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살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살을 하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오죽하면 죽었을까 하는 동정반응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누가 그 사람을 자살하게끔 만들었을까 하면서
자살원인 제공자를 찾아 비난을 퍼붓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사회의 이런 일반적 반응과는 사뭇 다르게
자살문제를 다룹니다.
자살원인 제공자가 아닌 자살자 자신을 엄하게 다루어서
자살행위 자체가 대죄라고 규정하고 장례미사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의 제자였다가
주님을 팔아넘기고 자살한 유다의 전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유다의 자살이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은
교만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
자살행위에 대하여 동정하지 않는 종교적 관습이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어쨌건 간혹 자살자의 유족들이 장례미사를 거절당하고
속상한 마음에 냉담자가 되는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심리학자들 중에서도 자살반대론자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입니다.
빅터 프랭클은 자살하는 사람들은
'자기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데,
이것은 '인생은 끝날 때까지 의미가 있다'는 인생의 룰을 위반하는 행위이기에
절대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지상이나 세간에서는 자살의 원인을 대개 외부 원인에서 찾습니다.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열악한 환경 요인이 자살의 원인이란 것인데,
물론 그런 것들이 일부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직접적 원인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즉, 내적 요인이 주원인이란 것인데,
열악한 환경조건을 이겨낼 만한 의지와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
자기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bumper)가 결여된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으로 인하여 야기된 ‘급성정신질환’에 의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심리적 충격을 받아 내고 견뎌 낼 만한 완충장치가 결여된 것인가?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직선적 사고방식과 복안적 사고방식,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직선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란?
A는 A이고 B는 B지, A가 B가 될 수 없고 B가 A가 될 수 없다는
아주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상황이 순조로울 때는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하고 인정받고 승진합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수세에 몰리거나, 상황이 복잡해지고 갈등이 심해지면
쉽게 취약점을 드러내고 자멸하는 단선적 사고방식입니다.
이에 반해,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A는 A이지만 때로는 B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도 외적 충격을 원만하게 흡수하여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생활태도를 가집니다.
또 혼자 책임지지 않고 부담을 나누어서,
늘 태도가 유연하고 탄력성이 있어서 원만하게 사태를 수습할 줄 알고
부드럽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
상황에 따라 걷는 속도를 바꿀 줄 아는 사람,
숨 돌리기에 능숙한 사람,
이런 사람을 복안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선적 사고방식을 복안적 사고방식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자기 자신에게 가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쫓기듯이 살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이처럼 불안하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가면,
천천히 가도 되는데도 불안한 마음에 밥을 먹다 말고 같이 뛰어가는 사람과 같아서
자기 인생의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늘 허덕이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숨가쁘게 뛰다가도 가끔씩은 '내가 왜 이렇게 뛰어야 하지?
꼭 이렇게 뛰어야 되나?'하는 질문을 해서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마음놓고 보낼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노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직선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엔진이 열을 받아 멈추기 직전인데도 달리는 사람들 같아서,
과부하가 걸린 뇌를 식혀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냥 멍하니 늘어지게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자기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
리고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생긴 증상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피곤하면 재워 주고 아프면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만약 자기 몸을 잘 돌보지 않으면 문제가 누적되어 큰 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추천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칼 로저스는 말하길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는 약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아주 꾸밈없이 토로하자.
사소한 체면이나 자존심에 구애될 필요는 없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일찍 약점을 토로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 넘기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실제 로저스는 힘겨울 때 자신보다 일천한 수준의 사람에게 상담으로 도움을 받아서
자기 문제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가끔 '세상에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하면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티내지 않고 혼자 감당해 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똑똑하나, 자기 수명을 단축하는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천당문 옆에 성형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생긴 슬픈 이야기 하나.
하느님께서 오랜 고민 끝에 자살한 영혼에게도 구원을 주려고
특별면담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첫 번째 자살자가 나왔는데, 허리와 머리가 붙어 있어서 “왜 그러냐?” 물으시니
세상이 악하고 범죄 천지인지라,
까마귀처럼 사느니 학처럼 살고 싶어 아파트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더니
이렇게 묵사발이 되었노라 하고는
갑자기 하느님께 삿대질을 하면서
“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 하나 바로 못 잡느냐. 무능한 하느님은 물러가라.”하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그 영혼을 천당집시법 위반으로 천당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얼굴이 피떡이 된 웬 여인이 나왔는데,
남편하고 차 타고 가다가 부부싸움을 했는데
홧김에 차에서 뛰어내릴 때 얼굴이 먼저 땅바닥에 닿는 바람에
얼굴 가죽이 벗겨졌다고 하면서,
죽일 놈은 남편인데 자기가 죽었다고 대성통곡하더니
갑자기 하느님의 수염을 움켜쥐고는 "내 인생 돌려도"하는 바람에
제자들이 간신히 떼어 내어 노인폭행죄로 천당 감옥행.
세 번째는 목매달아 죽어서 목이 가늘어 말도 못하는 자살자 영혼이 나오더니,
자기가 열심히 일했는데 승진은 다른 놈이 해서
홧김에 회사 문에 목매달아 죽었노라 하면서,
내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었냐고
자기가 목매단 돌을 갑자기 하느님 목에 걸려고 하는 바람에
천당 감옥 3번 죄수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하느님께서 자살자 영혼이라면 자다가도 놀라셔서
하는 수 없이 베드로 사도가 천당 열쇠구멍으로 외모를 본 후 영혼들을 받아들이자,
원래 흉하게 생긴 영혼들까지 못 들어가는 일들이 빈번히 생기는 바람에
천당문 옆에 성형외과가 생겨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
사람이 살다 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방안에 콕 들어박혀서 전화도 안 받고 이메일도 끊어 버리면
찾아오는 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마귀들은 이런 사람들의 귀에다 대고
‘살면 뭐하니? 차라리 쥐약 먹고 확 죽어 버려.’라고 속삭입니다.
이럴 때는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탄아, 물러가!’ 소리치고,
세수하고 새 옷 입고 친구들을 만나 실컷 수다를 떠시거나,
햇빛이 환한 양지바른 데서 해바라기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다 좋은 날이 오겠지’하고 평안하게 묵주기도라도 하시면
반드시 좋은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아 ~멘.
아멘!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