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이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작은 사건 하나가 터졌다. 이무렵 청와대에서는 아버지 대통령과 딸 퍼스트레이디가 영화를 자주 보았다고 하는데 이 필름도 차출됐다. 아버지는 서부극을 특히 좋아했고 딸은 윤정희의 팬이었다. 그러나 사전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보기에 난처한 영화를 틀게 됐다. 뉴욕 뒷골목의 창녀촌이 튀어나온 것이다. 시골뜨기 존 보이트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카우보이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다 늙은 여자에게서 유혹을 받는다. 사내는 몸파는 여자인 줄도 모르고 젊음을 봉사한 대가를 요구한다. 이 장면에서 존 슐레진저 감독은 박력있는 정사신을 연출했다. 벌거벗은 젊은이는 부츠를 벗을 시간도 없이 달려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기엔 거북스러운 영화다. 물론 상영은 즉각 중지돼 이튿날 극장에서 죄 없는 필름이 여러군데 잘려나갔다. 이러한 뒤라 (화려한 외출)을 사전검토하고 있던 경호원이 깜짝 놀란 것은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사이로 청와대 정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을 단풍 중에서도 은행나무를 사랑한다. 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와 눈부신 노랑색이 야릇한 조화를 이루면서 어떤 설렘 같은 것이 번져온다. 그런데 운좋게 영화 끝장면에 은행나무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광화문 가로수는 물론 효자동 육상궁 앞이 온통 노랑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을 때 여주인공 윤정희는 사력을 다해 섬에서 탈출, 서울의 집으로 돌아온다.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검게 타서 옛 여류명사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그녀의 발길에 낙엽이 차이고 가을바람이 노랑잎을 눈발처럼 날린다. 감독과 촬영기사가 승용차에 카메라를 숨기고 그 광경을 찍고 있을 때 호루라기를 불며 순경이 뛰어왔다. 여기가 어딘데 촬영을 하느냐고 호통을 친다. "아, 우리는요. 공보실 뉴스팀인데 가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스케치를 하고 있다"고 정일성은 태연히 말하고 "신분증 보여드릴까요?"하며 뒷주머니에 여러번 손을 넣었다. 순경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러갔다.
경호실에서는 영화사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사장은 "우린 그런 거 모른다. 감독과 촬영기사가 다 알아서 찍는 것이 영화"라고 변명했다. 그래서 한밤중에 감독과 촬영기사가 종로경찰서에 연행됐다. 서장은 사뭇 위협조로 당신들은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정일성은 "은행나무가 어디 청와대 앞에만 있는가. 덕수궁에서 찍었다"고 강변했지만 우리는 긴급신원조회가 끝날 때까지 차가운 콘크리트에 2시간이나 꿇어앉아 있어야 했다. 물론 전국에서 상영중이던 (화려한 외출)의 은행나무 장면은 가위 세례를 면치 못했다.
같은해 11월, 광릉수목은 늦가을이 돼 서리를 맞은 낙엽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연말까지 완성해야 하는 시한부제작 (웃음소리)를 시작하며 마음이 급했다. 거의 로케이션으로 이뤄진 작품이기 때문에 짧은 가을 햇빛이 아쉬워 점심 먹을 시간마저 아껴야 했다. 그날도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허기를 참고 카메라를 돌리는데 제작부장이 사색이 돼 달려와 내 귀에 속삭인다. 이영하의 모친이 병원에서 다급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보호자 사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독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빠듯한 촬영일정에서 배우가 빠지면 완성이 지연돼 회사에 누를 끼치게 되고 보호자가 없으면 한 생명이 위독하다.
(웃음소리)는 예기치 않게 남정임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66년 나의 작품 (유정)으로 데뷔한 그녀가 끝맺음을 같은 감독으로 만난 것은 무슨 인연일까. 그러나 이무렵의 그녀는 아직 건강했으며 재일동포와 초혼에서 실패하고 돌아와 다시 좋은 남자를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져 있었다. 촬영현장에는 귀공자 같은 젊은이가 고급외제 승용차에 여배우를 태우고 나타났으며 종일 기다리다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남정임이 재벌 아들과 만나는 것을 불순하다고 수군거렸지만 나는 어쩐지 두사람이 잘 만난 것같이 느껴졌다. 후일 유방암으로 남정임이 세상을 뜬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열심히 기르며 지금도 독신으로 버티고 있는 그의 남편을 왜 사람들은 바람둥이로 봤을까.
극중에서 호스티스로 분한 그녀에게는 두 사람의 상대역이 있는데 영화를 막 시작한 이영하와 신인 김만이 뽑혔다. 김만의 본명은 김기만. 시골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 무작정 상경한 그는 가난한 고아였다. 어떤 영화사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꿈을 키웠는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내가 그에게 돈이나 만족하게 벌라고 김만이란 예명을 지어주고 연기공부를 시킨 지 일년 만에 데뷔시킨 것이다. 그는 언뜻 말론 브랜도를 연상케 하는 준수한 용모를 가지고 있고 성실했기 때문에 유망한 신인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정에 굶주리고 성장한 그가 어느 여자의 유혹으로 결혼하고 애를 낳고 이혼한 후 낙향한 지 20년에 가깝다. 지난해 어떤 영화에서 그의 얼굴을 발견하고 반가워 수소문했더니 다시 본명으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영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이례적인 점심식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을 아들을 배부르게 이것 저것 챙겨먹였다. 그날밤, 낯선 전화를 받게 됐는데 자기가 이영하의 어머니라고 했다. "감독님, 오늘 낮에는 미안하게 되았소. 영하를 어떤 영화사에서 보자고 하는디 어짜것소. 거짓말해서 정말 죄스럽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