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이 좋아 ,
이처럼 칠십 년도 더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진주 고모도계시고 작은집 아지매,(정씨집 딸이 많아 네명 계신듯) 무꿀(뭇골) 어른, 양제이(?) 어른계시는 연동못 생각도 나고,
복근 아재에게,
수염도 잘생긴 가섭고모 할아버지 못지않게 잘생긴, 동갑내기 병신생
그때 그시절 가섭 56년 희문이 안부도 물어보고 싶고,
승택아재에게는 차황읍내 돼지장사 하고 농협조합장 하고 싶어 했다는 박씨, 큰 아들, 박중배(53년생,대병중학교, 거창고등학교 출신,파주여자 중고등학교에서 같이 근무함) 안부도 물어보고 싶고,
일년 동안 언제 뭘 먹고, 누가 참석하고, 얼마를 썼는지, 자세히 보고하시고, 회장께 팁을 드려 써빙하는 매니저 주게하고, 도네이션 하시는 외사촌 주식이 아재께 수시로 근황도 알리고, 고마움도 전하는 멋쟁이 총무 인종아재 !
아재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84년 결혼해서,아내가 삼개월시집살고, 85년 삼백만원을 지원받아,방하나 부억하나 화장실도 없는 전세집을 면목동에 얻어 살때, 우리 후덕하고 잘생긴 마산막내고모께서 육백만원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고 하세서, 부평에 비둘기 아파트를 사서, 고모님과 같은 동에서 자리를틀고, 너무 기분 좋아 ,오층까지 날라올라가던 이야기, 연탄 자르던 칼의 용도를 알려주시며, 그곳에서 1985년 첫애를 순산했고, 잘 보살펴 주시던 고모 할머니!
둘째 아들이 인종아재 인듯합니다.
생각해 보면,
돌아가셨지만, 삼십 초반에 혼자 되시어 오남매를 이고 지고 마산에서 서울로 오시어 얼마나 어려웠을까? 생각하면, 담담하게 담배 자시던 막내 고모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자신께서 너무 일이 많아서 자식들 고생 안 시킬려고 제사까지 지내지 말라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
옛 선고들의 뜻을 받들어 오늘도 김장 120kg을 하며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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