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회 시하늘 시낭송회(5월)에는 김달진 문학상과 노작 문학상을 받으신 문인수 시인을 모시고 시 낭송회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함께 시를 낭송하면서 시인의 시세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깊어 가는 봄 밤에 서정의 형태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인수 시인의 시편을 함께 음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5월 2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빌딩 지하1층 카페"스타지오"에서
-주차는 3시간 무료이며
-회비는 10,000원으로 식사와 음료를 제공합니다.
5월(5월 21일, 금) 시하늘 시 낭송회에 많은 참석 바랍니다.
늘 즐거우십시오.
약력
문인수/1945 경북 성주 출생, 1985 심상신인상으로 데뷔, 1996대구문학상 수상, 2000김달진문학상 수상, 2003노작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뿔(민음사.1992), 동강의 높은 새(2000. 세계사) 등이 있음.
2월
-문인수
그대 생각의 푸른 도화연필 같은 저녁이여.
시린 바람의 억새 사이사이가 자디잘게자디잘게 풀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억새와 바위 사이가 또한 거뭇거뭇
소문처럼 번져 잘 풀리면서
산에 있는 것들 모두
저 뭇 산의 윤곽 속으로 흘러들었나, 불쑥불쑥 지금 가장 확실히 일어서는 검은 산아래
저 들판 두루 사소한 것들의 제방 안 쪽도 차츰 호수 같다.
다른 기억은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이여.
세상은 이제 어디라 할 것 없이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고
그립다, 그립다, 눈머는구나
저렇듯 격의없이 끌어다 덮는 저녁이여.
산과 산 사이, 산과 마을과 들판 사이
아, 천지간
말이 없었다 그대여.
마음이 풀리니 다만 몸이 섞일 뿐인 저녁이여.
대숲
-문인수
시퍼렇게 털 세운 대숲 한 덩어리가 크다.
저 어슬렁거리는 풍경은 사실 전국 어디에나 붙박힌 유적 같은 것이다. 그들은 왜 마을 뒤, 산 아래에다 대숲 우거지게 했을까
대숲 속은 아직 덜 마른 암흑이 축축하다.
꽉 다문 입, 마음의 그 깜깜한 짐승을 풀어놓았을까. 날 풀어놓고 싶어하는 비밀이 지금 사방 눈앞에, 귀에 자자하다. 댓잎 자잘한 동작들이 소리들이 그렇듯 무수한 것인데, 울부짖음이란 본디 제 것이어서 잘디 잘게 씹히거나 또 한 떼 새까맣게 끓어오르는 것.
아, 新生하는 바람의 몸, 바람의 성대가
하늘 쪽으로 몰리면서 폭포 같다.
무넘이 무넘이 시퍼렇게 넘어가곤 한다.
폭우 그치다
-문인수
자욱하게 내려꽂힌 저 흰 빗줄기는 하늘뿌리였을까.
폭우 아래, 천둥 번개 아래 흠뻑 뒹군
매맞은 공포는 어딜 갔나
암흑은 녹아 거름이 되었나
비 갠 뒤
새파랗게 새로 돋는 듯한 풀들은 다만 새파랗다.
젖은 풀밭에선 온몸 하늘냄새가 난다.
바다책, 다시 채석강
-문인수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바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인데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冊,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시작메모
그리운 대상이 그 무엇이든 그러나 그것이 그리움 그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리움이란 무엇인가. 유한한 인생이 그걸 어찌 알리. 다만 저 파도 소리처럼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그리하여 결코 바닥나지 않는 것이 그리움일 뿐이다. 가지 마라, 그에게, 혹은 거기에 이른다고 그리움이 끝나는 것이 랴. 그리움이란 고통도 기쁨도 아니다. 그저 그리움이다. 살아있는 한 영혼의 숨결처럼 따라붙는 것이 그리움이요, 가까운 듯 먼 듯 가 닿을 수 없는 데가 바로 그리움이다.
채석강
-문인수
채석강의 장서는 읽지 않아도 되겠다.
긴 해안을 이룬 바위 벼랑에
격랑과 고요의 자국이 차곡차곡 쌓였는데
種의 기원에서 소멸까지
하늘과 바다가 전폭 몸 섞는 일,
그 기쁨에 대해
지금도 계속 저술되고 있는 것인지
또 한 페이지 철썩, 거대한 수평선 넘어오는
책 찍어내는 소리가 여전히 광활하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작은 각다귀들
각다귀들의 분분한 흘레질에도
저 일망무제의 필치가 번듯한 배경으로 있다.
이 바닥 모를 깊이를 잴 수 있겠느냐
미친 듯 몸부림치며 헐뜯으며 울부짖는
사랑아, 옆으로 널어 오래 말리는
채석강엔 강이 없어서 이별 또한 없다.
모항
-문인수
변산반도 모항의 전경은 그림 같다.
길 가 찻집 "호랑가시나무"에서 잘 내려다보인다.
해무 엷게 내뿜는 모항이 차츰 더 깊이 아름다워지고 있다. 그러나
호랑가시나무 찻집 그 어디에도 호랑가시나무가 없어서
없는 나무가 어째 허기처럼 널 불러일으킨다.
멀리 두고 온 너와 통화를 한다.
모항의 첫 글자가 어미 母자일까 천천히
마음에 발리는 부재의 시간, 뿌우연 젖.
눈앞을 가리는 감격이
모항이다. 부드럽고 촉촉한 입김, 지친 뱃길을 안는 저 긴 팔이여.
덧난 사랑이 다 나아 꽃 피고 있다.
바람, 못 간다
-문인수
제 몸 일으켜 떠나는 이별을 믿는지.
대숲에, 대숲에,
또 시퍼렇게 쓸어안으며 울부짖으며 무너지는
바람,
못 간다.
인도소풍, 말라붙은 손
-문인수
땔감으로 쓰는, 건디기라는 쇠똥덩어리가 있습니다.
쇠똥에 찰흙과 지푸라기 같은 걸 잘 섞은 다음
커다란 쟁반 만하게 주물러 널어 말려 쓰는데요,
이 일은 주로 여인네들이 합니다. 그러니 이 쇠똥덩어리 마다엔 어김없이
눈 깊어 안타까운 그늘,
그 무표정한 얼굴의 야윈 손자국이 낭자하게 말라붙어 있지요.
현지의 어느 작은 마을 호텔 앞에서 그날 새벽
할 일이 없는 한 사내와 손짓 발짓
상통하며 이 건디기불을 피워 봤는데요, 나는 문득
함께 못 온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돈 번다고 혼자 고생만 하는
늙은 아내의 월급 봉투에도 물론 이런 손자국
무수히 말라붙어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매운 연기를 피해
이리 저리 고개 돌리며 자꾸 이 사내와 함께 찔끔거렸습니다.
매화
-문인수
어느 처마 낮은 대폿집에 들고 싶다.
따순, 분통 같은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지분냄새 자욱하여 불콰히 취기가 오른다면
육자배기로, 흘러간 유행가로 질펀 흘러갔으면 좋겠다.
젓가락 장단으로 아, 뚝 뚝 꺾어낸 억수장대비의 북채로
동백 동백 같은, 늙은 작부의 상처 또한 붉게 씹으리.
다시 한 사발, 여자의 과거사를 가득 부어 마시면
지리산, 악산 산 거칠수록 더 여러 굽이 굽이굽이 풀려서
그러나 물이 불어 시퍼렇게 자꾸 깊어가는 섬진강.
저 긴 긴 목울대 치받치며 끄윽 끅 꺾이며 흘러가는 거
보라, 역린* 떨며 떨리며 대숲은 섧고
또 섧다 난분분난분분 매화 뿌린다.
*역린(逆鱗):물고기, 특히 잉어 같은 물고기들에겐 무수한 비늘이 갑옷처럼 제 몸을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늘은 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여 헤엄을 잘 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고기들의 그 무수한 비늘 중엔 더러 다른 비늘과는 달리 역방향으로 나있는 것도 섞여있다고 합니다.
역린, 그러니까 그것은 혹독한 자기 운명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선천적 욕망이거나 일평생 씻지 못할 어떤 고질적 상처(흉터)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당신의 생애, 그 깊은 마음 속에도 거꾸로 선 "역린"이 틀어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백
-문인수
섬진강 가 동백 진 거 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채 동백 져 비린 거
아, 마구 내다버린 거 본다.
대가리째 뚝 뚝 떨어져
낭자하구나.
나는 그러나 단 한 번 아파한 적 없구나.
이제 와 참 붉디붉다 내 청춘,
비명도 없이 흘러갔다.
동강에서 울다
-문인수
동강은 대뜸 말문을 막는다.
어이없다, 참 여러 굽이 말문을 막는다.
가슴 한복판을 뻐개며 비스듬히 빠져나가는
저기 내려 꽃피고 싶은 기슭이 너무 많다.
몸이 먼 곳,
인생이 저렇듯 아름다울 수 있었겠으나
어떤 죄가 모르고 자꾸 버렸으리라
늙은 사내는 엎드려 산 첩첩울고
물길은 산에 막히지 않고 간다.
다시 구절리역
-문인수
기차는 이제 오지 않는다.
지금부터 막 녹슬기 시작한 철길 위에
귀 붙여 들어보니 저 커다란 골짜기,
커다랗게 식은 묵묵부답 속으로
계속 사라지는 꼬리가 있다.
기나 긴 추억일지라도 결국
망각 속으로 다 들어가고 마는 것이냐
단풍 산악이 울컥, 울컥,
적막, 적막, 에워싸고 있다. 누구나
키가 길쭉해져서 쓸쓸한 곳
발 밑엔 토끼풀꽃 몇 자주색 뺨이 싸늘하다.
가을이 깊으냐, 짐짓 한 번 묻고
떠나야 하리 무쇠 같은 사랑
구절리, 구절리역에다 방치해야 하리
풍장 놓인 노천에서 오래 삭으리라.
침목을 베고 누운 검은 침묵,
뜨겁고 숨가쁜 날들은 뼈만 남아서
기차는 이제 오지 않는다.
길이 길을 삼킨다
-문인수
그대 바래다주러 가는 길이 이제 조금, 목젖 끝에 조금 남았다.
썩둑, 썩둑, 길을 삼키는
터널 같은
시꺼먼 아가리의 짐승이 아, 내 안에 있다.
상사화 군락지, 그 영혼들의 신앙촌
-문인수
상사화는 2월 말과 7월 말, 잎 따로 꽃 따로 핀다.
이 유별난 생태를
해마다 뜰 한 쪽 구석에서 들여다보게 되는데
어떤 질긴 이념이 밀어 올리는 거룩한 의식인 것 같다.
시퍼렇게 번지는 잎의 춤, 연분홍 꽃의 목 긴 노래 다음에
흔적 없이 져버린 그 一幕 一幕 다음에
오랜 정적이 너무 크고 막막하다.
그 바다 수평선 너머에서 배 꼭대기 올라오는 것 같은 잎의 싹이,
꽃의 싹이 다시 보이는데 이렇듯
몸의 지옥을, 지옥의 만파도를 돌아 빠져나오는 계절이
각기 다르다. 부르는 소리가 멀어 서로 아련하다.
이 시차 안에 펼쳐질 저 신대륙이 궁금하다.
깡추위와 무더위 사이, 그러니까 한대와 열대 사이 어느 곳에
분통 같은 방 하나씩 있겠다. 그리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망하지 않은 세계가
긴 항해 끝에 널리 아름답게 있겠다.
너라는 확신, 아 너라는 쪽의 막힌 길 위에 거듭 썩을 수 있을까
막무가내, 막무가내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 異端에 끌린다. 이제,
끔찍한 행복이 무수할지라도 수 십 만 평
산자락 하나를 차지한 이 영혼들의 전진기지 혹은 신앙촌,
서해안 어디 숨어있다는 상사화 군락지에 가보고 싶다.
운동장엔 하염없이 둥근 흰 길이 있다
-문인수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달빛이 가장 널리 전개되고 있다.
사람의 참 작은 몸에서 이렇듯 무진장,
무진장한 마음이 흘러나와 번지다니
막막하게 번진 이 달빛사막에
우듬지를 잘라낸 히말라야시더의 캄캄한 그림자가
캄캄하지만 순하게 엎드리고 있다. 아,
이별이 힘껏
올라타는 것은 전부 낙타인 것 같다.
저 갈 길 이미 눈물로 다 잡아먹은 뒤
배밀이, 배밀이 하는 배 같다.
그러니까 운동장엔 둥근 트랙,
흰 궤도가 있다.
한 쪽 얼굴이 자꾸 삐딱하게 닳는 달,
저 수척한 달이
너에게로 하염없이 건너 갈 수 있는 데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이다.
드라이 플라워
-문인수
마음 옮긴 애인은 빛깔만 남는다.
말린 장미·안개꽃 한 바구니가 전화기 옆에
놓여있다. 오래,
기별 없다. 너는 이제 내게 젖지 않아서
손 뻗어 건드리면 바스러지는 허물, 먼지 같은 시간들.
가고 없는 향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릴 때
찔린다. 이 뾰족한 가시는
딱딱하게 굳은 독한 상처이거나 먼 길 소실점,
그 끝이어서 문득, 문득 찔린다.
이것이 너 떠난 발자국 소리이다.
철자법
-문인수
겨울 포도원의 포도나무 넝쿨들은 줄줄이 팽팽하게 가로질러 놓은 철선을 따라 삐뚤삐뚤 끌려가고 있다.
그래, 삐뚤삐뚤 삐져나오는 이 철자법!
울퉁불퉁 만져지는 긴 문장이 거친 계류 같다. 결박당하지 않는 血行이 있다. 이걸 붉게 마셨구나 혹한의 한복판에다가 굵게 양각하는, 그렇게 계속 길 뚫는, 오 오매불망오매불망 가는,
자필의 끔찍한 기록이 있다. 달콤한 사랑,
몽유, 폭우 속의 나무
-문인수
강 건너 산악도 지금 폭우 속에 있다.
저 녹음의 산중턱엔 어떤 나무 한 그루가 무수한 잎의 흰 뒷면을 바람에 비에 대는 것인지 꿈결처럼 은빛은빛 나부끼고 있다. 한줄기,
살풀이 명주수건 같다.
몸 풀며 몸을 풀며 마음이 내는 길,
길다 그대여 그 오랜 세월, 하염없이 내민 생각의 입자가 아연 전부 젖어 반짝인다 전부, 그립다 그립다는 말의 은어떼 같다. 참 여러 굽이 풀어내는 집체동작의 춤, 꽉 찬 험한 풍경 속에서 계속 피어오른다.
떠돈 자 그 뿌리를 앓듯이
저 깊은 뿌리엔 아픈 날개가 이는구나
무슨 나무일까, 수 만 리 강물냄새를 물고 그대여
아름드리 감옥이 또 저 산엔 서 있다.
첫댓글 그 분을 시낭송회에 초대하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아직 시낭송회하는 날까지 여유가 있으니 그 분의 시를 다시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시 골라서 답글로 달겠습니다.
살아갈 날이 적은 시인치고는 시가 너무 젊고 치열하다 할까요. 이래서 시인은 시에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5월에 많은 회원과 만났으면 합니다. 2차에 가서 많은 질문하십시오.
올려 주신 문인수 시인 님의 시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낭송회 날이 기다려집니다. 많은 분들과 함께 하게되기를 바래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요즘, 시의 강렬함에 젖어 달력을 쳐다봅니다. 드라이플라워.. 그렇게 마음 옮긴 애인은 빛깔만 남는군요..^^ 소개하신 여러 글속에 푸욱 빠져 쉬이 헤어나지 못하는 순간입니다. 꼭 가고싶은 자리...^^
대학생은 어찌되나요...^^;; 대학생도 공짜면 좋을텐데...너무 욕심이 많은거겠죠??
누구든 환영합니다.
화려한 불쑈도 있답니다^^ 많이들 와주십시요
불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