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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400년전 경주판 '광화문 광장' 황룡사 앞에서 찾았다..7600평 규모, 월지까지 이어져
https://news.v.daum.net/v/20200722092718659
신라시대 최대의 사찰이던 경주 황룡사터 남쪽에 광화문 광장에 버금가는 대규모 ‘광장’이 존재했다는 조사성과가 정리되어 발표됐다.
이 광장은 담장과 함께 황룡사에서 동궁 및 월지 방향으로 500m 가량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동궁 및 월지(서쪽)와 명활산성(동쪽)까지 동서로 이어지는 도로의 존재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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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연구원은 22일 정리된 논문(‘황룡사 남쪽광장과 도시유적 조사성과’)에서 “맨먼저 조성된 광장의 배수로를 채운 유물 중에 ‘의봉 4년명’ 기와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의봉’은 당나라 고종(재위 649~683)의 9번째 연호(676~679년)이며, 따라서 ‘의봉4년’은 679년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광장의 첫번째 조성시기는 늦어도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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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윤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팀장은 “광장의 규모는 1300~1400년 전의 경주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규모”라고 설명했다.
물론 신라인들이 이 넓은 광장에서 무엇을 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라벌에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寺寺星張 塔塔雁行)”(<삼국유사>‘원조흥법염초멸신’)는 기록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521년) 불교를 수용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에서 꽃을 피워 신라에서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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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경주 황룡사터 발굴된 광장 배수로 기와에 당나라 고종의 연호가 발견
인향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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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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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중국에서 훈민정음의 정본이 나와야 하는데
중국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단 얘기는 없을 까요.
경상도에만 그런게 나온다는 게 이상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