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한국은 여성폭력주간?
11월 25일은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이다. 1991년, 세계여성운동가들은 11월 25일부터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를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으로 정하였고,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여성폭력 근절과 여성인권 실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1년부터 한국여성의전화가 국내 최초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행사를 개최하였다. 2020년부터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의거 정부에서도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 외 다른 여성폭력 관련 특별법에서도 범죄 예방을 위한 교육 및 홍보를 국가의 책무로 두고 있다.
올해 UN은 #NoExcuse(납득될 수 있는 변명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여성폭력이 허용되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변명은 없다’는 내용의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이한 2023년의 한국은 어떠한가. 추방주간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공격, 여성이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들에 관한 뉴스들이 쏟아졌다.
지난 11월 26일 의정부에서는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27일 대구에서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최근 한 온라인 게임의 애니메이션 영상에 ‘집게손 모양’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라는 억지 논란이 일어나 해당 회사가 사과하고, 다른 게임 회사들도 잇달아 콘텐츠 검수에 착수했다고 한다. 해당 게임의 일부 유저들은 관련 애니메이션 회사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의 신상을 유포하며 비난하는 등 사이버 스토킹 범죄도 저질렀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여성단체가 주관한 ‘페미니즘 혐오 몰이 규탄’ 기자회견의 참가자를 죽이겠다는 칼부림 예고 글이 올라왔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기업 관계자가 “페미 때문에 여대 출신 지원자, 숏컷 여성 지원자는 채용 과정에서 무조건 탈락시킨다”는 글을 게시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위에 언급한 사건들은 올해 1년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라 여성폭력 추방주간 단 일주일 동안 일어난 사건 일부만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범죄가 계속 이어지고, '페미는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구조·문화에 기인한다. 날마다 발생하는 여성폭력 사건은 여성혐오가 용인되는 구조적 성차별이 오히려 강화되고, 성평등 인식이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고,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인식개선과 이를 통한 성평등한 문화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되는 여성폭력 사안에 대한 해결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내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서 성인권교육과 폭력피해 예방 및 홍보사업 등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 예산을 ‘효율’을 이유로 전액 삭감했다.
올해 6월 발표된 유엔개발계획(UNDP)의 젠더사회규범지수(GSNI)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한국은 성별에 대한 편견(gender social norms)이 가장 심화한 나라로 나타났다. 국가는 올 한 해 ‘여성폭력 추방’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성평등 전담 부처를 폐지하고 성평등 관련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끊임없는 여성폭력 사건 발생은 이미 예견된 재난이었다. 여성폭력 추방 주간,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시민들이 성평등 사회의 필요성을 체감하며 다양한 행동에 임하고 있다. 여성폭력 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무 이행을 엄중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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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na.co.kr/view/AKR2023112712790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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