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바랜 얼굴을 가진 한 여자가 있다. 눈썹을 그리고 살짝 립스틱를 발랐다.
거울속에 여자가 웃고 있다. 빛바랜 여자는 없다. '그래! 아직 이 정도면 쓸만하지 작게 웃어본다.
지난 토요일에 손주 두명이 왔다. 지 엄마손을 잡고. 작년 방학때 왔다 가더니 다시는 할머니 잔소리가
싫어 오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나는 그냥 웃었다. 나도 그 나이에는 그랬지. 외갓집에 가서 토라져서
혼자 논길을 처량맞게 걸었지. 별수 없이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갔지. 엄마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지.
다시는 오지 않을거야 다짐하지만 엄마가 외갓집에 가면 안면을 바꿔 또 가곤했었지.
혼자 걸었던 그 벌판은 기억속에서 끝없는 지평선이 되어 나의 추억속으로 스며들어 손주들이 말을 안 듣기라도
하면 추억을 꺼내들고 그때는 나도 그랬어. 다 이해한다하고 너그러운척하다가 또 어느새 소리를 지르고...
"아니 그래 종일 게임만 하면 나중에 뭐가 되겠니?" 아이들은 슬그머니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척하다가
내 기분이 풀어지면 이내 게임의 바다속으로 풍덩 빠져있다. '그래! 맘데로 해라. 내 인생도 아닌데 뭔 걱정'
토요일에는 딸이 있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딸은 일때문에 가버리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뜨겁다. 아이들은 양산을 쓰고 나는 태양모자를 썼지만 거리는 너무 뜨겁고 나중에는 팔쪽을 따갑게 쪼아대는것 같다.
남도 사람인 나는 이곳에 와서 이렇게 덥고 가물어서 풀들이 배배꼬이는 몸으로 축 늘어진걸 보니 나 어릴적 그렇게
선명하게 아름다웠던 기후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여름 장마는 한달내내 계속된다. 장마가 지나가면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어머니께서는 콩밭을 매러 가자고 하신다. 거절을 못했다. 엄마 나 안 갈거야. 날이 너무 덥잖아. 그런 말들은 맘속에서만
맴돌고 억지로 따라가서 밭고랑에 앉으면 등에 따끈한 냄비 하나 올려 놓은것 같앴다. 한없이 꾸물대기만 하는데 "얘야!
너는 그냥 밭은 매지말고 엄마옆에 있어. 맬려면 조금만 매든지"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너무 외로
웠구나 그래서 고명딸인 나를 옆에 두고 외로움을 달래려고 하셨구나. 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세상 떠난지 오래다.
아이들과 달리다 싶이 하여 다판다로 들어갔다. 숨을 몰아쉬고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공기를 마시며 기분좋게 아이들이
원하는것을 하나씩 사주었다. 돌아오는길은 더 뜨겁다. 에어컨의 추억이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해서 그늘만 찾아 다니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에게 야단을 단단히 맞았다. "아니 이 더위에 애들 죽이려고 작정했어. 쓰러지면 바로 가는거야. 너희들 내일부터는 할머니 따라다니지 마라. 알았지?!" 아주 다짐을 하신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바로 실천을 한다.
할아버지가 나가지 말랬으니 나가지 말고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놀자고. 남편이 출타를 하시자 " 야! 나가자. 물놀이장에
가야지. 빨리 옷 갈아입어. 집에서 먹고 놀기만 하면 그건 돼지나 소들이 하는 짓이지"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옷을 갈아입고 얼음물을 들고 아이들을 따라간다. 그렇게 저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하루종일 세끼에다 간식까지 챙기고 밤이면 과자파티를 해야한다고 해서 다 소원을 들어주었다. 보약도 한첩 다려서 꼬박꼬박 먹였다. 낮에 얼마나 힘이들었는지 밤에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면 나는 세상없이 누가 보쌈을 해가도 모르게 잠을 자곤했다. 자기전에는 항상 이렇게 기도했다. 예수님
잘자고 내일 또 아이들 밥 잘해주게 해주세요. 주님은 너그러우신분 나의 부탁을 잘도 들어주셨다.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가고 아이들의 집으로 꼬박 네시간이나 차를 타고 도착하니 아이들은 마음이 바쁘다. " 할머니! 친구
만나러 가도 될까요?" " 안돼. 여섯시에 엄마아빠오면 그때 가도록해" 아이들은 조용조용 지네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
할머니는 친구 만나러가지도 못하게 해. 엄마가 말해줘....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이내 포기하고 허리를 펴고 누워서 여독을
달래는데 화가나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기차를 타고 영산강을 바라보면 거기 늘 물줄기가 빛을 내며 흘러가곤했다. 기차는 아주 천천히 움직여 마을마다 서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주곤했다. 기차에서 내릴쯤이면 나는 늘 아쉬웠다. 이 기차를 타고 마냥가면 어디가 나올까?
어디서 얻어 들었는지 서울이 나올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엄마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연신 멀어져가는 기차역을
돌아보았다. 기차역은 숨쉬기 어려웠던 어릴적 나의 삶의 숨구멍인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저 기차를 타고 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그러다 저리다 지금 여기까지 왔고 또 나에게는 손주들이 생겨나고 그 아이들은
왜? 또 쓸데없이 이쁜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다. 다음 날 서둘러서 딸 집을 나와 홍천강 건너편 터미널로 가는 도중
아름다운 강과 산의 수채화들을 몇 장 찍었다. 나는 기어히 걸어서 홍천강 다리를 건너고 이내 터미널에 도착 가장 빨리
가는 차를 탔다. 뒤로 멀어져가는 홍천강을 바라보며 " 그래! 잘들 먹고 잘들 살아라" 한번 웃어본다.
인생은 늘 그랬을것이다. 도돌이표처럼 돌고 돌아 긴 강물처럼 그렇게 나의 시간들은 흘러간다.
뜨거운 날씨에 얼마나 푹 삶아졌는지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 침으로 해결하다가 옆으로 자꾸 번져서 지부자. 백선피.
사상자. 백질려를 각 10그램씩 달여서 먹었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내가 일하는곳이 새로 건물을 짖게 되어 잠정 6개월 방학에 들어간다.
거울앞에 앉아 하얀 여자를 보다가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른 여자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우울했던 젊은 시절을 잊고 백세시대를 기대하며 거울을 본다. 하얀 얼굴에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리라.
숨쉬는 그 순간까지........!!!!!!!!!
" 할머니! 잘 도착 하셨어요?" 한통의 전화에 헤헤거리며 벌써 아이들이 보고싶구나.
이제 짝사랑은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