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아주 '불행한 행운'이다. 이제까지 TV는 그의 목소리를 3초 이상 재생하는 데 실패했고, 신문은 그의 멘트를 한 줄 이상 인용하지 못해왔다. 그러나 나는 양동근과 오랜 대화를 나눴다.
양동근은 이 인터뷰를 끝내고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있는 국립극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일정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의 소망대로 회색 후드티에 퓨마 스니커즈를 신고 레드 카펫을 밟을 수도 없게 됐고(시상식 의상은 네크라인이 와이드하게 파인 돌체 앤 가바나의 캐주얼한 니트에 구찌 샌들로 타협됐다), 이미 그가 드라마 부문 신인 남우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전날 신문사 기자로부터 통보 받은 터였다.
"재미있으세요? 난 재미 없어요."
누군가에겐 흥미진진한 이 롤러 코스터가 양동근에겐 상업적인 각본으로 배분된 지루한 올림픽 같다.
"12년 전에 당신은 <형>이라는 드라마로 바로 그 시상식장에서 아역 배우상을 탔어요. 설마 잊은 건 아니죠?"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재미있네요."
"지금 뭘 하다 왔죠?"
"TV 보다 왔어요. 개그 콘서트…."
"어젯밤엔 무얼 했죠?"
"TV를 보다 잠이 들었어요. 리모콘을 계속 돌리다가 잠이 들었죠."
그는 역삼동의 원룸에서 혼자 산 지 4년이 됐다. "집에 있으면 늘 배가 고파요." 드렁큰 타이거와 티의 앨범을 듣고, 리모콘을 M-TV 스타일의 빠른 비트로 돌려대다가 스쿠터를 타고(<유치찬란> 앨범의 힙합 피처링을 도와준 것에 대해 이문세가 선물한), 편의점에 들러 장을 본다. 청소 세례를 받아본 적 없는, 먼지의 두께가 자그마치 10cm나 되는 방 안에서 그는 혼자 소고기를 구워 먹고 요플레를 마신다. 그의 방은 가난하고 경솔하고 자유롭다.
"세상이 재미 없군요?"
"맞아요. 나는 세상이 재미 없어요. 재미있는 건? 자유… 그런데 느껴본 적 없어요. 살면서 평생 느낄 수 없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사람들이 계속 나를 보니까요."
"그건 당신이 선택한 직업이에요. 그걸 즐겨야 해요. 스타의 집은 대중의 환상과 시선이죠."
"그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두려워서 지속할 뿐이에요. 어릴 적 세검정에 살 때는 명동, 이태원, 종로, 이대앞을 마음껏 쏘다닐 수 있었어요. 이젠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요."
"왜 연기자가 됐어요?"
"그땐… TV에 나오고 싶었어요. 엄마한테 연기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고 어쩌다가 방송국에 와 있었어요. 그리곤 주욱 이렇게 삶이 지속됐어요."
그의 눈은 검고 투명하다. 그 위로 지독한 곱슬머리와 자의식의 검은 숲 같은 턱수염이 웃자라 있다. 중견 연기자 길용우는 얘기했다.
"꼬마 양동근은 특이했어요. 그당시 다른 아이들은 부잣집 아들 역할을 시켜야만 잘했지요. 하지만 양동근은 처음부터 가난한 아이든 부잣집 아이든 어떤 걸 시켜도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물오른 연기자였어요." 12년 동안 물오른 연기자였던 그가 아이러니컬하게 <네 멋대로 해라>로 신인 연기자상 후보에 올랐다. "섭섭하지 않나요?" "세상은… 섭섭한 것 투성인 걸요"라고 그가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양동근의 얼굴이 밝아진 것은 촬영용으로 섭외한 '할리 데이비슨 883'을 보고 나서다.
"할리 데이비슨 좋아해요?"
"네! 타고 싶어요. 부릉부릉 재밌잖아요."
"싸게 주선해줄 수 있어요. 1천2백만원이래요."
"에이~ 나한텐 너무 비싸요." 웨이팅 리스트로 예약된 핸드백 하나도 기천만원인 세상이다.
"돈 많이 벌잖아요?"
"누가 그래요? 다 실속 없어요. 난 돈 없어요. CF를 안 찍잖아요. 쉽게 돈 벌고 싶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하기 싫은 것 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꿈이 있어요?"
"꿈? 그런 거 없어요. 지금 하고 싶은 건 세계 여행."
그는 햇빛과 바람이 있는 어떤 바닷가를 얘기했는데, 그건 마치 <쇼생크> 탈출의 엔딩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에게 현재는 모호한 감옥이다. 수인도, 간수도 모두 동일 인물인, 말하자면 그는 언제든 탈출할 키를 가지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감옥 위 페놉티콘에서 그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광장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동근은 <골목길> 같은 노래를 부르고, 랩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노래한다.
"에미넴의 <8마일>은 재밌었죠?"
"백인인데 흑인 것 잘하니까 멋있죠. 하지만 에미넴이 내 우상은 아니에요."
"그럼, 누가 우상이죠?"
"…마이클 잭슨. 그가 내 영원한 우상이에요. 성형 수술은 그의 사연일 뿐, 내게 한번 우상은 영원한 우상이죠."
배우에게 어두운 면이 없다면 결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그가 브라운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네 멋대로 해라>의 '복수'-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듯한, 순수하고 따뜻한 식물 같은 모습-는 그의 잃어버린 유년이 준 본능적인 특혜일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을 해도 단번에 만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아버지와, 다방을 하며 그 경제적 여백을 메우던 어머니 사이에서 '잡초'처럼 자랐다. "나는 엄마가 그 일을 하는 게 싫었어요. 지하에서 쉬지도 않고 일을 하셨거든요." 그는 다른 아역 스타들처럼 어머니 손에 이끌려 택시를 타고 방송국을 드나든 기억이 없다.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가서 그에게 주어진 대본대로 충실하게 연기를 했다. 촬영장은 그에게 집이자 학교이자 일터였고, 양동근은 어린 나이에 이미 어른이었다. 언젠가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양동근에게 'TV는 사랑을 싣고' 스타일의 사람 찾기를 주선한 적이 있다. 그때 양동근이 찾은 사람은 드라마 <형>의 FD. 그는 어린 양동근을 집으로 데리고 갔고, 밥을 먹이고 막내동생처럼 대했다. "그 형은 지금 그림 공부하러 브라질로 떠났죠. 나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많은 어른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뿌리가 바로 환경이라고 말했다.
"<와일드 카드>는 왜 선택했나요? 보도자료를 인용한 신문에선 '양동근, 근성 있고 쿨한 형사로 변신'이라고 쓰여 있던데요."
"쿨하다는 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뜻이지요."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사람들은 당신을 향해 '쿨한' 사랑의 전범이라고 했지요."
"쿨하다,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성에 대한 도전이지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꼰대' 스타일의 형사와는 다른… 불의에 민감하고 사랑에는 집요한 그런 형사 말입니다."
"선배 형사로 출연했던 정진영 씨는 양동근과 같이 일하고 약 올리고 삐지고 도와주고 골탕 먹이고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놀라는 중이라고 했죠. 그와 진한 동료애를 쌓았나요?"
"그 영화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특히 정진영 선배는 나와 정말 닮은 점이 많아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우리 둘만의 비밀입니다"라고 모호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는 '쿨하다'라는 디지털적인 태도를 아날로그적인 따뜻함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드문 연기자다. 그는 TV 시트콤 논스톱>에서 '구리구리 양동근' '럴 수 럴 수 이럴 수가' 같은 80년대풍의 유행어를 신구 세대 모두에게 전염시켰고-그의 열렬한 팬인 양희은이 그의 유행어를 따라 하며 시트콤에 우정 출연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 가요계의 대모는 양동근 앞에서 처음 오디션 받는 학생처럼 <아침 이슬>을 불렀다-, 동시에 같은 시즌에 전후 세대의 혼란을 다룬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행보에 경탄할 새도 없이 레게 머리를 했고, 힙합과 랩을 열창했다. 아니 열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카메라 앞에서 하루 아침에 떴다가 추락하는 스타들, 백스테이지의 스태프들을 보아온 탓에 양동근은 일찍 명성의 본질이 덧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연기든 노래든 그가 하는 일에 목숨을 걸 것처럼 몰두하지만, 그 일의 목적과 결과에는 일부러 냉소적인 거리를 둔다. <와일드 카드>를 감독한 김유진 감독은 말한다.
"양동근은 세상을 너무 어렵게 살아요. 연기는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걸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고문하는 겁니다." 홍보 담당자는 그를 '아기 호랑이'라고 얘기했다. "발톱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답니다."
그만의 발톱이라…, 그건 돈과 명예의 매커니즘에서 그가 선택한 가난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때때로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스케줄'이라는 오토매틱 보드에서 그가 일으키는 개인적인 소용돌이를 말하는 것이다. 양동근은 며칠 전 나와의 촬영을 지연시키고 갑자기 대전으로 떠났다. 그의 절친한 친구('골목길'의 안무를 담당했던 그의 중학교 동창으로 지금은 댄스 강사를 하고 있다)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몸져 누웠기 때문이다. "내게 그순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중학교 때 어떤 놈이 교실에 커다란 카세트 데크를 가져와서 힙합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때 내가 슬쩍 다가가서 웨이브 춤을(어깨와 몸을 부드러운 파도처럼 움직이는 동작을 시연해 보이며) 보여줬죠. 그리고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어요. 그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예요." 그의 동공이 우정의 깊이로 반짝였다. 우리는 양동근이 어느날 갑자기 힙합 래퍼로 변신한 줄 알고 있지만, 그건 그 우정의 역사만큼 진한 나이테를 가진 것이다.
<논스톱>의 PD는 시트콤 촬영장에서 양동근이 틈 날 때마다 종이에 랩 가사를 메모하고 있었다고 했다. <와일드 카드> 촬영장에서도 그는 영하 14도의 날씨에서 곱은 손등을 녹여가며 랩 가사를 썼다. 양동근의 팬들은 그가 노래하는 랩(분절되어 있지만, 중의적이고 전체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만드는)을 해석하기 위해 홈페이지에서 토론을 벌인다. "손가는 대로 떠오르는 문장을 끄적이는 것뿐이에요. '밥이 먹고 싶다' 같은 그런 일상의 하고 싶은 말들… 메시지가 아닌 마음이 중얼거리는 문법도 잘 맞지 않는 언어들이죠." 래퍼들은 싫어하는 것, 열광하는 것, 증오하는 것을 노래와 리듬에 실어 발언한다. 그들에게 힙합은 사회적 오락의 진원이며, 아버지라는 엄한 어른에 대한 쿨한 반항이다.
"어릴 때 나는 아빠한테 '왜 내 이름이 동근이에요?'라고 물었어요. "좋잖아. '동쪽의 뿌리!' 게다가 여자가 '동근 씨~'하고 부르면 얼마나 멋있냐?" 그러셨죠.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동쪽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런 양동근이지만 얼마 전에 부모님의 이웃을 위해 그가 그토록 멋쩍어 하는 사인을 '100장이나' 해주고 왔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양동근이 돼야죠.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지금 나는 뭔가를 더 이루고 싶은 것도 없어요.
내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갖고 싶은 신발을 살 때예요." 그는 자신의 퓨마 스니커즈를 가리켰다. 그 표정이 아주 날카롭고, 어둡고, 재미있고, 진지하다. 그는 유명 인사들이 정통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경계한다. TV에서 '이라크 전'에 대한 스타들의 동향을 스케치했을 때, 그는 공격적인 마이크를 향해 딱 한마디를 했다. "이번 전쟁은 석유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요?"라고.
원하던 후드티 대신 시크한 돌체 앤 가바나 수트에 구찌 샌들을 신고 예정된 트로피를 받는 지루한 쇼가 끝나면, 그는 배우 류승범의 집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잘 모르겠어요. 어느날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류승범이 전화를 했어요. 내게 밥을 지어주고 싶다고." 왜 류승범은 별로 친하지도 않고 데면데면한 그를 초대해서 밥을 먹이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손등으로 물 가늠을 해서 지은 뜨거운 밥알을 삼키며, 이 냉소적이고 컬트적이고,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젊은이는 뭐라고 말할까? '재밌다!'라고 하면 성공한 것이다.
에디터 / 김지수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
헤어&메이크업 / 예원상(컬처 앤 네이처)
의상 / 아르마니, Koon
신발 / 나이키, 질 샌더
첫댓글 난 가끔 동근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동근이의 저 말 "양동근이 되어야죠."에 늘 화들짝 놀랍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저런 생각을 품고 사는지...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동근이 동근이 처럼 사는것도 저말 멋있는 삶인데......... 요즘 왜 난 나보다는 남처럼 살고 싶은것일까? 나도 동근이처럼 내가 되어야 하는데.......... 흠........ 紅
같이 고기를 구우면서 소주 한잔 하고픈 사람이네요 유유상종이라고 류승범씨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