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주님에 대해 알기를 열심히 ~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니,
반대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악을 이루는 경우 또한 악인들에게선 흔하지 않을까 합니다.
분명 악은 계속 악을 부르면서, 더 큰 악으로 달려갑니다.
스스로 악을 버리고 주님께로 가야 하는데
큰 은혜를 주심이 없으면 절제하고 멈추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처음엔 조그만 악이었는데 점점 몸집을 키워 나중엔 어찌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짐이 많은 듯요.
목사님이 수요일 설교로 올려주신 내용도 그렇고,
추천말씀도 그러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해 생각(묵상)을 해보게 됩니다.
'공의'의 반대 자리에 서면 그것이 바로 대적이 되겠죠.
얼굴에 바르는 팩 등을 만드는 업체가 있는데,
직원의 80%가 로마서 1장 27절에 나오는 유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이 유망한 스타트 기업인양 소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악으로 치닫아 달려가나비다~ 합니다.
TV를 거의 안보나, 저녁을 먹으며 잠깐 모 드라마를 봤습니다.
20분 정도 봤는데도 요즘의 방송 심의 규정이 어떻게 바꾸었는지 모르겠으나
한 20년 전엔 줄줄이 심의에 걸릴 법한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이대로 한 10년 정도만 더 흐르면 미국 등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갈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대해 알아갈수록 조심해야 할 직업군 등이 알아집니다.
예컨대 판사, 검사, 변호사, 기자, 시나리오 작가 포함 소설가, 정치인 등등
이런 직업군은 자칫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버리기가 쉽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균형을 잃기가 쉽겠죠.
10년 정도 방송심의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판단해야 하는 일을 했기에 저 또한 수시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마음의 상태로 살았을 겁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자식을 키우면서도 많이 범하는 죄이기도 할 테고요.
어린 자식에게 진리에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고 등.
예컨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 올인하여 통제하면서 따라다니는.
그러니 뭐를 해도 주님 안에서 하지 않으면 죄가 되기 쉬울 겁니다.
모든 사람에겐 양심을 주셨으나, 양심이란 것만으로는 불완전합니다.
그 사회의 규범 등을 따라가기 쉬운 것이라서요.
북한에서 태어났다고 해봐요. 그런 곳에서 살면 양심이 어떻게 제 기능을 하겠습니까.
생존을 위해선 거짓말을 하고, 훔치기도 해야 하는데요.
죄에 대한 기준을 알아야만 양심이 제 기능을 하면서 살아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기업들이 베트남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진출할 때
공장의 비품 등을 훔친다는 인식도 없이 그냥 가져가는 것이 비일비재~
심지어 밤에 공장의 철문까지 떼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뜯어다가 고물로 팔아버리기 위해 ㅎ
(외국의 기업이니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만)
과거 소련에 속했던 공산권 국가들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저축을 왜 해야 하는지 등의 개념을 인식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카자흐스탄 등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여서
가구 등을 국가가 몇 년에 한 번 지급하고 그러는지라 빨리 받으려면 뇌물~
그러니 아끼고 등의 개념이 제대로 안 잡혀 있다고 들었어요.
북한이라고 다르겠습니까.
탈북자 중 일부는 수돗물을 사용하고 수돗물을 잠그지 않고 계속 틀어두기도 한답니다.
사용요금 등을 내야 하는 자기 것이란 인식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왜 자신들의 직업을 국가가 제공해주지 않는가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하고.
이런 것들을 알고 난 이후 조선 후기의 역사 등을 보니 슬프더라고요.
얼마 전에 과거에 봤던 '전원일기' 영상을 잠깐 봤어요.
용식(유인촌)이가 밥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고봉밥에 냉면기만한 크기의 국그릇을 앞에 두고는
전투라도 하듯이 속도전으로 밥을 먹고 있는.
지금은 용식이처럼 먹는 사람들이 유튜브 등의 먹방에 포진해 있습니다만 ㅋㅋ
조선 후기 또한 대한제국 사진 등을 보면 안타깝더라고요.
지금 기준에서 꾀죄죄해 보이는 애들의 배가 굶어서 부어있거나,
잔뜩 먹어서 '짜구'가 나 있거나.
그것에서 수탈의 흔적을 봅니다. 빨리 먹지 않으면 빼앗기는~
70~80년대까지도 그 흔적이 있었나 봅니다.
당시 서울에선 밥 공기의 크기가 이미 줄고 있었으나, 농촌 등에선 그렇지 않았죠.
조선의 백자도 전기와 후기가 다릅니다. 후기로 갈수록 거친 등 엉망입니다.
잘 만들어봐야 뭐를 하겠음둥~ 수탈을 당하는데요.
5천 년의 가난과 수탈을 끊어내고 이리도 손에 꼽히는 좋은 세상을 주셨는데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악으로 나아감을 보고 있으니
이사야, 예레미아, 호세아 같은 분들은 심정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가끔 생각을 해봅니다.
강력한 핍박이 온다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나는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
이 나라에서 복음의 역사는 원산이나 평양 등 북한 땅에서 먼저 일어났더랬죠.
북한이 저리 될 때 다 버리고 내려온 분들은 믿음을 제대로 이어갈 기회를 얻었으나,
남아있던 분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주님은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을 했을 것인데요.
가정 내에서도 진리 때문에 핍박이 일어나는 경우는 흔합니다.
그러면 맞서 싸우는가? 피해야 하는가?
사람의 판단으로는 그럼에도 설득을 하고, 희생을 감수하고 감화를 시키고가 맞으나
주님의 방법은 후자임을 성경을 통해 봅니다. 맞서 싸워야 한다면
이름도 모를 믿음의 선배님들이 광야 등으로 흩어져 유리걸식을 할 이유가 없었겠죠.
마태복음 10장의 내용으로 목사님의 관련 설교들도 이미 있습니다.
:가족들이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도 중동 등에선 핍박이 강력한데,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 나라를 떠남이 유효한 방법이 되어지듯
가족 중 누가 악인이고 핍박자라면 사람의 입장에선 안타까워도
버리고 피함이 맞습니다.
부모나 자식, 형제, 배우자는 예외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형제는 물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는데 내어준다고 하셨어요.
만나지조차도 않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마음에서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을테고요.
"그라도 배우자가 배우자를 내어주고는 없잖아~~"라고
하실 분은 하나도 없으시겠죠. 데헷~~
(데헷은요~~주로
자기가 말을 해놓고도 어이가 없는 작은 실수 등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상의 신조어입니다.
혀를 살짝 내밀고 있는 아이 같은 정도의 귀여운 어감이 담긴 뜻이야요~ ㅋ)
핍박은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지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사람들은 자꾸만 사람 그 자체만을 보려고 들어요.
따지고 들어가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라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악인의 옆에 계속 있으면 점점 악인과 동화되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러니 옆에서 내치고, 피하고 하는 것일테고요.
설령 겸손하라고 구박하셔도~~
이 잔잔한 재미까지는 놓고 싶지 않습니다.
이래이래~ 대놓고 자뻑하는 기술도 열심히 연마시켜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이라~
ㅋㅋㅋㅋㅋㅋ
첫댓글 감사합니다 ~집사님 글로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들을 접하네요~~너무 좋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
맞아요 정말 공감이 많이 되어요- 감사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