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후삼국시대: 한국사에서 나말여초(羅末麗初)의 분열기를 지칭함.
892년은 견훤이 무진주(광주)를 점령하고 왕을 칭한 때이고,900년에 국호를 후백제로 한다. 936년은 후백제가 멸망한 때이다.그러니 후백제의 존속기간과 같다.
신라 말기에 신라의 지배력이 쇠퇴하자 각지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적이나 군벌에 불과하던 반란 세력들은 국가 체계를 갖추면서 옛 삼국을 부활시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통성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옛 백제 땅에 견훤이 건국한 후백제, 옛 고구려 땅에 궁예가 건국한 후고구려, 그리고 대야성(합천), 그나마도 나중엔 백제에게 빼앗기고 금성(경주 등의 경상도 일부 지역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신라로 나누어지게 된다.
삼국시대의 구도가 다시 재현되었다고 해서 후삼국시대라고 한다.
900~936
중국
5대10국 시대: 중국 역사상 당(唐, 618~907) 왕조가 멸망한 10세기 초엽부터 송(宋, 960~1279) 왕조가 개창된 10세기 중엽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어진 혼란시대다.
똑같은 혼란시대지만 춘추전국시대(BC 770~221)나 위진남북조(220~589)보다 훨씬 짧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시기에 이미 중국인들에게 통일 왕조에 대한 강한 염원과 이념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907~960
일본
타이라노 마사카도의 반란:동국(東國), 즉 지금의 도쿄 지방의 세력가로, 평친왕(平親王), 혹은 신황(新皇)을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며 한때 그 기세가 대단했으나 결국 후지와라 히데사토(藤原秀郷)에게 패배하고 참수되었다
조헤이·덴교의 난: 간토에서 타이라노 마사카도가 난을 일으켰을 무렵과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세토우치의 해적을 이끌고 난을 일으킨 후지와라노 스미토모의 세력은 기나이에까지 진출했고 덴교 2년(939년) 12월에는 부하 후지와라노 후미모토(藤原文元)로 하여금 비젠노스케(備前介) 후지와라노 고타카(藤原子高)·하리마노스케(播磨介) 시마다 고레모토(島田惟幹)를 셋쓰(攝津)의 스기역(須岐驛)에서 습격하게 하여 사로잡았다. 이때 고타카는 코가 잘리고 아내를 빼앗겼으며 그의 아이들은 모두 살해당했다. 그 당시 도고쿠에서도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모반을 일으켜 '신황'을 칭했다는 보고가 교토에 전해졌으므로 조정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다이라노 마사카도와 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동·서에서 함께 작당해 모반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까지 나올 판이었다
덴교 4년(941년) 2월, 스미토모군의 간부인 후지와라노 쓰네토시(藤原恒利)가 조정군에 항복했고, 조정군은 그에게서 받은 정보를 근거로 스미토모의 본거지 히부리 섬을 쳐서 깨뜨렸다. 스미토모는 서쪽으로 도망쳐서 다자이후를 쳐서 점령하지만, 스미토모의 아우인 후지와라노 스미노리가 야나기가와(柳川)에 침공했다가 가바이케(蒲池)에서 다자이곤노소치 다치바나노 기미요리(橘公賴)에게 패한다. 5월에 오노노 요시후루가 이끄는 조정군이 규슈에 도착했다. 스미후루는 육로로, 사칸(主典) 오쿠라노 하루자네(大藏春實)는 수로로 나아가 스미토모를 쳤다. 스미토모는 다자이후를 불태워버리고 하카타 만에서 하루자네가 이끄는 조정측 수군을 맞아 싸웠다. 격전 끝에 스미토모 선단은 크게 패하고 8백여 척의 배를 빼앗겼다. 스미토모는 아들 시게타마루(重太丸)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이요로 피했지만, 동년 6월에 이요의 경고사(警固使) 다치바나노 도야스(橘遠保)에게 붙들려 옥중에서 죽었다.(《일본기략》에는 도야스에게 죽었다고 한다)
939~940
베트남
십이 사군(장군)시대: 응오 왕조의 4대왕인 응오 쓰엉반이 죽자 뒤를 이은 응오 쓰엉씨(Ngô Xương Xí/ 吳昌熾오창치)는 평교(Bình Kiều, 타인호아 성 찌에우선)에 발이 묶였고, 열두 사군(장군)이 제각기 위치에서 난을 일으쳤다.
- 응오 녓 카인(베트남어: Ngô Nhật Khánh/ 吳日慶오일경)은 당림(하노이 시 선떠이)을 점거
- 끼에우 꽁 한(Kiều Công Hãn/ 矯公罕교공한)은 봉주(푸토 성 박학)를 점거
- 끼에우 투언(Kiều Thuận/ 矯順교순)은 회호(푸토 성 껌케)를 점거
- 응우옌 코안(Nguyễn Khoan/ 阮寬완관)은 3대(빈푹 성 빈뜨엉)를 점거
- 응우옌 투 띠엡(Nguyễn Thủ Tiệp/ 阮守捷완수첩)은 선유(박닌 성 띠엔주)를 점거
- 응우옌 씨에우(Nguyễn Siêu/ 阮超완초)는 서부열(하노이시 타인찌)을 점거
- 리 쿠에(Lý Khuê/ 李奎리규)는 초류(박닌성 투언타인)를 점거
- 라 드엉(Lã Đường/ 呂唐려당)은 세강(흥옌 성 반장)를 점거
- 도 까인탁(Đỗ Cảnh Thạc/ 杜景碩두경석)은 두동강(하노이시 타인와이)을 점거
- 팜 박호(Phạm Bạch Hổ/ 范白虎범백호)는 등주(藤州)(흥옌 성)를 점거
- 쩐 람(Trần Lãm/ 陳覧진람)은 타이빈 성 점거
- 12사군은 응오 쓰엉씨까지 더한 것이다
막장 상황에서 호아르(華閭, 닌빈 성)에 기반을 둔 딘보린(丁部領, 924~979)이 등장하였다
쩐람의 부하로서 그와 동맹을 맺고, 후에 팜박호와도 손을 잡은 그는 나머지 제후들을 모두 무너트린 후 결국 2년만에 월남 천하를 통일하고 다음해 응오쓰엉씨에게 왕위를 물려받고 다이꼬비엣(大瞿越, 대구월)국 황제를 선포했다
965~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