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쉬트 #6
(창2:1-3:24)
“너희는 나의 증인,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
1.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신 여호와
창조의 마지막에는 사람이 아니라 샤밧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가 קָדַשׁ(카다쉬, 거룩하게 구별하다)입니다.
사람이 샤밧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일곱째 날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완성은 단순히 모든 물질을 만드신 데 있지 않고, 사람이 창조주와 함께 거하는 거룩한 시간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묵상: 나는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을 나도 구별하고 있는가?
2. 생명을 주시고 명령을 주신 여호와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에덴에는 자유와 함께 명령이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지만 한 나무에 대해서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은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 안에 머물도록 주어진 경계였습니다.
여호와의 명령 안에 머무는 것이 곧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3. 혼자 두지 않으신 여호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창세기 1장에서 계속해서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시던 중 처음으로 “좋지 않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관계 속에 두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 주어진 존재였고,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공동체와 관계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 안에 들어 있습니다.
4. 말씀을 의심하면서 시작된 죄
뱀의 첫 공격은 행동보다 먼저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말씀하시더냐”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말씀을 조금씩 바꾸어 생각하게 하며 결국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죄의 핵심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선악의 기준이 될 것인가?”
에덴의 문제는 단순히 열매 하나를 먹은 사건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건이었습니다.
5. “네가 어디 있느냐”
죄를 지은 후 사람에게 일어난 첫 변화 가운데 하나는 숨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께서 아담의 위치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겠지요.
이 질문은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아담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됩니다.
나는 지금 말씀 안에 있는가?
말씀에서 벗어나 숨어 있는가?
테슈바(회개)의 시작도 자신의 자리를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6.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
결국 사람은 에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창세기 2장과 3장이 강하게 대비됩니다.
창 2장: 생명 · 샤밧 · 교제 · 말씀 안에 머묾
창 3장: 불순종 · 두려움 · 숨음 · 에덴에서 떠남
그러므로 죄의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그런데 오늘 하프타라가 놀랍습니다.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창세기에서 인간은 여호와의 말씀을 떠났지만, 이사야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시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
무엇을 증언하는 사람입니까?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믿고,
여호와가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여호와 외에 구원자가 없음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증인의 히브리어는 עֵד(에드)입니다.
증인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알고 경험한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8.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렇다면 “예슈아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은 이것과 반대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슈아를 보내셨고, 예슈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히브리서도 예슈아께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하며, 그분을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증언합니다(히5:8–9).
따라서 예슈아를 통한 구원은 여호와와 별개의 또 다른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부터 시작되고, 여호와께서 세우신 그리스도 예슈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릅니다.
예슈아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여 맡기신 길을 완성하셨듯이, 우리 역시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며 순종의 길을 걸어 약속하신 영생의 유업에 참여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그리고 마지막 한 절이 오늘 본문 전체를 아주 아름답게 묶어줍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여호와께로부터 왔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낸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서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세 본문을 이렇게 연결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
창세기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씀을 떠나 에덴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사야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이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단순히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서 생명을 받았는지를 기억하고,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기억하고,
다시 여호와의 말씀 안에서 걸으며
그분을 증언하는 삶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9. 기도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근원이 오직 주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위해 예슈아를 보내시고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예슈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약속하신 영생의 유업을 바라보고 걷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여호와를 드러내게 하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