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사의 예언)
78년 가뭄이 심한데 이날 비가 옴
양력 1978년 06월 25일
음력 1978년 05월 20일
시 일 월 년
戊 戊 戊 戊
午 午 午 午
제산이 남긴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보자.
1970년대 후반(아마 1978년쯤) 전국적으로 대단한 가뭄이 들었다.
몇 달째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부는 비상이 걸렸고, 주무부서인 농수산부는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농수산부 장관은 장덕진씨였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각료회의에서 가뭄대책을 세우라고 다그쳤고, 해당 부서 장관인 장덕진은 그 대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대책이란 양수기 수만대를 외국에서 사오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생각난 인물이 평소 알고 지내던 ‘박도사’였다.
양수기 수만대를 수입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데, 혹시 박도사에게 물어보면 무슨 수가 없을까 해서였다.
당시 계룡산에서 칩거 중이던 제산은 장덕진 장관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
내가 천기를 보니 몇월 며칠에 반드시 비가 오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견뎌 보라”는 답을 주었다.
제산의 말을 믿은 장덕진 장관은 가뭄이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양수기 수입을 차일피일 미뤘다.
얼마 후 정말 비가 온다면 양수기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날 비가 오지 않으면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이 잘못되면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이 일개 점쟁이의 말을 듣고 국사를 그르쳤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보름 동안 장덕진은 그야말로 애간장이 탔다.
정말 비가 올 것인가.
하지만 비가 오기로 예언한 날이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비가 올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별만 총총하게 빛났다.
일기예보도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덕진 장관은 ‘아! 나는 내일쯤 목이 날아가겠구나!’하고 체념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날씨가 맑은 편이었는데, 점심 때가 지날 무렵부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는 것 아닌가.
오래지 않아 장대 같은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전국적인 가뭄이 해갈된 것은 물론이었다.
필자는 이 비사(秘史)를 제산의 부인으로 부터 직접 들었다.
당시 제산의 집이 서울 연희동에 있었는데, 억수 같은 비가 오자 장덕진 장관이 흥분한 목소리로 ‘오후 6시까지 연희동 집으로 갈 테니 제산과 같이 만나자’는 전화를 하였다.
계룡산에 있던 제산은 장장관의 연락을 받고 급히 연희동으로 올라오는 중이었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장덕진은 6시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5시쯤 되었을때 비서관을 대동하고 미리 연희동에 와서 박도사를 기다렸다.
박도사 믿고 양수기 안사고 버틴 장덕진 제산의 내공이 절정기에 있을 때는 이처럼 언제 비가 올 것인가 하는 천기의 부분까지 꿰뚫는 능력이 있었다.
개인의 운명을 예언하는 것과 국가적 대사를 예언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르다.
486 컴퓨터와 팬티엄 3의 차이라고나 할까?
언제 비가 올 것이라는 정도까지 적중하다 보니 1970년대 후반부터 제산의 이름은 정치인들이나 고관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었다.
대원의견)
癸 癸 癸 癸---천간의 수기
戊 戊 戊 戊
午 午 午 午
子 子 子 子---지지의 수기
천간의 수기운
지지의 수기운
고로 온 동네방네 전국에 비가 내린다
첫댓글 일감에 비천록마가 그려지는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계 박 재완선생,자강 이 석영선생,제산 박 재현(박도사)선생.
울 나라 삼대 역술인으로 그 분들의 업적이 새삼 그리워 지는군요,
그 중, 박 도사 제산 박 재현 선생은 참으로 풍운아 같은 일대기를 남겼죠,
그 분, 군(軍) 생활을 부산 지역, 군수기지 사령부에서 했었는데
당시 사령관이 전 박 정희 대통령..
하늘이 내련준 인연으로 박 전 대통령과 유대관계가 되었으나
유신법으로 정권욕에 젖어있던 찰나에 박도사의 예견을 기다렸었는데
비서관으로 부터 전해 받은 것은 담배곽에 적혀있던 글 한 자,
靈,
결과 기관에 끌려 가 온갖 고초를 겪고..
세월이 흐른 지금, 한 치의 오차가 없는 박 도사 님의 예견력에 감탄 할 뿐이군요,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연재된 글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