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헐몬산 (헤르몬산이라고도 함. Mount Hermon)으로 정상은 눈으로 덮여 있으며 그 주변은 말라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으로 눈이 잘 녹지 않는 이 헐몬산은 비도 많이 내리지 않고 나무가 그렇게 많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해 바다와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의 중요한 물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바로 헐몬산의 이슬에 있다고 합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대기 중의 수분을 급격히 냉각하여 밤에는 이슬이 비 오듯 쏟아지게 됩니다. 결국 사해 바다와 요단강, 갈릴리 호수의 물의 원천을 찾아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헐몬산의 정상으로 연결이 되며 그 정상에서 생기는 작은 이슬방울들이 결집이 되어 물줄기와 작은 샘들을 만들어 방류하여 호수와 강과 바다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유명한 <헐몬의 이슬>이란 말의 탄생 배경입니다. 이 말은 작은 것들이 연합하고 결집하여 큰 것을 이루는 근본이 되며 미약하지만 중요한 시작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축년 새 달력을 펼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고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3월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새해가 되어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그동안 미루어 왔던 계획들을 다시 세워 새롭게 시작하려 했지만 연일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오늘은 헐몬의 이슬에 담긴 의미처럼 무엇인가 거창한 계획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의 중요성, 즉, 아주 작은 시작의 힘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나눕니다.
신년 벽두에 계획을 세우던 아내가 저에게 다가와 서예로 써달라며 4자로 된 한자성어를 건넸습니다. 그것은 ‘호리천리(毫釐千里)’였습니다. 이 말은 ‘티끌 하나의 차이가 천리의 차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작은 차이지만 나중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생김을 이르는 말입니다. 처음이 조금 틀리면 나중에 크게 그르치게 되므로 시작이 매우 중요함을 뜻하는 말로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을 잘못하면 그 결과는 너무나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와 반면에 작지만 잘 시작하면 좋고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둘 다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속담을 들여다보면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시작을 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비록 시작이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크게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와 유사한 속담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 속담의 뜻 역시 큰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며 또한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속담들은 서두에 이야기한 ‘헐몬의 이슬’처럼 처음 시작의 중요성과 작은 것들이 연합하면 큰 것을 이룬다는 삶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자 성어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말들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수적천석(水滴穿石)’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성어의 뜻은 ‘작은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입니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지만 꾸준히 바위에 떨어지다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엔 그 바위를 뚫는 것을 실제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성경 안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라는 말씀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작은 출발이지만 큰 성공을 기원하는 뜻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와 발명품들의 초기 모습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에는 헐몬의 이슬처럼 그 작은 시작과 최초의 기원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들이 세상에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유럽이나 중국 등 고대 문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면 건축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어떻게 그 신비하고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들이 세워질 수 있었을까 탄성이 절로 나게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돌 하나하나가 마치 <헐몬의 이슬>처럼 하나씩 모여 그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거기에는 분명 그 위대함을 이루기 위한 최초의 돌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모여 그 커다란 건축물의 위용을 만들어 냅니다.
언젠가 지인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병문안을 갔다가 우연히 병원 안에 걸린 세브란스 병원 모습의 변천사를 세밀한 펜으로 정성스럽게 그린 사실화를 한참 동안 넋이 나간 모습으로 감상했습니다. 펜의 터치 하나하나는 사실 평범한 펜의 작은 선에 불과했으나 놀랍게도 그 세밀하고 촘촘한 작은 선들이 모여 엄청난 걸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시편 133편의 다윗 왕이 노래한 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
작품 속에 가지런히 배열된 작은 선들을 하나씩 떼어내면 존재의 가치가 상실되는데 위에 인용한 시편 속에 등장하는 형제들처럼 각기 제 목적을 가지고 연합할 때 그 선들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로 선다는 사실을 놀랍게 발견합니다.
19세기에 등장한 점묘화의 기법도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점묘화는 선과 면이 아닌 수많은 점으로 색과 모양을 표현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물감은 섞을수록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밝기가 낮아지고 탁해지는 반면 빛은 섞을수록 밝아지는 성질이 있습니다. 색의 삼원색을 합하면 검은색이 되고 빛의 삼원색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는 것을 어릴 적에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점묘화는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두 색이 반사되는 빛을 눈이 동시에 인식하면서 하나의 색으로 보게 되는데 두 색이 섞여 보이지만 실제로는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점묘화로 그려진 <마릴린 먼로>나 <모나리자> 같은 작품들을 보게 되면 실제 사진보다 선명한 모습에 우리가 놀라는 이유입니다. 자칫 버려질 수 있는 하찮은 점 하나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 이렇게 가치 있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오늘 3월 1일, 삼일절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100여 년 전 오늘,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진정한 삶의 자유를 위해 일제히 일어나며 외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물밀듯 전국에서 일어난 그 외침 소리에는 분명 최초 시작을 열었던 소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 시작의 중심에 있었던 열사 유관순 누나를 기억합니다. 온 국민의 커다란 함성소리로 번진 대한독립만세의 소리의 처음을 열었던 것은 작지만 중요한 시작의 힘, 바로 유관순 열사로부터 시작된 ‘헐몬의 이슬’입니다.
헐몬 산에서 발원하여 생긴 작은 이슬방울들이 시온의 산들에 내려 촉촉이 적시고 큰 물줄기 되었듯이 헐몬의 이슬처럼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을 위하여 시작되었던 작은 외침이 전국을 삼킬 듯한 우렁찬 함성소리 되어 이 땅에 진정한 자유를 부르짖었던 100년 전의 오늘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원합니다.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한 땀 한 땀 배여 있는 귀한 혼과 얼을 본받아 이 대한민국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의 역사적인 사명임을 깨닫는 삼일절의 아침입니다.
2021.3.1 늘푸른언덕
첫댓글 3.1절 아침에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