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데리 데카퀴타(Kateri Tekakwitha)는
1656년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인
오세르네논 (현재의 뉴욕주 오리스빌)에서
인디언 부족인 모호크 족 추장의 딸로 태어났다.
이웃 부족 알곤퀸 출신인 어머니는
이미 프랑스 예수회 수사(修士)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
네 살 되던 해, 모호크족에 천연두가 돌았다.
역병을 앓은 카데리는 얼굴에 심한 흉터가 생겼고,
시력을 거의 잃게 됐다.
게다가 그 전염병으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
이웃 부족 추장에게 양녀로 입양된 카데리는
가톨릭에 의지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남긴 묵주를 꼭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당시 인디언 부족 사이에서 서양 종교는 금기였다.
양아버지에게 묵주를 빼앗기고,
부족민한테 갖은 박해를 당해야 했다.
카데리는 고행을 통해 박해를 이겨 나갔다.
침대에 가시를 올려놓고 기도를 올렸으며,
병든 노약자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그런 틈틈이 부족 아이들에게 성가(聖歌)를 가르치고,
가톨릭을 인디언 사회에 전파했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박해는 심해졌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그녀는
1679년 인디언 가톨릭 교인이 모여 살던 퀘벡주로 이주했다.
그녀는 프랑스 이름 카트린을
인디언 식으로 발음한 카데리를 자기 이름으로 택했다.
그녀의 인디언 이름인 '데카퀴타'는
'정리 정돈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봉사와 고행으로 시간을 보내던 카데리는
이듬해 168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기적은 카데리가 숨을 거둘 때 일어났다.
한평생 그녀를 따라다녔던 얼굴 흉터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병자들도 치유됐다.
그녀의 기적은 330년 후에 다시 재현됐다.
2006년 한 수녀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섯 살짜리 인디언 소년 몸에
카데리의 손목 뼛조각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소년의 병이 완치된 것이다.
198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시복(諡福·성인 추대 전 단계)됐던 카데리는
교황청에 의해 인디언 최초로 성인으로 추대됐다.
교황청은 카데리를 포함해
1880년대 말 하와이의 나병 환자촌에서
봉사 활동을 한 마리안느 수녀 등
모두 7명을 새로 성인으로 추대했다.
글...조선일보, 2011년 12월 22일, 파리=이성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