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방황하다
-좌충우돌 호주 여행기-
성병조
(시드니행 비행기 안에서) 글 한 편이라도 쓰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아 기내 실내등을 밝힌다. 탑승하면서 여승무원에게 신문이 없다고 말했더니 농담으로 응수한다. “너무도 오랜만에 우리 비행기를 타셨군요. 신문 없어진 지 5년쯤 되었습니다” 아니 작년에 남미 가면서 국적기 탈 때는 몰랐는데? 인천서 호주 시드니까지 9시간 반이 걸린다. 저가 비행기에 비하면 대한항공은 복도와 앞뒤 의자 간격이 넓은 것은 큰 장점이다. 그래도 지루함을 덜기 위해 책까지 준비한 데도 10시간 가까운 비행은 무리인가 보다. 주변을 살펴본다. 우리가 꽤 어른축에 속하는 것 같다. 비행시간이 길어 힘들어서일까?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기내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내 말 잘 들어야 한다?) 흔히 세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엄마, 아내, 네비? 호주 여행을 앞두고 현지를 예습한다. 기후에 맞게 옷을 갖춰야 한다. 대충 보니 14도에서 20도로 나온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기온 차가 심하단다. 대구서 겪고 있는 무더위를 생각하면 조금 추우면 어쩌랴. 에어컨 빵빵한 데서 지내다 바깥으로 나오면 더위가 한풀 꺾이는 기분이 들듯이 말이다. 시드니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시련이다. 짧은 상의 차림은 혼자뿐이다. 울룰루의 일출과 일몰, 그리고 필드 오브 라이트 투어 때는 거의 겨울(2도) 수준이다. 내가 옷을 준비했다면 관광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챙긴 동복과 장갑, 모자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세계 제일 큰 바위는?) 세계 제일 큰 바위는 어디 있을까? 미국 서부지역 여행 때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렀다. 거목들이 꽉 찬 가운데서도 도토리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묵을 만들기 위해 주운 적이 있다. 꿀밤이 무척 굵다. 당시에 가이드가 말한 요세미티 바위가 호주에 어어 두 번째 크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막에 우뚝 솟은 울룰루를 둘러보면서 여성 가이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영어 발음이 빨라 이해도 힘들면서 덤벼들었다. 한국서 왔기에 영어가 좀 약하다고 배수진을 친다. 미국 요세미티 바위가 호주보다 작다던데 울룰루가 그것인가? 바로 답변이 나온다. 1등 바위는 호주 서부에 있고, 울룰루는 2위, 요세미티는 3위란다. 속이 후련하다.
(원주민과 어린아이들) 베트남 여행 때 아이들이 바나나나를 가지고 ‘원 달러 프리즈’를 외치던 걸 기억한다. 호주 울룰루 관광지에서도 원주민이 보인다. 검은 피부에 반 팔과 반바지 차림이다. 그들이 주로 파는 것은 피복에 그린 초라한 그림들이다. 점으로 만드는데 사물의 묘사가 아니라 무슨 추상화 같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옮겨 다니며 땅바닥에 깔아놓고 고르도록 한다. 바람에 날릴까 봐 모서리에는 작은 돌을 얹어 놓는다. 어설프기 짝이 없다. 어른들 주변에 아이들이 보인다. 추운 날씨에도 반 팔, 짧은 바지가 애처롭다. 게다가 신도 신지 않았다. 마른 체구에 맨발? 형제로 보이는 둘이서 어울려 장난치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자유 여행, 패키지여행) 여행을 통해 견문(見聞)을 넓힌다고 한다. 견문은 보고 듣는 것이다. 10여 일 여행 중 4일 차에 접어들면서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견은 있는데 문이 없다는 점이다. 자유 여행과 패키지여행의 특징이랄 수 있겠다. 어느 게 좋으냐면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사진도 음식도 별 취미 없는 내가 남다른 눈으로 들린 곳을 묘사하려니 벽에 부딪친다. 견은 있는데 문이 없으니 온전할 리가 없다. 보는 것에 대한 물음과 설명이 뒤따라야 완성될 수 있다.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 보니 글의 소재가 사물보다 사람에게 옮아간다. 가이드 설명이 아쉽다. 더군다나 이곳은 빠른 영어를 구사하는 호주가 아닌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가이드가 없는 자유 여행의 한계인지라 사람 얘기가 많아진다. 시드니 공항에 내려 긴 줄을 서는데 두 여성이 반갑게 인사한다. 누군지 알 수 없어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시지요?” “대구서 인천 공항까지 리무진 버스를 함께 타지 않았습니까?” 지나치지 않고 인사한 그들도 한국인이 반가웠음에 틀림이 없다. 코스가 비슷한 사람들도 만난다. 특히 동양인은 모습이 비슷하여 한국인지, 일본 중국인지 구분이 어렵다. 울룰루 이틀 동안 동선이 같아 물어보니 중국인이다. 나중에 울룰루 공항에서도, 날아서 도착한 멜버른 공항에서도 만나길래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멜버른은 트램의 도시다) 내가 붙여본 제목이다. 도심에 숙소를 정하고 멜버른 시내 구경에 나선다. 가이드가 없는 우리 가족의 나들이니 보이는 데로 정리할 뿐이다. 먼저 떠오르는 게 전차이다. 3, 4량을 잇는 전차가 사방으로 달린다. 전차의 특성이란 게 저속에다 대량 수송, 요란한 종소리가 아닌가. 더욱 좋은 건 공짜라는 점이다. 그러니 시내버스가 안 보이고, 택시도 무척 귀하다. 또 타고 싶을 정도로 편리하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사람들이 활기차 보인다. 빈 점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황 같다. 전차가 점령한 때문일까. 횡단보도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은 의문이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의 웅장함과 야경이 특히 눈길을 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와 12사도) 멜버른에서 이어지는 Great Ocean Road를 달렸다. 바다를 끼므로 파도와 함께 어우러지는 경치가 돋보인다. 왕복 2차선 굽잇길이 240킬로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전사한 동료들을 기리고 전역자들의 복지를 위해 정부가 펼친 사업이란다. 1919년-1932년까지 공사에는 요즘 같은 중장비가 없어 삽과 곡괭이로 완성했다니 더욱 놀랍다. 가는 길에는 목재 기념탑(Memorial Arch)과 해안 침식으로 생긴 12사도(Twelve Apostle)는 호주가 자랑하는 최고 명물이다. 달리는 길에 야생 코알라와 캥거루도 보았다. 긴 해안에는 항구도 배 한 척도 보이지 않는 게 이해 어려운 의문으로 남는다.
(세탁실에서 만난 사람) 울룰루에서나 멜버른 호텔 모두 자체 세탁실이 있어 편리하다. 우리처럼 해외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십여 일의 여행이라면 세탁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울룰루에서는 모녀가 맡아도 멜버른에서는 아내와 내 차지가 되었다. 혼자 가기가 뭣한지 나더러 함께 가잔다. 바로 아래 14층에 세탁실이 있다. 아무리 세탁기를 살펴봐도 작동법을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먼저 온 젊은 부부에게 묻는다. 대화하려면 국적 소개는 필수다. 홍콩서 왔단다. 이들이 떠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젊은 여성 둘이다. 또 모르면 물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중국인이다. 이래서 세계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란 생각이 든다.
(관광 명소가 된 시드니 대학교) 대학 방문은 즐겁다. 제 작년에는 일본 동경대학교(1877년 개교, 세계대학 순위 43위), 이번 여행에는 호주 시드니 대학교(1850년, 45위)이다. 예전에 들린 서울대학교(1946년, 41위)까지 주요 대학을 두루 섭렵한 셈이다. 시드니 대학교는 유명세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학을 완전 개방하고 있는 점이다. 고풍 넘치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인 데다 학생들과 접촉할 수 있는 점도 특이하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과학 동아리 회원 모집에 분주한 여학생에게 물었더니 중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본관 앞 정원에 설치된 입간판 WELCOME 글귀가 대학을 찾는 모든 이를 반기는 듯하다.
(믿기 어려운 진실 세 가지) 여행하다 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 있다. 묻지 않고 못 견딘다. 택시 기사에게 물었다. #멜버른, 늦은 시간인데도 고층 빌딩에 불이 훤히 켜져 있다. 이렇게 열심히 근무하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이다. 야간 경관을 위해 일부러 불을 밝혀둔다고 한다. 시드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전기 요금은 정부가 지원한다) #시드니에서 있은 일이다. 우산 쓰지 않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비가 자주 내리니 많이 둔감하단다. 우산도 소홀하고, 비 맞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호주 국토는 우리나라의 74배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거의 사막이다. 이용하는 국토는 10% 정도에 불과하단다. 인구도 2천6백만으로 우리의 절반 정도이다.
(호주서 만난 대구 사람) 울룰루와 멜버른에서 보기 힘든 한국인이 시드니에선 꽤 보이는 것 같다. 겉모습만으론 일본, 중국인과 별다름이 없다. 용기 내어 말을 걸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주변 해안은 관광객들로 넘친다. 가히 여행의 성지처럼 여겨진다.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다. 현지인들은 이런 변덕에 익숙한 것 같다. 인근 공원을 거쳐 숙소에 도착한다. 호텔 승강기 앞에 이르자 한국말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반가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한국말 잘하시네요”라 해버렸다. 자기들도 반가웠는지 바로 응답한다. 우리와 같은 대구서 왔다. 내리는 층이 달라 대화는 금방 끊어졌지만 반가움은 무척 컸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관람) 멜버른을 떠나 시드니 공항이 가까워지자 오페라 하우스가 내려다보인다. 얼마나 많이 그리던 건물인가. 호주 간 김에 오페라 공연을 보기로 했다. 숙소서 멀지 않아 전차를 이용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본다. 겉모습보다 실내가 굉장히 넓다. 와인 부스가 여러 곳이다. 잔을 들어야 분위기가 살아난단 말인가. 우리도 합류한다.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 저녁 7시에 시작하여 10시 반에 마친다. 중간 휴식하더라도 무척 길게 느껴진다. 배경음악은 대형 관현악단이 직접 연주한다. 무대 장치가 5회 정도 바뀌면서 다채로움과 흥미를 한껏 선사한다.
(블루 마운틴 국립공원) 호주 여행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진다. 9백 미터 높이지만 고원처럼 넓어 고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80명 정원의 시닉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간다. 대형인 데다 계단으로 꾸며져 경치 감상에 편리하다. 여기서 이어지는 2.4Km의 시닉 워크웨이 산책길은 열대우림 속으로 걷는 즐거움을 준다. 도중에 예전의 탄광촌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세 자매봉으로 가기 위해 타는 시닉 레일 웨이는 세계에서 제일 가파른 52도 경사이다. 마치 놀이동산의 88 열차를 연상케 한다. 마지막으로 시닉 스카이웨이를 타고 에코 포인트(Echo Point)에 이르면 세 자매가 마법에 의해 바위로 변했다는 원주민의 전설이 깃든 세 자매봉을 가장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생일 파티로 여행의 대미 장식)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만났다. 호주 마지막 밤이다. 블루 마운틴에서 돌아오며 생각에 잠겼다. 딸의 생일 때문이다. 그냥 지나기에는 부담이 따랐다. 아내와 주변을 헤맸지만 케익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어 여행 팀장격인 딸의 힘을 빌렸다. 케익과 과일, 과자 등을 샀지만 정작 성냥이 없다. 호텔 카운트에 물었더니 성냥도, 라이터도 없단다. 방에서 파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데스크에서 만난 아가씨다. 생일임을 알고 얼음 통에 와인 까지 담아 축하한다. 이렇게 센스있는 종업원도 있나. 케익을 함께 나누었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뜻깊은 생일잔치로 호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