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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박지성(뒷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의 모습도 보인다.
GETTY IMAGES/Multibits.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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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간 90분을 넘어 연장 30분도 모자랐다. 승부차기 키커 7명까지 가는 혈투 끝에 52번째로 빅 이어를 품에 안은 주인공이 가려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에드빈 반 데 사르(38)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고 첼시의 공격수 니콜라 아넬카(29)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승리의 여신은 맨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꿈의 무대에서 승자는 있었지만 패자는 없었다.첼시가 구단 사상 처음으로 ‘꿈의 무대’ 결승에 올랐다. 첼시는 2007-0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른 주인공이 됐다.
이제 1경기만 이기면 창단한 지 103년 만에 유럽 클럽 정상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
꿈이 이뤄질 장소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이다. 러시아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는 최근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불고 있다. 20여 년 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77)가 내세운 구호가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한 선전문구도 아니다. 축구에서 일고 있는 바람이다.
러시아대표팀을 이끌고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나가는 사령탑은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62) 감독이다.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변화를 추구하는 러시아 축구에 마법을 걸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를 돌아다니면 건물마다 히딩크 감독의 얼굴이 새겨진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기대와 함께 러시아축구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러시아는 축구 발전을 위해 대표팀 전력 향상과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유치에 성공했다. 그러자 전 세계인의 눈길이 러시아에 집중됐다. 모스크바 시내는 영국인들로 붐볐다.
첼시와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초대받은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영국인으로선 유럽 최고 클럽을 가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첼시와 맨유가 올라 자국축구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
축구에 대한 열정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영국인들은 유럽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스크바로 날아왔다. 러시아는 붉은 광장을 잠시 영국 손님들에게 빌려줬다. 그곳에 축구 열풍이 회오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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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내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위). 결승 기간에 모스크바에선 일반인보다 경ㄹ찰을 만나기가 더 쉬웠다(아래).
사진 제공=서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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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러시아러시아는 매우 추운 나라다. 러시아는 냉대 기후에 속해 연평균기온이 다른 나라들보다 낮다. 그런데 5월의 모스크바 날씨는 런던보다 따뜻했다.
추운 건 러시아인의 마음이었다. 영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이 형편없는 러시아인과의 의사소통은 매우 어려웠고 모스크바를 찾은 관광객에 대한 러시아인의 태도는 차가웠다. 살인적인 물가에, 서비스 정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영국도 세계적으로 비싼 물가로 유명하지만 러시아는 영국보다 더 심했다. 작은 생수 한 병에 4천 원을 받았다. 한국에 비해 4배, 영국에 비해 2배였다. 러시아의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보드카가 3백 루블(약 1만2천 원)을 호가한다. 5천 루블(약 21만 원)짜리 신권이 나오면서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높은 물가에도 돈이 남아도니 외국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싹싹할 리 없다. “러시아인 앞에서 돈 자랑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의 살인적인 물가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유치에 따른 특수까지 일었다. 입장권은 물론 항공료, 숙박비, 식비 등 모든 물가가 2배 이상 뛰었다.
런던~모스크바 왕복 항공료는 2백 파운드(약 41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면서 최고 5배인 1천 파운드(약 206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마저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렵사리 런던을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했더니 숙박비 역시 만만치 않다. 시설이 그리 좋지 않은 B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1만6천 루블(약 73만 원)을 냈다.
맨유 팬과 첼시 팬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선 적어도 2천 파운드(약 400만 원)가 필요하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살인적인 물가에도 오로지 축구를 보기 위해 전세기 200대를 동원해 외국인 5만 명이 러시아땅을 밟았다.
러시아 경찰들은 매서운 눈으로 외국인들을 바라봤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는 수많은 경찰과 안전요원이 곳곳에 배치됐다. 일반인보다 경찰을 더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5월 14일(이하 현지시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UEFA컵 결승전이 문제였다.
레인저스가 제니트에 0-2로 패하자 레인저스 팬들이 경기 직후 난동을 부렸고 30여 명이 체포됐다. 이 때문에 루즈니키 스타디움 주변의 경비는 삼엄했다.
영국인끼리 충돌하는 데 러시아인이 휘말릴까봐 영국인에 대한 경계가 더욱 심했다. 축구 축제를 만끽하려 했던 영국 손님들로선 유쾌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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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축구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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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전야첼시와 맨유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5월 14일과 15일 팀 훈련장에서 공개 훈련을 했다. 결전을 앞둔 긴장감은 없었다. 선수들은 여유가 넘쳤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23,맨유)와 디디에 드록바(30,첼시)는 동료들과 장난을 치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첼시와 맨유의 훈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트레칭과 미니 경기 등 훈련 강도가 세지 않았다.
첼시와 맨유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분위기는 결승전 하루 전날인 5월 20일 루즈니키 스타디움 적응 훈련에서도 이어졌다.
모스크바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다가올수록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붉은 광장에선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축구 페스티벌이 열렸다.
첼시와 맨유의 전설적인 선수인 그램 르 소와 브라이언 롭슨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을 때 인근 호텔에 묵고 있던 첼시 선수들이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달아오르던 열기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벌어진 5월 21일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차가웠던 모스크바는 축구 도시로 뜨겁게 변신했다. 맨유 팬과 첼시 팬은 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힘을 실었다.
일부 외신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첼시가 홈의 이점을 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대다수 러시아인은 첼시를 응원했다.
맨유의 구단주가 미국인 말콤 글레이저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그렇지만 거의 영국인으로 가득 찬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선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첼시와 맨유를 응원하는 목소리는 두 팀의 전력 못지않게 서로 팽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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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의 프랭크 램파드(왼쪽)와 맨유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는 1골씩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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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결장 그리고 맨유의 우승오후 9시 45분 루즈니키 스타디움의 미디어센터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 규정대로 1시간 전에 발표된 첼시와 맨유의 출전 선수 명단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 맨유의 출전선수 명단 때문이었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박지성(27)이 18명의 출전선수 명단에 빠져 있었다. 교체 명단에도 라이언 긱스(35), 루이스 나니(22) 등의 이름은 있었지만 박지성의 이름은 없었다.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이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영국 〈선데이 텔레그라프〉의 패트릭 바클레이 기자는 “맨유를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박지성을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알렉스 퍼거슨(67) 맨유 감독은 박지성이 출전선수 명단에서 빠진 데 대해 “부득이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박지성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는 아시아 출신 첫 번째 선수가 되길 바랐기에 아쉬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아쉬움 속에 올 시즌 꿈의 무대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 최고의 선수들로 꾸린 최고의 클럽답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최고 수준의 경기였다.
두 팀은 초반부터 치고 받았다. 먼저 웃은 건 맨유였다. 전반 26분 오언 하그리브스(27)의 패스에 이은 웨스 브라운(27)의 크로스를 호나우두가 머리로 받아 넣었다.
하그리브스를 오른쪽 미드필더로 변칙 기용한 퍼거슨 감독의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 맨유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맨유가 우승으로 가는 길을 걸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했다. 전반 45분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30)가 맨유 수비수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동점골을 터뜨렸다.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승을 향한 두 팀 선수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두 팀 팬들도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드록바와 램파드의 슈팅이 골포스트와 크로스바를 각각 강타했을 때 첼시 팬은 탄식했고 맨유 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긱스가 완벽한 득점 기회를 놓쳤을 때도 두 팀 팬의 반응이 엇갈렸다. 피 말리는 공방전은 정규경기와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맨유와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호나우두와 존 테리(28)가 각각 실축했다.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는 킥을 테리가 실패하자 첼시 팬 사이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첼시의 7번째 키커 니콜라 아넬카(29)의 슈팅이 맨유 골키퍼 에드빈 반 데 사르(38)의 손에 걸렸다. 승리의 여신은 맨유의 손을 들어 줬다.
아넬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테리는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하마터면 역적이 될 뻔했던 호나우두는 그라운드에 엎드려 기쁨의 눈물을 쏟아 냈다.
나에게 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린 반 데 사르를 향해 리오 퍼디난드(30)와 마이클 캐릭(27), 웨인 루니(23) 등 맨유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맨유의 붉은 유니폼이 아닌 회색 정장을 입은 박지성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맨유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박지성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박지성과 절친한 파트리세 에브라(27)는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박지성은)오늘 하루 뛰지 못했지만 우린 한 팀이며 함께 우승을 일궈냈다. 결승 무대까지 오르는데 박지성의 활약이 컸다. 매우 뛰어난 선수인 만큼 앞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퍼디난드도 “감독님 말씀대로 전략적인 차원이었다. (박지성의)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던 박지성은 이 말을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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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선수들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위). 준우승한 첼시 선수들의 표정이 침통하다(왼쪽 아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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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쟁터가 아닌 축구 천국오후 10시 45분에 시작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다음날 오전 1시 40분이 돼서야 끝났다. 3시간이 넘는 혈투였다.
비싼 돈을 내고 모스크바까지 날아 온 맨유 팬과 첼시 팬에겐 최상의 서비스였을지 모른다. 클럽 역사상 첫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꿈꿨던 첼시 팬에겐 실망감이 컸겠지만.
첼시 팬의 아쉬움만큼 첼시 선수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첼시 선수들에게 준우승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실망한 눈치였다.
클럽 전용방송국인 〈첼시TV〉 외에는 인터뷰도 사양했다. 하나같이 내뱉은 말은 “미안하다”였다. 선
방을 펼친 골키퍼 페트르 체흐(26)만이 짧게 인터뷰에 응했을 뿐이다. 많은 눈물을 흘려 눈이 심하게 부은 테리는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맨유 선수들은 폭죽이 연신 터지는 밤하늘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첼시 선수들은 폭죽 향연이 끝난 뒤의 어두운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렇게 52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막을 내렸다.
맨유는 승자였다. 그러나 첼시는 패자가 아니었다. 첼시는 맨유와 함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빛낸 주연이었다.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듯 UEFA 챔피언스리그 주제가인 ‘리그 드 챔피언스(Ligue Des Champions)’가 울려 퍼졌다.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축구 전쟁터가 아닌 축구 천국이었다.
SPORTS2.0 제 105호(발행일 5월 26일) 기사
첫댓글 좋은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