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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8, 10:51이렇게 치졸하고 비열한 폭로를 본 적이 없다.
한동훈 후보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는 문재인 정권 시절"이라고 말한 적 있다. 검사로서 보수우파 인사를 겨냥해 마구 칼질을 하던 시기를 말한다.
홍준표 시장의 대략 계산으로는, 1천여 명이 정치적 이유로 불려가 수백 명은 직권남용 등 정치사건으로 구속되고 법관들도 100여 명 조사를 받았고 두 전직 대통령에게는 징역 35년 중형을 구형해 유죄로 만들었다. 수사를 받다가 5명이 자살했다. 한동훈 지지자들은 이를 '검사'라는 직업으로서 했던 일이기에 따질 게 없다고 말한다.
한동훈은 2016년 박영수 특검에서 윤석열 수사팀장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뇌물 부문)을 수사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그 공로로 반부패·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발령됐다. 보스는 윤석열 지검장이었다. 문 정권에서 피바람을 몰고온 '국정농단 적폐수사'의 칼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3차장 검사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나는 당시 그 장문의 기소문을 읽어보고서 하도 황당하게 짜맞춰 놓아 '무슨 동화 같다'는 칼럼을 쓴 적 있다.
그 뒤 한동훈은 '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다. 2019년 젊은 나이에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급)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뒤이어 이재용 회장 불법승계 사건도 무죄가 나왔다.
한동훈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무죄에 대해 "대법원에서 수사를 의뢰해온 사건"이라고 책임 회피성 변명을 했고, 이재용 건에 대해서는 아예 없었던 일처럼 침묵했다. 검사는 수사와 기소의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다.
언론에서는 한때 '조선제일검'으로 한동훈을 띄웠지만, 그는 목표를 정해 놓고 증거를 꿰어 맞춘 짜집기 정치수사의 기술자에 가깝다고 본다.
그런 한동훈이 그저께 후보토론회에서 나경원을 향해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형사 건’을 공소취하해 달라고 부탁하신 적 있으시죠? 저는 거기에 대해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라고 폭로했다.
‘패스트트랙 사건'은 지난 2019년 4월 민주당이 공수처 설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법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통과시키려고 회의실을 옮기고 문을 잠그자,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을 빠루로 뜯어내고 진입해 막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이다. 이 사건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23명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5명이 기소됐다. 한동훈의 폭로처럼 '나경원 본인'의 형사사건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그 충돌사태가 있고 두 달쯤 지나 나경원 원내대표를 인터뷰(2019년.6월)를 했다. 당시 나경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이다. 문재인 정권과 타협할 때 아니다. 나라가 불가역(不可逆)의 사회주의 국가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을 내 책무로 생각한다.
우리가 왜 그렇게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강력 저지하려고 했을까. 연동형비례제나 공수처법을 그대로 통과시켜도 될까.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직결된 문제다.
지금은 '강대강(强對强)'으로 맞붙는 상황이다. 불리한 의석수의 우리가 악법(惡法)을 막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을 서로 취하하고 정치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검찰에 정치를 맡길 수 없다."
그 시절 야당(자유한국당)은 무기력했다. 야당 정치인 누구도 감히 '적폐수사' 광풍이 부는 가운데 대중적 지지를 받는 문 정권에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문 정권을 견제했던 것은 내가 몸담고 있었던 조선일보 등 한줌의 언론과 아스팔트 우파뿐이었다.
그런 타이밍에 나경원이 여성으로서 원내대표를 맡아 '투사'로 나선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남자보다 훨씬 용기있고 그때 야당 지도자로서 할 수있는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이런 나경원을 '극우' '빠루'로 몰아갔다. 대신 그때 문 정권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던 정치인들이 나중에 '온건' '중도' '합리'라는 간판으로 각광을 받았다.
무엇보다 한동훈은 그 시절 문재인 정권에서 '화양연화' 시절을 누렸다. 그런 그가 윤석열 정권에서 법무장관에 올라 나경원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하' 부탁을 받았을때, 본의든 아니든 '보수 궤멸'에 앞장선 과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해결을 위해 도와주는 게 정상이다.
한동훈은 들어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거절한 사실까지 폭로했다. 이렇게 치졸하고 비열한 폭로를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인간' 이라는 게 빠져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상사의 부인 김건희 여사 문자를 다섯 번이나 '읽씹'하고서 그 뒤 '사적관계' '당무개입' 어쩌고 변명할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한동훈에 대해 열광하는 보수 성향 지지자들은 그에게서 대체 무얼 원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말 잘하고 똑똑해보이면 '인간'이 빠진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싶나. '여당의 이재명'을 만들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