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베레쉬트#1
(창세기 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첫 문장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직 사람도 없고, 이스라엘도 없고, 성전도 없습니다. 먼저 계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을 바꾸는 첫 사건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습니다.
히브리적 관점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세상은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질서를 얻습니다.
혼돈에 질서를 주고, 어둠을 가르며, 생명이 살아갈 자리를 만드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2. 창조하신 분이 지금도 말씀하신다
이사야 42:5도 창세기와 거의 같은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그리고 이어서 땅의 백성에게 "호흡과 영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창조해 놓고 멀리 떠나신 분이 아닙니다.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창세기의 창조주가 이사야에서는 손을 붙잡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눈먼 자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이끌어 내며, 어둠에 앉은 자를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어둠을 향하여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여호와께서 이사야에서도 여전히 어둠 가운데 빛을 가져오십니다.
3. 요한은 창세기의 ‘태초’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창세기를 떠올리게 하는 말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ἐν ἀρχῇ — “태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이 우리의 시선을 예슈아의 탄생부터 시작하게 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이전, ‘태초’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장에서는 그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음을 선포합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을 이렇게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태초에 여호와께서 계셨습니다.
이사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도 부르시고 손을 붙잡으십니다.
요한복음: 태초부터 말씀이 계셨습니다.
결국 시작점은 ‘나’가 아니라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입니다.
4. 삶의 묵상
"혼돈이 찾아오면 말씀으로 돌아가라"
우리 삶에도 창세기 1:2와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빨리 해결책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첫 장면은 다른 질서를 보여줍니다.
혼돈 → 말씀 → 빛 → 구별 → 질서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혼돈 가운데 있을 때 가장 먼저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내 생각은 무엇인가?”보다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세상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 말씀 앞에서 다시 길을 찾는 것입니다.
5. 오늘의 묵상 질문
내 삶에서 지금 혼돈하거나 어둡게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나는 그 문제를 내 생각으로 먼저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호와의 말씀 앞에 먼저 가져가고 있습니까?
6. 기도
여호와 하나님,
태초부터 계시며 말씀으로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신 주를 찬양합니다.
혼돈 가운데 내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먼저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말씀의 빛을 따라 걸어가게 하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