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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모든 교회가 성서주일을 지키는 주일입니다. 한국교회는 1899년 성령강림주일이 있던 5월에 ‘성서공회 주일’로 1954년부터는 12월 둘째 주일로 정하여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교회마다 성서주일로 지키는 것은 복음이 배척 받던 우리나라가 서구 교회의 도움으로 한글 성경을 보급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성경을 처음 받았던 그 감격을 되새겨 복음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구할 수 없는 세계 이웃들에게 성경을 보내는 사역과 기도와 헌금을 동참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귀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일반인도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귀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서주일 함께 읽은 말씀 3절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예언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미 복을 받은 자임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AD90-96년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66권 성경 중 마지막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상황은 로마의 박해로 엄청난 핍박과 고난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흩어졌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 충만을 받았던 그 자리가 초대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된 교회의 중심이 예루살렘교회였지만 스데반집사의 순교 이후 핍박을 피해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교회는 점점 더 왕성하여 이방지역에 교회가 세워지면서 안디옥교회로 가 그 중심이 옮겨지고 세계선교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핍박은 계속 됐고 당시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를 비롯하여 사도들이 한분씩 순교하게 되는데 마지막 살아 남은 분이 계셨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천국복음을 전하면서 로마의 무자비한 박해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주변나라들을 지배하면서 도미티안 황제숭배를 강요합니다. 만약 황제에 절하지 않으면 믿은 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는 황제를 섬길 것인가? 예수를 섬길 것인가? 양자택일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예수님제자뿐아니라 믿음의 성도들은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한 순간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예수님 제자 가운데 사도요한은 순교적 각오로 신앙을 지키려다 밧모섬에 유배되어 남은 평생을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온 몸으로 증거한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밧모 섬에 유배된 사도요한은 어느 주일에 바위틈에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하늘이 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기록된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인데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서주일 성경의 소중함을 귀하게 여기며 이미 복을 받은 자로 살아온 저와 여러분이 오직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3가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읽는 자’란 사도 요한이 이 예언을 계시로 받아 기록한 서신으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주의 종들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의 종들에게 주신 계시(책)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주의 종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복음을 듣고 처음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사명이 주의 종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절에 보면‘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요한에게만 필요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언의 계시를 받고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일곱 교회 주의 종들에게 보내 계시의 말씀을 양 무리들에게 알기 쉽게 풀이해서 모든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 이었습니다.
오늘 성서주일도 예언의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하기 전 먼저 전하는 자나 말씀을 받은 성도가 다함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말씀을 읽는 이순간이 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 무디 목사님이 처음 예수를 믿을 때입니다. 무디는 거듭난 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기로 다짐 했는데 늘 세상 유혹에 넘어집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고 산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무디 심령가운데 물밀 듯 쏟아졌습니다. "아,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고 산을 내려와 생활하는데 받은 은혜가 한 달을 채 못 갑니다. 그리고 또 넘어집니다. 그래서 ' 혼자는 안 되겠구나! 부흥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겠다' 생각하고는 무디는 부흥집회마다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됐습니다. " 이제 소중한 은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리라 고백하며 생활하는데 또 상처 받고 넘어졌습니다.
무디는 탄식하며 고백하기를 "나는 화인 맞은 양심인가보다~~ 예수님 말씀처럼 길가의 뿌린 씨의 마음처럼 씨가 자라지 못하는 그런 모습인가보다." 자기 스스로를 자책하며 힘들어하는 어느 날 무디가 문득 펴든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으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들음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다. 이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그후 무디는 이곳 저곳 쫓아다니지 않고 오직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읽고 변화된 무디는 미국의 역사를 뒤바꾼 놓은 위대한 설교자가 된 것입니다.
지난주 운전 중에 광주 CBS 찬양의 꽃다발을 듣게 되었습니다. 찬양 중에 아나운서가 행사를 홍보하는데 성경읽기 목소리 기부를 말하더라구요~~~ 행사내용을 보니까 다음세대를 향한 구약성경 통독 릴레이를 하는데 신청 순서대로 920명이 구약성경 한 장씩 읽고 구약성경 920장을 모두 자기의 목소리를 담아 녹음을 완성한다는 캠패인이었습니다. 소중한 행사를 듣고 아멘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예언의 말씀을 읽는 순간 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2.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사모하여 읽고 또한 들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믿음의 사람들이 기록하여 우리가 소유한 66권 성경은 정경으로 완성된 로고스말씀입니다....시대가 변해도 로고스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읽은 계1:1-3 로고스말씀을 나에게 주신 레마의 말씀으로 받아 생업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들음이 없다면 나에게 임한 영적 소득이 없습니다. 믿음도 영생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소돔성에 살고 있는 롯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들을 롯의 집으로 보내 멧세지를 줍니다. 이 성안에 가족들을 다 불러서 하나님의 계획을 얘기 하고 빨리 이 성을 빠져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따들과 사위될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그 사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장인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장인의 말도 농담으로 여길 수 없을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슥1: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외쳐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말이든 잘 경청해야 하지만 특별히 하나님말씀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말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 천국복음을 비유로 가르치실 때 사용하셨던 한마디가 있지요 ‘들으라’ 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예수님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너무나 귀하기에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성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단호히 우리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예언의 말씀을 잘 들어 복받는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이 있습니다.
지키는 자들이란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모두 포함된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전하는 일만 하고 지키는 일을 하지 않는 다면 거짓 선지자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성도도 그렇습니다. 듣기만 하고 지키지 못하면 미련한 처녀처럼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지킨다는 말은 실천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말씀을 변질되지 않고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생의 복을 누리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합니다.
티벳 사람들의 종교는 라마 불교라고 합니다. 티벳 사람들은 라마 불교의 경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라마 불교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티벳종교는 불자들을 위해 사원 주위에 ‘마니차(摩尼車་)’ 라는 도구를 만들어 놓고 돌리면 됩니다.
‘마니차’란 원통형 모양으로 표면에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고, 내부에는 롤로 경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니차의 크기는 다양하여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부터 큰 것은 몇 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둥근 원통 마니차를 손으로 돌리면 한 번 읽는 것입니다...... 얼마나 형식적입니까?
만약 그리스도인이 휴대한 성경 중에 창세기를 읽어야 하는데 티벳종교 마니차처럼 한다면 창세기를 한 번 돌리면 한 번 읽는 것이요 두 번 돌리면 두 번 읽는 것이 됩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인데 티벳 불자들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도로에서 자동차 뒤에 성경 찬송을 얹어놓고 다니는 운전자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찬송을 마치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소원하는 부적과 같이 사용한다면 이런 것도 기독교식 마니차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무당(巫堂)의 수가 2018년 기준으로 4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당에 의해서 창출되는 금액이 무려 6조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십니까? 교회 다닌 성도가 교회에서 답을 얻지 못해 점을 치기 위해 무당에게 찾아간다는 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2022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의 수가 1,031만 8,532명 2018년 목사의 수가 9만여명이라고 하는데 교인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어떻게 한국사회가 이렇게 무당의 수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을까요?........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책임을 한국교회는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성서주일을 통하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영적으로 무장하며 귀하게 여기며 내가 늘 보는 성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교회 오실 때 성경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그냥 왔습니까?....... 아무도 성경을 가질 수 없었던 초대교회 때 성도들은 들려준 말씀에 의존하면서도 진정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시 한번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을 귀하게 여기고 성경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써 삶의 자리가 행복하고 말씀을 통해 복 있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