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밤새 눈이 소복히 내렸고, 아침 시간에도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하얗고, 눈이 쌓인 만큼 걱정은 깊어갔다. 원래 일정은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되었는데, 카파도키아에 와보니 운항일정 자체가 지워져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여행객이 급감하여 비행기 운항이 중단된 것이었다. 비행기가 안 되면 자동차를 렌트하려고 예정했었는데 눈은 쉬지 않고 내렸다. 이런 눈길을 승용차로 600키로를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고속버스를 알아봤다. 열시 차는 매진이 되었고, 오후 한 시반 차를 예약했다. 여기서 전체적인 일정에 하루를 허비했고, 전반적인 일정을 하루 늦추어야만 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여행하는 것도 낮선 지방에 대해서 더 깊게 느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속버스를 탔다. 중간에 네번 쉬어갔다. 도시의 터미널이 두 군데 였고, 간이 정류장이 두 군데 였다. 두 시간 정도 달려서 고도가 낮아진 것을 느꼈다. 평원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 렌트를 했어도 될 뻔 했다. 눈이 녹지 않은 차도는 없었다. 고속버스는 우리나라 우등버스와 자리 배치가 같은데 다섯줄이 더 길다. 앞 좌석과 중간 쯤에 출입문이 두군데 있고, 정원은 사십오명이었다. 그만큼 차가 더 길었고, 뒷바퀴가 두개 더 달려있다. 고속버스에 차장이 있었다. 오래전 우리나라에도 버스 차장이 있었고, 고속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아마 1980년대 쯤 사라졌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남자 차장은 없었는데 터키에는 남자가 차장을 했다. 간식거리도 주고 작은 페트병에 담긴 물도 나눠주었다. 터키사람들의 일상에는 여자들이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스탄불의 바자르 시장에서도 여자점원이나 여자 주인은 없었다. 옷가게도 화장품가게도 온통 남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국교가 회교인 이유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어설픈 분석을 해봤다. 터키의 국토가 우리나라보다 다섯배 더 크고, 자원도 풍부하고, 역사유물도 어느나라 못지 않게 많은데 서구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저조한 탓이 아닌가 생각했다. 밤늦게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호텔을 찾아갔다. 오래된 골목길 그러나 정비는 잘되어 있는 막힐 듯 막히지 않은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유흥가가 가까웠던지 밴드의 궁짝 궁짝하는 연주음이 계속 들렸다. 다행히 자정이 가까워서 음악소리는 멈췄다. 아홉시간을 고속버스 안에서 보낸 고단한 하루였다.
3월 19일 날씨가 말끔히 개어 있었다. 호텔을 나서서 골목길을 따라서 해안가로 나갔다. 어제의 눈 덮힌 광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안탈리아는 아주 정돈이 잘된 휴양도시였다. 건물의 외부 페인트도 잘 조화롭게 칠해졌고, 보도는 원석으로 깔려있어 오랜세월 행인들의 발길에 닳아져 반질반질했다.
세월의 더께가 느껴졌다. 곳곳이 그 옛날의 성벽을 활용하여 주거공간으로 쓰고 있다. 고대와 현대가 같이 숨쉬며 공존하는 도시였다. 골목을 돌아돌아가니 해안가 포구가 눈에 들어왔다. 야!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투명한 물 빛 그리고 짙은 잉크색의 먼 바다, 바로 지중해의 바다가 눈 앞에 전개되었다. 안탈리아는 터키의 다섯번 째로 큰 도시다. 기원전 1500년전 아나톨리아반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트로이와 에페수스가 쇠잔해지면서 세력을 키워왔던 도시이다. 마리나 항구 터키 지중해의 최고의 풍경이다. 요트와 유람선만이 정박하는 작지만 아름다운 항구였다. 마리나 항구에서 최고 위치좋은 레스토랑 아르마로 들어갔다.을 찾았다. 아르마 레스토랑의 뷰 좋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좋은 자리에 어찌 한잔 술을 마다할 것인가. 와인 한병과 안주와 점심을 시켰다. 레스토랑 발코니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향기 좋은 와인과 함께 이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취해 본다. 발코니에 나가서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분명 그 햇살과 그 바다 빛이었을 것이다. 다시 앙콜곡으로 산타루치아, 이태리 토스카나에서는 안주를 공짜로 얻어먹은 노래솜씨인데 터키 사람들은 이태리 칸소네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서빙하는 웨이터들 별무 반응이다. 이제 항구로 내려가야 겠다. 세 사람이 실컷 먹고 향기 좋은 와인에 취했어도 우리 돈 십만원이 안 들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 없다. 히드리아누스 문, 로마 황제 히드리아누스 방문기념으로 세웠던 문
오후에 승용차를 렌트했다. 그리고 호텔을 바꿨다. 오성급이고 바다가 내려보이는 언덕에 멋진 풀장이 있는 호텔이다.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아 풀장은 그림의 떡, 그래도 여러 부대시설이 좋아 쾌젹했다.
3월 20일 어제 빌렸던 차가 상태가 좋지 않아 비용을 더 주고 다른 차로 바꿨다. 차에 안전벨트 매라는 신호음이 벨트를 차도 계속 울렸다. 앞으로 열흘을 같이할 차다.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바꿔야만 했다. 그 덕에 아스펜도스 야외극장에 가는 일정을 접어야만 했다. 아스펜도스 극장은 동쪽으로 40키로를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가 이동하려는 동선하고는 반대 방향이다. 테르미소스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터키는 2000미터가 넘는 고산이준령이 많다. 멀리 토러스 산맥 등줄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차는 산길을 올라간다. 험한 산속에 무슨 유적이 있을까 했다. 입구에 차단기와 입장료를 받는 사람이 있다. 주차장에 내려서도 그런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 올라갔다. 헛수고는 하지 않았다. 고대 도시의 거대한 유적들이 눈 앞에 전개된다. 해발 1650미터의 고원에 어떻게 이런 도시가 형성되었을까? 그들은 이 산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납득이 되질 않았다. 다만 알렉산더가 이 도시의 정복을 포기하고 우회해서 페르시아를 공략했다는 전설만이 내려올 뿐이었다. 경제와 문화생활의 중심지 였던 아고라와 원형 극장이 있다. 아고라 저 한가운데서 노래를 불렀다. 야외극장에서 가장 공명이 잘되는 장소였다. 오 솔레미오, 넬라 판타지아를 불렀다. 구경을 하던 러시아 관광객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그러고는 네순도르마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next time"하고는 자리를 물러섰다. 속으로는 '어이 내가 네순도르마를 멋지게 부를 줄 안다면 로마의 극장에 섰을것이네.'했다. 네순 도르마는 아마추어 성악가들이 할 수 있는 음역을 넘었다. 감히 연습조차 해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테르미소스를 내려와 페티에로 향했다. 내륙으로 가면 훨씬 빠른 길이 있었지만, 바닷가로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지중해의 바다를 아낌 없이 눈에 담아두고 싶은 욕심에서 였다. 가는 길에 올림포스 산이 있었는데, 휴일이라 공원이 문을 닫아 돌아섰다. 페티에로 가는 길은 멀었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며 밤의 해안길은 험하기만 했다. 과연 이길의 끝에는 우리가 가고자하는 숙소가 있을까. 그렇지 귀곡산장이 있을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 아홉시가 되어 가까스로 도착했다. 방마다 떨어져 있는 방갈로의 숙소에 짐을 풀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청했더니 다행히 요리사가 퇴근을 하지 않고 있어 주린배를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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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탈랴 시내에서 조금 더 우측으로 걸어가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은 마셔봤겠지? 나도 그 느낌은 아직까지 남아있다네. 그 긴 터키 여행기는 몇부로 나눠서 올릴건가? 기대가 많이 되네.
그래 그 멋진 레스토랑에서 낮술을 마셨다니까. 십회 이상 되겠는데. 이스탄불과 카파도키아를 같이 올렸더니. 에러가 나서 다시 쪼개서 올렸다네. 의석형 터키여행을 해보아서 잘 알겠지만 정말 좋은 곳이었어. 구경할 것 많고 배울것도 많은 나라. 그리고 물가는 싸고
터키 여행함께하는 기분입니다. 설산 그 아래 바다, 야외극장에서의 노래한곡....바우는 멋진 사나이!
감사합니다 보여주고 싶은 경치가 널려있는 나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