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티나무
우리 마을엔 천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다. 여느 나무들처럼 봄이면 새잎이 나고 가을이면 낙엽이 진다. 둥치에선 천년의 무거운 세월이 느껴지지만 올봄에 새로 나온 가지는 어리고 풋풋하기만 하다. 그 가지들이 자라서 굵은 줄기가 되어 또 어린 가지들을 치면 그 자체로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 꼴을 갖춘다. 그렇게 천년의 느티나무는 나무 위에 나무가 자라고 그 위에 또 나무가 자라 어느덧 느티나무의 군락을 이루었다. 나무는 어느덧 가을을 맞았다. 나는 나무 밑에서 낙엽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러다 지치면 빗자루를 옆에 세워두고 나무를 지켜보았다. 낙엽은 나무의 가장자리부터 졌다. 올봄에 새로난 잎부터 지기 시작해서 조금씩 안쪽으로 조락이 계속되었다. 말하자면 가을이 깊어 가면서 어린 나무들이 큰 나무를 한 그루씩 한 그루씩 떠나가고 있는 셈이다. 어느 날은 석양녘에 그 나무를 바라보니 다른 나무들은 다 떠나고 어느덧 그 중심에 작은 나무 한 그루만 잎을 단 채 남아 있었다. 누가 알랴, 저 모습이 몇 백 년 전 젊은 나무의 모습인 것을. 나는 나무와 더불어 회상에 잠긴다. 내 옆에는 이미 떠난 나무들의 추억이 한 짐 쌓여 있다. 석양에 나무가 저렇게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면서 수축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무는 계절과 함께 신축과 이완을 계속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왕복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무는 저렇게 죽음을 넘어서서 우주의 호흡을 익히는 지도 모르겠다.
■ 붉은 낙엽
모처럼 K시에 들렀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구석구석 내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물론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연유인지 나를 반길 사람보다는 나를 피할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라진 사람도 많고 그 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있다. 또한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서로 까맣게 존재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거리를 혼자 걷고 싶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추억에 잠겨 걷고 싶을 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새롭게 변모한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흔연스럽게 걷고 싶을 따름이다. 숱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익숙한 듯 하지만 그저 낯선 사람들일 뿐이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문득 어느 나무와 마주친다. 어쩐지 오랜 인연과 재회한 느낌이다. 때는 가을 오후이고 잎은 타는 것처럼 붉다. 그 아래 낙엽들은 피보다 짙다. 혹시 이 나무는 내가 멀리 떠나 있는 동안 줄곧 나를 기다려 온 나의 분신은 아닐까? 나는 불현듯 그 나무 안에 든다. 먼 길을 방황하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 때문인지 이렇게 피흘리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새점
공원 계단에는 새점을 치는 노인이 있었다. 새가 깡통 안에 든 점괘를 부리로 집어올리면 노인이 그걸 풀이해주는 것이다. 어쩌다 젊은 연인들이 호기심으로 점을 쳤고 근처의 할 일 없는 노인들은 그 새점을 구경하며 그들이 떠난 후에도 그 연인들의 점괘와 그들의 운명에 관하여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그 새점 치는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새점에 흥미를 잃었거나 새가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정작 노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노인이 공원에 있을 당시에는 점 따위는 볼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어느 날 불현듯 그 새점을 한 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새가 집어올린 길게 접은 기름종이와 거기에 한글로 서투르게 적혀있는 내 운명을 보고 싶은 걸까? 그 영특한 새의 몸짓과 날개짓 따위를 보고 싶은 걸까? 아니라면 하늘을 나는 새에게라도 부질없는 내 운명을 묻고 싶은 것일까? 공원의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떠난다. 짧은 순간 나뭇가지가 휘청이며 흔들린다. 나무가 앙상해지는 가을에 나는 혼자 공원 계단에 앉아 있다. 그리고 어느 새가 어느 가지에 앉는지를 유심히 바라본다. 새는 언제나 무심코 나의 고독한 노년 따위를 예고하며 훌쩍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