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나가다보면,논길 중간쯤에서 간혹 일용이엄마를 만난다.
관절때문에 지팡이집고 시내볼일 보러 다니는데, 젊은이들이 20분이면 걸어갈길을
2시간 이상 걸어서 시장을 보거나 볼일을 본다.차에 태워드리는날엔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한다.
딸둘은 미국에서 살고 아들은 사업을하다 부도가나서 이혼후엔, 일용직 노가다를 다니는데 나이도 많고
벌이가 시답잖아서 일용엄마가 품팔아서 손주 손녀를 키웠다.동네가 낙후되다보니 일용이도 손주들도
모두 떠나고 혼자산게 20년이 넘었다.어머니와 친구로 지내는데 갑장친구가 셋이다.
젊어서는 미모가 대단했을것 같은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항상 예의바르고 아랫사람들에게도 절대 하대를 하지 않던분이다.그렇게 관절을 앓으면서도
굳굳하시더니 몇년전부턴 거동이 힘들어서 방에서 기어다니며 제우 연명을 한다고..
어머니는 밥먹을때마다 안됐다고 말을한다.미국에 있는 딸들도 용돈을 제대로 안주는지
사는게 참 곤궁하다고 한다.
며칠전 일용이 엄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하더니 통장이 일용이한테 전화를해서
홍천 요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그 소식을 전하면서 어머니는 병문안을 가봤으면 좋겠는데..하며 내 눈치를 본다.
동내에서 문안 가실분이 몇분되는지 알아보고 모셔다 드린다고 했다.말끝에, 며칠전 다녀온.. 청주 요양병원에 오년째
계신 장모님을 떠올려본다.오년전 명절날 우리부부와 아침밥을 드시다말고 옆으로 쓰러졌다. 제우 일어나시더니 그때부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처남들에게 전화하고,엄마...엄마..부르짖는 집사람한텐 괜잖을거야.위로하며,그렇게 시작된
요양병원.당시 병원에선 준비하라며 최후의 통첩을 했지만 장모님은 병원내 간병인들의 친절과 위생적인 시설로 인해
오년전보다 지금 오히려 더 건강하시다.
그래선지,어머니에게도 수시로 말씀드렸다.
'엄마.정신 놓으면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모실테니 그렇게 알아.'
그탓인지,어머니는 장모님 계신 요양병원을 가보고 싶어 하셨다.
겉으론 병문안 한번 해야된다고 하지만,자신이 가야될지도 모를 그곳을 엿보고 싶으셨을테지.
한번 모시고 간다는것이 뜻대로 되지않았다.그러던 차에 일용이 엄마가 요양원에 입원했다니
가보고 싶으신게다.요양원과 요양병원은 다르지만 차후에 어머니에게 설명드리면 될것이고 가실분들 알아보라고 했는데,
어제 운명하셨단다.옮겨간지 이틀만에..그렇게 쉽게 운명하셨다면 이곳에서 사는동안 이미 죽어있던 목숨이 아니었을까./
우리세대가 그날이 오면 어떤시설로 가야할까.?
장모님 병원비는 다섯이 분담하니 부담이 적지만 우리처럼 하나,둘밖에 없고 그나마 자식들이 여유가 없다면
어찌될까/치매걸린 노인을 봉양하는건 아무나 할수가 없다.시대가 책임져주지 않으면 가정파탄이 날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 방에는 좌변기가 있다.관절수술후 재래식 변기사용이 불편해서다.지척에 변소를 두고도,간혹 이불에서
미쳐 나오질 못해 실레를 한다.자식들한테 들킬까봐 혼자서 마음만 급하게 치우려 하지만,휴지 한두루마기 다쓰고도
사방에 덧칠만 한다.그럴때마다 집사람은 말없이 치우는데,저일만큼은..내가 하는게 맞다싶어서 치워도보지만 코를
막아도 울컥 올라오는 토질을 멈출수 없다.그럴때면 어머니는 늙은게 서럽다는듯 눈물을 흘리며 '이젠 죽어야지'를 연발하신다.
그러고보니 일용엄마와 울엄니가 사귄지 30년전 내 나이때다.
동네잔치 쫓아다니며 춤자락에 노랫소리가 좋으셨던 분인데..
내마음은 아직도 그시절에 머물고 있는데 누가 저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도 그렇게 살면서 늙어갈텐데..저렇게, 안타까운 모습이 내모습이 아니라고 우길수도 없고,.
혹시..나도.. 누구처럼.. ..똥누면서 휴지부터 갖다대는 날이 온다면...(ㅡ..ㅡ)
첫댓글 아프신 그마음 어찌 위로하리요. 우리세대 똑같은 걱정 어찌 아니오리까! 어차피 왔던길 다시 돌아 가는길에, 고집피우고 때쓰다 기저귀 차는 옛시절을 차례로 되집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으오리까?
실화로 경상도 안동에서는 농사일 나간사이에 치매걸린 시어머니가 갖난손주를 곰국을 끓였다더군요.또,어느분은,치매걸린 시어머니가 아들을 시아버지로 착각을 하곤 자기신랑을 뺏어간년이라며..머리채를 매일 잡히고 그나마 방에서까지 신랑을 뺏길래 요양원으로 모셨다는..치매에 대한 사건이 한둘이겠슴니까.어느날 예고하고 찾아오는것도 아니고,ㅎㅎ
휴~세월을거슬러갈수없으니,누구에게나닥치는일이며,얼마후우리모습지요...우리가한만큼은아닐지라도,내몰라하진않을것같은생각은하는데...우리큰딸애는,엄마고스톱배우라하네요,치매예방된다고,,,왔던본향으로되돌아가는길서러운지고~!
조만간에 치매 치료약이 개발될거 같슴니다. 그때가면 120세까진 살아야 될텐데..고스톱 치시면 무조건 따십시요.그리고 저금 하십시요.노후에 맛있는 안주가 떨어지면 안되니까요.ㅎㅎ
거...참 제가 겪었던 것과 너무나 비슷해서 ..어머니 대소변..사방군데를 뭉개놔 그 토질을 느껴 본사람이나 알지 모를 일인데...첨엔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구분 못해 집 가까운데다 모셨다가...요양병원으로...그 요양병원이 문을 닫으니 딴 요양병원으로...전남대 병원에 수시로 모시고 다니는일...밑으로 동생놈들이 3녀석들이나 있는데...이놈들은 정년이 많이 남았느니 어쩌니 하면서 모두 내 책임이니..제수씨고 뭐고 며칠전엔 전원 소집령을 내려 늦께 와서 작살을 낸적이 있습니다. 참 노인들 문제 큰 일이고 우리들 자신도 늘 건강하게 살다 가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동생분들이 형님의 수고와 고마움을 아시는군요.저는 차남이면서 결혼후 게속 어머니와 살았슴니다.부부가 새벽부터 장사를 하다보니 아이는 엄니가 키워 주셨지요.그래선지 집사람은 엄니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도 우리 힘들때 애 키워주신거 고맙다고 어머니는 우리말고 다른 형제들하곤 못사실거라고 말함니다.제 입장에서 조금 아쉽다면..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일년에 한두번 오는거 빠지지 않고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지요.소집령까지 내리시고.ㅎㅎ 저는 형님이 해야되는데..
네...어머니를 우리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겨 모시는 날...전 형제들을 다 오게 하는것은 당연한 일 이라서 그랬습니다. 예전에 계시던 요양병원(광주광역시 샘물요양병원)이 한방병원으로 개명 하면서..다 모셔 가라고 연락이 왔더군요. 다른 요양병원을 물색하여 옮겨 드리는 일 쉽지 않았습니다. 동생들도 형인 제가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유 없이 잘 따르는데 막둥이 동생 제수씨가 잘 안오거나 늦거나 그래서 대신 막둥이를 혼냈지요. ㅎㅎ 제수씨를 함께 잘 모시고 다녀라고...ㅎㅎ님은 여러 정황으로 봐서 장남 역할을 하셔야 겠고..형님 잘 도닥거려야 할 짐을 안고 계시는 군요. 힘내시길...
하하..형님은 공기업 임원이고 목사임직 받으신 어머니의 자랑거리임니다.형님오시면..추도예배때마다 '사랑'하라고 하는데,속으로 그럼니다.형님 지척부터 사랑하소서~어쨋든 어머니는 어디가든 형님자랑이 첫번째 이야기임니다.ㅎㅎ
아... 그렇군요..훌륭한 형님 두신듯.
이왕 훌륭해 지려면 지척의 부모형제부터 사랑했으면 더 훌륭할거란 생각을 함니다.ㅎㅎ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글재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문장 구성이 어찌나 탄탄한지......
저도 요즘은 제 노후를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퇴직금으로 실버타운에 들어가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일용이 어머님께서 남은 삶을
인간의 마지막 존엄과 권리를 누리시면서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제 남은 삶 역시 그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요.
아침부터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슴니다.제가사는곳이 충앙선 철길옆이라 곤궁하게 사는사람이 주류임니다.소문도 빠르고 사람답게 사는집에선 상상이 안가는 일들도 간혹 생기곤 함니다.일용이 엄니 돌아가시고 몇칠만에 할머니가 해놓았던 된장이며 쓸만한건 다 골라갓다고 그러네요 주인 할머니가 그집만 보면 살던모습이 생각나서 울음이 나온다며 울 엄니한테 전화를 하셨더군요.무서우니 놀러오라고..ㅠㅠ
눈물키며 님의글속에 머물렀습니다 예고도 없이 겪어야 하는 주위에 고통주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수도 있는 .....
가시는날까지 곁에이 되는것을...요
저희어머님도 (새어머니) 중환속에 오랜세월 투병중이시만 저는
모시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가시면 영영 이
부모님 아직 계신청춘님들 나름대로 사는게 다들 힘들지만 자주 찿아뵈시구따뜻한情 드리셔요
떠나신후 후회들 마옵시구요 ......
'시아버지 모시면서 유세한다'며 젊은 사람이 글을 올렸더군요.달리는 댓글마다 노인들 모시기가 얼마나 힘든가.라며 일침들을 놓더군요.모셔보진 않았지만 그 힘든것은 다들 알고 있단 애기지요.대단하심니다.어느분의 새어머닌줄은 모르지만..쉽지 않은 일임니다.
아흔 여섯 되신 저희 어머님, 아직은 특별한 치매 징후 없으시지만 가끔 가끔 이 불효자식을 애타게 하는 맘 비교하며 님의 글 읽었습니다.
소나무님의 짧은글에서 진한 효를 엿봄니다.자제분들이 항상 듬직하시니 치매가 차마 접근을 못하는가 봄니다.
2년전 예식장에 다녀오던 길에 차안에서 양말벗고 뒷좌석에 누우며 리모콘을 찾던 어머님, 눈은 힘없이 풀려있었죠.하루 주무시고 나더니 예식장 안가냐고..울시어머님..전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으셨습니다.어여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고 갔고 검사하니 다행히 혈관성치매는 아니고 노인성치맨데 빨리 발견을 해서 다행이라고..지금은 약이 좋아서 약만 잘 먹으면 거의 정상처럼 생활할거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그렇게 했지요. 울어머님 지금은 여전히 깔끔~기억력 빵빵~하십니다.하지만 저도 맏이라 늘 걱정입니다.
다행이심니다.힘든일이 생길때 형제들이 서로 도움이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함니다.
누구도 피해 가기 어려운...그러나 그것이 내가 아니길 바라는 그런 길이겠지요. 팍팍 공감합니다.
하하 먼저번에 장모님 게신 요양병원에서,생일 축하공연이 있었슴니다.
봉사자들이 노래부르는데 제눈으로 보기엔 잘되면 60됐겠다 싶은분이
그앞에 나와서 춤을 얼마나 잘추고 잘놀던지..치매에 걸려도 놀던 버릇은 잊혀지지 않나봄니다.
설혹 피해가지 못한다해도 요즘 간병인 인력이 남는다고 그럼니다.전문적으로 배웠는데 자식들한테 피해안주고 간병인들 일자리 만들어주는것도 괜잖슴니다.ㅎㅎ
현실이죠
이 소슬이도 늘 마음 한켠이 - -
요즘 가끔 듣는
준비없는 이별 중에
'눈을 감아 지워질 수 있다면' 이라는 가사가 - -
외톨이라서
어찌 감당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좋은 인연이 생겼으면 함니다.저도..'눈을 감아 지워질수 있다면' 이라는 가사가
끝은 모르지만 웾지 느낌이 쓸쓸함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