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힘
마 7:7-11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댄젤 워싱턴이 주인공인 존 큐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위치볼드와 가족들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심부전증으로 쓰러진 아들을 위해 그는 권총을 들고 병원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해야만 하는 아들에게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퇴원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조치 앞에 그는 권총을 들고, 병원을 찾아가 담당주치를 인질로 잡고, 수술자 명단에 올려주길 원합니다. 이 때 병원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주인공과 인질로 잡힌 사람들의 논쟁은 마치 욥기에서 욥과 친구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연상시킵니다. 문제의 원인은 나라가, 보험회사들이, 잘못된 정책이라는 논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위치볼드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게 됩니다. 경찰은 주변을 둘러싸고 저격수를 통해서 그를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마지막 결단을 합니다. 자신의 심장을 아들을 위해 내놓기로 한 것입니다. 즉 자신이 자살을 하면 인질로 잡고 있는 의사가 이식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 죽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에 의사도 동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머리에 총을 대고 당기는 긴박한 순간이 왔습니다. 찰칵, 그런데 첫발이 불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 극적으로 아들의 심장을 대신할 수 있는 사후 기증자가 발견되어 아들은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아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던지려고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이 진심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인질로 잡혀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인물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온 대사로 아니지만, 그가 말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들이 있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결말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결과, 즉 기적적인 결말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목숨마저 바치고자 했던 아버지의 그 사랑이 아들을 살려낸 이야기이지만, 감독은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도록 하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힘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기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기도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는 반복적인 강조를 하시면서 기도에 대해 권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힘은 결국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목적을 위해 권총을 들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던질 만큼의 인간적인 노력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바로 기도와 믿음입니다.
예수님 이전 유대교에도 기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도는 대단히 중요한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기도에 대한 세 가지 확신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람이 기도하면 그 기도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 왕관을 만들어 하나님의 머리에 얹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기도는 인간의 죄악과 상관없이 천사가 깨끗하게 만들어 상달(上達)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기도는 아무리 반복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야곱은 좋은 본보기입니다.
창31장의 야곱은 얍복 강가에 천사와 씨름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달라고 몸부림 쳤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끈질기게,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기도했던지, 그의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였습니다. 결국은 천사가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왜 그랬습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주님께만 인자하심이 있고, 속량하시는 큰 능력이 그에게만 있다."(시 130:7)
성도의 자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분의 능력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구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며, '찾아라'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음을 뜻하며, '문을 두드려라'는 것은 문이 닫혀 있음을 뜻합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소유한듯해도, 하나님의 영역까지는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생명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까? 한치 앞도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을 믿으며, 세상의 많은 성공방정식은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최선을 다해야지요. 성공을 원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도둑놈이지요. 잘되기를 원하면서 열심히 없다면 심보가 틀려먹은 것이지요. 그러나 최선을 다한 후에 겸손하게 하나님께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대하 20장에 여호사밧은 35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민족의 신앙을 새롭게 하였으며, 전국토를 요새화했습니다. 즉 전쟁을 대비하여 국력을 키운 왕입니다. 어느날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했고, 준비도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전국민과 더불어 금식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이와같습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셨느니라.”(대하 20:15,17)
말씀은 받은 그들은 부대에 선봉에 찬양대가 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 후에 부르는 개선행진곡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싸우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제가 흥월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옆 마을 성은교회에 이상주 목회를 나왔습니다. 함께 총각 목회하면서 같이 대학원도 다니고, 한해 차이로 결혼도 했고, 지금까지도 각별하게 지내는 동생이자 목사님입니다.
성은교회는 마을회관에서 시작되어 오랫동안 그렇게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라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결국은 소송에서 졌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기가막힌 일이 벌어 졌습니다. 당시 이상주 전도사가 26살쯤 되었을 것이고, 성은교회에 권사님 3총사가 계셨습니다. 사진에 나오시는 분들입니다. 가난한 산골의 미자립교회의 권사님이들 하실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낮에는 농사짓고 저녁이면, 교회에 모이셨습니다. 교회 사택이 예배당과 벽하나 사이였습니다. 그러니 교회 권사님들이 모여 밤새 기도하는데, 총각 전도사의 벽하나 사이에, 기도 소리 다 들리는데 편히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다. 자발적이 기도했겠지만, 강제적 철야 기도가 거의 일년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한국감리교회의 모교회라는 정동감리교회에서 2억5천만원을 건축헌금으로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그때가 1999년이니 대단한 금액이었습니다. 가을에 건축이 시작되어, 겨울에는 골조가 세워지고, 한겨울이라 공사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의 아버지가 한국 부흥단 단장으로 계셨는데 연결이 되어, 부흥회를 하면서 제가 섬기던 흥월교회와 성은교회가 연합으로 부흥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당연히 제가 섬기던 흥월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은교회는 겨우 골조 공사 끝난 교회라, 바닥은 시멘트고, 난방도 안되는 상태에서 강원도의 2월의 찬바람을 맞으며, 부흥회를 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주 목사가 우기는 것입니다. 성은교회에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습니다. 교회 건축이 걸려 있으니, 제가 못이기겠더라구요. 결국은 성은교회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에 나온 현수막을 보면서, 깜짝 놀랐네요. 건축을 위한 부흥회는 아니었고, 연합 부흥회였는데, 이상주 목사가 저렇게 만들었더라구요. 바람을 막으려고 비닐로 창문을 막고, 바닥에는 뭘 깔고.. 그리고 이 추운데, 누가 오려나.... 부흥단장을 모셔놓고, 강사비는 드릴 수 있을지... 도저히 계산이 안서는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3일 저녁을 하는 동안 그 수가 더하여 마지막 날에는 영월의 기독교인들이 몰려와서, 정말 부흥성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했던 기도와 열정의 교회가 완공되어, 지금도 영월 서강대교 바로 옆에 예쁜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이상주 목사는 더 그렇겠지만, 제게도 목사로서 잊지 못할 체험이고 추억이고, 간증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세상적 상식을 뛰어넘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성도, 믿는 자의 힘이 됩니다.
오늘 이곳에서의 마지막 주일예배가 되었습니다. 교회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던 지난해 6월, Foothill에 있는 교회를 다 방문하여 교회를 찾았습니다. 지난 1월에는 텔레그래프로드와 텔레폰로드를 중심으로 교회를 방문하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녔던 교회가 20개가 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다음주에 가는 코스트라인 바이블 처치는 제가 방문했던 모든 교회의 거의 마지막 교회였습니다. 결정되고나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교회부터 갔으면 덜 고생했을텐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셨을까요? 제가, 그리고 교회가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그리고 응답하셨습니다. 너무나도 귀한 체험이고 저의 목회적 자산이고, 그 힘으로 이 순간도 여러분에게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