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계 3:1-6절
제 목 : 주님이 보실 때 온전한 사람이란?
일 시 : 2026. 6. 24.
요한계시록 3:1-6/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사데 라는 뜻은 새로운 것이라는 뜻과 주님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데 라는 지명은 새로운 것 또는 살아 있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데 라는 이름의 뜻대로라면 살아 있어서 날마다 새롭게 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고후5:17절 말씀처럼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의 이름은 새로운 살아 있는 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행위가 죽었다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름은 살아 있는 교회인데 교회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입니다.
2.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절에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했습니다. 두 문장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일깨워란 그레고류오(현재 능동태 분사)라고 하는데 깨어 있다, 정신 차리다, 경계하다, 주의하다 라는 뜻으로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데 지역이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안일에 빠져 있어서 두 번씩이나 점령을 당했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 일깨워 라는 권면을 하심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죽게 된 것을 라고 했는데 미완료 능동태 시상으로 사데 교회가 부분적으로 살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굳게 하라는 부정과거 능동태 명령형으로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영적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씀입니다.
2)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온전한이란 플레오로 라고 하는데 가득차게 하다, 즉 꽉 채우다, 평평하게 하다, 만족하다, 완성하다, 만기되다 라는 뜻으로 네 행위가 완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사데 교회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완전하다는 뜻이며, 사데 교회 성도들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3. 그래서 주님은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3절 말씀은 2절 말씀에 대한 원인을 설명합니다. 즉 2절에서 사데 교회의 성도들의 삶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았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교회와 거룩한 성도로서 온전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의 삶과 행동이 온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3절 상반절에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의 문제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듣기는 듣는데 그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종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배 드리며 말씀을 듣는 것과 들은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복에 대한 말씀을 듣는 것과 실제로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듣지만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첫 번째는 건강의 복이고, ② 두 번째는 물질의 복입니다. 그래서 잠3:13-16/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고 지키면 반드시 건강하게 되어 있고 물질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③ 세 번째로 신령한 은사가 열려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실제로 이런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3절에 보시면 지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지키다란 테레오라고 하는데 지키다, 보존하다 라는 뜻으로 받은 말씀을 지키며 보존하는 것이 사데 교회가 해야 할 회개(메타노에오/회개하다, 회심하다, 돌이키다)라는 뜻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아는 것과 날마다 기도하는 삶은 다릅니다. 기도에 대해서 듣고 아는 것과 무슨 일이 있든지 정한 시간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전도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날마다 쉬지 않고 전도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말씀을 아는 것과 그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여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은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도둑같이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데 교회가 죽은 부분을 회개하여 새롭게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심판하러 오신다는 뜻입니다.
4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했습니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자가 몇 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입혀 주신 의의 겉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곧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합당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삶은 그 옷이 더럽혀진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고 가족들에게는 인정을 받고 성도들에게는 인정받을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자는 것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잘되고 부요하고 형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세처럼 살아야 합니다. 히11:24-26/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기는 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누가 이기는 자입니까? 흰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흰 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옷이 더럽혀진 사람입니다. 이들은 영적전쟁에서 실패한자입니다. 누구한테 졌습니까? 마귀에게 졌다는 뜻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세상의 것을 즐기고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는 뜻입니다.
이긴 자만이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를 지지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6절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은 누구의 말씀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하시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니고 예배 드리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4.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사데 교회가 온전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들은 어떤 면에서 온전하지 못했을까요? 자신의 삶을 성경말씀과 일치시키는 일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롬12:1-2/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대로 사는데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몸(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예배에 실패했다는 뜻이며, 그렇게 살지 못한 원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행위가 온전한 살아 있는 거룩한 삶이라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삶이라는 예배를 인정해 주십니다.
5. 노아는 행실이 온전한 자입니다.
창세기 6: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행실이 온전한 자란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을 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짐승들을 드려 놓으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방주의 문을 닫으라고 했을 때 방주의 문을 닫았고, 방주의 문을 열어라고 했을 때 방주의 문을 열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의 사람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말씀에 100%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는 관심이 없었고, 가족들이 뭐라고 하든지 거기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가리켜 당대에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온전한 자는 교회만 다니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들은 바 말씀대로 살아 드리는 삶과 행위가 뒷 바침 되어야 합니다.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께서 보실 때 온전한 자입니다. 그래서 본문 4절에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했습니다.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내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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