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반야경(般若經) 14】.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소승불교 교리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12처설이다.
12처는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을 말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작용이 일어나는데, 우리가 안다는 것은 이게 전부다.
안다는 게 별 거 아니다. 앎이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육근과
육경이 만나서 형성된 것이라는 것이 12처설이다.
그런데 당시 소승 불교인들은 12처설을 또 다시 요소설로 이해한 거다.
색이란 실체가 있고, 성향미촉법, 안이비설신의 역시 각각 다 실체가 있는 걸로
생각한 거다.
세상 속에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실체가 있다’ 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지만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 보면 해가 뜨고 해가 지니까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문장은 12처 앞에 무(無) 자가 각각 다 붙어 있는 것인데, 무(無) 자가 모두에게 적용된다.
12처설의 요소화, 실체화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이 문장은 18계설의 요소화, 실체화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일체가 12처라면, 같은 것을 눈으로 보고, 같은 것을 귀로 들을 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알아야 된다.
그런데 제가 지금 강의를 하는 중에도 여러분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듣고 똑같은
모습을 보지만 여러분들 각자 받아들이는게 다르다.
이것은 12처설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법륜스님 얘기를 듣고 알았고, 법륜스님 모습을 보고 알았다.
아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식기관과 인식대상이 만나서 아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12처설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왜 사람마다 아는 것이 다른지는 12처설로 설명이 안 된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결과가 똑같이 나오는 것 같지만, 흑백으로 찍는지, 칼라로
찍는지, 카메라 성능이 어떠한지에 따라 사진이 다르게 나온다.
그렇듯이 사람마다 각각 인식을 할 때 그 바탕이 되는 ‘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르게 알게 된다.
그걸 업식이라고 한다. 볼 때도 업식이 작용하고, 들을 때도 업식이 작용하고, 냄새 맡을 때도 업식이 작용한다.
똑같이 된장찌개 냄새를 맡아도 업식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구수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역겹게 느끼게 된다.
냄새에 객관적인 실체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껴야겠다.
이렇게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코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된장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사람마다 각각 업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식 역시 형성된 것이다.
업식은 볼 때도 작용하고, 들을 때도, 냄새 맡을 때도, 맛볼 때도, 감촉할 때도, 생각할 때도 작용한다.
그래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이렇게 여섯 가지로 말한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여기에 더해서 안식
(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까지
이렇게 18가지가 일체라고 보는 것이 18계설이다.
오온설은 약간 주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면, 12처설은 약간 객관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양쪽을 보완해서 나온 것이 18계설이다.
대승불교가 일어날 당시 기존 불교는 18계설을 18가지 요소설로 이해했다.
요소설은 각각이 실체가 있는 근본 종자라는 생각이다.
그런 실체가 있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 대승불교다.
18계를 다 나열하지 않고, 첫 번째와 마지막 것만 쓰고 나머지는 생략해서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眼界 乃至 無意識界)’ 이렇게 썼다.
<오온>과 <육근/육경/육식>의 관계를 알아보겠다.
오온이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말한다.
그게 바로 다섯가지이며, 색수상행식이다.
그러므로 오온이란 나 자체를 분석한 것이다.
육근/육경/육식이란 나와 바깥 대상을 동시에 분석한 것이다.
나와 내가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나와 세상을 말한다.
내가 바깥 대상과 접촉하는 것은 바로 나의 감각기관이다.
그 감각기관이 바로 육근이며, 그게 바로 眼耳鼻舌身意이며,
한글로 표현하면 눈/귀/코/입/몸/뜻이다.
이 감각기관을 육입(六入)이라고 부른다.
왜 入인가하면 감각대상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육입을 육근(六根)이라고도 부른다. 根이란 감각기관이란 의미다.
그 감각기관(육근)의 대상이 바로 육경(감각대상)을 뜻한다.
그게 바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며,
한글로 표현하면 빛깔/소리/냄새/맡/접촉/생각꺼리다.
왜 육경(六境)인가하면 대상 경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오온에도 색이 있고, 육경에도 색이 있습니다.)
(오온에서의 색은 물질이란 뜻이고, 육경에서의 색은 빛깔/형체라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이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합쳐서 12처(處)라고 부른다.
열두 장소라는 의미다.
안의 육근과 바깥의 육경이 서로 인연화합되어야만 대상경계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
눈은 빛깔을 상대하고,,
귀는 소리를 상대하고,
코는 냄새를 상대하고,,
혀는 맛을 상대하고,
몸은 감촉을 상대하고,
뜻은 생각꺼리를 상대한다.
육근 + 육경 = 12처(處)
이때 우리에겐 계속 이어져 오던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육식이 생긴다.
그걸 통털어 18계라고 한다.
눈으로 빛깔을 보면 안식이 생기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 이식이 생기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 비식이 생기고,
혀로 맛을 보면 설식이 생기고,
몸으로 감촉을 접촉하면 신식이 생기고,
뜻으로 생각꺼리(법)을 인식하면 의식이 생긴다.
바같 대상 경계를 통털어서 보면 총 18가지 이므로 18界다.
界란 요소라는 뜻도 있고, 경계라고도 풀이한다.
육근 + 육경 + 육식 = 18계(界)
왜 界라는 용어를 썼을까?
모조리 다 바깥 경계이기 때문이다.
18가지 모두에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어서 "나"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의 측면에서 보면 18계는 모조리 다 윤회의 <요소>이며, 바깥 <경계>다.
오온도 공하며,
육근도 공하며,
육경도 공하며,
육식도 역시나 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