을 멀게 하여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금빛 솔개.
2) 도의(道義)조선의 확립과 금일의 반도청년
성야상하(星野相河)
1.
어떤 사회에서도 어떤 시대에서도 어떤 방면에서도 그 추진력은 항상 청년들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오늘날 조선에 성취되어야 할 최대의 급선무, 즉 도의조선(道義朝鮮)의 확립에서도 그 추진력이 반도에서 태어난 청년 제군들 이외에는 없음을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사회 또는 국가의 추진이란 사회 또는 국가의 혁명 또는 유신을 가리킨다. 몽고의 광야에 몽골 제패가 싹트고 있을 때 칭기스칸은 청년이었다. 프랑스 혁명에, 러시아 혁명에 그 선봉에 나선 것은 모두 청년이다.
나치 독일은 히틀러유겐트에 기대고 있으며 우리 막말(幕末)의 풍운이 메이지(明治)의 유신으로까지 지양된 것도 바로 청년들에 의한 것이었다. 전쟁은 다가올 혁신을 의미한다. 과거의 모든 전쟁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대동아전쟁에서도 육탄상박(肉彈相搏)하는 불꽃은 청년에 의해 흩날리고있다.
이와 같이 사회 또는 국가가 하나의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 청년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도의조선의 확립에서 역시 반도 청년들의 힘이 최대의 추진 요소가 되어야 한다.
무릇 혁신이란 낡은 가죽부대에 새 술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파괴와 이탈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동경에 가장 늠름한 것이 청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조선이 그 낡은 껍질을 찢고 조선적인 잔재를 떨쳐서 도의조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까지 다듬어내기에는 여전히 조선적인 것을 너무나 많이 보존하고 있다. 이른바 조선의 기성층은 결코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되고, 시종일관 모두 청년 제군들 손에 의해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도의조선의 확립이란 조선의 완전한 일본적 환원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조선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다.
조선의 역사, 특히 이조 500년사를 되돌아볼 때, 오욕과 울분으로 통곡하는 것은 비단 조선인만이 아니다.
그것은 간헐적인 잠정 이외에는 모두 타국에 대한 속국인 역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손은 독사에 물리고 발은 갈충(蝎蟲)에 의해 상처받은 모습, 이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지금까지의 조선이었다.
그런데 34년 전 조선에는 아름다운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신국(神國) 일본으로의 환원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립국가인 신국 일본으로 환원되어 여기서 일찍이 맛보지 못했던 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늠름한 재출발을 한 것이다.
독사에 물린 손은 절단해야 한다. 나를 죽이고 나 이상에 도달하는 것은 도의의 아름다운 마음이다.
소(小)를 죽이고 대(大)에 사는 것은 종교의 진체(眞諦)이다. 구조선을 탈각하고 황국(皇國)에 사는 것이야말로 일본적 환원으로의 요소이고 도의조선의 핵심이며 구원받아 마땅한 조선의 단 하나의 길이기도 하다. 구(舊)조선적인 모든 잔재를 벗어던져라. 탈각의 연못에 바로 재생의 연꽃이 피고 있다.
도의조선 확립의 추진력이 되어 마땅한 반도의 청년들에게 내가 첫째로 요청하고 싶은 점은 ‘구조선적 잔재로부터의 탈각’이다.
그리고 조선적 잔재란 자네들 주위에 있는 모든 구체제를 가리킨다.
3.
‘구조선적인 잔재로부터의 탈각’은 모든 감상을 거부하는, 오직 ‘늠름한 의지만’ 요청한다. 일본인이 되려는 의지이다.
오직 이 의지에만 위대한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선적인 것의 탈각은 어쩌면 조선인으로서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환경에서 일본인이 되려는 노력은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픔과 고통도 요컨대 조선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장맛비에 젖은 옷깃, 아침 얼굴에 깃든 이슬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자네들의 심장이 계속 울리고 있는 동안, 자네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동안, 오로지 늠름한 의지로만 살아가자고 있는 힘껏 외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네들이, 자네들의 아이가, 손자가 신민(臣民)으로서의 생활을 향유할 수 있다.
신민으로서의 이런 생활이야말로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낳는 원천이다. 오직 거기서만 위대한 희망의 길이 열린다.
때로는 항간에 일본 내지와 조선의 차별에 대한 불평을 듣는다. 불평은 감상의 자식이다.
늠름한 의지로만 살아가는 자네들은 모든 불평에 귀를 닫아야 한다. 자네들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를 건너는 바람,
세속의 목소리에 현혹되기에는 너무나 맑다.
일본인이 되려는 자네들의 정진이 아무리 열렬해도 국어 사용법, 일본적인 예의작법에 여전히 불충분한 점이 있다는 것은 과도기인 오늘날 필연적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 내지와 조선 간에는 그에 상응하는 구별이 있다는 것도 차별이 아니라 필연적인 과도기적 등차(等差)에 지나지 않는다.
자네들의 일본인적 노력이 결실을 볼 때, 이러한 차등도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함부로 불평하는 목소리는 일본인적 의지의 결핍, 일본인적 노력의 불비에서 생긴다. 철 이상의 강인한 의지가 맥진(驀進)할때, 이윽고 도달할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 무슨 등차가 있겠는가.
4.
‘구조선적 잔재로부터의 탈각’과 ‘늠름한 일본인적 의지’를 지닌 반도의 청년들에게는 셋째로 ‘묵묵한실행’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는 ‘논리를 따지지 말고 나아가자’라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논리는 있어도 그 논리를 초월해서 한다는 의미이다. 무릇 논리가 없는 실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묵묵히 실행’이란 ‘불언(不言)의 실행’을 의미한다.
도의조선의 확립이 조선인이 살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데, 이것과 대동아전쟁은 불가분의 인과관계로 결부되어 있다. 즉 도의조선의 확립으로 대동아전쟁의 승리가 촉진되는 것이다.
서남태평양에 황군이 고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적보다 뛰어난 물자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임은 신문에도 보도되었는데, 오늘날의 반도 청년은 오로지 묵묵히 행하고, 그리고 적보다 뛰어난 물자 이상의 힘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때에 반도에 대한 적국의 음모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히 오늘날 반도의 청년도 바다와 육지와 하늘에 부름을 받고 간다.
유대의 괴뢰 따위가 어쨌단 말이냐.
앵글로색슨의 물자가 어쨌단 말이냐. 신국 일본을 짊어진 반도 건아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의 용자(勇者)가 여기에 있다. 진지의 북소리가 들린다. 환호소리가 들린다. 자네들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는 혼백이 지켜주고 있다.
나서자. 싸우자. 아시아의 일본이 유대의 숨통을 끊을 때까지…….
바라건대 반도의 청년들이여!
도의조선의 확립을 품고 묵묵히 일어나라!
대동아전쟁에 신성한 피를 흘려라. 이 피가 세기의 역사에 도도히 흘러가도록.
‘구조선적 잔재로부터의 탈각’
‘늠름한 일본적 의지’
‘묵묵한 실행’
이상의 전제에서
‘도의조선은 반도 청년들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결론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녹기 일본문화연구소원)
<출전 : 星野相河, 「道義朝鮮の確立と今日の半島靑年」, '綠旗' 第8卷 10號, 1943년 10월, 28~29쪽>
15. 서춘(徐椿)
1) 반도청년이여 분기하라
참사 서춘
반도청년 제군들, 나는 잠시 내 소신을 말하고 제군들의 심금에 어떤 울림을 줄지 살펴보고자 한다.
제군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전도에 빛나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나 또한 제군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에 제군들의 그러한 심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제군들이 무엇을 위해 그러한 푸념을 늘어놓는지 잘 알고 있다.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군들을 더욱 격분케 하는 자극제는 되지만 제군들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쇠가 연마를 거쳐 칼이 되는 것처럼, 인생은 간난(艱難)을 거쳐 위대해지는 법이다.
따뜻한 옷과 포식·편안함에 안주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아무런 기여하는 바가 없는 자는 그 사람 자신에게는 수치이고 국가와 사회의 독이다. 인생은 현재 놓여 있는 환경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늘 더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그들 앞에 펼쳐져 있는 작은 장벽에 져서는 안 된다.
아니, 그 장벽이 아무리 크다 해도 거기에 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난관에 부딪쳐도 능히 그 간난과 곤고(困苦)를 통해, 그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그 자신의 ‘보다 나은 광명으로
향한 길’을 발견하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
얕은 물은 안전이긴 하다. 그러나 수영을 할 수는 없다. 깊은 물은 빠질 위험이 있다.
그 대신 이를 이겨내면 수영을 잘 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람은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함은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고난이 그대를 옥으로 만든다 함도 이를 가리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인이라는 위인은 모두 역경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론 역경에 처한 자가 모두 위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위인이 나오면 ‘반드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역경에 처한 자들 중에서 나왔다.
이를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역사를 읽어보라. 또 위인의 전기를 읽어보라.
나는 잠시 이 진리를 예증하는 의미에서 맹자를 인용하도록 한다.
맹자 왈, 순은 밭에서 기용되었고, 전열은 성벽 쌓는 틈에서 등용되었고, 교격은 생선과 소금파는 데서 등용되었고, 관이오는 옥에서 등용되었고, 손숙오는 바닷가에서 등용되었고, 백리해는 시정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큰일을 맡기는 명을 내리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히고 그들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서 그들이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드는데,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자기의 성질을 참아서 그들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주
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과오를 저지르고 난 후에야 고칠 수 있고 마음속으로 번민하고 생각으로 달아보고 난 후에야 행하고, 안색으로 나타내고 음성으로 발하고 난 후에야 안다.
들어가면 법도 있는 세가와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가면 적국과 외부에서의 우환이 없다면 그런 나라는 언제나 멸망한다. 그렇게 되고 난 후에야 후환에 살고 안락에 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읽고 전체 문장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지는 못해도 대략 그 의미하는 바의 요점은 알 수 있을것이다.
순(舜)·전열(傳說)·교격(膠鬲)·관이오(管夷吾)·손숙오(孫叔敖)·백리해(百里奚)는 고대 중국의 위인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인 인류의 은인이다.
그런데 그 6명은 한 명도 예외가 없이 미천한 데서 나왔다.
순은 백성, 전열은 토공, 교격은 생선장수, 관이오는 죄수, 손숙오는 어부, 백리해는 서민이었다. 이러한 미천한 지위에서 모든 간난과 고통을 맛보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그 덕분에 일국의 제왕이 되기도 하고 일국의 수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맹자의 간난·곤고에 대한 견해이다.
즉 맹자의 문장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역경에 처하게 된 것은 우연도 아니고 하늘의 악의로 그렇게 된것도 아니다.
바로 하늘의 호의로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식의 견해이다.
대장장이가 쇠를 용해로에 넣어 달군 뒤 이를 집게로 집고 쇠망치로 두드리는 것은 쇠를 증오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쇠를 일본도로 위대하게 만들려는 호의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대장장이는 쇠의 장래를 위해 비록 쇠에게는 일시적인 불편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이를 용해로에 넣어 쇠망치로 두드리는 것이다. 하늘은 그 사람의 장래를 위해 그를 먼서 역경에 처하게 하고 심지를 괴롭히고 근골을 피로하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용해로와 쇠망치를 거치지 않고 일본도가 된 쇠는 없다. 간난과 곤고를 맛보지 않고 위대해진 사람은 없다.
이는 맹자의 위대한 발견이다.
인생에서 역경은 불행이 아니라 실로 하늘의 특별한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역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에 크게 감사해야 한다.
인생은 간난과 고통, 곤고와 결핍에 놓여야 비로소 원하는 바가 있고, 원하는 바가 있어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생각을 해야 비로소 발분하고, 발분한 뒤 행할 것이 있으며, 행하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실패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경험을 쌓고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성공의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다.
수학에서는 ‘제로’는 몇 만개 더해도 ‘제로’일 뿐이지만, 우리 인간의 경우에는 실패는 여러 번 반복하는 가운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에 도달한다.
따라서 먹고 입고 사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부자유가 없는 사람들 속에서는 좀처럼 위인이 나오지 않는다.
저 열대지방에 있는 토인들 중에서 위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전혀 의식주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도 부잣집 자식이라든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자식이라는 사람들은 의식주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위환경이란 열대지방을 연장시킨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는 ‘절대’라고 해도 될 만큼 위대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잠시 생각해보라. 만약 저 나폴레옹이 처음부터 부유했다면 유럽 전체를 전율케 할 정도의 위인이 되었을까?
또 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처음부터 풍요로운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위대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에서 역경은 비관의 씨앗이 아니라 낙관의 씨앗이다. 왜냐하면 역경에 처함으로써 적어도 장래 위대해질 수 있는 소질, 아니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자가 모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한 자에게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자격은 있다.
그 자격을 활용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격을 활용한 자는 고등학교·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경을 활용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 역경을 활용하면 그는 국가의 충신이 되고 인류의 은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역경에 처해 이를 비관하고 의기소침해져서 자포자기에 빠지는 자는 언급할 만한 가치도 없는 인간쓰레기이다.
지금까지 말한 바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했겠지만, 위인은 ‘역경에서도’가 아니라 ‘역경에서만’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부유한 자제들로부터는 ‘얼간이(凡藏)’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유한 자제들이 얼간이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는 그 지위를 버리고 주위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역사상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보라, 저 석가는 왕태자로서 태어났다. 그는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위대해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지옥에 가는 길은 넓고 천당으로 통한 길은 좁아서, 만약 석가가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그는 현재 걸어가고 있는 그 평평하고 넓은 길을 버려야 했다.
그래서 단호하게 왕태자 지위를 버리고 심산계곡에 들어가 6년이라는 세월 동안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처절하게 맛보았다.
그 결과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역경에 처하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불행 중 최대불행이다.
따라서 저 알렉산더 대왕은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자신의 부친이 사방팔방을 정복하러 다니는 것을보고 무슨 말을 했던가?
우리 아버지가 혼자서 천하를 다 정복해 버리면 내가 할 일은 없을 텐데라며 한탄하고 너무 걱정한 나머지 졸도했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남자로 태어나 이와 같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은 역경에 처해 이를 활용하고 개척하는 것은 궁리하지 않고 자신을 비하하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의 모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기회이다. 계기이다.
저 순이 일개 백성에서 제왕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요(堯)라는 현군을 만난다는 계기가 필요했다.
저관이오가 일국의 재상이 되기 위해서는 환공(桓公)의 발탁이 필요했다.
이와 같이 역경에 처한다는 것과 기회를 얻는다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진 후 각자의 강한 정열과 곧은 결심만 있으면 반드시 위대해질 수 있다.
반도청년 제군들, 제군들에게는 지금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내선일체(內鮮一體)가 바로 제군들의절호의 기회이다.
제국의 비상시가 바로 제군들에게 두 번 다시없을 기회이다.
이 기회와 계기를 꽉 붙잡아 용감히 나아가 자신이 희망하는 신천지를 자신의 손으로 개척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물론 내선일체는 30년 전부터 있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나미(南) 총독에 의해 이것이 정식으로 표방되기까지는 분명치 않은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 표방에 의해 우리에게 황국신민이 될 수 있는 문호가 열린 것이다.
이는 제군들에게 무한한 영광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된다는 것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의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1) 천황(大君)을 위해 태어나
2) 천황을 위해 일하고
3) 천황을 위해 죽는다
라는 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자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될 수 없다.
그 대신 이러한 정신을 갖고 진정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된 자에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천지가 그의 앞에 펼쳐지게 된다. 즉 우리는, 또 우리 자손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됨으로써,
1)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을 미래 영구히 받들 수 있다.
2) 망하는 것을 모르는 나라의 국민이 된다.
3)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이상을 각자의 이상으로 삼을 수 있다.
4) 자연사(自然死) 외에 인간사(人間死)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인간사라는 것은 천황을 위해,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따라서 세계적 위인이 될 수 있는 문호가 열리게 된다.
등등의 영광을 입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신을 갖고 대일본제국의 진정한 신민이 되어 영광을 입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청년 제군들이다.
강한 열의를 갖고 굳은 신념으로 불굴의 결의를 가질 수 있는 청년 제군들이다.
제군들 외에는 있을 수 없다.
제군들은 모름지기 자중하고 마음을 다잡아 결의하고 용맹하게 전진하여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를 위해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해 받들고, 팔굉일우의 대이상의 실현을 향해 모든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위대한 사람이 되라. 우리 일본의 야마토 다마시(大和魂)73)에서 보자면 천황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은 신자(臣子) 된 자의 본분인 동시에 죽는 그 사람에게는 무한한 행복이다.
(중략)
이상은 일본정신 또는 야마토 다마시의 정수를 노래한 것이다.
읽고 그 의미를 알고 또 이를 체득하고 실행하면 그때부터 제군들은 진정한 일본인이 된 것이다. 그
런데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청년 제군들이다.
청년 제군들 외에는 없다. 그래서 국가는 청년 제군들을 중히 여겨 제군들에게 나라의 장래를 부탁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년은 한나라의 거울이다. “그 나라의 청년을 보여주면 그 나라의 장래를 점칠 수 있다”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니, 단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청년에게 국가의 장래를 담당시키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은 청년만능시대이다.
잠시 독일의 예를 살펴보자.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장래의 독일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청년 제군들에게서 찾는다.
우리가 미래의독일이 동경하고 또 기대하는 것을 제군들이 관철시켜야 한다.
만약 우리가 강대한 독일을 바란다면 먼저 제군들이 강대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힘있는 독일을 욕구한다면 먼저 제군들이 유력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명예로운 독일을 희망한다면 먼저 제군들이 그 명예의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질서 있는 독일을 눈앞에서 보고 싶다면 먼저 제군들이 질서의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다시 저 충성스러운 독일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먼저 제군들 스스로 충성을 배워야 한다.
이 나라의 그 어떠한 덕행이라 해도 제군들 자신들에 의해 먼저 실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힘이라 해도 제군들 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떠한 위대함이라 해도 제군들의 단련 속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군들은 미래의 독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군들에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이 독일이 훗날 있을 수 있도록, 또 있어야만 하도록 제군들이 있어주기를 요구해마지 않는다.
우리 일본과 독일은 국가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다시 저 충성스러운 독일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운운” 같은 것은 일본에는 맞지 않다. 절대 맞지 않다. 그러나 진리에 두 가지는 없는 법이다.
이 중에서
맞지 않는 것만을 떼어낸 뒤 ‘독일’이라는 글자 대시 ‘일본’이라고 넣어 읽어보면 청년 제군들을 크게 발분케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나는 대일본청년단 이사 오쿠무라 요시카즈(奧村喜和) 씨가 저술한 '세계사의 전환과일본청년의 신념'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도록 하자. 그는,
73) 일본 혼.
그리고 이러한 신질서 건설의 혈전에서 전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우리 청년 이외에는 절대 있을수 없다.
청년이야말로 이 세계유신전(世界維新戰)에서의 결사대이다.
순진하고 감격 넘치는 일본청년의 궐기 없이는 결코 이 신질서를 건설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함부로 기성 대가, 기성 명사에게 의지하는것을 멈추도록 하자.
삶을 사리사욕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씨에 감동해서 일하고 용약(勇躍)해서 생(生)을 버리고 의(義)를 취하는 것은 오직 청년의 순정뿐이다. 일어나서는 만타(萬朶)의 벚꽃이 되고, 응고되어서는 백련(百鍊)의 쇠가 된다. 청년 대중이야말로 조국 일본의 친위대이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 스스로 진정 순화(醇化)되어 야마토 마음과 조국애가 그 정치를 쇄신하고 그 경제를 재건할 때에야말로 진정한 협동과 정의와 진보가 지배하는 동아협동체가 건설된다. 일어나라! 그리고 일본청년의 기개를 세계에 현시하라.
(1939년 9월 15일 오후 8시 각필(櫊筆))
<출전 : 徐椿, 「半島靑年よ奮起せよ」, '總動員' 第1卷 第5號, 1939년 10월, 36~40쪽>
2) 징병제 실시와 반도인의 감격
대동아전쟁 개시 이래 반년이 지나면서 황군(皇軍)은 육지와 바다와 하늘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반(反)주축국 진영은 적막하고 소리 없는 오늘날, 지난 5월 8일의 각료회의에서 반도 동포에 대해 징병제를 시행하고 1944년부터 징병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결정을 내린 일은 반도 통치에 있어서 획기적인 성사(盛事)이고, 반도 동포로서는 국방의 중책을 똑같이 짊어져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건설의 성업에 참가하는 길이 열렸다는 데 무한한 영광과 명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정 33년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반도 동포에게 이 영광을 베풀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건군의 본의에서 보건대 참으로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이며, 특히 대동아신질서가 성취되려고 하는 이때, 이런 영광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반도에서 태어난 민초들은 크나큰 성은에 그저 감격할 수밖에 없다.
이와 동시에 반도 동포가 역대 총독의 지도로 능히 황국신민으로서 연성(鍊成)해온 지금, 일본 내지의 동포와 함께
군국(君國)의 중책을 맡을 수 있게 된 사실을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반도 동포가 33년 전의 병합 이후 글자 그대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실천에 철저히 임했다는 점, 1938년 지원병제도가 창시된 이래 매년 양호한 성적을 올려 ‘반도인(半島人)’74) 청년층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가장 든든한 모습이
실증되었다는 점, 또 근래 10년 동안 만주사변과 ‘지나사변(支那事變)’75)을 거쳐 대동아전쟁으로 이행되
74) 조선인.
75) 중일전쟁.
는 동안 반도 동포는 그 현시(顯示)한 애국의 적성(赤誠)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일본 내지인 동포와 함께 일신을 군국에 바쳐 명실 공히 황국신민으로서 봉공의 지성을 다하려는 기운이 팽배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 보답을 받아 마침내 반도에서 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 반도 동포가 더할 나위 없이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는 병역의무의 분담으로 명실 공히 동아의 지도자인 우위를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더 없이 기쁜 것은 반도에 징병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반도 동포에 대해 당국이 확신을 갖고 절대적인 신뢰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책을 맡았을 때만큼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은 없다.
지금 반도동포의 기쁨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렇다면 이러한 큰 영단(英斷)과 이 만큼의 신뢰를 받은 이상 꼭 그 기대와 신뢰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영광에 대해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우선 반도의 모든 청년들이 강인한 황군의 일원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는 일이다. 일본 내지인과 다름없는 정예 병사가 되기 위해서는 물론 체력도 필요하고 기술적 요소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본을 이루는 것은 체력이나 기술보다 정신이다.
일본의 병사가 강한 까닭은 결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3000년 동안 키워온 일본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신의 진수는 1882년 1월 4일 군인에게 내리신 충절·예의·무용·신의·검소라는 5개조 성유(聖諭) 안에도 있다. 그것은 곧 멸사봉공·진충보국의 정신이고, 난코(楠公)76)의 칠생토적(七生討賊)77)의 정신이며, 생사를 초월한 9군신(軍神)의 정신이다.
그야말로 “바다에 가면 물에 잠긴 시체, 산에 가면 풀이 자란 시체”의 정신이 있기에 “천황을 위해 무엇이 아깝겠는가. 젊은 벚꽃, 떨어져야 보람이 있는 목숨이기에”라는 정열과 각오가 있기에 영국·미국의 3만여 척의 전함도 바다 밑에 가라앉게 되고, ‘싱가폴’·‘코레히도르’의 요새도 갑옷 소매만 약간스쳐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 같았다.
따라서 반도 청년은 이 일본정신을 체득해서 천황귀일의 대신념을 키우고 늘 목숨을 천황에게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싸움에 임해서는 충성용맹한 병사가 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서 생활적 환경의 일본화가 필요하다.
즉 가정의 강화·사회의 견실화가 있어야만 비로소 유용한 재목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가정에서 모친의 감화와 훈육의 힘이 크게 필요하다.
그만큼 모친의 책임은 중하고 영웅호걸은 선천적인 것이지만 군신은 모친에 의해 만들어진다.
황국의 어머니 없이 황국의 건강한 병사는 있을 수 없다.
하물며 군신이 태어날리 만무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모친의 교육·여성의 연성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반도 부인이 지덕체를 겸비한 강한 군국의 모성을 갖추기 위해 수양해야 할 시기이다.
또한 일반 사회인들도 이를 돕고 육성시키는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어’78)의 습득에도 한층 더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개병(國民皆兵)이 된 이상 국어의 능통·미숙을 불문하고 징병 적령자는 모두 병사가 된다.
하지만 국어를 충분히 습득함으로써 일본적 정신·일본적 감정도 체득할 수 있으며, 또 대동아공영권의 지도자인 이상 국어를 몰라서는 도저히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나아가 부름을 받고 입영했을
76)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 ?~1336).
77)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한 말인 ‘칠생보국(七生報國)’을 의미한다. 즉 일곱 번(영원히) 다시 태어나서 나라에보답하겠다는 의미로, 여기서는 다시 태어나 적을 무찌르겠다는 뜻으로 사용.
78) 일본어.
때에도 국어를 모르고서는 충분한 봉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지나면 신체제 아래 황군의 일원이 되는 영광을 짊어지게 될 청소년은 물론이고 관민 각 계층의 지도자들이나 학교·단체 등이 일체가 되어 최단기간에 청소년의 정신수련·국어 습득에 전력을 기울여 이 중대한 책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1942년 7월 13일 각필(櫊筆))
<출전 : 徐椿, 「徵兵制實施と半島人の感激」, '朝鮮' 第326號, 1942년 7월, 55~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