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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과학]
혐오를 멈추게 할 일곱단계 / 매슈 윌리암스
극단적으로 편견이 심한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 대다수는 편견이 깃든 생각을 할 때면 가책을 느끼고 일상적으로 그런 생각을 억누른다.
고든 올포트(심리학자)
* 다양한 사회운동이 계기가 되어 규범과 법률이 20세기 후반에 바뀌면서, 문화적으로 주입된 편견에 대해 사람들이 자꾸만 불편하게 여기게 되자 억누르기의 정도가 심해졌다.
* 타자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말로 표현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정당화되지 않게 되었고, 일부 경우엔 차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면 범죄로 여겨졌다.
* 편견은 21세기에 더 크게 억눌러졌을지 모르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았다.
* 대체로 규제를 받지 않는 소셜미디어의 광범위한 사용과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득세해 기존의 규범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다시 편견의 표출을 정당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우리의 두뇌, 심리적 메커니즘, 사회 구조 및 기술 등의 단점이 우리의 편견을 부추겨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 이런 힘에 면역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우리 모두는 그런 힘들이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하는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차릴 책임이 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일곱 단계로 정리.
대체로 무의식적인 우리의 편견이 차별과 혐오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조치들이다.
1. 가짜 정보를 알아 차려야 한다.
우리 두뇌에 설치된 위협 감지기는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진화해왔다. 이 감지기의 대단한 역할 덕분에 우리는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지만, 이제 그것은 구식이 되었다. 선진국에 사는 우리 대다수에게는 더 이상 목적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특정한 상황에 작동할 수 있는 다양한 생물학적 과정들과 우리가 학습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함께 맞물리면, 위협이 거의 또는 아예 없는데도 적색경보가 울릴 수 있다.
가짜 정보가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울리면, 그 결과 생기는 행동은 편견과 혐오의 형태를 띨 수 있다. 이 위협 감지 메커니즘을 재설정하는 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많이 든다.
정치인과 언론으로부터 우리와 다른 어떤 사람들 때문에 생활이 나빠졌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반드시 그들의 동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틀린 정보나 허위 정보라는 걸 알아내면 적색경보를 해제해야 한다.
2. 우리와 다른 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뇌는 많은 일에 대단히 능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분야에 결점이 있다. 인간의 뇌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는 없기에 지름길을 만드는데, 그것이 의견, 태도 및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정관념이라는 형태의 이 지름길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이들, 특히 낯선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배운 고정 관념은 특히 변화에 저항하는 편인데, 어린 시절의 뇌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고정관념을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고정관념 중 일부는 비교적 문제될 거리가 없다.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은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문화에 의해 학습되고 전파되며, 우리의 집단 위협 반응 메커니즘을 먹고 자란다. 신문, TV, 책, 인터넷 및 가족과 친구 등의 문화 전달 수단들이 타자에 대한 일반적인 그리고 종종 조잡한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잇다.
이 고정관념은 나중에 판단과 행동을 위해 필요할 때 꺼내어 쓰기 위해 기억되고 저장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의 영향력에 노예상태에 처해 있지믄 않다. 우리는 행동의 순간에 고정관념이 지시하는 일에 저항할 수 있어서, 우리의 행동을 조절해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유명인이나 할리우드 작가한테 우리 일을 대신해달라고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생각할 줄 알며 '문화 기계'가 뽑아내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 마땅히 우리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상투적이고 조잡한 판단에 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본능은 일부 상황에서 유용하긴 하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관해 본능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면 차별을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첫인상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되며 늘 어떤 이에게 우리가 틀렸음을 증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고정관념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려면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하다. 즉,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개인적 접촉이 필요하다.
3.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접촉하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된다
살다가 어려운 순간에 의지할 만한 가까운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이젠 이웃 주민들 그리고 동네 커피숍이나 술집에 종종 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다음엔 직장 동료라든지, 같은 반 학생 또는 인생에서 이 비슷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람들의 피부색, 젠더, 성적 지향, 종교, 나이 그리고 신체적 내지 정신적 장애를 생각해보자.
아마도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다양성이 가장 낮고, 직장 동료나 그 비슷한 이들이 다양성이 가장 클 것이다. 어쩌면 당연히 이 패턴은 서구 세계의 가장 유명한 TV 드라마에서 반복된다. [<치어스(Cheers)>, <섹스 인 더 시티>, <프렌즈>]와 같은 메가 히트작이 그렇다.
이 공식은 우리의 경험을 반영한다. 어려울 때 우리가 기댈 사람들은 우리와 동일한 특징들을 많이 공유하기에, 이런 점이 우리가 누구를 더 일반적으로 신뢰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쨌든 이 공식은 폭넓은 친구, 지인 및 동료 들의 관계에서 생길 인생의 다양한 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인종 간 혼합의 결과를 놓고서 견해가 엇갈렸다. 어떤 학자들은 가령 교실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인종 간의 접촉이 늘어나면 불편함, 긴장, 심지어 폭력이 초래될 것이라고 가정한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관용과 존중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집단 간 접촉 이론(Intergroup Contact Theory)이 개발되어 편견을 감소시키는 최적의 접촉을 위한 네 가지 요건을 제시
(1) 접촉의 상황 면에서 두 당사자는 동등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이는 직장 및 교육 시설에서 자연스레 생길 수 있는데, 가령 동일한 지위나 순위의 백인과 흑인 직원들 및 학생들은 함께 일하거나 공부하게 한다.
(2) 두 당사자는 공동 프로젝트에서 일하기와 같은 공통의 목표가 필요하다.
(3) 이 목표를 추구할 때 두 당사자는 공개적으로 협력해야 하며 고립되어 일하지 않아야 한다.
(4) 사장이나 교사처럼 두 당사자가 존경하는 권위 있는 인물에 의해 둘의 관계가 인정되고 지지를 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지내며 잘 어울리고 접촉할 때 이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이들은 주로 사적인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서로 간의 공감을 키웠고 집단 간의 유사성을 보여주었다. 이과정에서 이들은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위협받는다는 인식을 없앰으로써 상이한 집단 간에 친숙함과 호감을 키우고 불안감과 염려를 줄였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즉,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함께 섞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인정하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듣고 이해하기는 쉽지만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섞이긴 어렵다). 특히 다양성이 높은 장소에서 살거나 일하지 않는 이들에겐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가 섞여 지낼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 기회를 붙잡아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미래 세대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아이들도 그런 경험을 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4. 시간을 내서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아야 한다.
TV에서 고정관념에 반하는 등장인물을 보거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이걸 우리는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언론과 유명인에게 넘어가서, 걸핏하면 편견과 차별을 행하는 이들에게 공감해선 안된다.
형사사법 기관들이 시행하는 회복 관련 사법 프로그램은 혐오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서로를 공감하도록 만들어준다. 실험실에서 밝혀지기로도, 다른 사람의 관점과 경험을 상상하는 훈련을 통해 탈범주화(decategorization)라는 심리적 과정이 촉진되었다. 탈범주화란 '다른 사람들'을 특정 집단의 일원이라기 보다 한 개인으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다른 이들을 재범주화(recategorise) 또는 교차범주화(cross-categorise)하는데, 이는 그들을 개인으로 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도 본다는 의미다.
신문과 TV, 온라인 상에서 다른 이들의 곤경을 표현하는 대목을 접할 때, 우리는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가 그들의 처지가 되어볼까? 되지 않겠다면, 왜일까? 어떤 면에서 내가 그들보다 나을까? 그렇다면 이유는? 우리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들의 목표와 동기는 무얼까? 그들이 맞닥뜨린 장애를 나도 맞닥뜨린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들의 상실과 고통을 나도 겪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다른 이들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인정할 수 있고, 또한 역지사지할 수 있게 된다.
5. 분열을 조장하는 사건이 우리를 노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경기침체기, 논쟁적인 정치 투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소송 사건, 테러 공격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굉장한 힘으로 우리를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를 결합시키기도 한다. 위기가 닥치면 본능은 우리와 같은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한다. 때로는 외집단을 희생해서라도 말이다. 이것은 일거리와 의료혜택과 같은 자원에도 적용되고, 또한 우리의 세계관처럼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에도 적용된다.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 벌어질 때 우리는 그 사건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집단이 진짜로 잘못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게 지목하는 자들의 동기에 의문을 품어야 하며, 폭넓은 관점의 스펙트럼에 걸쳐 다양한 의견을 접한 다음에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는 도덕적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반응을 최선을 다해 피해야 한다. 그런 반응은 카타르시스가 뒤따를 순 있겠지만, 효과가 짧으며 장기적으로 더 큰 고통과 불행을 낳는다. 그대신 우리는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보여주는 건전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가 대단히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생활방식을 위협한다고 느낀다면, 긍정적인 행동 (가령, 친구와 가족 만나기,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자원봉사활동)으로 그런 가치와 생활방식을 강화해야 한다.
6. 필터 버블을 터뜨려야 한다.
인터넷은 전 세계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가 온라인에서 접하는 관점들은 오프라인 세계에서보다 덜 다양할지 모른다. 온라인 필터 버블이 우리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여부를 놓고 과학이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우리 대다수는 취향이 맞지 않는 집단과 정보를 적극적으로 피하거나 아니면 알고리즘의 안내를 받아 피한다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을 강화시켜주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식을 적극적으로 찾는데, 이것이 알고리즘에 입력되어 나중에도 이런 과정이 계속 심화된다.
7. 우리 모두는 혐오 사건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여야 한다
혐오를 목격하면 우리는 이를 알려야 한다. 편견과 혐오를 목격한 사람들에 관한 제한적인 연구에 따르면, 혐오를 목격하고서 피해자를 돕거나 가해자를 훈계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혐오 사건의 '최초 반응자'가 되려면 그 행위가 혐오의 결과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첫 번째 단계이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혐오 행동에 대해 그 순간에 의문을 품도록 만드는 여러 방법이 있다.
* 전문가의 견해를 이용해 편견이 깃든 주장과 이야기를 무너뜨린다.
* 혐오를 일삼는 자들에게 혐오 언행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요구한 후 그들의 주장이나 믿음의 모순을 집어낸다.
* 그들이 피해자에게 해를 끼치는 면을 부각시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들추어낸다.
* 피해자의 처지가 돼 생각해보라고 해 공감을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