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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 특별히 우리 주님 부활하신 이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부활은 사실입니다”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을 빼놓고는 기독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부활을 빼놓고는 예수님을 또한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다 흩어지고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되고 말았을 것입니다(고전15:14). 그러나 부활은 사실이기에,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주님을 전하고, 주님의 하신 일들을 전파하고, 그가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행3:36, 3:15). 그래서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전파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워 와서 할아버지에게 자랑을 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기특해서 "얘야, 3 곱하기 4는 뭐니?" "12요" "그러면 6곱하기 7은?" "42요" "그러면 13 곱하기 12는 뭐지?" "참 할아버지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는 바보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배우지 않았다고, 자신이 경험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지식이라고 거부하는 것은 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거부를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지 않았다고,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도 그러합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 인간의 머리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 우리가 역사를 확인하려면 무엇보다 유물과 유적, 그리고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분명한 사실임에도 단지 내가 거기에 없었다고 믿지 않는다면 시각장애자가 코끼리 안 보았다고 그런 것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일본 지진으로 쓰나미가 일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났는데 내가 가보지 않았다고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재난이 있었기에 최근까지 바다에 오염수를 버리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 있었기에 그 다음 문제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중요한 한 가시 사실로 인해 그 다음 일들이 계속 연결되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오래된 역사는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도 그 일로 인한 수많은 유물과 유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물과 유적이 증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중동지역의 사막을 살펴보면 20m의 모래층을 헤쳐 보니까 바위가 나옵니다. 그 바위에 벽화가 있습니다. 소를 가지고 농사짓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전엔 이곳이 뭐였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사막이지만 이전에는 농경지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시에 지은 집터가 나오고 쓰던 토기나 화로가 나옵니다. 이런 유물, 유적들을 통해 이전에 이곳에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고 불을 사용하여 밥을 지어먹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그 토기가 빗살무늬토기라면 신석기 시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 유물들이 당시의 생활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벽화는 유적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남긴 하나의 기록입니다. 아주 원시적인 기록물입니다. 그러다 점토판에 글자를 새겼는데 인류 최초의 기록은 수메르라고 하는 나라가 남겼습니다. 글자를 해독해보니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숙제를 너무 많이 내어줘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이집트 피라미드에 남긴 글 중에는 당시의 아이들을 책망하면서 “요즘 애들은 안 돼?”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고도, 유적과 유물을 보고도 당시 시대를 부인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500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사실입니까? 허구입니까? 그 일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물이나 유적과 기록이 말해줍니다. 행주산성, 촉석루, 거북선등이 증거해 줍니다. 일본 교토의 동부 시치조(七條) 지역에 특별한 무덤이 있는데 조선인 12만 6천명의 코를 전리품으로 가져다 바친 것입니다. 우리지역 선진리성에 있는 조명군총도 당시 조명연합군의 무덤입니다. 이런 유적이 증거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기록인 징비록. 조선왕조실록선조편, 난중일기 등이 있습니다. 우리기록에만 있다면 의심할 수 있겠지만 일본사기와 명나라 역사에도 남아 있습니다. 그 기록에는 전쟁의 발생부터 과정과 끝만 아니라 왜란 이후에 일본과 조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심지어 동남아 정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사회적 변화, 또한 역사적 사실을 증거합니다. 즉 그 전쟁이 일어났기에 사회에 이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이후 사회가 이렇게 발전하거나 퇴보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사회적으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동법이 시작되고, 부족한 병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균역법이 시작되었습니다. 왜란 호란 이후에 양반제도인 신분계급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란으로 인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고 새로운 양식도 생겨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전쟁 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왕조 자체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조선의 도공들을 잡아가서 일본에 도자기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까? 분명한 역사입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후 삼일 만에 부활했습니다. 한 나라의 사건이 아니라 한 개인, 그것도 당시에 흔한 사형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런데 온 나라가 뒤집어졌습니다. 사회적 구조가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모진 박해를 피해 산속 동굴에 숨어살면서 교회를 남기고 벽면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로마의 기록과 유대인의 기록과 성경의 기록 속에 예수부활에 대하여 남겼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 기록했지만 로마와 유대인은 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이들을 아주 멸하자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믿는 자의 기록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의 기록도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관련한 유적도 수없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 장소, 제자들을 가르쳤던 장소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곳을 찾아 성지순례를 갑니다. 가장 중요한 유적지라면 예수님의 무덤이어야 하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이 없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예루살렘 근교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몰래 시신을 빼내어 틀림없이 가족묘를 만들었을 것이라 하여 발굴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유명한 자는 무덤을 남깁니다. 왕들은 무덤을 크게 만들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 안에 유품들을 남기고 그 후손이나 제자들이 무덤을 가꾸고 지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유적지가 되어야 할 무덤이 없다는 것, 이것이 도리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덤을 유적지로 남겨 역사적 사실로 증거하지만 예수님은 무덤을 남기지 않으므로 부활의 증거를 남긴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부활로 당시 사회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제자들이 그날에 모여 예배하기 시작했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이 안식일입니다. 토요일을 그들은 거룩한 날로 지키며 예배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을, 주의 날(주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면서 황제가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3.그리고 부활이 사실인 또 하나의 증거는 허다한 증인이 있기 때문입니다(히12:1). 임진왜란 때 잡혀간 도자기공 중에 심수관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살면서 후손들에게 조선인임을 잊지 마라 해서 아들 이름도 심수관, 손자도, 증손자도, 고손자도 모두 심수관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져 온 후손이 지금 15대,16대 심수관입니다. 왜란이 일어난 증인입니다.
또한 일본인 장수 사야가는 왜란 때 제일 선봉에 선 부대장이었습니다. 몇 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조선의 평화로운 땅을 짓밟고 선량한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회의가 들었습니다. 마침내 선조에게 귀화를 요구하고 일본의 조총 만드는 기술과 작전과 진격 전략을 알려줍니다. 선조는 그에게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그의 자손들이 칠천 명이 넘습니다. 대구 달성구에 그의 생가가 있는데 일본인들이 들러서 그의 무덤에 침을 뱉고 갑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증인입니다.
증인은 법적인 용어입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자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전하는 자는 모두 증인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처럼(행4:20)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짓 진술 앞에 사실을 아는 자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담대히 사실을 밝히는 자가 증인입니다. 증인됨의 대가는 부귀영화가 아닌 가난과 채찍과 추방과 죽임이었지만 제자들은 기꺼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고 주님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눅1:1).
누가는 당시에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 중에 일어난 사실에 대하여..” 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허다한 증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증인들을 로마가 없애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을 죽이고 다음에는 지도자를 죽입니다. 그래도 믿는 자가 늘어가니 모조리 잡아다가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네로황제는 로마에 불을 질러 놓고도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낸 것이라고 해서 모조리 잡아 원형구장에서 한꺼번에 죽였습니다. 그렇게 죽여도 막을 수 없어 마침내 로마가 뒤집어 졌습니다. 기독교를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교도인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시노오 나나미가 쓴 걸작 ‘로마인 이야기’ 14권 째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보면 어떻게 그 많던 로마와 그리스의 신을 믿던 사람들이 다 바뀔 수 있었을까? 그녀는 이것이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4.마지막으로 예수님 부활의 증거는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부활이 과거의 한 사건으로만 끝나고 오늘날 이것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부활이 제대로 전파되겠습니까. 지금도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일들이 없다면 그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일만을 주장하느라 목숨을 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성령으로 임하여 우리로 믿게 하시고 역사하시고(마16:20) 우리를 증인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현재의 하나님,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해주셨습니다.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확실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