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 라는 글이 독일 유태인 학살 현장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그릇된 생각이
또 다른 아프고 슬픈 역사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나비는 세 할머니를 통해
과거의 역사 속에서 오늘을 본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린 일본군의 배설물을 받아내는 변기통이었다고!”
모든 것을 묵인하려고 했던 이들이 너무나 잘살고 있는 세상 앞에 ,
통한의 세상을 살다간 희생된 이들에게 너무나 큰 죄를 잊어버리고 있는 세상 앞에,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역사를 위해 박순자 할머니와 이복희 할머니가
분노의 피맺힌 절규를 토하고 있었다.
누가 얼굴 없는 50년의 세월을 돌려줄 수 있을까?
가족도 없고 매독으로 병든 몸은 만신창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있는 증인으로 부끄럽고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는 과거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통한의 시간들을 다스릴 수 없이 짓이기며 웅크려 왔을까?
경멸의 눈빛과 야유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맞서는 두 할머니를 통해 나는 선과 가치를 캐냄으로써 사랍답게 사는 문화가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 돌아 온 넋이 한 압도된 연기자들의 온 몸으로 증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작품이 무거워 차마 숨쉬기조차 미안한 우리에게 때론 그 코믹한 연기 앞에
울다가 웃다가 한숨을 쉬어야 했다. 그러면서 오늘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증언이 선포의 단초가 되길 빌면서 무엇을 위해 우리의 할머니들이 희생했는지
거기에는 역사적 공감이 존재했다.
“미쳐야 진실을 볼 수 있으니까! 다 같이 미칩시다.
그래서 누에고치처럼 숨어있는 애벌레처럼 있지 말고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날아봅시다.”
용기란 두렵지만 그보담 더욱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여장부 같은
박순희 할머니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페 된 방에서 외부와 차단하고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김윤이 할머니에게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하나꼬라는 이름을 퍼즐 맞추기처럼 떠올리게 하는 박순희 할머니였다.
“나는 하나꼬가 아니라구요.” 등에 있는 상처는 찜질한 거라며 김순희 할머니는
그악스런 소리를 내며 부정했다. “모두 나쁜 꿈을 꾸었던거야. 악몽이었을 뿐이야.”
그동안 내면의 어머니와 주고 받으며 덕분에 기억을 잊은체
잘도 살아왔지만 하나꼬였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손녀 앞에 부끄러울 수 없다며 자살을 시도한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두려웠다며 미수로 그친 할머니 앞에
“부끄러운 할머니가 아니라 꿋꿋히 잘 살아준 할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해요”.
끌려갔을 때 그 나이 또래의 대학생 손녀딸 지나가 할머니를 사랑으로 보듬은다.
“젊은이들만이 희망인기다.” 억센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박순자할머니의 말처럼
이시대를 이끌고 갈 우리의 아들딸들은 촛불시위에서
역사의 현장을 똑똑히 지켜보았을거란 생각이든다.
그래서 내가 곧 역사이고 그 역사 앞에 나는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창문을 열어주련?” 그동안 어두운 커튼을 가리고 살아왔던 밀패 된 방안으로 한줌 햇살이
들어온다. 혁명은 이렇게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상의 인식 속에서 탄생 하는걸까?
그래서 더욱 눈물겨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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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극 공연 소식 감사드려요. 저도 봐야 되는데.. 샬롬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알찬 연극이라서 먼길 아깝지 않을 거예요.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께서는 꼭 보셨으면 합니다.^^*
녜! 많은 홍보가 되었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