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와 사대(事大)관계를 맺고 천자가 만든 역서를 받아서 사용하였다. 당시 매년 가을에
연경(북경)에 보냈던 동지사(冬至使)는 바로 다음해의 역서를 받아오기 위해 보낸 사신이었다. 세종시대 들어오면서,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우리 임금이 만든 역서에 따라 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 역법개정에 착수하였다.
한양의 일출 ‧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우리 풍토에 맞는 역법을 개발하여 최초의 본국력(本國曆)이라 부르는
[칠정산]을 제작하여 명나라 [대통력]과 함께 사용하였다. [칠정산]은 글자 그대로 해와 달, 수성, 금성, 목성,
토성(이를 칠요七曜라고도 한다)의 운행을 계산하는 ‘일곱 천체의 운행 계산법’이다. ‘역’ 대신 ‘산’이 붙은 것은
천자가 만든 역서에만 역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정산내편]은 역의 원점인 역원(曆元)을
[대통력]의 홍무(洪武) 17년(1384)으로 하지 않고, 원나라의 지원(至元) 17년(1280)으로 정하여 사실상 [대통력]대신
[수시력]을 교정하여 천체운동을 나타내는 역을 계산하고 한양을 기준으로 상수들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지방시
(地方時)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출 ‧ 일몰 시각과 주야시간을 계산하여 정해졌다. 우리의 과학기술로 직접 역법을
교정(校正)했다는 사실은 조선이 전세계에서 지방시를 시행한 몇몇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