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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정서情緖로 즐기는 열서烈暑 풍경
ysoo 추천 0 조회 145 16.08.10 13: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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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미상 ‘후원아집도’(109.3×52.4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어느 사대부집 후원에서 선비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글씨와 그림을 감상하며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정서情緖로 즐기는 열서烈暑 풍경


선조에게 자연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때로는 조용히 뜻을 헤아려야 하는 상대다. 그래서 한여름 자연이 숨 막히는 더위로 앞을 막아서면 그 틈에 쉬어간다.
어쩌면 여름은 내면을 사색하고 초록을 즐기라고 찾아오는 계절이다. 선조에게 배우는 여름은 그렇다.



정조 재위 7년, 왕도 더위에 지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중궁궐도 한여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왕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다 못한 충신이 서늘한 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권했다. 그러나 정조는 ‘지금 이곳을 버리고 서늘한 곳으로 옮겼는데, 거기서도 견디지 못하면 더 서늘한 곳을 찾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럴 바엔 여기서 참고 견디면 이곳이 바로 서늘한 곳이 아니겠는가’라며 사양했다. 그러고는 더위를 견디기 위해 여름내 많은 책을 읽었다.


실제로 신하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담은 책 <일득록>에는 ‘더위에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생겨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정조의 말이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광해군일기> 편찬을 담당한 우복 정경세의 피서법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날씨가 무더운 날마다 문을 모두 잠그고 방 안에 틀어박혀 더위를 참아냈다. 미련하다 비웃는 사람들에게 우복은 이렇게 말했다.


‘서늘함은 조용한 가운데 온다.’


이 사례들은 옛 학자들이 혹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리모컨 하나면 순식간에 더위를 추위로 바꾸는 현대인에게 선비 정신은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더위 나기라는 점에서 선비의 마음가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시 풍속과 예술 작품을 통해 그들의 지혜를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정선 ‘관폭도’(20.6×75.8cm, 조선 시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더위를 쫓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위에 한 선비가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바라보는 그림이 어우러져 시원함을 강조한다.


이경윤(李慶胤)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발씻는 스님. 작가 : 조영석 국립중앙박물관



500여 년 전 조선 시대 선비들이 더위를 피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재연한다.

조선 중기 학자 김성원의 ‘성산계류탁열도’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하며 당시 풍경을 보여주는 행사다.

‘성산계류탁열도’는 16세기 혼돈의 정치 상황 속에서 이익을 좇는 대신 자기 수양에 힘쓴 선비들이 환벽당과 식영정 사이 성산계류에 모여 더위를 씻으며 시화를 즐기는 풍경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에 전해지는 탁족도로는 이 밖에도 조선 중기 화가이경윤의 ‘탁족도’,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의 ‘고사탁족도’ 등이 있다.


햇밀로 병을 쫓는 유두절


삼복과 달리 현재는 많이 사라진 여름 풍속 중 유두(流頭)가 있다. 이름 그대로 이날에는 맑은 개울물에 나가 머리를 감으며 여름 더위와 질병을 쫓았다. 명절인 만큼 음식도 새로 했는데, 대표적으로 유두면·수단·건단·연병 등이 있다. 유두면은 햇밀로 만든 국수로, 이날 유두면을 먹어야 장수하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다.

수단은 찹쌀가루를 쪄서 구슬처럼 만든 다음 꿀물에 넣어 먹는 것, 건단은 물에 넣지 않은 것이다.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해 안반(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 위에 놓고 홍두깨로 문질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튀기거나 깨와 콩을 묻혀 꿀에 바른 간식이다. 또 나쁜 기운을 내쫓기 위해 팥죽을 쑤기도 했다.


이처럼 여름철의 전통 음식은 밀과 채소류, 그리고 더위에 빼앗긴 원기를 돋우는 건강식이 주류를 이룬다. 화전·어채·미나리강회·파강회 등도 이 무렵 시절식으로 유명하다. 특히 여름 화전은 찹쌀가루에 장미꽃잎을 섞어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장미화전이다. 또 생선을 두껍고 넓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그것으로 쇠고기 소를 싸서
초장에 찍어 먹는 어만두(魚饅頭)도 별식의 하나다. 여기에 메밀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성질이 찬 메밀을 차디찬 물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를 두고 조선 후기 문인 오횡묵은 시를 지어 예찬했다.


누가 메밀국수를 잘게 뽑아내고
후추와 잣, 소금, 매실을 얹어 색색 꾸몄는가
큰 사발에 부어 넣자 펑퍼짐하게 오므라드는데
젓가락 둘 잡으니 굼틀굼틀 따라 올라오네
맛을 보니 창자까지 그저 시원한 줄 알겠는데
오래 씹다 수염에 슬쩍 붙은들 무엇이 대수랴



은하의 동서쪽 별이 만난다는 칠석


여름철의 또 다른 명절로는 칠석이 있다. 우리에게는 칠석에 행하는 풍습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설화를 포함한 칠석의 유래는 여름철 별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이때에 별자리는 북두칠성이 한쪽에 몰려 있고 동쪽과 서쪽에 큰 별이 서로를 마주 보는 모양새가 된다. 여름철 별자리가 만들어낸 명절인
셈이다. 그 때문에 선조들은 칠석이 되면 칠석맞이 굿을 하거나 칠석차례를 지냈다.


여자들은 직녀처럼 바느질을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처녀들이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바느질 솜씨를 좋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다음 날 재 위에 뭔가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믿었다.


또 민가에서는 장마 뒤 습기를 머금은 것들을 ‘쇄의상(?衣裳)’을 행했다. 여름 햇볕에 곡식과 의복, 책을 말리면서 습기를 제거하는 풍습으로, 이 역시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방법이었다.


예술과 여유로 마음을 다잡는 풍류의 지혜


무더위를 잊으려 여름 정취를 노래하네


선조들의 여름 나기는 피서(避暑)가 아닌 낙서(樂暑)에 가깝다. 지금에 비하면 피서법이 전무했던 그때에 무더위에 대한 고통이 적을 리 없는데도 선조들이 남긴 글과 그림은 고통보다는 여유를 노래하고 있다. 실제로 여름이면 문인들은 책을 통해 더위를 잊고 깊이 사색하면서 수많은 예술 작품을 쏟아냈다.

숲 속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선비의 모습을 많은 그림을 통해 볼 수 있고, 사소한 것까지 즐겁게 노래한 시들을 즐길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소개한 ‘여름을 보내는 여덟 가지 방법’에 모든 노하우가 다들어 있다.

정약용은 63세이던 1824년에 시를 통해 여름을 나는 자신만의 방법, 즉 ‘소서팔사(消暑八事)’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나무 아래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연못에 있는 연꽃 구경하기, 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강변에서 투호 놀이하기, 달밤에 발 씻기.
이것들이 어떻게 더위를 잊게 할 수 있을까.

이 8가지 중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는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수양버들 비 뒤의 바람이 푸른 못에 불어라
부용의 자태가 사람을 머뭇거리게 하는구나
묘고의 빙설에다 생각은 세속을 뛰어나고
월녀의 치마 저고리에 자태도 얌전하구려
술 마시기에 알맞은 술잔도 겸하였다네
온갖 꽃이 어찌 미인을 시샘할 수 있으랴
하늘이 이 아름다운 물건을 머물려 두어
더위로 고통받는 속인을 조용히 기다렸다네


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 더위 나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다산의 시를 거듭 읽어보면 정서가 곧 몸의 고통을 치유함을 알게 된다. 물속에서 피어나는 꽃 하나를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 것, 그 이치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선조의 지혜다. 다산이 말하는 방법 8가지는 모두 사소하고 여유롭다. 문득 우리의 소비적인 여름이 조금은 생산적으로 바뀌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휴가 때마다 민족 대이동을 하는 우리가 일상에서 그토록 피하고 싶은 것은 몸의 더위가 아니라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마음의 더위가 아닐까. 더위를 노래하는 또 다른 시를 보자.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


조선 중기 학자 윤증이 쓴 ‘더위’라는 시다. 관직의 부름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일절 사양하고 학문에 매진한 인물이 쓴 시답다. 윤증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소로 피력할 뿐 직접 뛰어들지 않았지만, 당시 정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높았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여름이란 책 속에 파묻혀 은거함이 제일인 때였다.
반대로, 숨어 살지 않는 선비의 시에는 보다 밝은 감상이 실렸다.


시간을 거슬러 고려 중기로 가면 당대 최고의 시인 이규보를 만난다. 그의 대표작 ‘하일즉사(夏日卽事)’에는 한결 여유롭고 긍정적인 초여름 풍경이 담겨 있다.


 ‘홑적삼에 삿자리 깔고 바람 드는 마루에 누웠다가 꾀꼬리 울어대서 잠을 깨었네.

빽빽한 잎에 가려진 꽃 봄 뒤에도 남았고 엷은 구름에 햇살이 새어 나와 빗속에도 밝아라.’


비가 내리고 나면 더위가 한 풀 꺾여 견딜 만해졌다. 그래서 옛 문인이 쓴 시 중에는 유독 초여름 비 온 뒤의 숲 속 정취를 노래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추사 김정희가 쓴 ‘취우(驟雨)’라는 시다.


 ‘나무마다 훈풍 불어 잎사귀들 하늘하늘,

먹장구름 봉우리지나며 소나기 내리려 하네.

조그만 청개구리 한 놈이 파랗게 질려

파초 가지에 뛰어올라 요란히도 울어대네.



유숙 ‘세검정도’(26.1×58.2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계곡이 강물처럼 과장돼 보이는 그림으로, 선비 여럿이 모여 계곡이나 정자에 올라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며 더위를 쫓았다.



여름의 풍속과 선비의 사색이 담긴 그림들


선비들은 정자에 올라 홀로 시를 읊기도 하지만 모임을 만들어 여럿이 모여 함께 짓기도 했다. 김홍도가 그린 ‘송석원시사야연도’가 당시의 모습을 설명해준다.

송석원이라는 집에서 한밤에 시 연회를 하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울창한 숲 너머로 고적한 달이 떠 있고, 초라한 집 뒤편에서 선비 예닐곱 명이 시를 짓고 있다. 작은 술상 하나 앞에 두고 있는데, 먹고 마시는 것보다 시 짓기에 더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밤이 깊도록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 저 멀리 폭포수 소리를 배경 삼아 마음껏 시상을 펼쳤으리라. 무더위의 고통을 잠시 거두면 여름은 창작하기 좋은 계절임을 여러 시화가 말해준다.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김홍도. 지본수묵 (紙本水墨). 한독의약박물관


겸재 정선, 독서여가도(讀書餘暇圖), 1727년경, 비단에 채색, 24×16.5.cm, 간송미술관

말끔하게 정돈된 서가를 배경으로 선비가 툇마루에 비스듬히 앉아 부채를 펼쳐 들고 마당의 화분에 있는 꽃을 바라보고 있다. 선비들은 더위를 견디기 위한 방편으로 독서를 하기도 했다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이인문(李寅文) 국립중앙박물관


하경산수도[ 夏景山水圖] 심사정(沈師正)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이인문(李寅文) 


하일주연도[夏日酒宴圖] 이수민(李壽民) 



여름을 소재로 한 미술 작품 중에는 부채 위에 그린 그림도 빼놓을 수 없다. 부채에 그린 그림은 그 자체가 미술의 한 양식을 이룰 정도로 형식이나 양식에서 풍성하다.
조선 시대 이인문의 ‘송계한담도’ 같은 것은 부채 그림의 한 예가 된다. 김홍도와 동갑내기 화원이었던 이인문은 소나무를 잘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울창한 소나무로 송림의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키는 ‘송계한담도’에는 그의 특기가 잘 드러나 있다. 부채 위에 얹어놓으니 시원함이 배가되는 듯하다.


그 밖에 산수화로는 정선과 김두량이 각각 그린 동명의 작품 ‘하경산수도’가 알려져 있다. 당시 여름 풍경을 담은 산수화의 제목은 대부분 비슷한데, 산·구름·강이 주된 구도를 이루고 여기에 노승이나 행인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밖에 파초를 그려 여름을 시원하게 표현한 이수민의 ‘하일주연도’ 라든지 메뚜기나 베짱이 등의 곤충을 그린 이방운의 ‘하경산수도’ 도 여름철 생명이 뛰노는 풍경을 잘 담고 있다.


한편 민화에는 여름을 상징하는 창포나 모란이 주로 등장하며 선명한 빛과 모양새를 뽐낸다. 낚시하는 모습이나 농사일을 하는 광경을 그린 민화도 상당수에 이른다.
글 초입에 정조의 <일득록>을 소개했다. 선조들의 피서법을 짧게 정리하라면 다시 <일득록>으로 돌아가 정조가 쓴 한 문장으로 대신하고 싶다. 더위로 일상을 그르칠 때면 한 번쯤 되새겨야 할 말이다.


 ‘내가 깊이 경계하는 것은 쾌(快) 한 글자에 있나니 매사에 만약 쾌락을 좇으려 한다면 후회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글 김선미(자유기고가)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참고도서 <세시풍속과 우리 음식>(조후종 지음, 한림출판사 펴냄)



information 1


왕이 내린 독서 휴가, 사가독서

세종은 14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한 이후 1426년부터 학사들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자를 선발해 휴가를 주었다. 이 휴가의 목적은 독서에만 전념하는 것으로, 독서와 연구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나라에서 부담했다.

왕은 권채, 신석견, 남수문 3인을 선발해 공무에 관계없이 연구에만 몰두하게 했다.

이들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독서만 할 수 있도록 지원 받았다. 휴가 기간은 1개월에서 3개월 정도였으며,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휴가도 더러 있었다.
1442년에는 신숙주 등 6인에게 휴가를 주고 진관사에서 글을 읽게 했다. 1426년부터 1773년까지 총 48차에 걸쳐 320인이 선발되었다.



information 2


산속에서 남몰래, 풍즐거풍(風櫛擧風)

산이 없었다면 양반들의 여름은 무척 혹독했을 것이다. 한여름에도 예를 다해 의복을 갖춰야 하는 만큼 그들의
여름은 쉬운 계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폭포와 바람에 몸을 맡기는 풍즐거풍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풍즐거풍이란 한여름 숲 속에서 상투를 벗어 산바람에 머리카락을 말리고, 바지를 벗어 국부에 바람을 쐬는 풍습을 말한다. 이는 옷 아래 쌓인 ‘음기’를 여름의 태양으로 날려버리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평소 신체를 드러내지 않는 선비들이 한여름 염증으로 고생했음이 분명하다. 체면상 개울에서 목욕할 수는 없었기에 바람과 햇볕에 몸을 맡기는 꽤 과감한 피서법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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