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ntL9Y7vcDM?si=AVW1rx9bWKQ_ZA2Q
Mozart - Piano Concertos No.11,12,13,14,17,18,19 + Presentation (Century's recording : Lili Kraus)
릴리 크라우스 Lili Kraus (1903-1986)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https://youtu.be/zf1FoAhBqos?si=TQdai8Dwf-ErdR7u
Mozart Piano Sonata No.17 in B♭ major K.570 | 릴리 크라우스
크라우스(Lili Kraus,1905-1986)는 레퍼토리가 다양하지 못한 대단히 한정적인 피아니스트였다. 기껏해야 바하,하이든,모짜르트,베토벤,슈베르트,바르토크 정도이며 그중에서도 모짜르트와 슈베르트가 그 중심이었다. 특히 크라우스의 모짜르트 연주는 20대 때부터 정평이 있었다. 매우 배타적이기로 소문 난 빈 음악원이 그녀를 교수로 초빙한 사실이 그 점을 입증해 준다.
또한,그 후 20대의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를 위해 런던에 모짜르트 협회가 설립되었다. 그녀에게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크라우스의 발밑에 꿇어앉아야 한다."는 격찬을 받게 된다.
또 대가가 아니면 기용될 수 없었던 어쿠스틱 녹음(SP초기)시대에 20대 중반인 그녀가 선발되어 음반을 내었다는 사실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크라우스의 피아노는 여성다운 매력과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그러나 템포가 빠르고 리듬이 활달하다. 그러면서도 다이내믹스는 남성 피아니스트 못지않게 박력으로 넘친다. 그 유려한 음의 흐름 속에는 깊은 사색과 공감에서 비롯되는 감동적인 호소력이 있다.
크라우스 자신의 "모짜르트의 음악은 전우주적이며 타오르는 불길입니다. 인간의 깊은 슬픔에서 기쁨에 이르기까지를 낱낱이 표현하고있으며 또 격렬한 감정의 고양 속에서도 겸허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말에서도 그녀의 열정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크라우스는 부다페스트에서 1905년 3월 4일에 체코인 아버지와 헝가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6세 때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여 8세에 부다페스트 왕립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코다이와 바르토크로부터 배웠다. 17세 때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이어 빈 음악원 매스터 클라스로 진학했다. 여기서 스토일만과 슈나벨의 가르침을 받으며 이듬해에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메달을 받고 졸업한 뒤,앞에서 말한 대로 이 음악원의 젊은 여성 교수가 되었다.
독주자로서의 활약은 16세부터이며 유럽 각지로 연주 여행을 다녔다. 특히 이때부터 모짜르트 연주의 제1인자로 꼽히기 시작했다. 20대 후반부터는 시몬 골드베르그(바이올린)와 짝이 되어 각처에서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연속 연주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둘이 세계연주 여행을 계속하다가 1942년 자바에서 일본군의 침공을 만나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 수용소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과거 일본 연주 여행(1936년)때의 그녀를 알아보는 일본군이 나타나 수용소 생활 후반에는 비록 수용소 안이기는 했지만 연주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8년에, 9년 만에 유럽으로 돌아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모진 고난의 세월을 거친 그녀의 모짜르트 연주는 더욱더 다듬어져서 눈부시게 영롱한 빛을 내뿜었다. 1956년 모짜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의 명 프로듀서이며 뛰어난 녹음 기사인 샤를랑이 손수 만든 마이크를 써서 그녀의 모짜르트 소나타 전집을 제작했다. 레코드는 디스코필 프랑세(Les Discophiles Francais)에서 발매되었다.
크라우스가 51세때의 녹음이며 그녀의 모든 레코드 녹음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 후는 미국으로 옮겨가 1966년부터 이듬해 시즌까지 뉴욕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9일 연속으로 연주했고,또 다음 시즌에는 소나타 전곡의 연속 콘서트를 개최함과 동시에 스튜디오 녹음도 병행했다. 이 소나타 전곡 녹음(CBS)은 그녀로서는 두번째의 과감한 시도였다.
그러나 63세때의 재녹음에는 녹음 기사의 몰이해와 기교의 쇠퇴 때문에 구녹음(Les Discophiles Francais)만큼의 평가를 얻지 못했다. 구녹음이 모노럴이기는 하지만 샤를랑의 뛰어난 솜씨로 선명한 음질을 들려준다."은 쟁반에 옥을 굴린다"는 표현 그대로의 명연주이다. 모노럴 시대의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으로 발터 기제킹(SP/EMI)과 크라우스(LP)를 능가할 연주가 과연 이 스테레오 시대에 얼마나 있을까? 크라우스에게는 여성적인 매력은 있지만 연약함은 없다. 모짜르트의 음악을 "전우주적"이며 "타오르는 불길"이라고 역설한 그녀가 스스로 몸으로 입증한 것이 이 모짜르트 소나타 전집이다.
그녀는 "내가 모짜르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모짜르트가 나를 선택했습니다."라고 그의 음악에 대한 천부적 사명감을 토로하면서 "극단적인 우수와 지극한 기쁨을 둘 다 아울러 알고 있는 그의 성격을 나도 닮고 있다."고 하여 모짜르트의 특성과의 일체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70세를 넘기까지 연주활동과 교육자로 생활을 하다가 1986년 81세로 미국의 애쉬(Asheville,North Carolina)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https://youtu.be/GaQ4L5mfku0?si=IsArSW4_04Ef3h-W
MOZART Sonate Nr. 17 in B-Dur KV 570 (András Schiff)
*주 :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이 곡에 16번 소나타로 번호가 매겨져 있지만 15번으로 아래 올려놓은 바장조 소나타(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15번 바장조와 론도, K. 533 / 494 )가 원래는 소나타가 아닌 다른 곡의 편곡이며 모짜르트의 편곡도 아니므로 학계에서는 이 곡을 정식 소나타로 인정하지 않아 대부분 음반에서도 연주되지 않고 악보의 출판에서도 누락된다. 그러므로 뒤의 두 곡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보다 한 번호씩 당겨져 모두 18개의 소나타가 된다. - 여기서는 Henle사의 출판번호를 따랐다.
1789년, 모짜르트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인 2월에 빈에서 작곡되었다.
심한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모짜르트를 특징 짓는 맑은 음조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이 곡에는 바이올린 파트가 덧붙여져 있어 바이올린 소나타로서도 알려졌지만 모짜르트 본인에 의해
쓰여진 것은 아니고 그가 죽은 후 요한 앙드레가 편곡을 해 붙인 것이라 알려지고 있다
글쓴이 : 미술관지기(정문규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