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내가 도둑처럼 간다.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아,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부끄러운 곳을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묵시16,15).
Ⅵ.“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2846우리는 죄는 유혹에 동의한 결과이기 때문에,이 청원은 앞서 말한 청원들의 뿌리에 닿아 있다.우리는 우리 아버지께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않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그리스 용어를 한마디로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이 말은“유혹에 빠지게 허락하지 마십시오.”,“우리를 유혹에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라는 뜻이다.“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고,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야고1,13).오히려 그분께서는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기를 원하신다.우리는,죄로 이끄는 길을 택하도록 우리를 버려두지 마시기를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이다.우리는‘육과 영 사이에서’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이 청원은 분별력과 용기의 영을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2847성령께서는 우리가“시련을 이겨 내는 힘”을 다지기 위하여 인간의 내적 성장에 필요한“시련”과,죄와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유혹”을 분별하도록 하신다.또한 우리는 유혹을‘당한다’는 것과 유혹에‘동의한다’는 것도 분별해야 한다.끝으로,분별력을 이용하면,우리는 유혹의 거짓된 가면을 벗길 수 있다.겉으로 보기에 유혹에 대상은“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이지만”(창세3,6),실제로 그 열매는 죽음이다.
2848“유혹에 빠지 않게 하시고”는 마음의 결단도 포함한다.“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6,21-24).“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5,25).우리가 성령께 이렇게 동의할 때,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신다.“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10,13).
2849이러한 싸움과 승리는 기도로만 가능하다.처음부터,그리고 고뇌에 찬 마지막 싸움에 이르기까지,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유혹자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신다.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이 청원으로,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싸움과 고뇌에 결합시키신다.깨어 계시는 당신과 일치하여,마음이 깨어 있도록 끊임없이 상기시키신다.깨어 있음은‘마음을 지키는 것’인데,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아버지께 청하신다.성령께서는,우리가 이처럼 깨어 있도록,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고자 하신다.이 청원은 지상에서 우리 싸움의 마지막 유혹과 관련되어 그 극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이 청원은 마지막까지 항구하게 하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내가 도둑처럼 간다.깨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묵시16,15).(‘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하느님,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시편51,12).
“마음”과“영”은 구약성경의 사고에 따르면 인간의 근본적인 힘이고,한 사람의 삶의 처지와 방향을 가리킨다.시인은“깨끗한 마음”과“굳건한 영”을 청한다.“깨끗한 마음”은 뜻이 나누어지지 않거나 오직 한 가지,곧 하느님의 뜻을 행할 것을 추구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다.그의 뜻이 하느님께 열려있다.‘영’은 여기서‘마음’과 동의어이며 생명력과 의지력의 중심이다.‘굳건한 영’은 마음과 뜻이 하느님을 향해 굳게 정해진 상태로서 일관성 있게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굳센 정신을 말한다.‘만들다’로 옮긴 히브리말‘바라’동사는 오직‘하느님’만을 주어로 취한다.이 동사는 이전에 없던 것을 존재케 하는 것을 뜻한다.그런데 이사40-66장에서는 ‘창조’라는 동사를 이미 있던 것을 변화시켜 새로운 것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표현하는 데 사용한다
(이사41,20;45,8;65,17.18참조).따라서 시인은 하느님만이 자기를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죄의 얼룩을 제거하기가 무척 어려움을 강조한다.그래서 그는 죄보다 더러운 진흙으로 오염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진흙으로 더렵혀진 이는 단 시간 내에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죄의 깊은 구렁에 빠진 이는 씻을 수도 없다.그에게는 긴 시간과 엄격한 회심과 눈물과 탄원과 더 많은 통곡과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을 때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열정이 필요하다.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씻기 어렵다.예수님도“마음에서 나쁜 생각들,살인,간음,불륜,도둑질,거짓증언,중상이 나온다”(마태15,19)고 하면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다.그리고“행복하여라,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그들이 하느님을 볼 것이다”(5,8)하고 말씀하셨다.시인은 죄의 고백을 통해서 용서뿐 아니라 새롭게 되기를 간구한다.시인이“새롭게 하소서”라고 한 것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시편51,7참조).이 구절은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영감을 받았다.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정화하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며 그들이 당신의 토라를 지키며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에제36,24-28참조).여기서 회개하는 죄인의 영적 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은 성령이시다(히폴리투스).
(인왕산 둘레길 01/27)
시편51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51편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시편이다.시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도록 권고하면서 회개를 통해 의로고 거룩하게 되기를 가르친다.이 시편의 내용은 죄의 용서에 대한 간청으로 이루어져 있다.시인은 자신의 인간적인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느님이 해주시길 간청한다.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 자세다.시인은 철저히 부서지고 꺽인 마음으로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죄의 고백을 통해 용서를 간청하는 시인은 죄에 대한 벌을 생각하기보다 더 큰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고 있다.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님이 새롭게 창조해 주시기를 바란다.깨끗한 마음을 청하는 것은 구원하시고 자비로운 하느님께 자기를 내어맡기는 기도다(시편130편 참조).그리스도교회는 다윗을 참회의 전형으로 내세운다.다윗은 모든 죄인을 대표한다.자신의 죄를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고 참회하는 다윗을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다.그러므로 시인은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라고 요청한다.용서는 새 창조를 이루게 한다.하느님의 용서에는 창조력이 있고,하느님의 성령은 인간의 마음을 쇄신하는 능력이 있으며,하느님은 인간을 딴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다(마르티니).이 시편을 묵상하므로써 우리는 화해성사의 의미를 깨닫고 죄의 고백과 용서를 통해 기쁨을 얻으려 하느님의 빛나는 은총을 체험하도록 초대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 42-89편/전봉순 著/바로로딸)
“차라리 그들에게 고무나무와 콜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가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DR콩고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고무나무나 콜탄처럼 산업 발달에 반드시 필요한 원자재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지만,풍부한 자원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부유한 국가의 착취 대상이나 분쟁 원인이 된다.그것이 바로 자원의 저주다.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자원이 풍부한데도 빈곤한 이유를 설명하지만,첨단기술,거대자본과 강력한 무기로 중무장한 부유한 서구 국가로부터 자신의 것을 지킬 힘이 없었던 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본문 140쪽 발췌)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를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나무1-지리산에서/신경림)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