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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한국 연구진이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수술 없이 초음파만으로도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신경퇴행성질환의 하나로 운동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인 파킨슨병 발병을 조절하는 신규 인자가 규명됐다. 유한양행이 개발 중인 EGFR 변이 폐암 3세대 표적 치료제 ‘레이저티닙’의 효과와 안전성이 증명됐다.
6일 연구업계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 이창준 단장 연구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과 공동으로 저강도 초음파에 따른 신경세포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는 치매, 파킨슨병, 우울증, 만성통증, 뇌전증 등 뇌질환 치료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별세포를 통한 저강도 초음파의 신경조절 기전. 출처=기초과학연구원
뇌심부자극술은 금속 전극을 이용한 전기 자극으로 뇌 활동을 자극하거나 방해하는 시술이다. 예를 들어 도파민의 분비가 멈춰 발생하는 파킨슨 병은 뇌심부자극술을 통해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을 활성화시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뇌심부자극술은 금속 전극을 뇌 깊숙이 삽입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수술이 필요 없고 안전한 초음파 뇌자극술이 주목받고 있다. 초음파에 따른 신경세포 조절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었다.
연구진은 초음파에 의한 신경세포 조절이 별세포의 기계수용칼슘채널(mechanosensitive calcium channel) TRPA1에서 시작됨을 확인하고, 비침습적 방식인 초음파 뇌자극술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별세포(astrocyte)는 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별 모양의 비신경세포다. 기계수용칼슘채널은 세포막의 기계적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채널(통로)이다. 기계수용채널이 칼슘투과성인 경우 이 채널을 매개로 하여 세포 내로 칼슘이 유입된다.
▲ 이미징을 통해 세포내의 칼슘 증가를 측정하는 칼슘 이미징 실험에서 저강도 초음파에 의해 여러 칼슘 채널들 중 TRPA1 만이 칼슘 증가를 보인다. 출처=기초과학연구원
▲ 별세포 특이적 TRPA1 유전자 억제와 초음파에 따른 신경세포 발화 저하. 출처=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은 저강도 초음파에 의해 별세포의 TRPA1이 활성화되면 별세포로부터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가 분비돼 신경세포의 활성이 유도됨을 밝혀냈다. 저강도 초음파는 고강도 초음파와 달리 열이 발생하지 않아 치료 과정에서 열에 의한 조직 손상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연구진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TRPA1이 있는 쥐와 TRPA1이 없는 쥐를 각각 준비한 후, 저강도 초음파에 의한 신경세포 발화(neuron firing) 정도를 관찰했다. TRPA1가 있는 경우 저강도 초음파에 의해 신경세포 발화가 증가한 반면 TRPA1가 없으면 신경세포 발화가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별세포의 TRPA1이 저강도 초음파 센서 역할을 하여 신경세포 발화가 일어나게 함을 분자 수준에서 증명한 것이다. 신경세포 발화(neuron firing)는 전기 자극 또는 신경전달물질을 통한 두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의미한다.
추가 실험에서는 저강도 초음파 뇌 자극술로 쥐의 꼬리 운동능력을 개선하는 것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쥐의 꼬리 움직임을 유도하는 뇌 부분을 저강도 초음파로 자극했다. 자극결과 TRPA1이 있는 쥐는 꼬리 움직임이 활발한 반면, TRPA1이 없는 쥐는 꼬리 움직임이 감소했음이 확인됐다. 별세포의 TRPA1이 저강도 초음파 센서 역할을 하여 꼬리가 움직이도록 함을 개체 수준에서 밝힌 것이다.
오수진 KIST 선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저강도 초음파에 의한 신경세포 조절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개체 수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규명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준 단장은 “초음파의 센서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각종 뇌질환 치료에 적용하는 연구와 더불어 초음파유전학(ultrasonogenetics)으로 발전시키는 후속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IF 9.193) 온라인판에 10월 4일자로 게재됐다.
■ 파킨슨병 발병 조절 신규 인자 규명
한국연구재단은 서울대 이승재 교수와 이준성 박사 연구진이 일본, 호주, 연세대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발병과 진행을 조절하는 새로운 인자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는 진단을 위한 마커 및 치료제 개발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의 신경세포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 침착물의 주요 성분과 결합해 침착물 형성을 억제할 수 있는 단백질(ARSA, aryl sulfatase A)을 규명했다.
파킨슨병은 비정상적 단백질 응집체가 신경세포에 축적되고 인접 세포로 전이되는 병리현상이 잘 알려져 있으나, 이 응집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분해되는지 상세한 조절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었다.
세포 안에는 역할을 다한 단백질 등을 분해하여 처리하는 폐기물처리기구, 리소좀이 존재해 리소좀 가수분해효소와 파킨슨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었다.
▲ 파킨슨병 환자 가계에서 ARSA 유전자 분석. 출처=한국연구재단
▲ ARSA와의 결합에 의한 알파-시뉴클린 응집체의 세포 내 축적 및 세포 간 전이의 감소. 출처=한국연구재단
연구진은 리소좀 가수분해효소 ARS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희귀유전질환 가계 내 파킨슨병 환자가 있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진이 다른 파킨슨병 환자들의 혈액샘플에서 ARSA 단백질 농도를 분석해 본 결과 인지수행 능력이 좋을수록 ARSA 단백질 농도가 높아지는 비례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유전자 및 혈액 분석을 토대로 ARSA와 파킨슨병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나아가 세포 및 동물모델 연구를 통해 ARSA가 단백질 침착물의 주요성분인 알파-시뉴클린과 직접 결합, 침착물 형성을 방해하는 것을 알아냈다.
ARSA는 이전까지 리소좀에 존재하며 세포막 분해산물인 설파티드(sulfatide)를 분해하는 가수분해효소로 리소좀 축적질환(이염성 백질영양장애)의 원인 유전자로 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연구로 가수분해효소 역할과 별개로 ARSA가 세포질에도 존재하며 단백질이 제 역할을 하도록 입체구조를 갖추는 과정에서 응집되지 않도록 돕는 분자샤프론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분자샤프론은 단백질이 생성되고 분해되기까지 적절한 구조를 형성하도록 돕는데 관여하는 단백질을 지칭한다.
연구진은 예쁜꼬마선충(C.elegans) 모델을 통해 ARSA 유전자에 결함이 있을 경우 신경근연접에서 알파-시뉴클린 응집체가 형성되고 인접 세포로 전이되는 현상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파킨슨병 모델의 초파리에서 ARSA 유전자를 도입한 결과 운동능력의 감소가 완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파킨슨병 환자에서 발견된 돌연변이 ARSA는 알파-시뉴클린과 결합력이 약하고 응집체 형성을 효율적으로 억제하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결과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성과는 국제 학술지 ‘브레인(Brain)’ 출판판에 9월 1일자로 게재됐다.
■ 폐암신약 ‘레이저티닙’ 효능‧안전성 증명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 폐암에 대한 표적치료제로 개발 중인 레이저티닙(Lazertinib)의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증명됐다. EGFR 변이 폐암은 전체 폐암 신규 환자의 30~40%를 차지한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 조병철 센터장은 기존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EGFR T790M 변이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레이저티닙을 투여한 결과 57% 환자에서 암 크기가 30%이상 줄어드는 부분 관해(partial response)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레이저티닙은 3세대 EGFR 표적치료제로 기존EGFR 표적 치료제인 ‘이레사’, ‘타세바’, ‘지오트립’에 내성을 보이는 EGFR T790M 변이 폐암 및 치료력이 없는 EGFR 변이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됐다.
3세대 EGFR 표적 치료제는 기존 1세대 이레사, 타세바 및 2세대 지오트립 표적 치료제와 효과 및 독성면에서 우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3세대 EGFR 표적 치료제로는 ‘타그리소’만이 승인을 받았다.
▲ 레이저티닙의 T790M 돌연변이 상태에 따른 무진행생존기간 결과. 출처=유한양행
조병철 교수는 2017년 2월부터 2018년 5월까지 127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1/2상의 용량 증량 및 용량 확대 시험을 통해 레이저티닙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했다.
연구결과 암 크기가 30% 이상 감소해 객관적 반응을 보인 환자의 비율(ORR)은 기존 항암제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T790M 돌연변이 양성의 모든 환자에서 57%이었고, 그 중 120mg 이상의 용량을 투여한 환자에서는 60%까지 높아졌다. 완전관해에 이른 환자는 3명이었다.
레이저티닙 투여 후 암이 추가로 진행되지 않거나 사망에 이르지 않는 기간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의 중앙값은 T790M 돌연변이 양성의 모든 환자에서 9.7개월이었고, 그 중 120mg 이상의 용량을 투여한 환자에서는 12.3개월까지 길어졌다. 레이저티닙의 폐암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120mg 이상에서 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번히 발생한 이상반응으로는 여드름을 포함한 발진, 가려움증이 각각 30%, 27% 비율로 나타났고, 3등급 이상의 이상반응 발생률은 16%으로 조사됐다. 레이저티닙 투여와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는 3등급 이상의 약물이상반응은 3% 수준으로 낮게 나타나 레이저티닙의 안전성 및 내약성도 이번 연구에서 확인됐다.
조병철 교수는 “이번 임상시험 결과을 통해 레이저티닙의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다”면서 “이번 임상결과를 바탕으로 EGFR 변이 진행성 폐암의 1차 치료제로 글로벌 3상 임상연구가 곧 시작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안전성을 바탕으로 진행 중인 병용 요법의 빠른 3상 진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기존의 승인받은 약제의 가격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EGFR 변이 진행성 폐암의 2차 치료제로 조건부 승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임상종양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국제학술지 란셋 온콜로지(IF 35.4) 최신호에 게재됐다. 한국에서 초기 개발 신약의 임상시험 결과가 란셋 온콜로지에 게재 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